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컴퓨터’ 시리즈는 국내/외 IT 업계 인사들의 컴퓨터와 관련된 에피소드를 담고 있습니다. 이번 연재의 주인공은 해긴의 이영일 대표입니다.
저는 해긴이라는 게임 회사를 운영하는 이영일이라고 합니다.
고려대학교 컴퓨터학과를 졸업하고 컴투스라는 회사를 박지영 대표와 공동 설립했습니다. 설립 이후에 한 14년 정도를 열심히 일했습니다. 모바일 게임을 우리나라에서는 제일 먼저 시작하기도 했고 제일 많이 하기도 했고요.
그렇게 너무 오래 하니까 좀 지겨운 부분도 있었고, 그 때 아이들이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이었는데 같이 시간을 보내고 싶어서 회사를 매각했습니다. 회사 매각을 하고 나서는 제주도에서 한 4년 정도 놀았습니다. 여행도 많이 다녔고요. 놀다보니 또 심심하더라고요.
그래서 해긴이라는 모바일 게임 회사를 새로 만들었고 <플레이투게더>라는 메타버스 게임이 있는데 전 세계적으로 한 2억 명 정도 다운을 받아서 플레이를 하고 있고요. 그런 회사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 첫 번째 컴퓨터
IQ-1000, 대우전자, 1984
제일 먼저 써 본 컴퓨터는 초등학교 저학년 때죠. MSX-1000(IQ-1000)이라는 대우전자에서 나온 컴퓨터가 최초였습니다. 처음에는 게임을 좋아했기 때문에 게임을 하기 위해서 부모님을 졸라서 산 컴퓨터였는데 그 컴퓨터가 결국은 제 인생을 많이 바꿔 놓은 것 같아요.
처음에는 게임으로 시작했지만 베이직이라는 기초적인 프로그래밍 언어를 가지고 이것저것 해보다가 더 많은 흥미도 생기고 내가 앞으로 이런 거 하면서 살면 재밌겠다. 이런 걸 많이 느꼈던 것 같아요.
# 컴퓨터가 인생에 가져온 변화
게임을 좋아해서 처음 컴퓨터를 접하게 되었는데 컴퓨터 학원이 그 당시에 유행이었어요. 컴퓨터 학원을 가보고 베이직이라는 프로그래밍 언어를 처음 배워보면서 뭔가 내가 만들 수가 있구나 느꼈습니다. 단순한 텍스트로 만들어진 어떤 코드를 입력을 하면 그게 화면에 나타나고, 결과가 나오고, 사용자와 상호작용이 가능한 무언가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걸 느꼈던 게 삶의 태도를 가장 많이 바꿔 놨다고 할까요.
내가 컴퓨터로 뭔가 만들 수가 있구나. 만들어서 사람들에게 같이 공유하고 또 어떤 기여를 할 수도 있는 거고 즐거움을 줄 수도 있는 거구나. 내가 창조를 할 수 있는 거구나 느끼게 해준 게 가장 큰 결과였다고 봅니다.
# 컴퓨터를 한 단어로
창조의 기계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예술도 있고 글쓰기도 있고 여러 가지 창조를 할 수 있는 것들이 있지만, 그중에서도 컴퓨터를 가지고 창조할 수 있는 건 너무나 무궁무진합니다. 또 사람의 상상력을 가지고 기술이 바탕이 돼서 굉장히 여러 가지로 사회에 기여를 할 수도 있고, 즐거움을 줄 수도 있고, 편리함을 가져올 수도 있는 이런 여러 가지 것들을 창조할 수 있게 해주는 창조의 툴이라고 생각합니다.
# 인생 게임
<에버퀘스트>, Daybreak Game Company, 1999
<에버퀘스트>라는 게임이 있었어요. 저도 <에버퀘스트>를 굉장히 많이 했던 사람인데 심할 때는 잠 안 자고 60시간 동안 한 적도 있었어요. 그것도 컴퓨터 두 대를 쓰면서 한 적도 있을 정도로 열심히 했어요. 많은 게임들을 했었지만 <에버퀘스트> 만큼 저에게 즐거움도 주고 단순한 게임이 아니라는 걸 느끼게 해준 게임은 없었던 것 같아요.
만약에 우리가 정말로 판타지 세계에 들어가서 생활을 한다면 이 정도의 난이도가 있지 않을까요. 죽으면 당연히 내 무기는 시체에 있고 그 시체를 찾으러 가야 하는 거죠. 그걸 찾지 못한 경우에 모든 장비가 다 없어지는 거죠. 그리고 시체가 만약에 몬스터 사이에 있다면 맨몸으로 그걸 가서 끌고 와야 되잖아요.
그 정도의 난이도를 가지고 있고 용을 한 마리 잡기 위해서는 60명이 가서 용 한 마리를 잡기 위해 여섯 시간 동안 대기를 했어요. 여섯 시간 동안 게임을 하는 게 아니라 59명이 대기를 하고 한 명이 용을 풀링해 와야 되는 거예요. 풀링을 하다가 죽는 과정이 계속되는 거죠. 이건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에서 많이 단순화된 건데 <에버퀘스트>에서 그게 시작이 됐거든요.
옆에서 보면 이 짓을 왜 하나 할 정도의 난이도가 있는 게임이었는데 그게 몰입감을 주지 않았던가 생각합니다. 이게 나 혼자 할 수 있는 일은 한계가 있다는 것을 굉장히 강하게 느끼게 해줬고 그래서 저는 <에버퀘스트>를 인생 게임으로 꼽습니다.
# 게임업계의 화두
게임이라는 게 일종의 종합 예술이기 때문에 결국 게임은 끝없이 계속 흘러가는 것 같아요. 예전에 FPS가 인기 있다가 MMORPG가 인기 있다가 소셜 게임이 있기 있는 것처럼 그런 식으로 흘러가지 않습니까.
올해 특히 게임만 놓고 본다면 무엇이 있을까 찾아본다면 P2E하고 메타버스가 가장 대표적인 것 같아요. 저희 회사는 P2E를 그렇게 추구하지 않지만 그래도 굉장히 많은 분들이 거기에 관심을 가지고 노력을 기울이고 있기 때문에 제가 볼 수 없는 무언가를 만들어낼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게 2022년의 화두인 건 사실이고요.
또 하나는 메타버스 쪽인데, 메타버스는 좀 다르다고 봅니다. 많은 분들이 P2E, NFT, 메타버스를 연결 시키는데 저는 그렇게 보지는 않고요. 게임은 가상 세계잖아요. 그동안 가상 세계만을 가지고 놀았다면 메타버스로 오면서 현실과 많이 연결된, 또는 현실을 많이 반영한 가상 세계가 만들어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희 회사 <플레이투게더> 같은 경우에도 게임이지만 현실과 굉장히 많이 연결이 돼 있어요. 그러면서 그걸 또 재미로 승화시키는 거죠. 그래서 저희뿐만 아니라 또 여러 가지 메타버스 게임들이 나오고 있고요. 그래서 2022년 게임업계의 가장 큰 두 개의 화두는 P2E와 메타버스가 아니었나 이렇게 생각합니다.
# 개발한 게임 중 가장 애착이 가는 게임
<붕어빵 타이쿤 3> 컴투스, 2006
박물관에 인스톨이 돼 있을 것 같은데 <붕어빵 타이쿤>이라는 게임이 있어요. 어떻게 보면 모바일 게임이 초장기에는 굉장히 단순하다가 그 다음에는 일본 게임들이 라이선스로 많이 넘어왔어요. 그러면서 한국 모바일 게임 시장이 그때 당시에 많이 잠식이 됐었는데 그 잠식을 물리친 게임이라고 할까요.
K-모바일 게임으로서는 처음으로 오리지널 창작한 게임이 그때 당시에도 수 백만 다운로드였으니까, 한 획을 그은 게임이 아니었나 이렇게 생각합니다.
# 게임 개발자를 꿈꾸는 학생들에게
두 가지 정도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첫 번째는 게임이라는 것은 종합 창작 활동이라고 생각을 하는데 기술이 베이스가 돼 있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공부가 하기 싫더라도 기본적으로 기술이 베이스가 되지 않으면 창조를 할 수 없기 때문에 수학이나 국어 같은 기초 과목을 굉장히 열심히 공부를 해야 나중에 좋은 게임을 만들 수가 있어요.
두 번째로는 게임이라는 건 결국 상상력의 산물이라고 봅니다. 그래서 상상력을 키워야 돼요. 근데 게임만 하면 상상력이 안 살아납니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예술 작품이라든지 사회 활동이라든지 이런 것들을 많이 접해보기를 추천 드려요.
게임을 즐기는 걸로만 끝날 거면 굳이 안 그래도 될 수 있지만 나중에 좋은 게임을 만드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한다면 책도 많이 읽고, 좋은 그림도 많이 보고, 음악도 듣고 또는 우리 주위에 학교나 사회에서 일어나는 일들에도 관심을 가지고 상상력을 키워야만 좋은 게임 개발자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 넥슨컴퓨터박물관에게
사실 컴퓨터와 게임은 이제 우리 생활과는 뗄 수 없는 굉장히 중요하고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데 실제로 이 역사를 기록하고 보존하고 있는 곳은 없어요.
다른 큰 회사들도 많지만 넥슨이 총대를 메고 이 일을 하고 있는 것에 대해 저는 정말로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지금까지도 굉장히 잘하고 있지만 유일하잖아요. 해외에도 그렇게 많지는 않다고 저는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한국의 IT와 게임의 역사를 계속 남겨주면 좋겠습니다. 지금도 잘해주고 있지만 더 잘해주면 나중에 사회에 큰 기여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너무 감사드리고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