넥슨이 엔씨소프트의 경영 참여를 선언한 지난 1월 27일과 주주제안서를 보낸 2월 6일, 이를 화제 삼아 대화를 나누며 농담처럼 이야기했던 일이 있습니다. 바로 텐센트가 이 싸움에 뛰어들 수도 있다는 것이죠.
물론 당시만 해도 넷마블과 엔씨의 상호 지분투자는 생각하지도 않았습니다. 넥슨이
엔씨소프트에 자사주를 소각하라는 요구에 대해서, 엔씨소프트는 “자사주
매각은 없을 것”이라고 공언했었죠. 그런데 상황이 바뀝니다.
돌연 엔씨소프트가 넷마블게임즈 지분 9.8%를 취득하면서 자사주 8.9%를 매각합니다. 서로 주식을 맞바꾸면서 넥슨이 요구한 자사주도
처분하고 우호지분을 늘리는, 더불어 모바일게임 시장에서의 시너지도 바라볼 수 있다는 1석 3조의 효과를 보게 됩니다. 이로서
엔씨소프트는 넷마블게임즈의 4대 주주가 됩니다.
그런데 여기서 생각해볼 부분이 있습니다. 앞서 언급한 텐센트의 존재입니다. 텐센트는 넷마블게임즈에 총5,330억 원을 투자하면서 지분 28%를 가진 3대 주주입니다. 더불어
텐센트는 중국에서 <블레이드 & 소울>을 서비스하며 엔씨소프트에 간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관계입니다.
그런데 이번에 넷마블게임즈가 엔씨소프트의 자사주를 획득하면서 엔씨소프트의 3대
주주가 됩니다. 텐센트는 넷마블게임즈의 3대 주주로 엔씨소프트에
나름 직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됩니다. 물론 대놓고 텐센트가 전면에 나설 일은
없어 보입니다.
어찌 됐든 농담처럼 말했던 텐센트의 등장은 사실이 됐습니다.
텐센트가 가진 한국 게임업계의 머니파워
이쯤 되면 텐센트가 한국의 게임시장에 어떤 영향력을 가졌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텐센트의 자본이 직접 투입된 곳은 넷마블게임즈에 5,330억 원, 파티게임즈는 지분 20%는 내주며 200억 원의 투자을 받았습니다. <영웅 for Kakao> <블레이드 for Kakao> 등으로 급성장 중인 네시삼십삼분도 텐센트-라인 합작으로 1,300억 원대의 대규모 투자를 받았습니다. 이 과정에서 텐센트는 20% 내외의 지분을 확보했고요.
간접적인 영향을 받는 곳은 더 많습니다. 지난해 3월, 스마일게이트는 선데이토즈의 지분 20.7%를 1,200억 원에 인수했습니다. 아시다시피 스마일게이트는 <크로스파이어>의 중국 매출이 가장 큽니다. 그리고 <크로스파이어>의 중국 퍼블리셔는 바로 텐센트입니다.
텐센트는 스마일게이트에 영향력이 있고, 선데이토즈는 중국 시장 진출을 위해 스마일게이트와 텐센트의 관계를 봤다는 분석입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텐센트는 벤처캐피탈회사인 캡스톤파트너스와 함께 500억 원의 펀드를 구성하고 <별이 되어라>의 개발사인 플린트에 투자하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텐센트가 간접투자를 한 게임업체만 7곳이 넘죠.
이 중에는 드래곤네스트를 개발했고, NHN 전 대표를 역임했던 이은상 대표의 카본아이드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참고로 캡스톤파트너스의 창업자
중 한 명인 송은강 파트너는 과거 MVP 창업투자(現 스마일게이트 인베스트먼트)를 창업한 인물입니다.
얼마전 텐센트의 파워를 여실히 보여준 사건이 있습니다. 데브시스터즈의 <쿠키런>이 텐센트를 통한 중국 진출에 실패했다는 소식이
들렸고, 데브시스터즈의 주가는 곤두박질쳤습니다.
참고로 텐센트는 카카오의 지분 13%를 가지고 있고, 다음과 카카오가 합병한 지금도 통합법인 지분 9.9%로 다음 창업자인
이재웅 대표의 3.3%보다 많은 대주주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국내에서 가장 인기 있는 <리그 오브 레전드>의
라이엇게임즈도 텐센트가 지분을 인수한 상태입니다.(라이엇게임즈는 인수라는 표현을 사용하지 않고, 텐센트를 대투자자라 말합니다)
이처럼 직간접적으로 텐센트는 국내 게임업계에 막대한 영향력을 가져갔습니다.
엔씨와 넷마블, 그리고 텐센트의 관계 설정은?
앞서 설명이 좀 장황했습니다. 다시 원점으로 돌아와서 텐센트가 엔씨소프트와 넷마블게임즈와
어떤 관계를 가져갈지 볼 필요가 있습니다.
정리해보자면 엔씨소프트는 텐센트와 <블레이드 & 소울>의 중국 서비스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넷마블게임즈는 텐센트로부터 지분투자를 받았고 3대 주주의 자리를 내줬습니다. 엔씨소프트와 넷마블이 서로 지분을 주고 받는 과정에서 텐센트는 지분영향력이 감소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에
협력했습니다.
넥슨이 “(엔씨소프트의) 최대주주
입장에서 주주 가치에 영향을 미치는 투자에 대해서 소통이 없었다”고 유감을 표명한 반면에 텐센트에는
이번 투자에 대해서 어느 정도 이상 소통이 있었습니다. 그만큼 텐센트는 무시할 수 없는 영향을 가지고
있죠.
이쯤에서 생각해볼 문제는 넷마블게임즈가 성장한 배경에는 카카오 플랫폼이 필수 요소였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카카오의 2대 주주는 텐센트죠. 넥슨도 가장 큰 매출을 기록하고 있는 <던전앤파이터>의 중국 서비스사인 텐센트와 관계가 깊습니다.
엔씨소프트, 넷마블게임즈, 넥슨, 다음카카오 모두 ‘텐센트’라는
하나의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습니다. 오늘(17일) 엔씨소프트와 넷마블게임즈의 공동기자회견이 있었습니다. 이 자리에서
나온 이야기가 바로 공동사업 및 전략적 제휴를 통한 글로벌 경쟁력 확보입니다.
게임시장에서 중국시장의 영향력은 엄청납니다. 그리고 중국시장에서 텐센트의 영향력은
막강합니다. 결과적으로 텐센트는 넷마블게임즈와 엔씨소프트의 협업에 큰 영향력을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좋든 싫든 말이죠.
이제 국내 게임시장에서 텐센트는 빼놓을 수 없는 존재감을 과시하게 됐습니다. 현재 국내에서 영향력을 가진 PC 온라인 및 모바일게임의 주요 개발사의 지분을 텐센트가 가지고 있습니다. 아, 해외로 눈을 돌리면 텐센트가 액티비전-블리자드와 에픽게임즈의 최대 주주라는 사실도 잊어선 안됩니다.
단어 선택이 애매하긴 하지만 이번 넥슨, 엔씨소프트, 넷마블게임즈의 관계에서 최종 승자는 ‘텐센트’라는 게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네요. 어찌 됐든 텐센트는 국내 게임시장에서 영향력을 더 키울 수 있었고, 더 이상 국내 게임시장에서 텐센트를 논하지 않고서는 말을 할 수 없는 상황이 됐습니다.
물론 텐센트가 관계를 맺은 업체에게 직접적인 경영이나 개발에 관여하는 일은 없을 것으로 전망됩니다. 하지만 텐센트의 향기가 더욱 짙어지고 있는 건 분명합니다. 막대한 자본, 중국이라는 큰 시장, 중국정부의 지원을 업은 텐센트가 점점 무섭게 느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