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나서 처음으로 목걸이를 하고 있습니다. 끝에는 작은 리본이 매달려 있습니다. 노란색입니다. 이번 칼럼은 슬프지만 2014년 4월 16일 발생한 비극으로부터 시작하겠습니다. /디스이즈게임 시몬
한국공동관의 혁신과 콘텐츠진흥원의 전문성 강화를 바라며
세월호 참사, 시스템 부실과 순환 보직
구조할 시간은 있었습니다. ‘골든타임‘이라고 불렀습니다. 정부가 우왕좌왕하는 사이 시간은 흘렸습니다. 세월호에 남은 295명은 차가운 바다에 갇혔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은 참여정부 때 만들어진 NSC(국가안전보장회의) 사무처를 없앴습니다. 사무처 아래 ‘위기관리센터’는 문을 닫고, 2,800권의 매뉴얼은 덮어졌습니다.
위기관리센터는 재난 등 국가 위기 상황을 모니터하고 대응하는 시스템이었습니다. 이 시스템이 남아 있었다면 참사는 피할 수 있었습니다. NSC 사무처장 출신인 류희인 씨는 언론 인터뷰에서 이렇게 밝혔습니다.
“세월호 사고의 경우, 만일 그쪽 해상 상황을 (청와대 지하벙커의 위기관리센터 상황실) 모니터에 띄우면 세월호 위치뿐 아니라 해경 함정에 단 카메라로 구조 모습, 세월호에 다가가는 헬기 이동까지 볼 수 있다.”
박근혜 정부는 재난 상황의 콘트롤 기능을 안전행정부에 넘겼습니다. 안전행정부 장관은 재난 발생 시,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을 꾸리고, 본부장을 맡게 돼있습니다. 중대본은 재난 대처의 중심이었습니다. 하지만, 세월호 침몰 직후 가장 중요한 시기, 아무 역할도 못했습니다.
이유는 자명했습니다. 과장급 이상 간부 16명 중 재난 전문가가 딱 1명 뿐이었습니다. 급박한 상황을 장악하고, 적재적소에 인력과 자원을 투입할 역량이 없었습니다.
세월호 참사는 인재였습니다. 이명박-박근혜 정권의 참여정부 흔적 지우기와, 전문성을 경시 또는 무시한 ‘뺑뺑이 인사’(순환 보직) 탓에 희생자들은 차가운 바다에 남겨졌습니다.
2000년대, 게임과 맞지 않는 순환 보직
2012년 안정행정부에 따르면 공무원(일반직) 중 3년 이상 한 직위에 머무는 비율은 12.8%에 그쳤습니다. 64.1%는 2년이 안 돼 자리를 옮겼습니다. 한 사람이 옮기면 연쇄적으로 이동했습니다. 특정 분야에 전문성을 쌓고 국가 정책에 발휘하기에는 너무 짧은 시간입니다.
순환 보직은 다양한 경험과 폭넓은 시각을 갖게 해준다는 명분이 있습니다. 관리자로 승진하려면 여러 분야의 업무를 조정할 수 있는 거시적 안목이 필요합니다.
역사적으로 순환 보직이 필요한 시기도 있었습니다. 압축성장 혹은 개발독재라 불리던 시절, 한국은 세계가 인정하는 ‘Fast Follower’(빠른 추종자)였습니다. 특정 산업군이나 기업에 대한 특혜(와 유착)와 고학력의 성실한 노동력 덕분이었습니다. 자동차, 철강, 건설 등에서 선진국을 잘 카피했습니다. 싸지만 괜찮은 제품을 만들어냈습니다.
공무원은 우리 사회 최고의 엘리트였고, 이런 국가 주도의 정책을 이끌었습니다. 한국은 여러 제조업 분야에서 맨땅으로부터 축약적인 성장이 필요했습니다.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 유효했습니다. 국가적인 계획 아래, 권력과 실력을 갖춘 엘리트의 순환 보직 시스템은 효율성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2000년대 우리는 다른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많은 어르신들과 일부 청년들이 그런 향수를 가지고 있지만, 더 이상 국가 주도의 압축성장은 불가능합니다. 문을 닫고 기초 산업을 키우던 시기는 지났습니다. 문은 열렸고, 세계는 첨단 산업의 각축장입니다. 중국은 더 빠른 추종자가 됐습니다. 이제는 추종자 대신 ‘First Mover’(선도자)나 ‘Trend Setter’(유행 선도자)가 나와야 국가 경제가 성장할 수 있습니다.
1~2년 순환 보직 시스템은 이런 변화에 맞지 않습니다. 특히 기술 발전이 눈부신 ICT 영역이나 트렌드 변화가 빠른 콘텐츠 영역은 전문성 없이 국가 정책을 이끌기 어렵습니다. ICT와 콘텐츠를 함께 안고 있는 분야가 게임입니다. 변화의 속도는 업계인들조차 따라가기 벅찹니다. 10년, 5년, 아니 1년 전과 현재의 시장 상황은 많이 다릅니다. 1~2년 공부한 아마추어 공무원이 게임 전문가를 이끌 역량을 갖기 어렵습니다.
※ 참고: 순환보직과 야구 (야구를 잘 모르는 독자는 그냥 패스)
고등학교 때 시속 145km를 던졌던 추신수가 타자만 하는 이유
이호준, 이승엽, 추신수, 이대호, 나성범은 공통점이 있습니다. 모두 고교시절, 초고교급 투수 겸 4번 타자였습니다. 하지만, 프로에 와서는 타자만 하고 있습니다. 일본의 장훈과 왕정치, 이치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고교 최고의 엘리트조차 프로의 치열한 경쟁 속에서 투수/야수 순환 보직은 피합니다. (이치로가 최근 1이닝 투구를 했지만, '이벤트' 성격이었죠.)
프로야구 초창기에는 투수와 야수를 겸한 경우도 있었습니다. 1910~1930년대 미국의 베이브 루스, 1982~1985년 한국의 김성한(위 사진)이 그랬습니다. 82년 KBO 초대 타점왕 김성한은 그해 10승 투수이기도 했습니다. 이런 모습은 다시 보기 어렵습니다. 경기력이 높아져서 순환 보직으로 성과를 내기 힘들어진 탓입니다. (예외가 있긴 합니다. 오타니 쇼헤이는 현재 일본 프로야구에서 탁월한 투수와 밋밋한 타자를 겸하고 있습니다. 타자를 그만 두라는 목소리가 많습니다.)
초등학교 교실에서 선생님이 다양한 과목을 가르칠 수 있습니다. 아니, 그게 더 나을 수도 있습니다. 대학 캠퍼스는 다릅니다. 특히 새로운 학문적, 산업적 진보가 이뤄지는 학과에서는 더욱 그렇습니다.
지금 현재의 게임 산업은 그렇습니다. 게다가 한국 게임산업은 위기입니다. 온라인게임에서 세계를 호령했던 한국은 글로벌 모바일 경쟁에서는 뒤쳐졌습니다. 국내 게임생태계는 실패자와 이탈자들이 속출하고 있습니다. 게임을 잡아먹지 못해 안달이던 국회의원까지 나서서 위기극복 방안을 마련하라고 외치는 실정입니다.
국가 정책이 더욱 중요해졌습니다. 순환 보직으로 이런 분야의 전문성 있는 국가 정책을 만들고, 환경을 조성해 나가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순환 보직의 약점을 보완했던 게임산업진흥원
이런 어려움을 문화부도 스스로 알고 있었을 겁니다. 게임이 21세기 지식산업시대의 핵심이라는데, 순환 보직으로는 제대로 대응하기 어렵다는 것을요. 그래서 나온 게 문화부 산하의 게임 전담 공공기관이었습니다.
김대중 정부 시절인 1998년, 보건복지부로터 게임을 가져온 문화부는 이듬해 서울 구의동 테크노마트(21~24층)에 게임 전담 기관인 게임종합지원센터를 설립했습니다. 사무공간 제공이나 장비 대여 등 중소기업의 개발 지원에 중점을 뒀죠. 아직 온라인게임 붐이 일기 전, 투자 여건이 좋지 않았을 때였으니까요. 당장 게임 만드는 것을 지원하는 게 절실한 시기였습니다.
이후 한국 게임산업이 쑥쑥 커졌습니다. 게임종합지원센터는 한국게임산업개발원으로 이름을 바꿨습니다. 이름만 바꾼 것은 아니었습니다. 업계의 니즈 변화에 따라 지원 방향도 바뀌었습니다. 투자 여건이 좋아지면서, 회사들은 생겨났지만 인력 충원이나 해외 진출에 애로가 많았습니다. 게임산업개발원은 인력양성과 해외진출 영역까지 지원을 확대했죠. ‘지티스’(GITTIS) 같은 게임 정보지식 시스템, 지스타 등도 그런 활동의 연장이었습니다.
개발원은 게임산업진흥원으로 또 개명했지만, 실무진은 지속적으로 노하우와 국내외 네트워크를 쌓았습니다. 전문성을 길렀습니다. 진흥원의 정책 방향이 항상 옳았던 것은 아니고, 늘 효율적이었던 것도 아닙니다. 메이저 업체에게 큰 영향을 끼치지도 않았습니다. 불만을 이야기하는 게임인도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1~2년 단위로 직위가 바뀌는 문화부 사무관의 전문성 약점을 채워줄 수 있는 조직임에는 틀림 없었습니다. 매년 게임백서의 페이지 수가 불어나듯, 진흥원의 전문성도 쌓여갔으니까요.
전문성을 대신한 권위, 명텐도
‘내가 해봐서 아는데’라는 말은 생각보다 무서운 의사표현입니다. 경험을 통해 아신다는 어르신의 말씀에 감히 어떤 전문가가 토를 달겠습니까. 최고 권력자였던 이명박 대통령은 이런 표현을 즐겨 썼습니다. 아랫것들의 전문성이나 귀찮은 절차는 무시됐고, 본인의 의사대로 일을 몰아붙였죠.
▲NSC(국가안전보장회의) 사무처 폐지 ▲4대강(대운하) 사업 ▲졸속 자원외교도 그런 방식으로 추진됐습니다. 게임 등 문화 콘텐츠 전담 진흥원들을 합친 것도 다르지 않습니다. 막무가내 속도전이었습니다.
2008년 ‘공공기관 슬림화’라는 명분 아래 각 콘텐츠 산업의 차이는 무시되고, 공공기관을 묶는 방안이 발표됐고, 이듬해 바로 실행됐습니다. 10년 동안 정부 기관 순환 보직의 한계를 보완해주던 게임 전문 공공기관이 사라졌습니다.
통합된 한국콘텐츠진흥원 원장이 콘텐츠 전문가였다면 그나마 나았을 겁니다. 그런 건 고려 사항이 아니었습니다. 문화부 유인촌 장관은 이재웅 전 한나라당 의원을 원장으로 임명했습니다. 낙하산이었습니다. 대선 당시 이명박 대통령 선거 캠프의 정책기획본부장을 맡았던 인물이었죠.
이재웅 원장은 대통령의 의중에 따라 조직을 바꿨습니다. 전문성과는 반대 방향이었습니다. 기능 단위의 개편과 희망퇴직을 통해 인력이 줄었습니다. 순환 보직과 인사 이탈 등이 겹치면서 게임 뿐만 아니라 다른 콘텐츠 분야의 전문성은 떨어질 수 밖에 없었습니다.
"디지털 정보화시대에는 일자리를 만들 수 없으며, 빈부격차를 줄일 수 없다"는 두 차례 발언(2008년 말)과 일명 ‘명텐도’ 발언(2009년 2월)이 나온 것도 비슷한 시기였습니다. 정보통신부와 과학기술부를 없애고, ICT를 폄하했던 대통령은 뜬금없이 "닌텐도 게임기 같은 것을 개발해 볼 수 없겠냐. 개발에 만전을 기해 달라”고 지시했습니다.
닌텐도는 당시 전년 대비 매출이 40%, 순이익이 60%나 줄어드는 상황이었습니다. 단기간에 국제적으로 경쟁력 있는 콘솔게임기를 뚝딱 만들 수 있다는 발상도 웃펐습니다. 대부분의 게임인들이 실소를 금치 못했지만, 지식경제부는 곧바로 ’명텐도’와 연관된 60억 원 규모의 지원책을 마련했습니다.
글로벌 게임 환경이 급변하던 시기였습니다. 한국 게임의 글로벌 경쟁력은 쭉쭉 떨어지고 있었습니다. 국가 원수와 공직사회의 전문성 경시도 일조했습니다.
인사 전문가의 진단
세월호 참사 이후 공직사회의 무능과 부패를 질타하는 목소리가 컸습니다. 이에 따라 지난해 11월 19일 국무총리실 산하에 인사혁신처가 탄생했습니다. 공직사회의 인사정책을 혁신할 역할을 맡았죠. 초대 수장인 이근면 처장은 공무원 출신이 아니었습니다. 삼성에서 30년 이상 인사업무를 담당한 '전문가'였죠.
이 처장은 제가 이번 칼럼들에서 계속 강조하는 ‘전문성 경시’를 공직사회의 핵심 문제점으로 지적했고, 그 원인을 ‘순환 보직’이라고 꼭 집어 지목했습니다. 취임 이후 각종 인터뷰에서 이 문제를 지속적으로 이야기하고 있죠.
늦었지만, 다행입니다.
“모든 공무원이 각자 전문 분야에서 최고의 전문가가 될 수 있도록 맞춤형 인재를 육성하겠다.”
“전문성이 필요한 보직은 한 분야에서 최소한 4년은 근무할 수 있도록 하겠다.”
인사혁신처의 처장과 국장의 이야기입니다. 이뤄지기를 응원합니다. 게임 등 콘텐츠 영역은 전문 분야입니다. 문화부 뿐만 아니라, 콘텐츠진흥원에서도 전문성을 경시하는 순환 보직이 개선되기를 희망합니다.
다음 꼭지는 다시 한국공동관으로 돌아가겠습니다. 전문성 경시 때문에 발생한 문제점을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 허접한 글이어서 부끄럽고 죄송스럽지만, 건강한 한국 게임생태계의 조성을 위해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등을 통해 공유시켜주시길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