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우리나라의 e스포츠 산업은 그 어느 나라보다도 밝은 미래를 자랑했고, 자신했다. 이유는 간단명료했다. 다른 나라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PC방’이라는 문화가 자리했고, 학생들의 방과 후 취미의 대부분이 온라인 게임일 만큼 게임은 일상 속 문화로 여겨졌다.
청소년, 즉 프로게이머 지망생이나 연습생의 숫자가 적어진다는 것은 프로 팀의 미래가 불투명해질 수 있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최근 LCS 참가 팀 ‘100 씨브즈'의 구단주 나데샷(Nadeshot)은 한 팟캐스트와의 인터뷰에서 “북미 어린이 100명 중 고작 5명 정도가 <리그 오브 레전드>(이하 롤)를 플레이한다고 답할 것”이라며 유스 공급이 절망적인 상황임을 우회적으로 토로했다.
본 콘텐츠는 디스이즈게임과 오피지지의 협업으로 제작됐습니다.
(출처: 한국콘텐츠진흥원)
LCK 10팀을 비롯한 여러 게임단의 투자는 2021년 프랜차이즈 전환 이후로 안정적인 팀 관리 여건과 더불어 크게 늘어났다. 5억 미만의 투자, 그리고 21~50억 사이의 투자를 수행하던 팀들의 비중이 각각 33.3%와 26.7%에 달하던 2020년에 비해 2021년은 비중에 큰 변화가 있었다.
5억 미만 투자 게임단의 비중이 10% 이상 하락한 반면(23.1%), 50~100억 미만 투자 게임단의 비중은 30.8%로 크게 증가했다. 이는 LCK의 프랜차이즈제 도입도 큰 몫을 했지만 절대적인 투자의 규모가 늘어났음을 시사한다.
하지만 코로나 2년으로 인한 역성장 기조는 e스포츠 산업도 결코 피해 가지 못한 수렁이었다. 2015년부터 2019년까지 연평균 18.3%가량의 가파른 성장세를 보였던 e스포츠 산업은 코로나로 2년간 26%의 역성장세를 보이며 2018년보다 못한 수준으로 뒷걸음질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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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단과 구단을 관리하는 모기업들의 절대적인 투자는 늘어난 데 반해, 수익 구조의 예상치 못한 불안정성이 산업 전체에 직격탄을 날린 셈이다. 실제로 2020년 대비 종목사의 투자액이 100억 이상(731억 → 838억) 증가된 반면, 매출액은 고작 30억 가량 오른 수준에 그쳤다(281억 → 329억).
특히 중계권료가 10억 인상되고, 스폰서 매출이 38억 가량 올랐지만, 티켓 매출이 2년 간 고작 3천만 원에 그쳤다는 점은 코로나로 산업 전체에 가해진 타격이 상상 이상임을 보여주는 결과다. 오히려 구단과 종목사들은 어려운 시기에도 지갑을 열면서 성장곡선을 더 꺾이지 않게 하기 위해, 즉 살기 위해 지갑을 과감히 열었다고 봐도 무방하다.
2022년 9월 기준, 국내 <롤> e스포츠에 등록된 프로 선수는 총 65명이다. 이 중, 17~19세의 비중은 13.8%(9명)으로 24.6%(16명)와 50.8%(33명)를 차지하는 20~21세와 22~24세의 비중을 고려하면 크게 낮은 수준이다.
강지문(2021)의 연구에 따르면, e스포츠 선수들의 에이징 커브는 20세에 정점을 찍고 점차 완만한 하강곡선을 그리는 패턴을 보인다. 이를 반영한다면 국내 e스포츠, 특히 <롤> e스포츠에 종사하는 프로게이머들의 선수 수명은 기량의 정점을 찍는 선수보다 정점을 찍고 점차 완만하게 내려오는 선수가 더 많은 구조임을 보여준다.
물론, 국내 e스포츠 육성군 선수 구조를 살펴보면 <롤> 육성군이 차지하는 비율이 88.8%(127/143)에 달한다. 이 중 29.9%인 38명이 17~19세인 만큼 젊고 어린 선수들은 상당수 <롤> e스포츠에 투신하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하지만 선수단 구조를 보면 이들이 곧장 1군으로 향할 가능성은 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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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e스포츠 게임단의 1군(프로), 2군(육성군), 3군(아카데미) 선수 인력 구조를 살피면, 1군의 경우 14.8%(193명)에 달하지만, 2군과 3군은 한 자릿 수(5.2%, 3.2%)에 머물고 있다. 이는 곧 팀들이 즉시 전력감을 희망해 당장 투입 가능한 선수들을 1군에 묶어두고 있는 반면, 육성군 이하에 머무르는 선수들은 바늘구멍을 통과하기 위한 경쟁에 내몰리고 있음을 시사한다.
매년마다 LCK 올해의 신인 후보에는 많게는 10명에 가까운 후보들이 등장하지만, 국내 e스포츠 산업이 더 튼실하게 지탱되기 위해서는 더 많은 유입과 급부상이 요구되고 있음을 산업 구조가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실제로 해당 통계에 응답한 82명가량의 <롤> 프로게이머들의 평균 경력은 3.6년으로, 평균에 근접할수록 그래프가 급격히 꺾이다가 평균을 상회하는 5년 이상의 경력을 보유한 인원이 잠깐 급상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후로 완만한 하락세를 보이는 모습을 보이는데, 이는 e스포츠 선수로 빛날 수 있는 시기가 만 4년을 넘기 어려움을 예상할 수 있는 수치다. 실태조사에 참여한 프로 선수들 역시 비슷한 의견을 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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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과적으로 <롤> 프로 선수들은 17~19세에 데뷔한 후 3년의 시간을 투자해 주전급으로 자리 잡는 노선을 대부분 밟고 있다. 하지만, (1) 이 길을 걸을 수 있는 인원이 매우 제한적이고, (2) 1~2년 내에 1군 주전 자리를 따내지 못하면 에이징 커브의 정점보다 낮아진 위치에서 1군 무대에 첫 선을 보일 가능성이 높다는 구조를 띄고 있다. 자연히 선수 생명을 오랜 기간 담보할 수 없는 모양새로 흐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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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 e스포츠 프로 선수들은 대부분 자신의 적성과 게임이 부합하고(64.6%), 실력이 주변에 비해 출중해(26.8%), 프로에 투신했다고 응답했다. 하지만 ‘유명한 분야라고 생각해서’ 라는 미래지향적 응답은 1.2% 밖에 나타나지 않았다.
이는 산업과 선수, 업계를 지탱하는 두 근간이 구성하는 환경의 불안정성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롤> e스포츠 선수의 95% 이상이 연봉제를 통해 수입을 창출하고 있으나, 그 규모의 절반 이상(52.4%)은 5,000만원 미만의 연봉을 수령받고 있다. LCK 최저 연봉이 6,000만원임을 고려할 때, 1군보다 더 열악한 연습생 또는 육성군들이 상당수 업계를 지탱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결과다.
통계에 따르면 선수들은 주당 8.2시간의 연습을 하지만, 대회 스케줄에 따라 1일 이상 가변적으로 휴식 여건을 갖고 있었다. 법정 최대 노동시간이 주당 기본 40시간 + 연장 12시간으로 총 52시간임을 고려할 때, 이들은 약 41시간 가량을 훈련에 쏟아붓지만 실제로 획득하는 휴식 여건은 대회 스케줄에 따라 유동성을 지녀 휴식과 업무의 균형이 불안정함을 보여준다.
(출처: 한국콘텐츠진흥원)
직업 만족도 중 연습시간에 대한 만족도는 만족도의 3요소(수입/연습시간/연습환경) 중 유일하게 평균을 하회하는 모습(평균 56.0점 / <롤> 55.2점)을 보였다. 연습에 쏟아붓는 것과 달리 휴식여건을 규칙적으로 얻을 수 없어 국내 e스포츠 종목 중 가장 신체적 애로사항(59.8%)과 진로여건(46.3%)의 애로사항이 많이 발생하는 종목이 <롤> e스포츠인 것으로 나타났다.
중복응답을 고려하더라도, 오로지 성적을 위해 어린 나이부터 집약적으로 훈련과 성과만 강조하는 환경적 여건은 선수들에겐 신체적·정신적 고통으로 돌아오고 있음을 유념해야 하는 결과라 할 것이다.
특히 사회적 인식이 과거와 달리 많이 개선되었다고 느끼고 있음에도 선수들의 계약기간은 대부분 1년~2년 미만에 머무르고 있어, 직업 안정성을 고려하는 차원에서라도 장기 계약제의 도입을 검토해야 할 필요성을 보여주고 있다.
실제로 통계에서 2~3년 미만 또는 3년 이상의 장기 계약을 체결한 <롤> e스포츠 선수들의 비중은 도합 37.8%인 반면, 절반을 훌쩍 넘는 59.7%의 선수 응답자들이 2년 미만의 계약 기간을 보유하고 있어, 이들의 환경적 안정성을 가져다주기 위해서는 다년 계약의 정착이 고려되어야 함을 시사한다.
선수 자신들은 향후 3~5년, 많게는 10년까지 내다보며 선수 생활을 자신하고 있지만, 3년 이상의 선수들이 리그 구조상 급격히 줄어드는 앞선 통계 결과와 비교할 때, 이상과 현실의 괴리 역시 업계 전반에 뿌리 깊게 자리하고 있음을 엿볼 수 있다.
롱런의 아이콘이라 할 수 있는 T1의 ‘페이커’ 이상혁, 디플러스 기아의 ‘데프트’ 김혁규와 같은 케이스가 매우 이상적이지만, 현실은 3년 ~ 4년 가량을 채우는 경우도 드물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출처: 한국콘텐츠진흥원)
LCK 사무국은 작년 7월 25일, 육성권과 지정선수 특별협상제, 에이전트 제도 등 대대적인 개편안을 발표했다. e스포츠 생태계 구축이라는 뚜렷한 목적성을 제시했지만, 안정적인 선수 유입과 확보라는 더 큰 전제에는 다가가지 못한 아쉬움이 있었다. 생태계를 지탱하기 위해서는 지금 몸 안에 돌고 있는 피를 건강하게 돌리는 일 이상으로 꾸준히 새로운 피를 수혈받을 수 있는 환경이 중요하다.
‘100 씨브즈’의 구단주 나데샷이 어린이들의 <롤> 사용량을 언급한 것도 이 때문이다. 어릴 때부터 모든 아이들이 <롤> 프로게이머가 되기를 소망하지는 않더라도, <롤>을 즐기고 보는 문화가 형성된다면 이런 걱정은 사소하고 행복한 고민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북미 <롤> e스포츠의 최대 문제는 보는 사람과 하는 사람, 모두가 줄어드는 절망적인 이중고를 보이고 있다.
실제로 2023 LCS 스프링은 경쟁 종목이자, 라이엇 게임즈의 야심작인 <발로란트> e스포츠 대회에 중계시간을 내주며 꺾이고 있던 뷰어십의 하락이 가속화됐다. LCK가 최고 뷰어십을 찍으며 호황을 누리는 것과는 대조된다.
LCK의 전망은 앞선 통계에서 보듯 지속적인 투자의 결과가 곧 산업적 호황을 가져오고 있는 추세다. 하지만 자본의 유한성을 고려할 때, 이러한 대규모 투자가 10년의 먼 미래까지 이어질 수 없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LCK의 투자는 이제 내실을 향해 나아가야 할 시기임을 부정하긴 어려워 보인다. (해외 매체 등을 통해 나온 샐러리 캡 도입 루머 역시, 수익을 아득히 상회하는 대규모 투자가 영원히 이어질 수 없다는 흐름을 반영한 것이라 추측할 수 있다. /편집자 주)
LCK 사무국이 공개한 2020년 통계에 따르면 구매력이 강한 직장인들이 LCK 뷰어십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었다. <롤>을 실제로 플레이하며 즐기는 연령대가 주로 20대 초중반이라고 알려진 것과는 대조되는 모습이다.
(출처: LCK)
유저와 뷰어쉽 양 측에서 지금보다 젊은 유저층들의 유입이 없다면 LCK 사무국이 바라는 e스포츠 생태계 구축은 공허한 희망 사항에 머물지도 모른다. 미래 지향적인 방향성에 대한 또렷하고 확실한 고민이 수반되지 않으면, LCK를 넘어 국내 e스포츠 생태계를 아우르는 위험 신호가 발생할 수 있음을 통계는 계속해서 강조하고 있다.
위기는 위기임을 비로소 인지할 때, 가장 위태로운 법임을 되새겨야 할 시점이 다가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