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비’ 무라세 슌스케가 DFM을 떠났다.
LJL의 상징이나 다름없었던 그였고, 밤잠 설쳐가며 그의 엄지손가락 시그니처 세리머니를 보기 위해 열광하던 우리였다. ‘도전’ 이라는 아름다운 이유에 박수를 보내면서도 무릇 아쉬움을 느끼는 이유는 그가 DFM 뿐만 아니라 바다 건너 일본의 <롤> e스포츠를 대표하던 이미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에비’나 그의 옛 소속팀인 ‘DFM’을 제외하면 우리는 생각보다 LJL에 대해 많은 걸 알지는 못한다.
오늘은 약간의 LJL을 바라보는 대표적인 편견, 그리고 최근 떠오른 소소한 우려를 소개하며, 바다 건너 열정어린 이웃 리그 ‘LJL’에 대해 가볍게 알아보는 시간을 가져본다. /장태영(Beliar) 필자, 편집= 디스이즈게임 김승주 기자
(출처: LJL)
본 콘텐츠는 디스이즈게임과 오피지지의 협업으로 제작됐습니다.
작지만 알찬 리그 ‘LJL’, 열정만 앞세우지 않는다
흔히 LJL에 대한 잘못된 오해가 있다. ‘LJL은 상금이 10만 엔이다’, ‘우승해도 한 푼도 못 받는다’와 같은 경우다. 결론부터 얘기하면 이런 오해는 꽤 오래 전에 개선됐기 때문에 이제는 사실이 아니다.
과거 2014년, LJL의 실제 우승 상금은 ‘10만 엔(현재 환율 기준, 96만 원)’이었다. 이유는 생각보다 간단했다. 일본의 형법 때문이다. 일본 형법 제 185조는 도박하는 자에 관한 처벌조항으로 “도박을 한 자는 50만 엔 이하의 벌금 또는 과태료를 부과한다”고 기재되어 있다.
문제는 도박의 범주가 너무 넓다는 점이다. 한국의 경우 ‘도박’을 두고 단순히 “재물을 걸고 우연에 의해 재물을 얻고 잃는 것”을 말하지만(2006도736), 일본은 도박을 통해 얻은 재화가 누구의 지갑을 통해 얻은 우연의 산물이냐를 더 깊게 바라본다.
쉽게 말해, 승자의 금전적 성취가 패자의 주머니를 통해 얻어지는 것이라면 명백한 도박으로 바라보며, 승패의 우연성보다 ‘우연히 이겨서 진 쪽의 재화를 빼앗는다’ 라는 공정 경쟁을 저해하는 행위로 바라보는 것이다.
손쉬운 이해를 위해 두 가지 사례를 소개해본다. 사례1은 A라는 참가자가 B 대회에 참여할 때, 상금의 재원이 스폰서 C와 관중 수입으로부터 나오는 경우고, 사례 2는 여기서 상금재원으로 A의 참가비가 추가될 때다.
사례 1은 일본 형법 상 도박이 아니고, 사례 2는 때에 따라 명백한 도박이 될 수도 있다. 참가자 A가 낸 돈 때문이다. 참가자 A가 우연히 돈을 잃을 가능성, 그리고 우연히 돈을 딸 가능성이 공존하기 때문에 참가비가 상금으로 쓰이면 도박으로 취급되지만, 운영비로 쓰이면 관계성이 흐릿해져 도박으로 인정받지 않는다.
한편, 풍속법의 존재도 쉽게 게임 대회를 열지 못하는 이유로 작용하곤 했다. 일본의 풍속법 제 23조 제 2항은 “제 8호(=구체적 항목)의 영업을 하는 사람들은 게임의 결과에 따라서 상품을 제공해서는 안 된다” 라고 규정한다. 대표적으로 게임 센터, 즉, 파친코를 예로 들 수 있는데, 파친코를 통해 가장 많은 점수나 수익을 올린 이들에게 상금을 주어서는 안 된다 정도로 이해하면 쉽다. 심지어 이는 한국으로 치면 PC방 경영주가 <롤> 대회를 참가비 없이 열어도 법에 저촉을 받는 것이다.
한술 더 떠서 경품표시법 제 2조 제 3항은 “손님을 유도하기 위한 수단으로 직접 또는 간접 여부나 우연의 여부와 무관하게 사업자가 경품을 제공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구매의욕을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흔히 마트에서 오픈 행사를 위해 추첨권을 제공하는 것이 일본에서는 법에 저촉이 될 수 있으며, 게임 대회라면 완전한 오픈 토너먼트가 아닌 이상 상금을 걸고 대회를 개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상금이라는 ‘유도 수단’을 얻기 위해 ‘참가비’라는 명목 상 제약을 두기에 공정한 경쟁이 아니라는 점 때문이다.
이렇게 복잡한 법 구조 때문에 일본 기업들뿐만 아니라 대회를 주최하는 주최자들도 상금을 아예 걸지 않는 친선대회만 벌이거나 참가비 없이 극미한 수준의 상금만을 거는 친목형 대회만을 열어 왔다.
하지만, 법이 2016년 9월부로 개정되면서 소위 “게임은 돈이 되지 않는다”라는 인식이 게이머와 기업 모두에게 점차 형성되며 자연히 LJL의 상금도 높아졌다. 실제로 2018년만 하더라도 LJL은 명시적인 상금이 제공되지 않은 반면, 2019 시즌부터는 스프링 시즌과 서머 시즌 각각 1000만 엔(한화 9600만 원)의 우승 상금이 부여되기 시작했다.
(출처: 소프트뱅크 호크스 후쿠오카 게이밍 공식홈페이지)
물론 LCK를 비롯한 여러 메이저리그들의 상금 규모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하다. 하지만 2016년 KOTRA(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 자료에 따르면, 일본 내 e스포츠는 이제 태동기를 맞이하고 있는 단계라 볼 수 있다.
특히, 최근 일본 내에서는 <발로란트> e스포츠의 흥행이 대단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난 6월 진행된 'VCT : 재팬 스테이지2 챌린저스 플레이오프'가 진행된 사이타마 슈퍼 아레나에는 1만 명 이상의 관객이 운집하기도 했다. 그 기반은 모진 시련과 비바람을 견디며 뿌리를 내린 LJL라는 버팀목 덕에 가능했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특히 2019년, 소프트뱅크라는 거대 IT 기업의 프랜차이즈 가입은 LJL의 전망을 결코 어둡게 이해하지 않게 만드는 이유이기도 하다.
# e스포츠 변방 중의 변방 LJL, 갈라파고스 자처하나?
밝은 전망만 있는 것은 아니다. 프로스포츠에서 산업의 규모가 커지면 크게 두 가지 방법을 고려한다. 팀 개별 전력과 리그 경쟁력을 증진시키기 위해 과감하게 선수에 대한 문호를 개방한다거나, 반대로 문호를 철저하게 닫아 자국의 경쟁력이 세계 수준에 이를 때까지 폐쇄적으로 운영하는 방법이다.
국내 프로스포츠들의 대부분은 외국인 선수 제도를 운영하되 그 숫자를 조정해 문호를 제한적으로 개방중인데, 거의 유일하게 외국인 선수에 대한 큰 제약이 없는 리그가 LCK를 비롯한 <롤> e스포츠라 할 수 있다.
LPL과 LEC, LCS가 끊임없이 시달려온 소위 ‘4 local can’t win'(혹은 2 local can’t win)과 같은 저주에 가까운 비난은 외국인 선수의 범위에 대한 끝없는 고민거리를 안겨왔다. LJL 역시 마찬가지인데, LJL은 거의 대부분의 팀의 한국인 선수 2명을 외국인 선수 슬롯으로 채워나가고 있다.
지난 해 국제 무대인 롤드컵에서 플레이-인까지 진출했던 전통의 강호, 데토네이션 포커스미(이하, DFM)는 2023년 로스터에 한술을 더 뜬 3명의 한국인을 채워 넣었다. 물론 ‘스틸’ 문건영의 2021년 로컬 전환, 한때 일체미의 반열에 올랐던 ‘아리아’ 이가을의 컴백은 확실한 성과지만 자국 선수가 아닌 외국인 중심의 팀 운영이 과연 경쟁력 증진에 어떠한 도움이 될 지는 뚜껑을 열어봐야 판단할 수 있는 문제가 되었다.
(출처: DFM)
더 큰 문제는 일반 유저들의 풀이 4대 메이저 리그라 불리는 LCK, LPL, LEC, LCS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일본 내 소환사들은 OP.GG 데이터 기준으로 12월 16일 현재 약 15만 명이지만, 한국은 약 446만 명, 북미 서버는 204만 명, 유럽은 각각 서부 421만, 북동부 197만 명의 수치를 보이고 있다. 중국 서버는 추산이 어려울 정도로 방대한 소환사 풀을 가지고 있어 속칭 ‘천룡인 서버’를 바라보면 중국 소환사들의 갈고 닦은 장인정신을 느낄 지경이라는 자조섞인 농담도 나올 정도로 열기가 뜨겁다.
이런 와중에 LJL에 있어 나쁜 소식이 전해졌는데, 바로 라이엇 재팬이 직접 주관하는 LJL 스카우팅 그라운드 2022 행사가 전격 취소되었다는 것이다. 16~25세 사이의 일본 국적의 일본 서버 이용자를 대상으로 진행되는 이 행사는 유망주 간의 실력 겨루기 차원의 단기 리그 & 토너먼트로 진행되고, 각 구단은 이 과정을 모두 지켜보며 대회 후 드래프트를 시행한다. 결과적으로 자국 내 좋은 유망주를 수급할 수 있는 핵심적인 이벤트라 할 수 있다.
(출처 : LJL)
LCK가 완전 개방형 인재풀을 바탕으로 재야에서 인재를 아카데미에 보강하는 방식이라면, 인재풀이 좁은 LJL에겐 가뜩이나 유저층이 얇은 일본에서 가뭄의 단비와 같은 유저를 프로로 인도할 수 있다는 점에서 한해의 또 다른 농사라 표현해도 부족함이 없다.
하지만 2022년, 라이엇 재팬이 "코로나-19’의 심각성"을 이유로 행사를 갑자기 취소해버리며, 리그 경쟁력을 넘어 리그의 존속까지 우려하는 목소리를 유저들마저 내게 만들었다. 경쟁력 있는 유저 입장에서도 프로 무대로 진출할 수 있는 열린 통로가 막힌 셈이니 결코 무시하고 넘어갈 문제가 아니게 되었다.
비록 1장 뿐인 롤드컵 행 티켓이지만, LJL은 마이너 리그로 묶이는 여러 리그권 중 그나마 티켓 할당이 늘어날 가능성이 높은 리그로 점쳐지고 있었다. 하지만 스카우팅 그라운드의 취소와 점차 커지는 외국인 선수 비중은 분명 IT 기술의 갈라파고스를 지적받는 일본 문화에 e스포츠 마저 갈라파고스를 자처하는 인상을 심어주기에 부족함이 없다.
작지만 알찼던 LJL은 과연 장밋빛 전망을 계속 이어나갈 수 있을까? 2023년 시즌을 넓게 바라보는 <롤> e스포츠 팬이라면 또 다른 관전 포인트로 체크해두는 것도 소소한 재밋거리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