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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기자수첩] "내돈내산" 게임 확장팩, 개발사 마음대로 삭제해도 될까?

'데스티니' 콘텐츠 금고는 어쩔 수 없는 결정이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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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주(4랑해요) 2021-12-01 13:22:00
내 돈 주고 게임 확장팩을 샀는데, 몇 년 뒤 개발사가 콘텐츠를 삭제했다.

약간 과장이 있을 수 있지만, 약 1년 전부터 <데스티니 2>(국내명 <데스티니 가디언즈>)에서 실제 진행되고 있는 일이다. 2020년 11월 개발사 '번지'는 신규 확장팩 <빛의 저편>을 공개하며 '데스티니 콘텐츠 금고'(DCV)라는 시스템 도입을 예고했다. 콘텐츠 금고는 오래된 콘텐츠를 게임에서 임시로 삭제해 보관하는 것을 말한다.

당시에는 본편 <데스티니 2>에 포함된 싱글 캠페인 '붉은 전쟁'과 플레이어가 활동할 수 있는 지역인 '타이탄', '이오', '수성', '화성' 등의 행성이 게임에서 삭제됐다. 그리고 2021년, 번지는 2022년 2월 발매될 확장팩 <마녀 여왕>을 예고하며 18년 9월 발매된 <포세이큰> 확장팩에 포함된 콘텐츠가 일부 삭제될 예정임을 밝혔다.

만약 배틀넷에서 <데스티니 2>가 서비스되던 시절 게임을 즐겼던 게이머라면 당시 돈 주고 구매했던 콘텐츠 중 일부가 삭제되는 것이다. 

왜 번지는 콘텐츠 금고를 도입해야만 했을까? 왜 콘텐츠 금고는 논란이 될까? 오랜 기간 <데스티니>를 즐겼던 유저로써 허접한 기자수첩을 적어본다. 한 번쯤은 생각해 볼 만한 내용이다. ​/디스이즈게임 김승주 기자


꿈의 도시를 제외한 <포세이큰> 콘텐츠는 잠시 <데스티니>를 떠날 예정이다


# 어쩔 수 없다는 번지의 사정

 

번지가 이런 과감한 결단을 내린 이유는 다음과 같다. 

<데스티니 2>는 올해로 발매 5년 차에 접어들었다. 누적된 콘텐츠의 용량이 꽤 크다. 콘텐츠 금고 도입 전에는 게임 용량만 100GB에 달했다. 그만큼 로딩도 길었고, 갈 일도 없는데 용량만 차지하는 지역이 더러 있었다. 콘텐츠 금고의 핵심은 이제 사용하지 않는 콘텐츠와 지역을 제거해 용량을 확보하고, 로딩 시간을 단축한다는 것이다.

 

콘텐츠 금고 도입 전(좌), 콘텐츠 금고 도입 이후(우). 많은 행성이 용량 확보라는 미명 하에 사라졌다

 

콘텐츠 금고 자체는 <데스티니 2>의 존속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지였을 것이다. 콘솔 용량을 생각해 보면 간단하다. 보통 콘솔은 500GB 정도의 용량을 가지고 있는데, 데스티니 혼자 100GB를 넘는 용량을 차지하고 있다면 당연히 부담된다. 해외에서는 콘솔로 <데스티니 2>를 플레이하는 유저가 더 많기에 용량 줄이기는 번지 측에서도 어쩔 수 없는 결정이었을 것이다.

"요즘 100GB 넘어가는 라이브 서비스 게임, 흔하지 않나요?"라고 반박할 수도 있다. 그러나 용량도 용량이지만, 콘텐츠 삭제를 통해 기대되는 더 큰 효과는 '로딩'과 '버그' 줄이기에 있다. 로딩과 버그는 게임 내에 쌓인 데이터가 많아질수록 늘어난다.

그리고 <데스티니> 유저라면 동의하기 어려울 수 있는 주장이지만, 게임 콘텐츠 구조를 생각해 보면 번지의 의도가 일부 이해가는 부분도 있다.

<데스티니>의 콘텐츠 확장은 어떻게 이루어질까? 보통 새로운 시즌이 시작되면 짧은 스토리 퀘스트와 신규 파밍 콘텐츠가 주어진다. 시즌이 끝나면 당시 추가된 파밍 콘텐츠는 보통 버려진다. 다시 새로운 시작이 시작되면 메타가 바뀌며, 새로운 무기와 파밍 콘텐츠가 추가되기 때문이다.

 

시즌마다 새롭게 추가되는 <데스티니>의 콘텐츠. 보통 하나의 핵심 파밍 콘텐츠와, 나머지로 구성된 식이다

 

덕분에 냉정히 말해, 이미 시즌이 마무리된 지역은 사실상 버려진다. 다시 갈 일이 거의 없다. 어차피 안 가는 지역이고, 신규 콘텐츠가 추가될 일도 없다면 삭제돼도 게임 플레이에 큰 지장이 없다. '뒤엉킨 해안'에서 자원을 교환해 주는 NPC '거미'의 사례를 들어 반박할 수 있지만, 해당 역할을 다른 NPC에게 부여하면 그만이다. 실제로 거미의 역할은 라훌이라는 NPC가 대신할 예정이다.

콘텐츠 금고가 '완전한 삭제'가 아닌 '임시 저장'이라는 부분도 고려해 봐야 한다. 금고라는 의미 자체가 언젠가는 콘텐츠를 다시 꺼내 쓸 수 있음을 의미한다. 번지도 스토리 흐름에 따라 금고에 들어간 콘텐츠들을 다시 제공할 수 있음을 시사했다.

콘텐츠 삭제를 위해 나름 스토리적인 이유도 붙였다. <빛의 저편>에서 콘텐츠 삭제를 진행하면서, 번지는 스토리 빌드업을 통해 시리즈 주요 적대 세력인 '어둠'의 침략을 연출하고, 어둠 침략으로 인해 삭제된 지역에 진입할 수 없게 됐다는 그럴싸한 이유를 내보였다. 콘텐츠 금고가 유저들에게 어느 정도 무리 없이 받아들여질 수 있던 이유 중 하나다.

 

번지는 스토리와 라이브 이벤트를 통해 콘텐츠 삭제에 대한 그럴싸한 명분을 붙였다



# 그래도, 내 돈 내고 산 건데?


물론, 앞선 이유만으로 삭제를 정당화하긴 어렵다. 

해당 콘텐츠는 분명히 유저가 돈을 내고 구매한 콘텐츠다. '영구히'는 아닐지라도, 어느 날 갑작스럽게 돈 주고 산 콘텐츠가 게임에서 삭제되고, 언제 복구될지 가약조차 없다면 불만을 가지지 않을 유저가 있을까? "아 게임사가 사정이 있어서 어쩔 수 없구나!"라고 생각해 주는 유저는 별로 없을 것이다.

재미있는 점은(어찌 보면 당연하지만), 소송 사유가 될 수 있는 내용이기에 번지는 게임 플레이를 위해 플레이어가 반드시 동의해야 하는 조항을 통해 이를 예방해 놨다. 번지 본사는 미국 시애틀에 있는데, 미국이 또 '소송의 천국'이라고 불리지 않던가.

 

"모든 서비스 이용 가능 여부는 시간 흐름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

 

콘텐츠 삭제 부작용이 가시적으로 드러난 부분도 있다. 기존 콘텐츠 삭제는 신규 유저의 스토리 이해에 있어 큰 벽이 된다.

가령 현 <데스티니> 스토리에서 핵심이 되는 인물은 '까마귀'다. 이 인물의 배경을 이해하기 위해선 반드시 뒤엉킨 해안과 관련된 <포세이큰> 스토리를 체험해 봐야 하는데, <포세이큰> 캠페인은 곧 삭제된다. 설령 <포세이큰> 캠페인을 삭제 전에 미리 플레이해 본다 치더라도, 서사를 이해하기 위해선 <데스티니 2> 본편의 '붉은 전쟁' 캠페인을 해 봐야 한다. 그런데 붉은 전쟁 캠페인은 이미 1년 전에 삭제됐다. 악순환이다.

정 스토리가 궁금하다면 유튜브에 정리된 게임플레이 동영상을 시청하거나, 커뮤니티 어딘가에 정리되어 있을 스토리 요약 글을 직접 찾아 읽어야 한다. 

 

'붉은 전쟁' 캠페인은 통째로 삭제됐다. 번지가 다시 추가해 주지 않는 한 지금은 해 볼 방법이 없다 (출처 : 번지)

최소한 신규 유저의 스토리 이해를 위해 캠페인 정도는 별도의 다운로드 콘텐츠로 남겨야 하지 않았나 싶다. 스토리와 로어를 전부 찾아 읽는 열성 게이머가 아닌 한, 신규 유저는 <데스티니>의 스토리에 온전히 몰입하기 어렵다. 사실상 번지는 신규 유저 유치보단 잠시 게임을 접었다가 돌아오는 복귀 유저를 주 고객층으로 정한 것으로 추측될 정도다.

콘텐츠가 삭제된 만큼의 '신규 콘텐츠'를 제공하지 못했다는 것도 불만 대상이다. 가령 행성이 삭제되면서 해당 행성과 관련된 PVP 맵들도 삭제됐으나, 새로이 추가된 맵은 없다. PVP는 사실상 방치되고 있다는 의견도 심심치 않게 등장하고 있다.

 

PVP맵은 삭제만 됐지 새로 만들어진 게 없다. 새로 추가된 맵은 전부 <데스티니 1>의 맵을 재탕했다 (출처 : 번지)

 

마지막으로, '레이드'를 통째로 삭제한 것은 분명 비판받을 만한 일이다. 번지는 <빛의 저편>을 업데이트하면서 <데스티니 2> 본편과 이후 출시된 확장팩에서 추가됐던 '리바이어던' 레이드 3 종을 과감하게 삭제해 버렸다.

레이드는 레이드 그 자체로도 의미가 있다. 보상만이 전부가 아니다. 어려운 과제를 해결하며 얻는 경험이 레이드의 재미이자 핵심이다. 게임을 오랬동안 플레이하지 못한 유저가, 예전 레이드를 체험해 보지 못한 신규 유저와 함께 레이드를 즐길 수도 있다. 지역 삭제까지는 이해하더라도, 해당 지역과 연관된 레이드까지 통째로 삭제했단 점은 비판을 피하기 힘들다.

그나마 이번에 <포세이큰>을 콘텐츠 금고에 넣는 과정에서 꿈의 도시 지역과 '마지막 소원' 레이드는 남겨둔다고 하니 다행인 일이다. 굳이 사족을 붙여보자면, 스토리 상 핵심이 되는 지역이기에 무턱대고 삭제하기 힘든 콘텐츠였기 때문으로 추측된다.

 

포세이큰은 삭제되지만, 꿈의 도시 관련 콘텐츠는 존속시킬 계획이다 (출처 : 번지)

 

# 결국엔 뻔한 결론


허접한 기자수첩다운 마무리지만, 결국 뻔한 이야기가 나올 수밖에 없다. 곧 콘텐츠 금고를 시작한 지 2년 차에 이르는 만큼, 번지는 신규 확장팩 <마녀 여왕>을 통해 유저들을 납득시킬 만한 콘텐츠를 공개할 필요가 있다.

이미 번지는 콘텐츠 금고 시스템과 함께하기로 결정했고, <데스티니 2>는 2024년까지 이어지는 장기  프랜차이즈 계획을 가지고 있다. 이미 콘텐츠 삭제라는 화살은 번지의 손을 떠났다. 팬들은 "이를 통해 더 좋은 게임을 서비스할 수 있다"는 번지의 약속이 이행되길 바랄 뿐이다. 

<데스티니>를 플레이하지 않는 유저도 한 번쯤은 생각해 볼 만한 일이다. 번지가 좋은 업데이트를 통해 콘텐츠 삭제라는 결정을 잘 이해시킨다면 게임계에 좋은 선례가 남겠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개발사가 마음대로 유료 컨텐츠를 삭제할 수 있다는 악폐만을 남길 뿐이니까.

 

번지는 <데스티니 2>를 2024년, 혹은 더 이어질 수 있는 장기 프랜차이즈로 발전시킬 계획이다
따라서 콘텐츠 금고 시스템도 계속해서 사용될 것으로 보인다. 전례 없는 결정인 만큼, 번지가 선례를 남기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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