넥슨은 10월 16일 엔씨소프트의 지분 15.08%를 전부 팔았다. 처음 인수한 2012년 6월 8일로부터 1,226일째 되는 날이었다. 그 동안 두 회사 사이에는 많은 일이 있었다. 파란만장했다. 그에 관한 이야기는 올해 초에 쓴 적이 있다.
시간은 좀 걸렸지만, 올해 초 예상했던 시나리오와 비슷하게 일이 진행됐다. 넥슨은 지분 330만 6,897주를 블록딜(대량매매) 방식으로 내놨다. 엔씨 김택진 대표가 그 중 44만주를 샀다. 지분율이 11.98%로 올랐다. 블록딜 참여자가 아직 공개되지 않은 상태에서, 3년 4개월 만에 다시 실질적 최대 주주가 됐다.
넥슨의 엔씨 지분 매각은 예상 못 한 일은 아니다. 지속적으로 ‘모든 가능성을 열어둔다’고 했었다. 그렇지만 지난 16일 다른 가능성을 다 포기했다. 매각을 택했다.
넥슨은 왜, 지금, 엔씨 지분을 다 팔았을까?
꼬여버린 관계, 회복할 수 없었다.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3년 4개월 전 ‘EA 인수’라는 담대한 시도는 실패했다. 처음부터 꼬인 스텝은 이후 계속 꼬여갔다. <마비노기 2>로 대표 되는 협력 사업은 실패 이상의 후유증을 남겼다. 두 회사 관계자들은 실패의 이유를 ‘남 탓’으로 돌렸다. 신뢰에 금이 갔다.
이런 상황에서 협업은 더욱 힘들어졌다. 최대 주주 넥슨은 적극적으로 제안했다. 엔씨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넥슨은 괜찮은 제안을 안 받아주는 엔씨가 서운했다. 엔씨는 수용하기 어려운 제안을 주는 넥슨이 껄끄러웠다. 시도조차 힘들었다. 넥슨은 속이 탔다.
넥슨은 이런 소강 국면이 풀리기를 원했다. 올해 1~2월 판을 흔든 것은 그런 이유였다. 하지만, 협상은 무산됐다. 설상가상. 소강 국면은 전쟁 모드로 바뀌었다. 감정의 앙금까지 남았다. 양사 관계는 더욱 멀어졌다.
지분에서 몰렸던 엔씨는 넷마블을 파트너로 삼았다. 주식을 주고 받았다. 넥슨이 예기치 못한 전개였다. 허를 찔렸다. 넥슨과 엔씨의 관계는 회복되기 어려운 상태가 됐다.
엔씨는 이제 넷마블과 협업, 공조하고 있다. 이 공조에는 게임 IP의 모바일 활용도 강하게 엮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넥슨 입장에서는 협업은 물론, 지분 대결에서도 들어갈 여지가 안 보였다.
넥슨은 향후 엔씨의 전망도 긍정적으로 보지 않았다.
그럼에도 넥슨은 엔씨의 지분을 쥐고 있을 수도 있다. 전략적 투자자(SI, Strategic Investor)를 포기해도 재무적 투자자(FI, Financial Investor)로 입장 전환이 가능하다.
경영참여나 공동사업을 추구하는 전략적 투자자(SI)와 달리 재무적 투자자(FI)는 수익 취득만을 목적으로 한다. 넥슨은 지난 3년간 의도와 달리 엔씨의 재무적 투자자에 머물렀다. 배당수익으로 약 140억 원을 얻었다.
일반적으로 재무적 투자자는 시세차익(주식 매매에 따른 차익)을 통해 더 큰 수익을 기대한다. 엔씨의 주가가 계속 올라가면, 넥슨은 더 큰 시세차익을 얻을 수 있었다.
넥슨은 팔았다. 주가 상승 가능성을 낮게 봤을 가능성이 높다. 왜 그랬을까? 이는 넥슨의 최근 행보에서 추정할 수 있다. 넥슨은 신규 모바일게임 론칭에 더 중점을 두고 있다. <도미네이션즈> 등 성과도 생겨나고 있다.
반면, 엔씨는 현재 모바일게임 영역에서 뚜렷한 성과가 없다. 넷마블 지분(9.8%)과 연결된 영업외이익(지분법이익)과 IP 활용에 따른 로열티의 전망은 나쁘지 않다. 하지만, 직접적인 성과 전망은 높지 않은 편이다. 넥슨이 재무적 투자자 포지션을 포기한 이유 중 하나로 추정된다.
불안정한 엔화 전망, 엑시트 타이밍을 놓치면 안됐다.
넥슨은 엔씨 지분을 일본 엔화로 샀다. 지분을 팔면 다시 엔화로 장부에 들어간다. 따라서 엔화의 환율 변화가 수익을 따지는데 중요하다. 엔화 환율은 떨어질 만큼 떨어졌다. 3년 전에 비해 40% 수준이다. 지분 매각 시, 넥슨에게 유리한 환경이다.
이런 환경이 계속 유지될 지는 모른다. 지난 11개월 연속 중국의 수입이 줄어들었다. 중국 경제가 기침을 하면 바로 우리 경제는 독감에 걸리고, 세계 경기도 둔화된다. 이런 환경 변화는 엔화의 상승을 부추길 가능성이 높다.
이런 변화는 넥슨에게는 낭패다. 엔씨의 주가가 그대로라도 매각 수익은 줄어든다. 주가가 23만~24만원 하던 최적의 시기는 놓쳤지만, 미련없이 엔씨의 지분을 정리하기에는 늦지 않은 타이밍이었다.
넥슨은 25만원에 샀던 엔씨 주식을 18만 3,000원에 처분했다. 원화로 보면 약 2,000억 원 손해다. 엔화로 계산한 매입금액은 약 536억 엔이고, 매각금액은 약 638억 엔이다. 약 102억 엔(947억 원) 이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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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빅딜을 위한 현금의 확보가 필요했다.
넥슨은 3년 4개월 묶여 있던 주식을 현금으로 바꿨다. 미련을 버린 대신 6,000억 원 이상의 실탄을 확보했다.
넥슨은 지난 3년 간 엔씨만 쳐다보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꾸준히 투자를 이어왔다. 로보토키, 시크릿뉴코(현재 빅휴즈게임즈), 럼블 엔터테인먼트, 시버 엔터테인먼트, 보스 키 프로덕션 등은 그 동안 지분을 사들인 미국 게임회사들이다. 보스 키를 제외한 회사들은 모두 모바일게임을 만들고 있다.
이 정도 규모의 투자에 엔씨 지분의 캐시 아웃이 필요하지는 않다. 넥슨은 이미 1조 이상의 현금을 확보하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있다.
엔씨 매각 대금은 대형 투자나 계약의 가능성을 열어놨다. 그 방향은 지난 3년 그랬듯 모바일 쪽을 향할 것으로 보인다. 현재 뚜렷한 빅딜 목표가 있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오웬 마호니 넥슨 대표는 "미래 성장을 위한 새로운 사업에 투자"하기 위해 지분을 매각했다고 밝혔을 뿐이다.
하지만, 빅딜 소식은 예고 없이 찾아올 지 모른다. 넥슨의 엔씨 지분 매입과 매각도 그랬다. 넥슨은 새로운 빅딜을 위한 준비를 마쳤다.
Plus One: 왜 주관사를 쓴 블록딜이였을까?
넥슨은 공개적인 블록딜(대량매매) 방식으로 지분을 팔았다. 넥슨의 의뢰를 받은 투자은행 모건스탠리가 투자자를 모았다. 일부 매체에 따르면 3:1의 경쟁률이었다고 한다. 한 주당 처분 가격은 18만 3,000원. 전일 종가는 19만6,500원이었다.
의문이 들었다. 엔씨의 지분에 관심이 있는 회사가 몇 있는 것으로 알려졌었다. 엔씨 IP에 적극적인 관심을 보인 자금력 있는 중국 업체도 복수로 있었다. 넥슨이 직접 더 좋은 조건으로 팔 수도 있지 않았을까?
생각해보니 아니었다. 왜? 그에 대한 추론이다.
중국 게임 회사, 여론과 인정의 부담
넥슨이 중국 회사에 대량의 지분을 넘겼다면? 게임 업계나 게이머는 물론 사회적으로 난리가 날 가능성이 높다. 여론 부담과 함께 김정주 NXC 대표와 김택진 NC 대표 사이의 관계도 이런 선택을 피하는 데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높다.
엔씨 실사 진행의 어려움
게다가 대량 지분을 사려는 회사는 엔씨에 대한 실사를 원할 것이다. 한두 푼도 아닌 대규모 지분을 사는 입장에서는 당연한 요구다. 하지만, 이런 요구를 엔씨가 받아들일 가능성은 거의 없다. 넥슨이 이를 강제할 방법은 없다.
IP 활용에 대한 개런티 어려움
중국 회사가 엔씨 지분을 산다면 핵심 이유는 IP의 활용일 가능성이 크다. 엔씨 온라인게임을 모바일로 옮기는 프로젝트에 관심을 갖는 회사가 많았다. 하지만, 지분 인수로 이를 보장할 수는 없다. 게다가 현재 엔씨 IP의 모바일 버전 개발에는 넷마블이 강하게 엮여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