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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기자수첩] 이게 우리가 생각하던 축구 게임인가?

EA의 혼성 얼티메이트 팀은 잘못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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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석(우티) 2023-07-14 16:54:44

1.

 

지난 13일(현지 시각), EA는 축구게임 '피파' 시리즈를 잇는 새로운 브랜드 '스포츠 FC'의 발표회를 개최했다. 

  

국제축구연맹(FIFA)과 명명권 협상이 불발된 이후, EA는 홀로서기에 나섰고 <EA SPORTS FC 24>라는 이름으로 역사를 이어 나간다. 새 게임은 9월 29일 출시될 예정이다. 발표 직후, 넥슨 또한 '피파 온라인'과 '피파 모바일'의 이름을 'FC 온라인'과 'FC 모바일'로 변경한다고 발표했다.

 

프레젠테이션에 나선 캠 웨버(Cam Weber) EA 스포츠 사장은 여러 차례 혁신을 언급했다. EA가 이미 과학적 방법을 동원해 여러 선수들의 움직임을 실사와 같이 구현하고, 전문 분석팀을 구성해 현대 축구의 메타를 부지런히 쫓아가고 있으며, 여러 리그와 구단, 선수들의 라이선스를 확보했다는 것은 이미 수년 전부터 언급되어 왔던 특징이기 때문에 새로울 것은 없었다.

 

진짜 중요한 것은 얼티메이트 팀(UT) 이야기였다. UT는 유저가 선수를 모아 자신만의 구단을 만들어 다른 이들과 경쟁하는 모드로 사실상 이 프랜차이즈의 엔드 콘텐츠에 해당한다. 유저는 포인트나 코인 같은 재화로 루트박스를 구매해 확률적으로 선수들을 획득할 수 있다. 예상하다시피, 성능이 높은 선수카드는 획득 확률이 낮다.

 

그리고 이번에 EA는 UT에 여성 축구를 포함시키겠다고 발표했다. 혼성으로 팀을 구성해 다른 이들과 경쟁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스크린에 나온 영상에는 루이스 피구가 전설적인 여성 축구 선수 미아 햄과 교체하는 장면이 지나갔다. 새벽에 졸린 눈으로 발표회를 보던 기자는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트레일러에 등장한 루이스 피구와 미아 햄의 교체 장면.

2.

 

기자는 개인적으로 경악을 금치 못했다. 이번 결정은 EA의 실수로 남을 것이다. 기자는 남성의 신체적 우월 따위를 논하려는 것이 아니다. 감히 축구가 남성의 전유물이라고 떠드는 것도 아니다. 이건 프로 스포츠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인 규칙의 파괴다.

 

우선 프로 축구는 혼성 스포츠가 아니다. 전 세계 축구 리그는 성별을 분리하고 있다. 국가별, 연령별 국제 대회도 마찬가지다.​ 프로 축구에서는 이벤트 매치가 아닌 이상, 혼성을 채택하는 경우는 사실상 없다. 승마 같은 유니섹스 스포츠가 아니라는 뜻이다. 정식 대회에서는 배드민턴, 테니스, 볼링, 컬링처럼 혼성 종목도 전혀 없는 스포츠가 축구다.

 

<EA 스포츠 FC>도 큰 틀에서 보면 시뮬레이션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 그리고 이번 결정은 EA가 현실을 초월 해석해 논란을 자초한 것으로밖에 볼 수 없다. EA가 '피파'에 처음 여성 축구를 도입했을 때 기자는 존중의 박수를 보냈지만, 이 둘을 한 그릇에 섞는 결정은 도저히 납득하기 어렵다. 둘이 다른데, EA는 하나의 그라운드에서 지소연과 손흥민의 능력치를 어떻게 구별할 것인가?

 

혹자는 '지단과 이강인처럼 UT에서는 시대를 초월한 스쿼드도 가능하지 않느냐'고 물을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별개의 문제다. 2023년 현재, 여성 축구와 남성 축구의 저변은 같지 않다. 대저 아이타나 본마티(바르셀로나 페미니)를 뽑고 싶은 유저가 많을까, 엘링 홀란드를 뽑고 싶은 유저가 많을까? 영리한 EA가 뽑기의 풀(Pool)을 비약적으로 늘여버리기 위해, 유저들을 뽑기로 더 몰아넣기 위해 이 같은 결정을 내린 것으로 해석한다.

 

UT를 즐기기 위해 매년 풀 프라이스를 지불하고 타이틀을 구매하는 사람들의 의견은 얼마나 반영된 걸까?

 

UT은 이미 같은 선수를 여러 버전의 카드로 내놓는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바로 여기에 여성 축구 선수라는 지대한 변수가 추가된 것이다.

 

3.

 

EA의 쇼케이스가 열린 곳은 네덜란드의 암스테르담이었다. 그리고 네덜란드 정부는 확률형 아이템을 완전 금지하려 하고 있다. 앤드류 윌슨(Andrew Wilson)​ EA CEO는 쇼케이스에서 "현대 축구가 태동한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 와서 발표하게 되어 기쁘다"라고 말했지만, 그 기저에는 다분히 상업적인 계산이 깔려있다. 참고로 최근까지 네덜란드 정부와 EA는 법원에서 다투었다.

 

이제 한국으로 돌아와서 상상의 나래를 펼쳐본다. 넥슨의 <FC 온라인> 카드 패키지에 여성 축구 선수들이 포함되는 미래 말이다. PC방에서 종일 감독모드를 켜놓고, 보상을 긁어모아 카드를 열었다. 그랬더니 누군지 전혀 모르는 선수들이 대단한 능력치를 붙이고 나왔다. 능력치가 좋으니 써야 하나? 근데 이 선수가 누구지? 이 선수가 OOO보다 빠르다고?

 

이게 우리가 생각하던 축구 게임인가? 정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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