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게임 업계에서 크라우드펀딩 개발프로젝트에 관련해 몇 가지 사태가 벌어졌습니다. 프로젝트의 진행상황을 두고 펀딩 참여자들이 크고 작은 불만을 품게 된 사건입니다.
문화가 정착된 지는 벌써 10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일반 소비자로서는 다소 헷갈리는 것이 크라우드펀딩입니다. 특히 실제 상품을 보상으로 지급하는 ‘리워드형’ 크라우드펀딩은 일반적 상품 구매행위와 유사해보이는 까닭에 일종의 ‘오해’를 사고 있기도 합니다.
현행 제도상, 그리고 업계 인식 상 크라우드펀딩 개발의 본질은 무엇일까요? 펀딩에 참여하기 전에 게이머가 생각해야 할 점은 무엇일까요? / 디스이즈게임 방승언 기자
*본문의 ‘크라우드펀딩’은 모두 리워드형 크라우드펀딩을 말합니다.
# 사례 1
3억 8천만 달러(약 4,400억 원) 이상을 펀딩한 게임이 있습니다. 우주를 배경으로 한 어드벤처 장르인 <스타시티즌>입니다. 이 게임은 2011년부터 펀딩을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보수적인 시각에서 보면, 처음부터 ‘정말 가능할까?’ 하는 의심이 한 번쯤 들만한 프로젝트였습니다. 계획된 월드와 시스템의 규모가 너무 방대했습니다.
100여개의 태양계를 만들어 펼쳐지는 스페이스 판타지. 미래의 우주인으로서 세계관 안에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한다는 오픈월드. 심지어 VR을 지원해 더 생생한 플레이를 약속했습니다. 함선의 외관만이 아닌 내부를 완벽하게 구현하고 현실을 적용하는 등 4천억 원 대의 대형 프로젝트다웠습니다.
반대로 펀딩이 성공한 원인 또한 바로 그 ‘수상할 정도로 대단한’ 기획이기도 했습니다. 2011년에 시작되어 10년이 지난 지금 <스타시티즌>은 어떤 상태일까요?
게임은 아직 ‘알파’ 단계입니다. 최근에 태양계 1개가 완성됐고, 지난 18일부터 27일까지 이를 체험할 수 있는 ‘오픈 알파 테스트’가 진행 중입니다. 현재 버전에서도 놀랄 만한 기술적 성취와 뛰어난 디테일을 확인할 수는 있습니다. 그래서 버그와 최적화 문제가 심각하고 콘텐츠가 많지 않은데도 만족감을 느끼는 플레이어가 많습니다.
그러나 최초 약속된 출시 시점인 2014년으로부터도 7년을 더 소모했다는 점은 간과하기 힘듭니다. 물론 이러한 지연은 펀딩 참여자들이 ‘합의’한 내용이기는 합니다. 개발사가 모금 목표치에 도달했을 때 실시한 몇 번의 설문에서 과반수가 ‘규모 확장’에 동의했고, 새로운 목표 금액과 공약이 추가되는 식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역사를 고려하더라도 10년이 지난 현시점에 ‘초기 목표액’ 당시 제시한 내용에조차 한참 못 미치는 수준으로 완성됐다는 사실은 문제 삼을 만합니다. 일례로 600만 달러 단계에서 약속한 것은 100개의 태양계지만, 지금 완성된 것은 1개입니다.
<스타시티즌>과 함께 약속됐던 외전격 싱글게임 <스쿼드론 42> 또한 2016년 출시 예정 기일을 5년 넘긴 상태로, 아직 그 완성도가 오리무중입니다. 이러한 상황에 불만 없는 팬들도 많겠지만, 이제 지쳐버린 팬들도 많습니다.
# 사례 2
국산 액션 어드벤처 게임 <리틀 데빌 인사이드> 프로젝트는 약 6년 전부터 업계인과 소비자 양쪽에서 숱한 관심을 받았습니다. 당시 국내 게임 시장을 기준으로 보기 드문 오리지널리티를 자랑하는 프로젝트였기 때문입니다.
굳이 국내로 한정하지 않더라도 게임은 충분한 매력이 있었습니다. 영상과 기본 콘셉트만 공개됐을 뿐인데도 해외 게이머들의 펀딩과 기대, 격려와 찬사가 줄을 이었습니다.
이 프로젝트의 킥스타터 펀딩에는 5,100여 명이 참여해 약 2억 6,300만 원이 모였습니다. 첫 출시 목표일은 이듬해인 2016년이었지만 개발 규모가 커지고, 개발 엔진 교체가 이뤄지며 2018년으로 연기됐습니다. 이후 2020년으로 한 번 더 연기되었고, PS5 출시가 결정되며 지난 달인 2021년 7월로까지 미뤄졌습니다.
크라우드펀딩뿐만 아니라 퍼블리셔 투자도 유치했다는 점에서, 일반적인 펀딩 사례와는 달리 볼 여지가 있기는 합니다. 펀딩 참여자들과의 약속뿐만 아니라 소니와의 계약조건 역시 충족해야 하는 프로젝트가 되었으니까요. 갑작스러운 개발 스펙 변경이 있었을 테니 출시일 연기 자체는 이해할만한 상황입니다.
하지만 개발팀이 2020년 6월부터 2021년 8월 중순까지 침묵했다는 사실은 비판의 이유가 되고 있습니다. 펀딩 참여자 개인의 입장에서는 아무런 영문도 모른 채 1년을 기다려야 한다는 사실을 쉽게 받아들이기 힘드니까요. 결국 펀딩 철회를 원한다는 유저도 많아졌습니다. 이에 본지에서 직접 문의한 결과 “개발 퀄리티를 높이기 위해 연기를 결정했다”는 말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 크라우드펀딩의 ‘리스크’는 약점이자 본질
크라우드펀딩은 사업경력이 아직 쌓이지 않아 전통적인 방법으로는 투자를 받거나 재원을 확보하기 힘든 신생·영세업체, 혹은 개인 개발자가 창의적 게임 제작에 도전할 수 있는 유용한 수단입니다. 실제로 크라우드펀딩 덕에 빛을 본 인디게임 프로젝트는 많이 있습니다.
크라우드펀딩이라는 방법론이 처음 등장했던 2000년대 말, 업계 안팎으로는 그 지속가능성 측면에 있어 회의적 시각도 많았습니다. 몇 년간 유행하다가 결국은 태생적 한계를 극복 못 하고 사라질 것이란 분석도 나왔습니다. 그러나 그간 크라우드펀딩의 효용성은 여러 사례로 실증되었고, 따라서 ‘무용론’을 지금 구태여 논파할 필요는 없어 보입니다.
그러나 크라우드펀딩은 장점만큼이나 약점도 존재하는 시스템입니다. 앞선 사례들에서처럼 개발이 심각하게 지연된 경우, 혹은 약속된 기능이 미구현되는 등의 더욱 큰 실책이 발생한 경우에도 적절한 배상을 받거나 기타 불만을 표출하기 상대적으로 매우 힘든 제도입니다.
그리고 이는 크라우드펀딩의 ‘본질’을 생각해보면 그저 잘못된 일로 치부하기도 힘듭니다. 오히려 ‘원래 그런 것’으로 감안해야 하는 일로 여겨지기도 합니다. 왜 그럴까요?
# 크라우드펀딩은 투자? 구매?
왜 그런지 알아보려면 먼저 다음 질문에 답할 필요가 있습니다. 크라우드펀딩은 투자일까요? 구매일까요?
구매는 지불한 금액에 대해 일정한 반대급부가 보장·보호되지만, 투자는 그렇지 않습니다. 언제나 손해를 입을 위험이 있습니다.
업계와 현행 제도에 따르면 크라우드펀딩은 ‘투자’에 가깝습니다. 해외 대표적 크라우드펀딩 플랫폼 킥스타터는 2012년 공식 블로그에서 “킥스타터는 상점이 아니다. 창작자와 청중이 함께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새로운 방법이다”고 정의했습니다. 펀딩은 상거래 행위가 아니라, 고객이 펀딩하고 창작자가 실행하는 공동의 개발·창작 과정이라는 의미겠지요.
국내 플랫폼 와디즈 또한 한때 ‘와디즈 펀딩은 쇼핑이 아니며, 메이커의 창작활동 및 목표 실현 과정을 지원하는 것’이라는 문구로 사업을 소개했던 바 있습니다. 이런 설명은 펀딩이 ‘기성품’을 구매하는 행위가 아니기에, 기대와는 다른 물건을 받아볼 수 있다는 경고를 내포하는 말입니다.
정부의 시각도 일치합니다. 2020년 공정거래위원회는 리워드형 크라우드펀딩에 대해, ‘투자 성격을 바탕으로 하기에 조건부 매매계약으로 취급해 전자상거래법을 적용하기 어렵다’는 의견을 밝히기도 했습니다.
물론 일반적 투자와 달리 펀딩 참여자의 목적이 결국 물건 구매에 있다는 점에서, 크라우드펀딩이 ‘투자’보다는 ‘매매계약’ 쪽에 가깝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그런데도 크라우드펀딩을 투자로만 간주하면서 결과적으로 펀딩 참여자들만 보호 사각지대에 놓였다는 주장도 뒤따릅니다.
이를 의식해 와디즈의 경우 2020년 5월 약관상에 하자상품에 대한 환불 조항을 추가하는 등 일종의 ‘소비자 보호’ 조치에 나섰습니다. 그러나 이는 국내외 크라우드펀딩 플랫폼 중에서도 예외적으로 도입한 자발적 완충장치일 뿐, 현행법상 요구되는 사안은 아닙니다.
# ‘알아서 잘 해야’ 하는 시스템
이렇듯 현시점에서 크라우드펀딩은 투자에 가깝고, 일반적인 ‘인터넷 쇼핑’과 달리 전자상거래법에 의한 소비자 보호가 적용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대다수 크라우드펀딩 플랫폼은 상품에 하자가 있거나 기타 트러블이 발생하더라도 직접적 펀딩금액 환불을 제공하지 않으며, 개별 프로젝트의 주체가 환별 규정을 직접 정해 실시하도록 해두었습니다.
게임 프로젝트가 많이 등록되는 국내 플랫폼 ‘텀블벅’도 마찬가지입니다. 실제로 살펴보면 대부분의 게임 창작 프로젝트가 각자 환불 규정을 마련해 두고 있기는 하나 많은 경우 ‘상품 전달이 아예 안 되었을 때’에 한해서만 환불을 약속합니다.
그렇다면 ‘크라우드펀딩 투자자’가 일반적으로 기업 투자자들에 주어지는 것과 같은 권리를 보장받을까요? 그렇지도 않습니다. 크라우드펀딩 참여자들은 대부분 개발 과정을 보고받거나 개발자들에게 특정 사안에 대한 답변을 요구할 직접적 권한이 없습니다. ‘내 돈이 어떻게 사용되고 있는지’를 확인하거나 감시할 수단이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따라서 크라우드펀딩 참여자들은 개발 상황, 혹은 결과물의 품질 관리에 있어 그저 개발진의 선의 혹은 책임감에 기대고 수동적으로 기다리게 됩니다. 만약 게임개발 펀딩을 고려하고 있다면, 크라우드펀딩의 이런 특성을 분명하게 안 뒤에 결정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면 ‘리스크 적은’ 프로젝트를 고르는 방법이 있을까요? 먼저 창작자가 누구인지 살펴보는 방법이 일반적입니다. 유명한 개발자, 혹은 유명 게임 개발에 참여했던 개발자라면 분명 혹할 만한 이유가 됩니다. 하지만 유명인사가 주도한 펀딩도 실망을 안긴 사례가 꽤 있습니다. 팀의 전체적 구성, 규모, 개발 환경까지 최대한 살피는 것이 좋습니다.
만약 창작자가 업계 초보, 혹은 아마추어라면 기획 자체를 보고 판단하게 됩니다. 기획이 실현 가능한 규모와 성격인지는 물론, 창작자들이 그러한 기획을 구현할 수 있는 능력을 갖췄는지 또한 반드시 고려할 대상입니다.
그러나 전문 투자자, 업계인이 아닌 일반 게이머라면 결국 상세한 파악은 어렵고, 많은 부분에서 막연한 추측에 의지하게 됩니다. 결국 펀딩 결정은 기획 자체에 대한 호불호, 그리고 창작자들의 능력과 도덕성에 대한 인간적 신뢰에 기대는 바가 큽니다.
그런데 이렇게 ‘마음이 시켜서’ 하는 투자는 크라우드펀딩의 본질에 맥이 닿아있기도 합니다. 상품성 넘치는 기획들만 제품화 가능했던 기존 시장 논리에 대한 대안으로 등장한 자금 조달법이니까요.
프로젝트 내용이나 창작자가 단순히 ‘마음에 든다’는 것도 크라우드펀딩에서는 투자할 이유가 되고는 합니다. 다만, 앞서 말했듯 통상적인 상품 구매 행위와 가지는 차이점을 분명히 인지해서, ‘예상치 못한’ 피해는 막을 필요가 있겠습니다.
# 책임 없지만 책임 다해야 하는 이유
현행 제도상, 그리고 크라우드펀딩 문화의 본질상 게임 개발 펀딩이 지니는 리스크에 대해 알아봤습니다. 크라우드펀딩은 매매보다는 투자에 가깝고, 따라서 기대에 못 미치는 결과물이 나오더라도 ‘어쩔 수 없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그렇다면 크라우드펀딩에서 개발자들의 책임이란 없는 걸까요? ‘능력 부족’으로 실망하게 하는 경우를 넘어, 약속을 보란 듯이 저버리거나, 소통하지 않거나, 과도하게 부족한 제품을 내놓는 경우도 아무런 문제가 없을까요? 적어도 도의적으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이런 행위는 크라우드펀딩 문화 자체에 악영향으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앞서 살펴본 내용처럼 제도적으로 볼 때 크라우드펀딩은 아직 모호하고 엉성한 점이 남아있습니다. 그런 크라우드펀딩 경제가 지난 10년간 와해하지 않을 수 있게 붙들어 맨 접착제는 결국 투자자-창작자 간 신뢰입니다. 신뢰를 지킨 사례가 그러지 못한 사례를 넘어야 유지되는 생태계입니다. 그 비율이 역전돼 기꺼이 펀딩하려는 참여자가 부족해지면 미래를 담보할 수 없습니다.
크라우드펀딩 개발 프로젝트를 소홀히 운영하고 투자자 신뢰를 저버리는 일은, 이런 상호 신뢰의 기반을 좀먹는다는 점에서 가능한 한 적극적으로 배척되고, 경계되어야 합니다. 장기적으로는 개발자가 자기 발밑을 파내는 결과가 될 수도 있습니다.
창작자를 신뢰하지 못하고 펀딩을 주저하는 분위기가 형성되면 ‘불특정 다수에 의한 소액 펀딩’을 기본 전제로 하는 크라우드펀딩은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른바 ‘<마이티 넘버 나인> 사태’ 이후 게이머들 사이에 실제로 형성됐던 기류이기도 합니다.
<록맨>의 아버지 이나후네 케이지가 주도한 <마이티 넘버 나인>은 펀딩 참여자들에 배신감을 안긴 크라우드펀딩 게임의 대표적 사례로 손꼽힙니다. 이나후네의 명성을 믿은 여러 게이머가 투자했지만, 결과는 암담했습니다. 이후로 한동안 게이머들은 다른 크라우드펀딩 개발 프로젝트에도 의혹의 눈길을 보내게 됐습니다.
개발사와 그들의 아이디어에 지지와 신뢰를 보내는 게이머들의 숫자가 충분하지 않으면 ‘크라우드펀딩 개발’은 애초에 어불성설입니다. 펀딩 생태계의 지속 가능성을 위해서, 그리고 일반적 도의를 위해서 개발자들은 신뢰 관계 유지에 성실해질 필요가 있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