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설’과 ‘외설 아닌 것’의 경계는 어디에 있을까요? 고래로 예술계의 화두였고 대중 매체 등장 이후 사회 전반에 만연한 질문이지만, 아무래도 답변이 쉬웠던 적은 없습니다. 최근에는 미디어 포맷이 다각화하면서 관련 논의도 더욱더 폭발적으로 확대됐는데요. 현재 그 첨단에 위치한 주제 중 하나는 ‘인터넷 방송’으로 대표되는 1인 미디어의 선정성일 것입니다.
글로벌급 인터넷 방송 플랫폼 트위치에서 최근 선정성 논란에 다시금 불이 붙었습니다. 미국의 대형 스트리머가 선정성을 이유로 일시적 ‘방송 정지’를 당했기 때문입니다. 일각에서는 그저 개인의 문제로 보고 있지만, 다른 일각에서는 트위치의 선정성 관련 정책에 의구심을 표하는 계기가 되고 있습니다. 왜일까요? 미국 대형 스트리머 ‘애머란스’와 트위치가 최근 2개월간 벌인 ‘신경전’의 내막을 한 번 살펴봤습니다. / 디스이즈게임 방승언 기자
2021년 5월 21일(현지시간), 트위치는 자체 공식 블로그에 “핫텁(hot tubs) 스트리머들에 대해 얘기해봅시다”라는 제목의 글을 하나 올렸습니다. 다소 힘을 뺀 제목만큼이나 본문도 허심탄회했는데,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먼저 ‘핫텁’이 무엇인지 알 필요가 있습니다.
핫텁은 말 그대로 ‘뜨거운 물을 받은 욕조’라는 뜻으로, 최근 미국 트위치 트렌드를 점령했던 방송 포맷의 명칭이기도 합니다. 워낙 ‘대세’여서 현지인들은 ‘핫텁 메타’라고 불렀습니다. 형식은 단순합니다. 스트리머들이 수영복을 입은 채 실내용 소형 풀에 들어가 ‘저스트 채팅’(일반 대화) 방송을 진행하는 방식입니다.
이런 핫텁 메타가 ‘저스트 채팅’ 카테고리의 시청자 순위 상위권을 독차지하면서, 논란은 불거졌습니다. 일부 유저는 직설적으로 ‘꼴 보기 싫다’는 반응을 보였고, ‘트위치가 점점 이상해져 간다’며 화를 내는 유저도 다수 생겼습니다. 여기에 트위치가 어떻게든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는 요구도 함께 커졌습니다.
트위치는 상술한 글에서 ‘핫텁 콘텐츠를 별도 카테고리로 분류하고 방송을 허가한다’는 방침을 밝혔습니다. 핫텁 메타에 모종의 ‘철퇴’가 내려지리라 기대하던 일각에서는 실망을 표했습니다. ‘처벌하지 않는다’는 수준을 넘어 ‘공식적으로 인정’한다는 대응에 당황하는 반응도 적지 않았습니다.
트위치가 이런 발표를 하게 된 데에는 몇 가지 원인이 있습니다. 그중 결정적 계기는 미국의 대형 스트리머 ‘애머란스’(케이틀린 시라구사)의 불만 폭로입니다.
애머란스는 ‘핫텁 메타’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300만 명 이상 구독자를 보유한 인기 스트리머입니다. 그런 그가 2021년 5월에 소셜 미디어를 통해 자기 방송의 광고 수익이 급감했다며 “트위치가 아무 상의 없이 내 방송의 광고를 철회시켰다”고 폭로해 논란이 일었습니다.
이에 트위치는 앞서 말한 블로그 글에서 사태 해명과 함께 향후 방침을 밝힌 것입니다. 일단 애머란스가 제기한 문제는 광고주 요청에 의한 상황이었다고 트위치는 전했습니다. 트위치 광고주는 광고 노출 채널을 지정할 수 있는데, 대부분 ‘핫텁’ 방송에서 광고를 원치 않자 트위치가 일부 핫텁 채널들의 광고를 일괄적으로 내려버린 것이죠. 하지만 이런 일방적 일 처리는 잘못이었다며 트위치는 다음과 같이 사과했습니다.
“크리에이터들은 우리에게 의지하고 있다. 변경사항이 적용되기 전에 해당하는 스트리머들에게 경고를 해줬어야 한다. 그리하지 않은 우리의 실수다.”
트위치는 이렇게 핫텁 스트리머들에게 사과했을 뿐만 아니라 ‘풀, 핫텁, 해변’ 카테고리를 신설, '핫텁 스트리머'들이 한데 모이도록 하는 방침을 밝혔습니다. 이런 결정을 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우선 ‘관리’가 편해진다는 이점이 있습니다. 핫텁 방송에 광고노출을 원치 않는 광고주들은 이제 카테고리 전체를 광고 대상에서 제외하면 됩니다. 트위치 역시 핫텁 채널들을 카테고리 단위로 한 번에 관리할 수 있게 됐습니다.
두 번째 이점은 ‘저스트 채팅’과의 분리입니다. ‘저스트 채팅’의 여러 콘텐츠가 특정 메타의 과도한 노출로 인해 카테고리 내 주목도를 빼앗기는 상황도 주된 불만사항 중 하나였습니다. 더 나아가 저스트 채팅 시청자 중 핫텁 방송을 싫어하는 유저들이 콘텐츠를 피하기도 쉬워졌습니다.
이렇듯 ‘핫텁’ 카테고리 신설을 통해 트위치는 해당 시청자들을 붙잡는 동시에 여러 논란을 한시적으로나마 잠재울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핫텁 방송의 인정은 ‘성 상품화 권장’으로 해석돼 비판받을 여지가 다분합니다. 이에 대한 트위치의 반박 논거는 무엇일까요? 블로그 글에서 부분적으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타인에 의해 섹시하게 인식되는 것은, 트위치 규정 위반이 아니다. 트위치는 (타인에) 인식된 개인의 매력을 이유로 유저들에 제재를 가하지 않겠다.”
Being found to be sexy by others is not against our rules, and Twitch will not take enforcement action against women, or anyone on our service, for their perceived attractiveness
여기서 강조된 것은 스트리머의 '객체성'입니다. ‘타인이 자신을 섹시하게 인식할지 여부’는 스트리머가 온전히 통제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기에 그들의 잘못이 아니며, 따라서 이를 근거로 채널을 규제할 수는 없다는 주장입니다.
그렇다면 스트리머에게 허용된 피동적 ‘매력발산’의 정확한 한계는 어디까지일까요? 이에 대해서도 트위치는 나름 기준을 세워, “성적으로 도발적인(sexually suggestive) 콘텐츠는 기존과 마찬가지로 여전히 금한다”고 선을 그었습니다. 즉, 타인에 의해 성적 매력을 ‘인식 당하는’ 일은 규제 근거가 되지 못하지만 스트리머가 스스로 성적인 암시나 도발을 해선 안 된다는 규정입니다.
그런데, ‘성적 도발’이라는 용어는 별수 없이 모호하게 느껴집니다.* 트위치 역시 “성적 도발은 그 정의의 범주가 넓고, 구분 기준에 있어 개인의 해석이 어느 정도 개입한다”며 이 점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모호함’은 결국 또 다른 선정성 이슈로 이어지고 말았습니다.
*물론 노골적 음란 행위에 대해서는 명확한 금지 규정이 존재합니다. 트위치 커뮤니티 가이드라인에서 내용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링크)
일부 스트리머들은 트위치 방송 규정의 ‘모호함’을 이용해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계속했고, 결국 몇몇이 일시적 방송정지 처분을 받았습니다. 앞서 언급된 애머란스, 그리고 93만 명 구독자를 지닌 또 다른 스트리머 ‘인디폭스’ 등이 그 주인공입니다.
이들의 새 콘텐츠는 핫텁 메타의 뒤를 이은 ‘ASMR 메타’였습니다. 최대한 간단히 설명하면, ASMR용 마이크에 대고 혀로 ‘핥는 소리’를 내는 방송입니다. 한 발 더 나아가 요가 팬츠 등을 입고 여러 자세를 취하는 ‘요가 ASMR’ 형태로 진행한 스트리머도 많습니다.
트위치는 ‘ASMR 메타’가 ‘성적 도발’에 속한다고 보고 규제를 가한 것이지만 조치에서 즉각성과 일관성이 떨어진다는 비판이 나옵니다. ‘ASMR’ 콘텐츠를 시도한 스트리머가 이전에 많았는데도, '요주의 인물'인 애머란스가 동일 포맷으로 주목받고 나서야 비로소 제재가 시작됐기 때문입니다. 결국은 모호한 규정에 따른 '고무줄 규제'가 문제라는 주장이 뒤따르고 있습니다.
애머란스 본인 또한 트위치가 ‘분위기 따라’ 스트리머를 규제한다는 의심을 드러냈습니다. 외신 폴리곤 인터뷰에서 그는 “(앞으로)아주 신중해야 한다. 트위치가 관리(moderate)하는 분위기를 보아하니, 일단은 유행하게 두었다가 더 무시할 수 없을 수준이 되면 제재를 하는 듯하다”고 전했습니다.
일부 유저들은 트위치가 이렇듯 모호하게 남겨 둔 경계로 인해 플랫폼이 어느 순간 걷잡을 수 없이 변질하는 상황을 우려하고 있습니다. 또 다른 유명 트위치 스트리머 ‘포키메인’의 발언은, 이러한 정서를 잘 대변해줍니다. 포키메인은 “트위치는 피할 수 없는 시한폭탄을 만들고 있다. 이런 성적 콘텐츠 이슈는 계속 발생할 것이다”고 주장했습니다.
사실 위에 언급된 인터넷 개인 방송의 문제점이 게임, 혹은 게임 방송과 무슨 상관인가 싶을 수 있습니다. 정말 상관이 없을 수도 있지만 눈길을 끌어 대중에 이슈가 되어야하는 개인방송의 특질상 분야에 상관 없이 결국 유사하게 닥쳐올 일이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실제로 단순히 피아노 연주를 하는 방송이나 요리 콘텐츠 방송에서 '눈에 띄는' 코스튬을 입고 나서는 경우는 지금도 많습니다. '저스트 채팅' 카테고리에서 핫텁이 유행해 결국 채널이 분리되었듯, 게임 채널에서도 비슷한 케이스가 발생할 가능성은 상당합니다. 그리고 일부에서는 이런 일이 실제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일부러 찾아볼 필요는 없습니다.
국내에서도 인터넷 개인방송의 선정성 문제는 계속 있었고, 현재진행형입니다. 마치 '전염'되듯 각종 카테고리의 침식도 빠르게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는 모두 눈에 띄고 이슈가 돼 사람을 모아야만 재정을 유지할 수 있는 1인 미디어의 기본적 생태에 따른 일입니다.
위법 소지가 없다면 플랫폼 운영은 본질적으로 소유 기업의 전적인 소관입니다. 그러나 잦은 운영 이슈로 플랫폼이 정체성을 잃으면 기존 고객은 떠날 확률이 높습니다. 이는 유저와 플랫폼 홀더 모두 원치 않는 결과일 것입니다. 게임 전문 방송 플랫폼으로 시작해 현재는 다양한 콘텐츠를 품고 있는 트위치. 앞으로도 고객의 다양한 취향을 폭넓게 아우르는 기업으로 살아남으려면 조금은 더 고민이 필요하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