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0월 6일 오후 2시. 정부가 여성가족부(여가부)를 폐지하는 내용의 정부조직 개편안을 발표했다.
여가부가 폐지되면 해당 부처의 주요 업무는 특성에 따라 보건복지부와 고용노동부로 이관된다. 이중 게임과 관련된 정책은 보건복지부가 전담할 것으로 보인다. 여가부 폐지는 윤석렬 정부의 공약이기도 했지만 구체적으로 여성, 청소년만 전담한 종합적인 사회정책 추진이 곤란하기 하다는 이유도 있다.
여가부 폐지와 관련해서는 수많은 찬성과 반대 논리가 있다. 그리고 그 논리에는 청소년, 여성 등과 관련된 다양한 정책과 관련된 이야기가 오고 간다. 다만 이번 게임잡상에서는 단순하게 게임과 관련해서만 언급을 하려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여가부의 폐지는 게임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게임 쪽에서 여가부 폐지 주장은 꾸준히 있었다. 이 와중에 <마인크래프트>의 미성년자 이용 불가 사태 당시 여론의 힘을 타고자 한 유승민, 하태경 의원 등이 여가부 폐지론을 강력히 주장했고, 이준석 전 국민의힘 당대표가 판을 키우면서 대선에서 주요 공약이 되어버렸다.
게임 판에서 특히 유저들은 그동안 게임을 악의 축으로 보아 오면서 셧다운제와 같은 규제를 만들어낸 여가부의 폐지론에 적극 찬성했고. 급기야 여가부가 폐지안이 발표된 당일 관련 커뮤니티는 승전보를 들은 듯 축제의 분위기가 느껴진다.
물론 아직 여가부가 폐지된 건 아니다. 해당 정부부처법이 국회에서 통과되어야 한다. 야당인 민주당의 반대가 큰 것으로 알려져 있기에 어찌 될지는 아직 미지수이다. 하지만 여가부가 사라진다는 것 자체에 대한 의미를 따져봐야 할 듯하다.
우리는 여가부가 사라지면 여가부가 추진하던 게임 관련 규제가 모두 사라질 것으로 이해하고 있는 느낌이다. 과연 그럴까?
여가부의 주요 업무는 보건복지부와 고용노동부가 각 업무 특성에 맞춰 이관될 것으로 보인다. 이 경우 여가부가 담당하던 게임과 관련된 주요 업무는 보건복지부가 가져간다고 볼 수 있다.
지금까지 게임의 주요 부처는 문화체육관광부(문체부)가 담당했다. 믿을 수 없겠지만 문체부는 게임을 적극적으로 방어하는 입장이었다. 게임질병 코드 때도 그랬고, 셧다운제 당시에도 게임산업 진흥을 위한 방어 논리로 무장한 부처였다.
그런데 올해 상황은 많이 달라졌다. 일단 게임에 대한 지식이나 관심이 많았던 기존 문체부 장관들과 달리. 현 장관은 게임에 대해서 큰 관심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 문체부 국정감사에서 게임에 대한 비중은 지금까지와 비교해도 대폭 줄었고. 정책부문에 있어서도 찾아보기 힘들 정도다.
그런데 여가부는 없어졌지만, 게임질병코드 도입을 적극 주장하는 보건복지부가 게임 업무를 담당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여가부에서 게임을 담당하던 인력들이 여가부가 사라졌다고 해서 모두 사라지는 게 아니라 하던 일을 그대로, 혹은 더 강화해서 여가부보다 더 강한 힘을 가진 보건복지부라는 부서에서 일을 하게 된다.
여가부가 없어진다고 해서 여가부가 하던 정책과 업무, 그리고 그 일을 진행하던 사람들이 사라지는 게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해야 한다.
내 예상이 맞는다면 게임질병 코드와 관련해서 더 많은 정책과 규제방안이 쏟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런 규제 이야기가 나올 당시 게임에서 한 발 떨어졌었던 보건복지부가 직접 게임에 대한 정책을 수립할 여건이 마련되었기 때문이다.
WHO가 게임질병 코드를 정식으로 등록하는 과정에서 한국의 의료계와 정부부처는 연구보다는 치료와 예방이라는 입장에서 적극 도입을 주장했다. 그 정부부처가 보건복지부였고 가장 환영한 정부부처였다. 당시 문체부는 반대 입장이었지만 의료 관련 주관 부처가 아니었다.
지난 2013년에 발단이 되어 2016년 법안폐기로 마무리된 4대 중독법에 게임이 포함되었던 일이 있었다. 당시 4대중독법 통과에 가장 적극적인 부처가 보건복지부였고 그 뒤로도 꾸준히 게임에 대한 규제를 위해 노력했다.
당시 보건복지부는 최종보고서에서 게임 중독은 약물로 치료할 수 있다고 밝힌 바 있고, 이 보고서를 기반으로 다양한 정책을 준비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여가부가 폐지를 근간으로 한 정부부처법을 발표한지 아직 하루가 안 된 시점에서 섣부른 예단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여가부 폐지는 보건복지부의 게임규제 정책에 날개를 달아준 형국이라고 생각된다. 게임에 비유하자면 최종보스라 여겼던 여가부는 중간보스였고 더 강력한 최종보스가 등장한 셈이다. 보건복지부는 단 한순간도 게임을 규제 테두리 안에 넣는 걸 포기한 적이 없다.
여가부의 폐지는 결코 게임업계의 축복이 될 수 없다. 청소년 보호 명분의 게임규제가 이젠 전국민의 정신건강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더 큰 규제를 맞이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리고 새정부가 출범한지 이제 5개월 여가 지났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