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상당수 게임사가 가상자산 기반 P2E 게임에 뛰어들었습니다. 올해 많은 게임이 쏟아질 예정입니다. 게임 생태계는 기대와 냉소가 섞여 있고 단정적인 경우가 많습니다. 본 기획이 P2E 게임의 기회와 허들, 변수 등을 구체적으로 들여다 볼 기회가 되길 희망합니다. 본 연재물 내용은 디스이즈게임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지만 퀄리티는 저희가 담보합니다. /디스이즈게임
지난 4월 트위터(Twitter) 인수를 성사시키며 화제를 모았던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가 얼마 전 인수를 보류하겠다고 밝혀 구설수에 올랐다. 인수 보류의 근거가 좀 독특하다. 그는 “전체 트위터 계정 중 스팸 및 가짜 봇(bot) 계정이 최소 20% 이상으로 추산된다”면서 이 수치가 5% 미만이라는 게 확인돼야 인수를 진행할 수 있다고 밝혔다.
머스크의 지적대로 활성화된 봇 계정이 SNS 플랫폼 전체에 악영향을 미치는 것은 사실이다. 역설적이게도 머스크 역시 여기서 자유롭지 않다. 미 메릴랜드대 연구에 따르면 2010년부터 2020년 사이 테슬라 해시태그(#TSLA)가 들어간 트윗 15만 7,000건 중 23%가 봇 계정에 의해 작성되었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나타났다.
봇은 이런 광고나 가짜뉴스 배포 이외에도 피싱 사기, 주식 및 암호화폐 거래량 조작 등에 활용된다. 요즘에는 인공지능(AI)의 발달로 더 정교하고 사람 같은 봇들도 등장하고 있다. 바야흐로 봇의 전성시대다. 게임 매체 칼럼에서 왜 갑자기 봇 얘기냐고? 최근 P2E가 게임업계로 확산되면서 기존 게임 업계 이용자들도 봇과 마주하게 될 가능성이 상당히 높아졌기 때문이다.
사용자 증가하면 코인가치 오르는 P2E… ‘봇’ 도입 시간문제
암호화폐 시장에서 거래량은 상당히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반드시 정비례하지는 않지만 어떤 코인이 많이 거래된다는 것은 그만큼 그 코인을 사용하는 커뮤니티 크기가 크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기 때문이다. 코인은 화폐적인 속성이 있어서 쓰는 사람이 많으면 가치가 증가한다.
이 분야에서 거래량을 부풀리는 ‘워시 트레이드(wash trade)’에 비교적 일찍부터 봇이 활용됐던 이유다. 방법도 간단하다. 봇끼리 서로 토큰을 주고받도록 프로그래밍해 시장이 활성화된 것처럼 착시를 일으키면 된다. 거래량이나 호가창만 보면 시장 참여자가 많은 것처럼 속기 쉽다.
암호화폐와 생태계를 공유하는 P2E 게임의 경우에는 게임 사용자 숫자가 거래량과 비슷한 역할을 한다. 글로벌 P2E 게임 중 가장 유명한 <엑시 인피니티>(Axie Infinity)의 경우, 최근 지속적으로 사용자 수가 줄어들고 있다. 지난해 11월에만 해도 270만 명에 달하던 일간 사용자 수(DAU)가 올해 5월에는 93만 명까지 줄어들었다. 같은 기간 엑시 코인(AXS)의 가격은 150달러대에서 25달러로 80% 넘게 하락했다.
만약 P2E 개발사가 자신의 게임에 사람처럼 행동하는 봇을 넣고 채굴 활동을 장려한다면 어떻게 될까. 지금 게임 업계처럼 사설 업자들이 아니라 개발사가 직접 작업장을 돌린다면 말이다. 자가발전하듯 토큰도 얻고 게임 활성화 효과도 누릴 수 있다. 다행히 아직 P2E 시장에서 이런 징후는 보이지 않고 있다. P2E 게임을 만드는 게임사들이 대부분 기술적으로 초기 단계에 머물고 있기 때문이다.
곧 마주하게 될 게임 속 AI 봇, 만족스러운 플레이 경험과 이어질까
이런 측면에서 엔씨소프트가 지난 3월 게임 개발자 컨퍼런스 GDC 2022에서 세계 최초로 공개한 강화학습 AI 기반 MMORPG 콘텐츠는 상상력을 자극한다. 엔씨소프트는 이 강화학습 기반 AI를 PC 온라인게임 <리니지>에 실제로 도입해 수십명 단위의 AI가 전투를 수행하는 콘텐츠를 상용화 수준까지 구현했다.
엔씨소프트는 게임에 색다른 긴장감을 부여하는 수단으로 AI가 활용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MMORPG 특성상 계속 반복되는 패턴의 사냥이 이어지기 때문에 사용자가 피로감을 느낄 수 있는데, AI 강화학습을 이용하면 사냥이 더 이상 지루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기술은 게임의 사용자 숫자를 늘리는 방향으로도 악용될 수 있다. 특히 학습된 AI가 사람과 비슷한 게임 지능을 가지고 있다면 P2E 게임에서는 바로 금전적 가치로 환산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해 일부 스트리머들이 엔씨소프트가 <리니지> 내에 다량의 AI 봇을 운용하고 있다는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인터넷 서비스가 확산되면서 IT업계에서는 사용자가 컴퓨터가 아니라 인간임을 증명할 수 있는 방법을 오랫동안 고안해왔다. 사람만 풀 수 있는 간단한 테스트인 ‘캡챠(Captcha)’가 대표적이다. 구글의 리캡챠(reCAPTCHA)와 인투이션머신스(Intuition Machines)의 에이치캡챠(hCAPTCHA)가 이 시장을 석권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테스트는 어디까지나 플랫폼이 사용자를 검증해내는 용도로 활용되어 왔다. 플랫폼이 AI 기술을 이용해 사용자를 속이려 할 때, 사용자가 그것들을 검증할 수 있는 방법은 상당히 제한적이다. 우리는 그것들을 검증해낼 수 있을까. 불가능하다면 그런 환경에서 만족스럽게 게임을 즐길 수 있을까. P2E 게임 시대에 함께 고민해봄직한 주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