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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게임위를 바꿀 수 있는 것은 게이머의 뜨거운 관심

기준 세밀하게 만들어도 역치 달라, 타 콘텐츠와 기준 맞춰가며 논의해야

에 유통된 기사입니다.
박종현(parkjonghyun) 2023-10-12 15:12:41

게임물관리위원회(이하 ‘게임위’)​에서 7억 원 규모의 비리가 발생했습니다. 감사원은 이 사실을 알렸고, 게임위는 잃어버린 신뢰를 찾기 위해 간담회를 열었습니다. 지난 9월 16일, 게임위의 3차 게임 이용자 간담회가 열렸고, 기관을 맡고 있는 김규철 위원장은 이 자리에 오지 않았습니다.


정우택 의원실과 유동수 의원실에서 근무했던 박종현 전 선임비서관은 게임 이용자 자격으로 지난 제3차 간담회에 참석했습니다. 다년간 국회에서 일했던 그는 확률형 아이템 확률공개법안(2015)​, 컴플리트 가챠 금지법, 히오스법, 문양사태 방지법 등의 입법과정에서 실무를 봤습니다. 지난해에는 <우마무스메 프리티더비> 운영 사태에서 이용자 측을 지원하는 등 여의도에서 게임 관련 정책의 입안에 특화된 인물 중 한 사람으로 꼽힙니다.​


박 전 비서관은 이번 간담회 또한 지난 1, 2차 간담회와 마찬가지로 실망스럽다고 밝혔습니다. 그는 "게임위는 지금까지도 왜 게임 이용자들이 분노했는지, 어떻게 다시 신뢰를 회복할 것인지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모습"이라고 비판합니다.


총 세 차례에 걸쳐서 지난 간담회가 왜 실망스러웠는지, 게임위를 어떻게 고쳐야 할지, 게임 등급분류를 어떻게 바꿀 수 있을지 함께 알아봅시다.


박종현 전 선임비서관

※ 외부 기고를 받는 원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지난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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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신뢰 잃은 게임위, 없애면 해결될까? (바로가기)




게임위가 게임물 등급분류 심의 업무를 담당하는 것 자체는 문제가 없습니다. 문제는 게임위가 그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게이머로서의 저는 법안을 성안하는 과정에서 가장 먼저 게임위를 폐지하고 그 기능을 민간심의기구로 이관하는 방안을 생각했지만,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현재 상황에서는 시기상조라는 판단을 내렸습니다. 결정적인 이유는 ESRB, CERO 등과 같은 민간기구도 과거 패키지 게임 시절 조직되어 모바일·온라인 게임 위주로 환경이 변화한 지금의 산업구조와는 호환성이 좋지 못하다는 점이었습니다.


당시에는 게임사들이 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자구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었고, 유통사들도 자신들이 추가적인 비용을 지출하지 않으면서도 등급분류를 받은 게임물만 유통해 사회에 악영향을 끼치지 않는다는 명분을 얻을 수 있는 윈-윈 구조였기 때문에 작동하는 구조였습니다.

하지만 현재 모바일게임은 구글·애플의 자체 심의를 받고 있습니다. 국제등급분류연합(IARC)도 기존 심의 기관들이 이러한 게임산업의 메타 변화 속에서도 자신들의 영향력 유지를 위해 결성되었다는 주장도 그 근거가 충분합니다.

설령 변화한 게임산업 구조를 포괄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고 하더라도, 현재 우리나라에 게임위의 공백을 온전히 대체할 수 있는 민간기구가 없는 것도 중요한 부분입니다. 이미 자체등급분류사업자가 있지 않냐라고 반문하실 수도 있습니다.

사진 속 에픽게임즈 코리아, 구글플레이, 애플, 원스토어, 스마일게이트홀딩스, 소니인터랙티브엔터테인먼트 코리아 등이 자체등급분류사업자로 지정되었습니다.

# 자체등급분류사업자는 '사업자'다

하지만 이 자체등급분류사업자들은 이익 추구가 우선인 기업들입니다.

게임물의 과도한 표현으로 인한 사회적 문제에 대해 공공부문보다 그 대처가 느릴 수밖에 없습니다. 일부 부도덕한 업체들의 행위에 대한 사후관리도 필요합니다. 게임 등급분류 심의와 관련해 공공성이 요구되는 분야까지 기업이 자금과 인력을 투입해 성실하게 임해줄 것인지는 의문입니다.

게임위를 없앤다면 ESRB처럼 게임업계가 합동으로 심의기구를 만들 것이라는 추측도 지나치게 낙관적입니다. 해당 기구도 운영에 필요한 자금과 인력은 하늘에서 떨어지지 않습니다. 게임사들의 참여 여부도 의문이지만 운영비 부담을 두고도 상당한 진통이 예상됩니다.

ESRB처럼 심의료로 운영하는 구조 정착도 어렵습니다. 구글·애플의 자체 등급분류를 받고 있는 모바일게임들의 경우 청소년 이용불가 게임이 아닌 이상 별도의 심의비를 내지 않고 있고, 패키지 게임은 우리나라 시장에서 약세입니다. 

새롭게 민간심의기구가 탄생한다고 하더라도 ESRB처럼 등급분류 심의를 받지 않은 게임의 유통을 실질적으로 제한할 수 있는 영향력을 가질 수 있을 것인지도 의문입니다.

게임위를 없앤다면 ESRB처럼 게임업계가 합동으로 심의기구를 만들 것이라는 추측은 지나치게 낙관적입니다.

# 등급분류 의무를 없애면 되는 것인가?

그렇다면 등급분류 의무를 없애면 되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나올 수 있습니다.

영화 등 등급분류 의무가 규정되어 있는 타 문화 콘텐츠들과의 형평성 논란이 거세겠지만, 이를 돌파하고 법률을 개정했다고 가정해 보겠습니다. 당장은 모든 게임물이 자유롭게 유통되는 환경이 열릴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누군가 '자율적으로' 게임물 등급분류 심의를 하겠다고 나서도 되는 환경이 열리게 됩니다. 게임사들이 나서서 게임산업을 지키기 위해 자율적으로 행동할 가능성도 0은 아니지만, 그 이전에 게임을 악으로 보고 탄압하려는 집단들은 건전한 사회를 만들겠다는 명분을 제시하며 확실한 행동력을 보여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지금은 공공기관인 게임위가 등급분류 업무를 담당하고 있기 때문에 그런 움직임이 제한되는 것도 분명히 있습니다. 

장기적으로는 게임물의 등급분류 업무를 민간으로 온전히 이양하고, 게임물을 포함해 컨텐츠들의 사전심의 의무를 폐지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는 것은 저도 동의합니다. 다만 이를 위한 준비가 부족한 시점에서 당장 마음에 들지 않으니 해체하자는 식의 대응은 오히려 상황을 악화시킬 가능성이 높다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보다 게임이용자들의 시선에 부합하는 등급분류 심의를 할 수 있도록 개선하자는 방향으로 전환하게 되었습니다.

게임을 악으로 보고 탄압하려는 집단은 아직 남아있습니다. 이들에게 심의의 열쇠를 넘겨준다면 어떻게 될까요? (MBC 100분 토론 캡쳐)

# 아무리 기준을 세밀하게 만들어도...

같은 콘텐츠라고 하더라도 받아들이는 개인에 따라 그 역치는 모두 다릅니다.

논란이 되었던 <블루 아카이브>의 청소년 이용불가 재분류 과정에서 게임위는 가장 큰 판단 근거로 이즈미(수영복)의 메모리얼 일러스트를 제시했습니다. 반면 <블루 아카이브> 이용자들은 해당 일러스트가 청소년 이용불가 판정을 받을 수위는 아니라고 반발했습니다.

실제로 서브컬쳐 게임을 즐기는 이용자들과 그렇지 않은 분들 간의 인식 차이는 생각보다 큽니다. 저와 같이 근무하던 동료 직원도 해당 일러스트를 본 후 자신은 청소년 이용불가 판정이 맞는 것 같다는 의견을 내기도 했습니다. 비단 선정성뿐만 아니라, 폭력성, 사행성 등 다른 요소들에서도 받아들이는 각자의 기준은 모두 다를 것입니다.

결국 아무리 기준을 세밀하게 만들더라도 그 경계에 서 있는 컨텐츠는 존재할 수밖에 없으며, 그 기준도 모든 국민들을 만족시킬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크게는 사회적 합의를 통해, 작게는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투명한 과정을 거쳐 등급분류의 기준과 결과를 공표하고 서로의 이견으로 인해 발생하는 충돌을 조금씩 줄여갈 수는 있습니다.

문제가 된 <블루 아카이브> 컷씬의 일부 캡쳐

참고로 앞서 언급한 동료 직원의 질문에 대해 저는 “같은 장면을 실제 사람과 문어를 이용해 찍었다고 가정해 보자, 그럼 그것도 청소년 이용불가 콘텐츠라고 생각하나?”라고 반문했고 그 직원은 잠깐 생각 후에 그건 아닌 것 같다고 답했습니다.

현재 게임위의 등급분류 심의 과정에서 핵심적인 문제는 그 기준에 대한 사회적 논쟁과 합의가 부족했다는 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앞서 예시한 ESRB, CERO 등 민간기구들은 1990년대부터 수 차례의 논쟁을 거쳐 가며 게임이용자와 비 게임이용자들 사이에서 어느 정도 합의할 수 있는 지점을 찾았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이 과정이 지나치게 부족했습니다.


# 영화와 게임 기준 최대한 일치시키고, 사감위와 논의해야

그래서 제가 생각한 대안은 이미 어느 정도 합의를 도출한 영화 등 타 콘텐츠의 심의기준과 게임에 대한 심의기준을 최대한 일치시키는 것이었습니다. 또 IARC와도 정합성을 확보하도록 해 논란을 최소화하는 동시에 컨텐츠 간의 차별 논란도 줄이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이렇게 개정이 된다고 하더라도 모두를 만족시킬 수는 없습니다. 특히 도박물에 대해서는 보다 촘촘한 그물이 필요합니다. 게임사 입장에서도 명확한 규정이 나와야 자신들이 제작하는 게임의 예상심의등급을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게임위가 분기별로 명확한 기준을 제시하도록 하고, 도박과 게임물의 경계는 게임위와 사감위가 함께 논의해 게임위가 공시하는 안을 만들게 되었습니다. 굳이 이 주체를 게임위로 한 것은 게임은 여가수단이자 우리가 육성해야 할 산업이지만 도박은 관리와 규제의 대상인 만큼, 먼저 게임의 영역으로 간주해서 관찰한 후 확실히 경계선 밖에 있을 때 도박으로 보는 것이 맞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게임 등급분류 심의에는 게임이용자와 비 게임이용자들의 시선이 모두 필요하지만, 현재 게임위의 위원 임명 규정에는 게임분야에서 전문성을 가진 인원의 비중이 정해져 있지 않습니다. 이는 게임이용자들의 시선과 괴리된 심의의 한 원인인 만큼, 위원회의 1/3 이상은 게임 전문가들로 구성하도록 해 양자의 균형을 추구했습니다.

게임의 등급분류 문제에서는 국제등급분류연합와 정합성을 확보해야 합니다.


# 상황을 바꿀 수 있는 것은 뜨거운 관심

일련의 상황에 대한 제 소견으로 글을 마무리하겠습니다. 

저는 솔직히 일련의 사건들을 보며 게임위가 공공기관이었다는 점이 오히려 다행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윤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 지점에서 벌어진 사건이라면 기업 쪽이 보다 빠르게 대응했겠지만, 이번 논란은 공공분야에서 불거졌기 때문에 게임이용자들이 조금이라도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분노는 무한히 지속될 수 없습니다. 그래서도 안되겠지만요. 게임위에 대한 분노와 관심도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줄어들고 있습니다. 이렇게 나서 봐야 바뀌는 게 뭐냐는 냉소적인 반응도 조금씩 늘어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전 이것만은 확실히 말하고 싶습니다. 트럭 시위와 간담회 등을 통해 <페이트 그랜드 오더>, <우마무스메> 등 국내 서비스가 개선된 사례를 보면서 많은 게임이용자들은 고작 나 하나가 아니라 행동하면 변화한다는 경험을 얻었습니다.

그 경험을 바탕으로 게임위에 대한 행동에도 나섰습니다. 참여해 주셨던 분들께서 원하던 속 시원한 사이다는 되지 못했지만, 그 행동은 분명히 변화를 이끌어 냈고 앞으로도 그럴 수 있다는 점입니다. 당장 셧다운제 폐지에 10년이 걸렸습니다.

지난해 국민감사청구 연대서명을 마치고 여러 참석자분의 후기를 보던 중 가장 공감이 가던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나는 그저 맘 편하게 게임을 하고 싶었을 뿐이다.’ 앞으로 제가 어떤 일을 하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렇게 될 수 있도록 제가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게임이용자 여러분께서도 더 좋은 게임환경을 위해 꾸준히 관심을 가지고 참여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2022년 10월 29일 국회 앞에서 열린 게임위 국민감사청구에 최종적으로 5,489명의 국민이 서명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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