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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신뢰를 원하는 유저, 숫자를 내미는 개발사. '데스티니차일드' 사태의 비극

안정빈(한낮) 2016-11-18 19:51:51

지금으로부터 약 10년 전의 일이다. 술만 마시면 같은 이야기를 반복하던 선배가 있었다.

 

“야. 세상에 정답이면 다 되는 거 같지? 근데 사람 일이 그렇게 딱딱 떨어지는 게 아냐”

 

선배는 수학과였다. 수학은 언제나 정답이 정해져 있다. 정답이 아닌 답은 어떤 가치도 없다. 하지만 사람은 아니었다. 인간관계가 꼬인 탓에 졸업까지 꼬여버린 못난 선배의 한탄일수도, 아웃사이더를 자처하던 못난 문과생의 비참한 공감대였을 수도 있겠지만 그 당시 귀에 못이 박이게 듣던 이야기는 기자의 의지와 상관 없이 머릿속에 남아버렸다.

 

기자가 난데 없이 10년도 더 지난 추억을 꺼낸 이야기는 하나, <데스티니 차일드>가 불러온 일련의 사태가 선배의 이야기를 다시 떠올리게 만든 탓이다. /디스이즈게임 안정빈 기자


 


 

<데스티니 차일드>가 곤욕을 겪고 있다. 일러스트레이터와 확률조작, 일본 친화 콘텐츠 등으로 논란이 되더니, 이제는 새로운 업데이트까지 뭇매를 맞고 있다.

 

이유가 뭘까? 정말 넥스트플로어와 시프트업이 유저들의 골수까지 쪽쪽 빨아 먹기로 작정한 천하의 악당 기업이라 그런 걸까? <데스티니 차일드>가 인류의 게임역사에 남으면 안 되는 볼트모트 같은 존재라도 되니까 그런 걸까?

 

당연히 정답은 NO다. 유저는 감정을 앞세우고, 개발자는 상황도 모른 채 감정 없는 숫자만 내세웠다. 그게 반복되니 개발사는 신뢰를 잃었다. 모든 사태는 여기서 시작한다.

 

첫 대규모 업데이트이자 논란이 된 리버스 스킨 업데이트

 

 

# 긁어 부스럼을 만든 스킨 업데이트

 

<데스티니 차일드>는 지난 18일 업데이트를 진행했다. 캐릭터의 성별을 바꿔주는 스킨이 등장하고, 스킨으로 교환할 수 있는 코인을 얻는 던전까지 추가된 게임의 첫 콘텐츠 업데이트다. 그런데 반응은 끔찍했다. 유저들의 불만은 하늘을 찔렀고, 배신, 사기, 양아치 등의 험담도 줄을 이었다.

 

문제의 발단은 이렇다. <데스티니 차일드>는 지난 9일부터 33,000원 이상 결제한 유저에게 5성 캐릭터인 하데스를 110,000원 이상 결제한 유저에게는 +1 하데스를 제공하는 이벤트를 진행했다. 그리고 이와 함께 하데스의 능력을 강화해주고, 모습도 예쁘게 만들어주는 ‘리버스스킨 업데이트’도 예고했다.

 

도발과 보호막을 갖춘 하데스는 게임 내에서 강력한 탱커다. 여기에 이후 새로운 스킨을 통해 능력치와 외형이 더 나아진다는 기대에 많은 유저들이 결제를 진행했다.

 

 외형 변화를 위한 던전. 100여개를 주는 코인을 4만개 모아야 한다.

 

하지만 이벤트가 끝나기 3일 전에 새로운 공지사항이 올라오며 분위기는 바뀌었다. 공지사항에 따르면 강력한 탱커였던 하데스는 갑자기 공격을 반사하는 탱커겸 딜러로 변한다. 유저들이 1차로 반발한 부분이다.

 

그리고 3일 뒤, 리버스스킨 업데이트가 진행되며 유저들은 또 한 번 분노한다. 리버스스킨을 얻기 위한 던전은 일정기간 열리며, 하루에 10번씩 도전할 수 있고, 이를 클리어하면 코인을 제공한다. 하지만 얻을 수 있는 코인에 비해 스킨의 가격이 지나치게 높았다. 특히 이벤트까지 동원했던 하데스의 리버스스킨은 던전이 열리는 기간 내내 도전해도 얻을 수 없었다.

 

그 와중에 <데스티니 차일드>는 이벤트를 시작한다. 33,000원 이상 결제하면 리버스코인 10,000개를, 110,000원 이상 결제하면 리버스코인 20,000개를 주는 이벤트다. 유저들은 결국 폭발했다.

 

 그리고 나온 코인 이벤트. 예상은 했지만 타이밍이 나빴다.

 

 

# 구매 직전에 바뀐 내용물. 당연히 이어지는 분노

 

<데스티니 차일드>의 이번 문제는 따로 떼어놓고 보면 문제라고 부르기도 무색한 것들이다. 개발사에서는 게임의 변화에 맞춰 캐릭터를 계속 리뉴얼할 수 있고, 새로운 콘텐츠를 추가하는 건 개발사의 의무다. 던전에서 부족한 아이템을 캐시로 산다는 것도, 일정 금액 이상을 결제한 유저에게 보너스를 주는 것도 부분유료화 게임에서는 당연한 논리다. 

 

다만 그 모든 것이 하나로 연결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이벤트에 따라 하데스를 구매한 유저 중 많은 수는 ‘하데스의 업데이트 전 성능’을 보고 결제를 진행했다. 업데이트가 이벤트 종료 3일 전에 발표됐으니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정작 업데이트된 하데스의 성능은 이전만 못 했고, 스킬 세트까지 대대적으로 바뀌는 리뉴얼이 이뤄졌다. 33,000원을 주고 주고 하데스를 ‘구매’한 유저로는 구매 직후 물건이 나오기 전에 상품의 내용물이 바뀐 셈이다. 

 

이벤트와 업데이트 예고에 넘어가 성능이 변할 걸 알지도 못하고 캐릭터를 산 유저는 화를 낼 수밖에 없고, 그렇게 구매한 캐릭터가 정작 업데이트를 즐기려면 추가 비용이 드는 걸 안 유저는 이를 ‘사기’로 볼 수밖에 없다.

 

유저들의 분노는 너무 당연하다.

 

공식카페에 올라온 항의성 게시물들

 

 

# 상황인식의 부재. 그 와중에 사라지는 신뢰

 

사실 더 걱정되는 건 당장의 사태보다 넥스트플로어와 시프트업의 상황인식이다. <데스티니 차일드>는 이전에도 몇 번씩 논란에 휩싸였다. 간단히 말하자면 ‘가뜩이나 눈 밖에 난 시기’다. 특히 확률문제는 개발사의 신뢰에도 치명적인 영향을 미쳤다.

 

그런데 <데스티니 차일드>는 결제이벤트가 끝나가는 와중에 캐릭터 성능을 바꾸는 무모한 업데이트를 진행했다. 두 가지 중 하나다. 유저들의 게임에 대한 불만을 보기보다 작게 보고 있거나, 캐릭터 성능을 바꾸는 건 당연하니까 별문제가 없는 행동이라 생각하거나.

 

어느 쪽이라도 문제다. 상황을 이해 못 하는 거라면 두 말 할 필요가 없을 것이고, 업데이트니까 문제가 없을 거로 생각했다면 그건 게임을 너무 ‘숫자’로만 보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이 계속 반복되면 <데스티니 차일드>는 지금보다 더 많은 신뢰를 잃을 수도 있다.

 

iOS는 다소 떨어졌지만 안드로이드에서는 여전히 1위를 유지 중이다. 

 

지금의 <데스티니 차일드>는 여전히 매출 1위를 달린다. 김형태 대표와 유명작가들이 출동한 캐릭터 모습은 더할 나위 없이 멋지고, 스토리도 좋다. <데스티니 차일드>가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여전히 많은 인기와 매출을 누릴 것이다.

 

하지만 너무 슬프지 않은가? 우리나라 매출 1위 게임의 유저들이 이벤트를 준비하는 개발사를 비판하고, 다음에는 어떤 업데이트로 유저 뒤통수를 칠 것인지를 걱정하고, 무슨 일이든 ‘숨은 꿍꿍이’부터 찾아내려 노력한다는 건. 

 

그리고 신뢰를 잃은 개발사가 숫자만을 쫓아간다는 건. 

 

세상이 숫자만으로 다 되는 건 아니라고 술만 마시면 주장했던 수학과 선배. 그 선배의 이야기처럼 게임 너머에서도 숫자가 아닌 사람의 모습을 더 볼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지난 9일 진행한 하데스 결제 이벤트. 이때만 해도 성능이 살짝~ 변한다는 공지만 있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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