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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후론_25] 종교는 수메르의 제사장을 권력자로 만들었어요

비덕이 쉽게 이야기해 주는 덕후 이야기

에 유통된 기사입니다.
스카알렛 오하라(scarletOhara) 2022-12-05 13:49:04

 

 

<원신>과 <우마무스메>가 세계적 인기입니다. 우리는 이미 서브컬처 시대에 살고 있어요. 덕후와 덕질을 주제로 보다 많은 이야기가 소통되고, 덕후가 능력자로 인정받는 사회가 되길 희망합니다. 지금 저희는 '덕후의 역사'를 쫓아가고 있습니다. 많은 관심과 지도편달 부탁드립니다.​  /스카알렛 오하라&디스이즈게임  

 

 

이전 시대에는 서로 다른 문화를 가진 이들이 충돌하면 세가지 중 하나의 결과가 나왔어요. 

 

첫번째는 협상하여 서로 존재를 인정하고 각자의 영역을 지키는 것이예요. 두번째는 더 강한 한쪽이 다른 쪽을 모두 죽여 충돌을 해결하는 것이예요. 세번째는 강한 쪽이 다른 쪽의 영역과 문화를 없애고 그들을 노예로 만드는 것이예요.

 

하지만 이러한 방법들은 모두 도시와 문화를 발전시키는데 한계가 있어요. 우루크의 수메르인들은 기존과 다른 완전히 새로운 방법을 발명했어요. 셈족 농경인을 그들의 영역에 받아들였어요. 그리고 셈족 농경인과 수메르인 모두를 아우르는 규칙을 하나하나 만들어 갔어요.

메소포타미아는 수메르인과 셈족 농경인 뿐 아니라 엘람이나 다른 여러 언어를 사용하는 수많은 민족, 부족들이 어울려 살고 있었어요. 그들은 수메르의 도시들에서 사회 구성원의 한사람으로 인정받았고 계급과 지위를 얻을 수 있었으며 자신의 계급이나 지위에 맞는 삶을 사는 방법을 알게 되었어요.

당시 수메르 도시들의 사회에 어떤 규칙들이 정착되었는지는 '슈루팍의 지침'이라고 알려진 점토서판을 통해 엿볼 수 있어요. 그렇게 사회가 안정적으로 지속되게 되었어요. 수메르인들이 발명한 새로운 방법이 '권력'이예요.

점토판에 기록된 수메르인 왕조 실록(출처: 위키피디아)


# 권력에는 '주체'가 필요해요

권력에는 권력을 행사하는 주체가 필요하죠. 권력은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것이니까요. 수메르인들이 유프라테스 강변에 정착하고 많은 마을을 세웠어요. 그리고, 마을마다 섬기는 신들이 생겨요. 처음에 사람들이 절대자라는 존재를 상상한 이유는 공포였을 거예요. 어둠에 대한 공포, 자연에 대한 공포.

농경인들은 가뭄과 홍수, 그리고 침입자에 대한 공포를 가졌어요. 유프라테스 강을 따라 오르내리며 교역을 하던 상인들은 더 많은 공포를 가져요. 안전한 마을 안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고대의 위험한 바깥세상을 여행하거든요.

수메르 바람의 신 엔릴의 부조.

강도, 산적, 맹수가 들끓는 고대의 땅을 차나 수레도 없이 짐보따리 싸들고 걸어 여행하였었던 거예요. 택시 기사님들께서 운전석 앞에 놓아두던 '오늘은 무사히'는 당시 상인들에게는 현실적 희망이었어요.

농경인들은 풍년을 위해, 상인들은 안전과 대박을 빌 그 무엇이 필요했어요. 그렇게 마을마다 그 마을에서 섬기는 신이 생겼어요. 그리고, 이런 마을을 돌아다니며 여러 신에 대해 알게 되는 사람도 있었죠. 여러 마을에서 각자 상상하는 신들은 마을들을 방문하며 여행하는 사람들에 의해 엮어졌어요. 

엮어진 신들의 이야기에서 신들은 가계를 이루기도 하고, 적대적 관계로 설정되기도 해요. 마치 고대 그리스나 중세 유럽의 음유시인들이 영웅담을 노래하듯, 이러한 신의 이야기를 엮어 노래하는 사람들이 있었을 거예요. 이 시기에 만들어진 수메르 신들의 이야기는 먼 훗날 올림푸스 신들의 원형이 되기도 해요.

이렇게 구체화된 신들에게 수메르인들은 공물을 바치게 되죠. 풍년을 위해, 대박을 위해, 안전을 위해서요. 신을 모시기 위한 성소를 만들고, 이곳을 관리하는 제사장이 생겼어요. 제사장은 신도들이 바치는 공물을 관리해요. 공물은 제사장 혹은 제사장들이 소비하게 되었죠. 

<문명> 시리즈에 등장하는 수메르의 왕 '길가메시'는 신화나 서사시에 등장하지만 실제 존재 가능성이 높다고 합니다.

# 공물이란 이름으로 바쳐진 '세금'

현대에도, 사람이나 국가가 소비하는 돈은 모두 사람에게 지불돼요. 국방을 위해 전투기를 구매하려고 1조원을 지출하면 1조원이 전투기로 탈바꿈하는 것이 아니죠. 1조원은 전투기 판매업체를 통해 제조업체의 경영진과 주주, 제조사의 직원, 재료가 된 부품업체와 소재업체, 소재 제조를 위해 광물을 캔 광산업체의 직원 등에게 일종의 제조 파이프라인을 따라 지불되게 되는 것이죠. 

치수사업을 위해 한강에 보를 세운다고 그 강바닥에 돈을 까는 것이 아니죠. 보를 건설하기 위해 지출되는 돈은 보를 건설하는 업체의 사장과 직원들에게 지불되는 것이죠. 사원에 바쳐진 공물도 마찬가지예요. 제사장과 제사장의 부하들, 그리고 가족들에게서 소비되게 돼요.

그런데, 신도들이 바치는 공물과 성소에서 필요한 물건이 정확히 일치하지는 않아요. 사람들은 자신에 생산해 낸 밀과 보리를 바치거나 자신이 짜낸 우유를 바쳤어요. 혹은 유프라테스 강에서 건져 올린 물고기를 바쳤겠죠. 제사장에게 '필요'한 풍요로움에는 한계가 있어요. 그 이상은 있어도 필요가 없어요. 더 이상 먹을 수 없는 밀은 버려지거나 공터에 쌓아졌다가 쥐들의 먹이로 사라질 거예요.

제사장들에게는 다행히도, 수메르는 교역을 잘 아는 사람들의 문명이었어요. 상인들은 제사장에게 더 이상 필요 없는 곡식과 우유 등을 다른 물건으로 바꾸어 주었어요. 제사장이 탐내 할 만한 청금석, 혹은 금, 혹은 은으로 바꿔주었죠. 

발굴된 모자이크를 통해 당시 생활상을 살펴볼 수 있어요.


#거래를 위한 장소와 다툼의 발생

인구가 늘어나면서 사원에는 더 많은 사람들이 공물을 바쳤고, 남는 곡식이나 우유, 고기 등이 더 많아졌어요. 상인들도 더 많이 모여들었어요. 그런데, 물건이 남는 것은 사원뿐이 아니었어요. 유프라테스 강을 개간하여 농사를 짓던 사람들도 농경기술이 발전하면서 더 많은 곡식이 남게 되었죠. 이들도 자신들의 남는 곡식을 다른 무엇인가로 바꾸어야 해요.

이전에는 상인이 마을에 와서 직접 거래하였었는데, 언제부턴가 상인들이 주로 사원에서 물건을 거래하고 있어요. 농민에게서는 특정한 곡물만 얻을 수 있었는데, 사원에서는 다양한 물건을 구할 수 있었거든요. 농민들은 자신이 생산한 남는 곡물을 들고 사원 앞으로 갔어요. 그리고 상인들과 거래를 하죠. 점점 더 많은 농민들이 사원 앞에서 거래를 하게 되었어요. 예전엔 가끔 가서 기도를 올리던 사원은 어느새 지역의 핫플레이스가 되었어요.

사원이 거래의 중심지가 되는 것은 이후 오랫동안 근동 지역의 전통이 되었어요. 수천년 후 기독교(구교와 신교 모두)를 탄생시키는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입성을 하던 때였어요. 예루살렘의 성전에 방문한 예수님이 성전에서 장사를 하던 상인들을 모두 쫓아내는 장면이 등장해요. 마태, 마가, 누가, 요한 4대 복음서에 모두 기술되어 있는 유명한 장면이고 이는 많은 화가들에 의해 명화로도 남아있어요.

성전에서 상인들을 몰아내는 그리스도 [야콥 요르단스, 파리 루브르 박물관]


이때 예수님이 상인들을 몰아내자 대제사장과 일반 백성들이 놀라죠. 당시 상황을 가장 상세히 묘사한 요한복음 내용을 보면 유대인들의 반응은 “당신이 뭔데?” 였어요. 학자들은 당시 전통적으로 성전의 지배권을 가진 대제사장 및 그들과 유착한 부정세력들을 일소하고 이를 다시 신의 소유로 되돌리고자 하는 예수님의 투쟁이었다고 분석하고 있어요. 수메르로부터 비롯된 문화가 수천년 후의 이스라엘에까지 전해졌던 것이예요.

사람들이 거래를 많이 하게 되면서 분쟁도 잦아졌어요. 윗마을에는 좋게 쳐준 곡물을 왜 자기 마을 것에는 박하게 주는지, 어제는 보리 백단에 청금석 두 세겔을 줬으면서 오늘은 왜 한 세겔만 주는지, 이 무게가 정확하기는 한 것인지 등 다툼이 끊이지 않았어요.


# 다툼의 중재를 위한 권력은 '저울'의 권위에서 나온다

사원의 제사장은 이들의 다툼을 중재해 주었어요. 어떤 제사장은 천칭을 들고 와서 눈앞에 보여주며 중재를 해주었죠. 분쟁 당사자가 수메르인이건 셈족 농경인이건 혹은 엘람인이건 분쟁을 중재해 주었어요. 분쟁의 중재를 제사장이 해 주면서 제사장은 권위를 얻게 되었어요.

중국에서 권력의 [權]은 저울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어요. 그리스신화 정의의 여신 디케와 로마신화의 유스티치아는 손에 천칭을 들고 있죠. 일찌기 권력을 강화하는 군주는 질서를 바로잡기 위해 도량형을 정리했어요. 천칭을 손에 쥔다는 것은 권력의 주인이 된다는 것을 말해요. 제사장은 그렇게 수메르에서 권력의 주인이 되어 갔어요.

인구가 많아지고 받는 공물도 늘어나고 상인과 사람들이 모이면서 제사장은 사원을 크게 만들어요. 공물을 보관하는 창고도 키우고 주변에는 구획을 나누어 교역이 편하게 만들었어요. 그렇게 해서 건설된 것이 바로 지구라트였어요.

<문명6>에서도 볼 수 있는 지구라트


도시가 번창하고 교역이 잘되니 지구라트가 세워진 도시에는 수메르인과 셈족뿐 아니라 동부에서 엘람인들, 동쪽과 북쪽의 산악 지역에서는 PIE(Pre-Indo-European) 계열의 캅카스인이나 아리안들도 모여들었어요. 메소포타미아 지방은 온갖 인종들과 수많은 서로 다른 언어들이 섞인 다문화 지역이 되었어요.

이때문에 지구라트 이야기가 세상의 수많은 언어들을 낳았다는 바벨탑 이야기로 전승되기도 했어요. 커다란 지구라트는 도시의 번창을 상징해요. 수메르의 각 도시들은 저마다 자신들의 지구라트를 만들어 자신들의 도시와 신에 위엄을 더하게 돼요. 그렇게 번창한 도시들 중 가장 먼저 크게 발전하게 된 도시가 바로 우루크였던 것이예요.

우루크의 수메르인은 문자를 발달시켜 완성하고 학교에서 문자를 배우기도 했어요. 문자는 권력이라는 시스템을 모든 정착민이 이해하는데 큰 도움을 주게 되었어요. 이른바 메소포타미아 문명이 탄생했어요. (문화가 발달하더라도 문자가 있어야 우리는 비로소 "문명"이라고 불러주니까요)

이라크 남부에서 발견된 우르의 지구라트. 

셈족들은 수메르인들로부터 권력이라는 개념을 배웠어요. 셈족 도시의 하나인 아카드에서 사르곤은 수메르인들로부터 배운 권력을 이용해 수메르인의 도시 키시를 시작으로 수메르의 중심도시인 우르크까지 모든 메소포타미아의 도시를 점령해요. 그리고 모든 도시를 통치하게 돼요. 사르곤은 수메르인이 자신들의 도시를 통치하기 위해 발명한 권력을 더욱 발전시켜 메소포타미아 지역 전체에 적용시켰어요.

지구 역사상 처음으로 제국을 건설한 것이예요.

한편, 사람들이 우루크로 모여들기 시작하던 그 때, 북동 아프리카의 거대한 나일강 상류에도 새로운 바람이 불기 시작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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