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려동물을 주제로 한 모 방송국의 한 프로그램명이 떠오른다. <세상에 나쁜 개는 없다>.
아마 <리그 오브 레전드>(이하 <롤>) e스포츠 판에 적용하면 ‘세상에 나쁜 탑은 없다’ 내지 ‘세상에 나쁜 원딜은 없다’ 같은 표어를 적용할 수 있을 것이다. 지난 6월 15일부터 출발한 2022 LCK 서머 스플릿이 젠지의 우승, 그리고 티원, 담원 기아, DRX의 월드 챔피언십 진출로 성황리에 막을 내렸다. 이제 다가오는 월드 챔피언십에 시선이 집중된 지금, 가벼운 마음으로 색다르게 시즌을 돌아보려 한다.
팀에는 필요하지만, 지표는 낮은 선수들에게 우리는 존재와 기여도를 이유로 들며 의문을 제기한다. 하지만 얼마 전 종영한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한 대사처럼 “이상하고 별나지만, 가치있고 아름다운” 이라는 구절은 이상한 지표를 보이는 선수가 주전으로 중용되는 이유를 설명해줄 수 있을 것이다.
시즌이 모두 끝난 지금, ‘이상하고 별나지만, 가치 있고 아름다웠던’ 한 선수, 리브 샌드박스 소속 탑 라이너, ‘도브’ 김재연의 서머 시즌 지표로 그의 존재와 기여도를 되짚어 본다. /장태영(Beliar) 필자, 편집= 디스이즈게임 김승주 기자
(출처 : LCK)
본 콘텐츠는 디스이즈게임과 오피지지의 협업으로 제작됐습니다.
#1 - 메타가 웃어주며 가능했던 ‘도브’ 김재연의 이상하고 별난 지표
LCK 서머 스플릿 PO 내내 리브 샌드박스를 바라보는 모든 이목은 ‘도브’ 김재연에서 출발해, ‘도브’ 김재연으로 끝났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었다. PO에 진출한 팀에 소속된 다른 탑 라이너들에 비해 도브의 정규시즌 라이너 지표는 압도적이라는 단어와 거리가 다소 멀었다.
정규시즌, 도브의 라이너 지표는 평균 1.9 킬에 분당 CS 수급률 7.1, 분당 골드 수급률 362로 각각 리그 5위, 리그 10위, 리그 10위라는 절망적인 지표를 보였다. 초반 라인전 상황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지표인 10분 간의 CS 수급 및 경험치 차이도 각각 -8.5, -162로 리그 10위의 지표를 보였다. 굳이 탑 포지션으로 한정 짓지 않아도 이러한 데이터는 리그 전체를 통틀어 가장 안 좋은 수준이다.
지표를 있는 그대로 읽으면 도브라는 탑 라이너는 리그에서 가장 CS와 골드를 적게 확보하면서, 경기 초반부터 빠르게 상대 라이너와 차이가 벌어지는, 극단적으로 수비적인 성향을 보이는 탑 라이너라는 결론이 나온다.
(출처 : 라이엇 게임즈)
이러한 도브의 수세적 플레이는 크게 두 가지 차원으로 해석해볼 수 있다. 첫 번째는 메타의 방향성과 이해다. LCK는 스프링과 서머를 1년 간 거치면서 ‘하체’ 라는 한 단어로 설명할 수 있을 만큼 원거리 딜러의 인-게임 영향력이 증대된 시즌이었다.
한 라인의 공격성과 영향력이 높아질수록 팀들은 밸런스를 고려해 대척점에 위치한 쪽에 방어적인 포지션을 가지고 가기 마련이다. 이번 시즌은 탑 라인에 탱커를 세우며 이런 흐름을 이어갔다. 특히 서머 시즌을 앞두고 진행된 12.10 패치에서 챔피언들의 전반적인 내구도가 개선되며 경향성은 더욱 강해졌다.
하지만 메타가 선수에게 웃어준다고 선수의 공격적 색깔이 드러나지 않는 게 당연하다는 듯이 이해하면 곤란하다. 도브의 이러한 플레이에 당위성이 실리는 이유는 두 번째, 전체적인 팀 성향이 극단적인 안정 지향성을 띠고 있기 때문이다.
<롤>은 챔피언의 성장 속도와 수급된 골드를 바탕으로 구매한 아이템의 성능이 게임 내 현격한 격차를 빚어낸다. 이때, 플레이어에게는 두 가지 선택지가 주어진다. 하나는 성장과 아이템의 격차가 무의미해질 때까지 버티거나(시팅), 성장과 아이템의 격차가 더 벌어지기 전에 교전으로 판세를 엎는 것이다.
리브 샌드박스의 정글러 ‘크로코’ 김동범과 미드 라이너 ‘클로저’ 이주현 모두, 전자에 가까운 플레이 스타일을 보였다. 초반 골드 및 경험치 수급에서 철저히 손해를 감수하거나 반반을 유지하는 플레이를 지향했다.
아래는 크로코와 클로저의 패치 버전별 10분 간 골드 및 경험치, CS 수급 차이를 비교한 그래프다. 그래프를 자세히 보면, 0을 기준으로 크로코와 클로저의 그래프는 -100 ~ 100 언저리를 오가는 모습을 보인다. CS 수급 자체는 상대 라이너 혹은 정글러와 큰 차이를 보이지 않지만 골드와 경험치 수급에서 약간의 손해는 감내하는 모습을 띄는데, 이때 벌어들이지 못한 상체 라인의 골드와 경험치는 모두 원거리 딜러인 ‘프린스’ 이채환에게 시간이 지날수록 집중되는 경향을 보인다.
결과적으로 안정적인 원딜의 성장을 돕기 위해 상체를 구성하는 세 선수가 모두 현격한 차이를 벌리기보단 안정적인 운용을 지향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 지표는 리브 샌드박스가 서머 시즌 보여준 모습과도 맞닿아 있다. 리브 샌드박스가 많은 경기에서 보여준 특징은 경기 시작 후 10분 이후 골드 격차가 급격히 변화한다는 점이다. 다른 말로는 10분 동안 안정적으로 힘을 응축했던 팀 전체가 유의미한 변화를 시도할 때, 성공할 경우 다른 팀보다 더 빠르게 스노우볼을 굴린다는 이야기다. 이러한 시도는 다른 팀에 비해 극단적으로 발생하는 골드 수급률 저하마저 기꺼이 감수하며 진행됐다.
실제로 리브 샌드박스의 15분 골드 격차는 -718로 한화생명 e스포츠(-1191)에 이은 리그 9위였다. 최근 5년 간 15분 동안 골드 격차가 음수로 떨어졌음에도 PO에 진출한 팀은 2018년 SK 텔레콤 T1(-559), 그리고 2021년의 DRX(-587)와 농심 레드포스(-941) 뿐이었다.
종합해보면, 리브 샌드박스는 최소한 탑 라이너를 포함한 상체 3인의 구성이 10분 동안 게임에 악영향을 끼치지 않게끔 경기를 유도한 뒤, 10분이 지나면 하체 중심으로 빠르게 운용 전략을 뒤바꾸며 게임을 혼란스럽게 해왔던 것이다. 실제로 리브 샌드박스의 EGR(초반 지향성) 지표는 48.6으로 리그 7위였지만, MLR(중후반 지향성) 지표는 19.9로 서머 스플릿 우승팀인 젠지(18.9)보다도 높은 1위를 기록했다.
물론 도브의 공격성이 더 부각되면 이러한 안정성은 더욱 빠르게 공격적으로 전환될 수 있었겠지만, 문제는 도브가 가진 약한 라인전으로 인해 다른 팀보다 자칫 더 빨리 상체 라인이 망해버릴 우려가 크다는 점이다.
위 그림은 서머 시즌 동안 리브 샌드박스의 도브, 크로코, 그리고 클로저가 만들어낸 15분 간의 킬 + 어시스트 발생 분포도다. 팀 파이트가 자주 일어나는 오브젝트 둥지를 제외하면, 세 선수의 킬 + 어시스트 분포 양상은 현격한 차이를 보인다.
앞선 그래프의 결과와 함께 이 그림을 해석하면, 15분 동안 발생한 수많은 팀 파이트 양상과 별개로 크로코는 게임 시간 10분이 경과하면 바텀 라인에서 킬과 어시스트를 통해 골드와 경험치를 수급하고, 클로저는 미드라인을 기점으로 오브젝트 둥지를 오가며 소모값을 충당했다.
이 두 선수의 역동적인 움직임과 달리 도브의 움직임은 상대적으로 정적인 측면이 강한데,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바로 킬과 어시스트가 양산됐던 팀 파이트의 본고장, 바로 오브젝트 둥지에서의 한타 기여도다.
#3 - ‘도브’의 아름다운 성불, 버텨주면 한타때 돌아오는 확실한 값어치
탑 라이너로 포지션을 바꾼 후, 도브의 존재 가치가 가장 아름답게 빛날 때는 단연 한타에서의 포지셔닝과 CC기 활용을 통한 기여라 할 수 있다.
대표적인 장면이 서머 스플릿 2라운드 T1과의 2세트에서 나왔다. T1이 전령을 풀고 흩어진 리브 샌드박스의 진형을 상대로 한 점 돌파를 하던 중, T1이 전령을 외곽 포탑까지 끌고 가기 위해 ‘케리아’ 류민석이 수성대 역할을 하던 ‘카엘’ 김진홍의 탐 켄치를 끌어당기며 다소 감정적으로 한타를 여는 모습을 보였다.
도브는 이 때, 포탑 뒤에서 공격을 회피하다가 기습적으로 점멸 후 E 스킬을 활용해 역으로 T1의 본대를 벽에 몰아붙여 한타 구도를 뒤바꿨다. 이에 탐 켄치를 통해 힘겹게 생존한 ‘프린스’ 이채환의 아펠리오스는 트리플 킬을 쓸어 담으며 결국 팽팽했던 구도를 무너트리는 결과를 만들어냈다. 이처럼 도브의 한타 포지셔닝과 기여는 흡사 서포터나 정글러를 통해 과감하게 플레이메이킹을 시도했던 여러 팀의 시도와 달리 리브 샌드박스만의 독특함으로 작용하는 모습을 보였다.
(출처 : LCK)
(출처 : LCK)
이러한 독특한 아름다움은 도브의 지표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나는데, 도브의 킬 관여율은 63%로 정규 시즌 1위였던 젠지의 탑 라이너 ‘도란’ 최현준(56.2%)보다 높으며, 2위 ‘제우스’ 최우제(67.8%)와도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 특히 도브가 기록한 270 어시스트는 리그 전체 10위를 기록할 만큼 높은 수치를 보였다. 탑 라이너가 보여준 한 시즌 지표에서도 리그제 전환 후 LCK 11위에 해당하는 기록이었다.
이 기록에 자리한 선수들이 ‘칸’ 김동하를 시작으로, ‘스멥’ 송경호, ‘썸데이’ 김찬호, ‘듀크’ 이호성, ‘익수’ 전익수 등… 탑 라인에서 이름을 날렸던 선수들이라는 점이 도브의 성과를 더 값어치 있게 만든다. 포지션 전환 후 한 시즌만에 낸 성과라는 점은 도브의 2022년에 기꺼이 ‘아름다운 성불’이라는 얘기를 꺼내어도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 LCK 리그제 전환 후, 탑 라이너 최다 어시스트 기록
2021 스프링 - 칸(307)
2017 서머 - '스멥' 송경호(301)
2015 서머 - '스멥' 송경호(299)
2015 서머 - '썸데이' 김찬호 (297)
2016 서머 - '스멥' 송경호(296)
2016 서머 - '썸데이' 김찬호(281)
2015 서머 - '듀크' 이호성(280)
2016 스프링 - '썸데이' 김찬호(279)
2016 스프링 - '익수' 전익수(277)
2016 스프링 - '스멥' 송경호(277)
2022 서머 - '도브' 김재연(270)
(출처 : LC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