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신>과 <우마무스메>가 세계적 인기입니다. 우리는 이미 서브컬처 시대에 살고 있어요. 덕후와 덕질을 주제로 보다 많은 이야기가 소통되고, 덕후가 능력자로 인정받는 사회가 되길 희망합니다. 지금 저희는 '덕후의 역사'를 쫓아가고 있습니다. 많은 관심과 지도편달 부탁드립니다. /스카알렛 오하라&디스이즈게임
기원전 6천년경, 지구는 급격히 따뜻해지고, 빙하들이 녹기 시작했어요. 요즘 지구촌에서 걱정하는 지구 온난화가 이때 지구를 덮쳤어요. 지난 10만여년간 기간 중 가장 더웠어요.
빙하가 녹자, 해수면이 급격히 올라갔어요. 지중해의 수위가 점점 올라가다가 지금의 이스탄불 부근에서 말라붙었던 강줄기를 따라 커다란 호수로 쏟아져 내렸어요. (이 호수를 지질학에서는 에욱시네 호수라 불러요) 호수는 바닷물로 가득 차 주변 낮은 지역을 모두 수장시켰어요. 지중해와 연결되게 된 호수는 이제 바다가 되었고, 지금 우리는 이 바다를 흑해라 부르고 있어요.
이전에도 언급했던 기원전 6,200년 경의 기후변화로 중동의 고산지대에 추위가 닥쳐오자, 코카서스지방과 아르메니아 고원에 살던 사람들이 사방으로 이동하기 시작했어요. 그 중에는 넓은 대지에 물이 풍부한 흑해 주변으로 이동한 사람들도 있었죠. 거기에 거대한 호수가 바다로 변하며 주변 지형을 급격히 변화시키자 흑해 주변의 민족들의 이동이 매우 활발해졌어요.
유전자 연구로 유추된 고대 흑해 주변 민족들의 이동 양상 - 사이언스, Iosif Lazardis, 2022.8.25
본래 흑해 북부에는 넓은 평원을 중심으로 수렵 채집인이 살고 있었어요. 여기에 코카서스-아르메니아 고원 사람들이 이동해와서 섞여 살며 하나의 문화를 형성하기 시작했어요. 서쪽 다뉴브강 유역에서 농경사회를 이루던 사람들 중 일부도 이 지역에 들어와 섞여 살게 돼요.
오랜 시간동안 언어가 섞이고 문화가 섞이며 하나의 언어군이 형성되게 돼요. 이들이 사용하게 된 언어를 후에 우리는 Proto-Indo-European (원시 인도유럽어, 약칭 PIE) 라 부르게 되죠. 권력은 영어로는 Power예요. 이 단어는 본래 라틴어 potis 에서 출발했어요.
원시 인도유럽어의 실제 예시(출처; 유튜브 ILoveLanguages!)
프랑스어 pouair 를 거쳐 13세기에 이르러 영어권에서 비로소 power 라는 단어가 되어요. 그런데, 라틴어인 potis 도 사실은 원시 인도유럽어족의 poti- 라는 어근에서 나온 단어예요. '강력한', '군주'와 같은 뜻을 가진 어근이죠. 그 외에도 현대 대부분의 서구권 언어의 기원이 이 원시 인도유럽어로부터 탄생해요. 이처럼 원시 인도유럽어는 근대 서구권의 대부분의 문화와 언어의 기원이 되죠.
이들 원시 인도유럽어를 쓰던 사람들이 흑해 북부에 살면서 이룬 문화를 얌나야 문화라고 불러요. 우크라이나에서 시베리아에 이르는 대초원 일대에서 독특한 무덤 형태를 보였던 쿠르간 문화의 일원으로 보고 있어요.
그리고 이 문화를 만든 이들을 얌나야인 이라고 불러요. 쿠르간 문화는 우크라이나 지역의 얌나야 문화 외에도 흑해와 카스피해 사이 캅카스 산맥 북쪽의 마이코프 문화를 낳았어요. 마이코프 문화는 이전에 기술한 수메르인들과 교류했던 그 문화예요.
대초원에 쿠르간 문화가 형성되던 시기인 기원전 3,900여년경, 사하라를 사막으로 만든 바로 그 기후변화가 이 지역에도 예외 없이 찾아왔어요. 흑해 북쪽을 중심으로 동서로 넓게 펼쳐져 있던 드넓은 평원에 추위가 불어닥쳤어요. 평원은 추운 기후에 견딜 수 있는 풀과 추위에 강한 동물이 남게 되었어요.
넓은 평원은 지금의 대초원(Eurasian Steppe)가 되었어요. 소와 양, 돼지 보다 말이 추위에 더 잘 견뎠고 대초원에 번성하기 시작했어요. 흑해 북쪽부터 카스피해 북쪽, 그리고 지금의 카자흐스탄과 몽골 지역에 이르는 곳까지 여러 종의 말들이 뛰어다녔어요.
쿠르간 문화를 만든 사람들 중 어떤 이들은 추위에 강한 '말'을 키우기 시작해요. 그리고, 흑해 북쪽에서는 여러 가축을 키우다가 말의 의존도가 점점 높아져가며 얌나야 문화가 이루어졌어요. 저 멀리 동쪽 초원에서는 또다른 말 중심 문화인 보타이 문화가 발생하기도 했어요.
그리고 시간이 지나자 초원의 사람들은 식용으로 키우던 말을 다른 용도로 이용하기 시작했어요. 짐을 싣거나 심지어는 등 위에 타기 시작했어요. 이 시기에는 '기마습격'(mounted raiding)이라고 해석되어지는 등자나 안장 없이 말을 타는 형태였던 것으로 보여요. 오늘날의 우크라이나, 드네프르강 유역과 오늘날의 카자스탄 북부, 보타이 지역에서 이런 흔적이 남아있어요.
대초원을 중심으로 점차 말을 기르는 문화가 전파되며 발달해 갔어요. 그리고, 말을 타는 문화도 전파되기 시작했는데, 얌나야 사람들이 기르던 말이 척추가 튼튼하게 발달해 사람이나 짐을 등에 더 잘 태울 수 있었어요.
이때문에 나중에 시간이 지나면서 초원 사람들은 자신들의 지역에 있던 말보다 얌나야의 말을 더 선호하게 되었고, 얌나야의 말은 점차 전 초원으로 퍼지며 기마문화도 함께 전파되게 되었어요.
우크라이나 토종 말이 대초원을 통해 전세계로 보급되는 모습. 맨 위는 탄소동위원소 연대에 따른 지역별 주요 마종 출현, 아래는 지역별 각 종의 발견 샘플 숫자. 우크라이나 지방에서 사육된 DOM2 종(노란색)이 BC 2,000년대부터 세계로 퍼져 나간다. - 네이처지, Pablo Librado, 2021.10.20
얌나야 문화를 이룬 원시 인도유럽어를 쓰는 사람들은 말을 유목하며 점차 이동하기 시작했어요. 일부는 북쪽과 서쪽으로 이동하여 당시의 정착민들과 섞이게 돼요. 서쪽으로 이동한 사람들은 나중에 유럽 정착민들을 동화시키고 그리스와 로마를 거치면서 대부분의 현대 유럽의 언어를 탄생시켜요.
동쪽으로 이동한 이들은 카스피해 동쪽 넓은 초원에 자리잡았어요. 이들 역시 점차 문화를 발전시켜 나가는데, 이를 안드로노보 문화라 불러요. 바퀴 문화가 발달하고 말을 타는 등 이동능력이 이전에 비해 월등히 발달하게 되었어요. 가축을 중요시했고, 농업은 큰 관심이 없었다고 해요.
기원전 1800여년경 이들 중 일부가 다시 남하를 해요. 일부는 서쪽, 그러니까 지금의 이란 쪽 방향으로 이동하여 정착해서 이란인들의 조상이 되죠. 그중 일부는 아르메니아 고원 일대에서 용병생활을 하다가 바빌로니아 북쪽에 미탄니 왕국을 세워요.
그리고 일부는 계속 남쪽으로 이동해요. 이들은 수천년 전부터 초원의 목축인들이 개척한 경로(Inner Asian Mountain Corridor/IAMC)를 따라 이동했어요. 이들의 이동경로에는 지금의 타지키스탄 일대의 유명한 광산지역이 있어요. 이 지역은 주석과 청금석 등 당시 청동기의 가장 중요한 광물들이 생산되던 곳이예요.
이 지역을 거치면서 이들의 문화가 크게 발전하게 돼요. IAMC를 따라 이동한 이들은 결국 카이베르 고개를 넘어 인더스강 상류지역에 도달해요.
오랜 세월에 걸친 얌나야 인의 이동 경로, 사이언스지, Nick Patterson 외, 2019.9.6
당시 인더스강 상류와 중류지역에는 하라파, 모헨조다로를 비롯해 여러 도시에 이미 많은 사람들이 자리잡고 있었어요. 흔히 말하는 인더스 문명이 바로 이곳이죠.
인더스 문명의 원주민들, 흔히 드라비다어족으로 추정되는 이들은 인더스강 서쪽 메르가르의 유목민 정착촌으로 시작되었지만, 풍요로운 인더스강 유역으로 이동한 이후 농업이 크게 발달했어요. 수메르의 상인들은 인더스강 상류까지 와서 모헨조다로, 하라파인들과 교역을 했어요.
북쪽 대초원에서 출발해 드디어 이 지역에 도착한 초원인들이 어떤 일들을 벌였는지는 베다(Veda)에도 나와요. 오랜 기간에 걸쳐 선주민 드라비다족의 땅을 차지해요. 그들은 드라비다족의 지배층으로 자리잡았어요. 많은 드라비다족이 이들을 피해 동쪽으로 남쪽으로 이동하기도 해요.
이란 지역과 인더스강 유역에 정착한 이들을 우리는 아리아인 혹은 아리안이라 부르게 돼요. 그리고 그들의 남하를 '아리안의 대이동'이라 부르게 되었죠.
인더스강 유역에 진출한 아리안족은 기마문화와 당시 가장 발달된 금속문화를 이미 습득하고 있었어요. 농경정착민들을 아리안이 지배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어요. 이들은 인더스 문명의 여러 지역을 차지하고 드라비다족과의 투쟁보다는 아리안족 간의 패권다툼을 시작했어요.
베다에 기록된 열왕의 전투(Battle of the Ten Kings/ दाशराज्ञ युद्ध) 가 당시 아리안족 간의 패권다툼을 잘 묘사하고 있어요. 열왕의 전투에서 승리한 바라타족, 그리고 그들의 동맹 부족은 이후 하나의 씨족인 쿠루씨족을 이루고 펀자브 지방을 벗어나 지금의 뉴델리 북쪽에 인도대륙 최초의 국가를 세워요. 이를 쿠루왕국이라 부르게 되죠.
쿠루 씨족은 농사를 짓지 않아요. 소를 기르고 말을 타는 기마 유목 민족이었죠. 초기 농경민은 대부분 피지배 민족인 드라비다족이었어요. 시간이 지나면서 새로 정복되는 아리안들도 농경민으로 변화해 가고, 점차 아리안족 전체가 농경문화에 익숙해져 갔어요.
결국 수메르, 이집트와 같은 형태였던 것이예요.
쿠루왕조는 왕국을 이룬 자신들, 다른 피지배 아리안들, 그리고 드리비다족을 모두 아우를 수 있는 사회체계의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고, 4개의 큰 계급으로 나뉘는 바르나 체계를 만들게 돼요. 그리고 그 중심은 지배계층인 자신들이었고 브라만과 크샤트리아 계급을 차지하게 돼요.
농경인과 상업에 종사하는 피지배 아리안은 바이샤 계급을, 노동자들은 수드라 계급을 받고 이들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정의하게 되죠. 이 체계가 우리가 흔히 카스트제도라고 알고 있는 바로 그 계급제도예요. 수메르 문명의 '법률', 이집트 문명의 'Maat' 과 같은 역할을 하는 것으로 볼 수 있어요. 이로써 인도아 대륙에도 권력이 탄생하여 자리잡게 되었어요.
한편, 유라시아 대초원의 동쪽 끝, 지금의 몽골 남쪽에도 기마문화가 전파되고 있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