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은 게임 업계에 한파가 불 것으로 예상됩니다. 이미 많은 회사들이 직원을 떠나보냈습니다. 그래서 디스이즈게임이 격주 월요일, 이상민 애널리스트와 함께 게임 업계의 맥을 짚어보기로 했습니다. 여러 증권사에서 경력을 쌓아온 그는 스퀘어에닉스의 <파이널판타지> 시리즈를 사랑하는 '진성 게이머'이기도 합니다. 게임사들의 숫자를 읽다 보면, 한파가 끝나고 봄이 올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상민의 돈돌이가 보는 게임. /편집= 김재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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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국내 게임업계에서 유독 눈에 띄는 부분은 MMORPG의 경쟁 격화입니다. 먼저 카카오게임즈의 <롬>이 출격할 예정이며, 넷마블 또한 <아스달 연대기>를 시작으로 하여 MMORPG 라인업을 지속적으로 확충할 계획이라고 합니다. 개인적으로는 꽤 이질적인 광경이라고 생각합니다. 최근 게임업계의 트렌드는 MMORPG로 흘러가기보단, 캐주얼 게임이 지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국내 MMORPG 시장을 살펴보기 위해 국내사 MMORPG Top 20의 매출액을 모두 합산하여, 이를 살펴보았습니다. 사실상, 이 금액은 국내 MMORPG 시장의 규모라고 보아도 큰 무리가 없을 것입니다. 2016년 불과 3732억 원에 불과했던 국내 MMORPG 시장의 규모는 2021년 2조 9746억 원으로 연 평균 51% 성장하였습니다.
국내 MMORPG 시장 규모 (단위 : 십억 원) 출처 : 센서타워 주) 센서타워 MMORPG 매출 Top 20 게임의 국내 매출액을 합산하여 추정
누가 뭐라 해도 과거 <리니지M>은 파괴적인 흥행력을 보여주었습니다. 2017년 <리니지 M>의 매출액은 7,786억 원으로 추산됩니다. 전년도 전체 MMORPG 시장 규모의 약 2배에 달하는 수준이었습니다. 넷마블이 서비스하는 <리니지2 레볼루션> 또한 2016년 매출 1575억 원에서 2017년 매출 7167억 원으로,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습니다.
<리니지2M>은 화룡점정을 찍었습니다. 심지어 2018년에는 국내 MMORPG 시장에서 엔씨소프트 점유율은 65.22%에 달했습니다. 1조 6,272억 원 중 엔씨소프트 게임의 매출이 1조 511억 원 규모인 것으로 추산됐습니다. MMORPG는 곧 엔씨소프트고, 엔씨소프트가 곧 국내 MMORPG의 제왕이었던 시기가 있었던 것입니다.
당시 이러한 경험으로 투자자들은 MMORPG에 대한 일종의 믿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국내 MMORPG 시장의 파이가 결코 작지 않을 뿐만 아니라, 흥행작만 있다면 얼마든지 성장할 수 있다는 믿음 말입니다.
그런데 2022년부터 이러한 흐름은 역으로 작용하기 시작합니다. 2023년 <리니지M>의 매출은 4,817억 원까지 후퇴하였고, 엔씨소프트가 야심차게 준비한 <리니지W> 또한 매출액이 크게 감소합니다. 2022년 <리니지W>의 매출액은 5,767억 원이었으나, 2023년에는 1,693억 원으로 하락합니다. 한국 MMORPG 시장은 위축되었습니다. 대장이 휘청거리는데, 나머지가 말할 것이 있을까요?
단순히 엔씨소프트의 몰락만을 이야기할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검은 사막> <오딘 : 발할라 라이징> 등 많은 게임이 그러합니다. 물론 게임의 노후화라는 요소도 있습니다만, 게임의 수명이 지나치게 짧아졌다는 문제도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동명의 PC MMORPG를 모바일로 만든 <검은사막 모바일>은 2023년 기준 국내 매출 순위 20위권 밖으로 밀려났습니다. 즉, 2023년 기준 20위에 해당하는 <기적의 검>이 발생시킨 연간 172억 원의 매출보다 못했다고 보입니다. 물론 <검은사막> 자체가 해외 매출 비중이 높은 IP이기는 하나, 국내 매출의 유의미한 감소는 고민이 되는 지점입니다.
실제로 2018년과 2023년 MMORPG 국내매출 순위 Top 20을 살펴봅시다. 엔씨소프트 말고 다른 게임사의 비중이 크게 늘었습니다. 2018년 엔씨소프트의 MMORPG 점유율은 65.22%, 2023년 점유율은 41.83%로 약 23%p의 점유율을 잃었습니다. 심지어, 2023년 ‘리니지 3형제’ 매출액을 모두 합쳐도 2018년 <리니지M>의 매출보다 못했다는 결과가 나옵니다.
2018년 Vs 2023년 국내 MMORPG 매출 Top 20 Source : 센서타워 주) 엔씨소프트 게임은 음영 처리
# 계속되는 MMORPG 춘추전국시대와 '소국'의 길
MMORPG는 춘추전국시대의 양상으로 흘러가고 있습니다. 2017~2020년의 가파른 MMORPG 성장세를 보아왔던 게임사들은 ‘리니지 라이크’로 NC소프트의 아성에 도전해나가고 있습니다.
<오딘: 발할라 라이징>과 <나이트크로우>가 모바일 시장에서 리니지라이크의 점유율을 의미있게 빼앗아왔다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MMORPG 시장은 레드오션화되어 게임사간의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시장이 역성장하고 있다는 씁쓸한 결론입니다.
또한, 이러한 레드오션화는 현재 진행형에 있습니다. 앞서 언급하였듯 넷마블은 오는 4월 MMORPG인 <아스달 연대기 : 세개의 세력>을 출시할 예정이며, <레이븐2> 또한 액션 RPG였던 전작과 달리 다크판타지 MMORPG로 나올 예정입니다.
레이븐 2 Source: 넷마블
카카오게임즈 또한 레드랩게임즈가 개발한 <롬>도 출시되었습니다. 많은 논란이 있었고 엔씨소프트와 카카오게임즈 간의 법적 공방까지 이어지게 된 작품이나, 어찌되었건 한국과 대만 앱 마켓에서 1위를 기록하였습니다. 다른 나라 시장은 몰라도 얼개를 갖추어 띄우기만 하면 한국과 대만 시장은 노려볼 수 있는 게 지금의 MMORPG 시장입니다.
MMORPG가 대규모 자본이 필요하여 중소형 게임사에서는 현실적으로 힘들다는 시각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판이 다릅니다. 드래곤플라이는 최근 <콜 오브 카오스: 어셈블>을 출시하며 조용히 중상위권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모바일 MMORPG가 더 이상 대형 게임사의 전유물은 아니라는 증거로 다가옵니다. 이렇게 나름의 성과를 내는 경우도 있으니 말입니다.
MMORPG 시장은 과한 경쟁에 진입하였을 뿐만 아니라, 유저들 또한 MMORPG 특히 리니지라이크에 대한 피로를 느끼고 있습니다.
이 틈새를 잘 공략한 것이 <승리의 여신: 니케>로 보입니다. 방치형 게임으로 유저 피로도를 줄이고, 방치형 또는 캐주얼 게임의 퀄리티가 대체로 낮다는 점에 주목하여 높은 퀄리티로 유저를 모았으며, RPG적 요소를 도입하여 성장의 재미 또한 충분히 주었습니다. 상업적으로도 훌륭한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또한, 국내 매출뿐만 아니라 글로벌적인 흥행에도 성공하였습니다.
그러면 모바일 이외에 PC MMORPG 시장은 어떨까요? 글로벌 경쟁력이 있는 MMORPG로 흔히 이야기되는 것은 <월드오브워크래프트>, <파이널 판타지 XIV>, <로스트아크> 정도가 있습니다. 그런데 특이한 것은, 한국의 게임사들이 공성전과 PVP를 주력으로 내세우며 스토리텔링과 연출이 빈약한 것과 달리 이 세 게임은 스토리텔링을 주력으로 내세우고 있다는 점입니다.
<월드오브워크래프트>가 과거 PvP가 굉장히 중시되던 반면 PvP의 비중이 시간이 지날수록 낮아지고 있고, <파이널 판타지 XIV>의 PvP는 ‘이런 컨텐츠도 있다’ 정도에 불과한 수준입니다. <로스트아크> 또한 스토리와 레이드의 재미로 호평받고 있습니다.
또한 이 세 게임은 리니지라이크 식 BM과는 아주 동떨어져 있는 게임입니다.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와 <파이널 판타지XIV>는 정액제 게임이며, <로스트아크> 또한 리니지라이크 대비 낮은 강도의 과금요소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이 말은 다시 해석해보면, 한국의 MMORPG들은 대체로 (<로스트아크>를 제외하면) 글로벌 흥행 MMORPG의 공식과도 아주 동떨어져 있다는 의미입니다. 즉, 한국(과 대만이) 해외 정서와는 다른 이질적인 시장이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고, 이 때문에 '리니지라이크'로 대표되는 K-MMORPG의 해외 흥행은 쉽지 않다는 생각입니다.
이는 게이머의 특성과도 무관하지 않은 듯합니다. 한국 게이머들이 유독 스토리를 스킵하는 경향이 강하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실제로 <파이널 판타지 XIV>의 레터라이브 3화에서 밝혀진 내용에 따르면, 유저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주요 퀘스트 Top5 중 하나가 아이템 레벨 5를 맞추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심지어 바로 옆에서 장비를 팔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이 게임에서 유저들은 NPC들이 진행방법을 설명해 주는 옆 사냥터로 이동하기, 비공정 탑승 등등 튜토리얼성 퀘스트가 가장 힘들다고 꼽았습니다.
게임은 스토리텔링 속에서 튜토리얼을 담아냈는데, 유저들은 극단적으로 스토리를 스킵하고 있기 때문에 게임에 적응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MMORPG에서의 스토리텔링을 "유저가 만드는 것"이라고 말하면서, 최소한도의 진행 가능한 수준의 이야기를 선보이는 등, 국내 게임사는 스토리에 그렇게 투자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파이널 판타지 XIV에서 유저가 가장 힘들어하는 퀘스트 중 하나 Source : 파이널판타지 14
투자자의 관점에서는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까요? 저는 개인적으로 '국내 게임사의 방황기'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MMORPG를 서비스하고 있는 국내 게임사의 주가를 살펴보면 2021년 대비 모두 반토막이 나 있습니다. 그나마 크래프톤 정도가 실적 성장을 보여줬습니다. 증권가에서 최근 3개월 동안 2024년 영업이익 추정치를 상향시킨 게임사는 크래프톤, 넷마블, 더블유게임즈, 조이시티가 전부입니다. 꽤 충격적인 결과입니다. 점점 영업이익 전망이 악화되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2024년 국내 주요 게임사의 3개월간 영업이익 전망 추정치 변화율 (%)
펄어비스는 작년 12월 초 증권가에서 내놓은 2024년 영업이익 전망치가 1,233억 원이었으나, 현재 7억 원이라는 간신히 적자를 면하는 수치까지 떨어졌습니다. '맏형' 엔씨소프트의 2024년 영업이익 전망은 12월 초 2,972억 원에서 1,423억 원까지 후퇴하였습니다. 위메이드 또한 사정은 마찬가지로, 2024년 영업이익 전망이 694억 원에서 440억 원까지 후퇴하였습니다.
현재 증권가에서 전망치를 상향한 종목은 넷마블, 크래프톤, 더블유게임즈, 조이시티 정도입니다. 넷마블 정도를 제외하면 모두 MMORPG와 거리가 먼 기업들입니다. 증권가에서도 국내 MMORPG 시장 축소와 경쟁과열에 대하여 고민을 하는 시기가 도래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상의 내용을 정리해 보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1) 국내 MMORPG 시장은 2021년을 정점으로 축소되고 있다.
(2) 또한, 엔씨소프트 이외의 경쟁자가 지속적으로 출현하고 있다.
(3) 한국 MMORPG와 글로벌 시장에서 소구력을 가진 MMORPG는 다른 성향의 게임이다.
(4) 특히, 글로벌 Top Tier MMORPG와 달리 스토리텔링 부분이 약하다.
(5) 때문에 해외 흥행은 쉽지 않다.
(6) 한국 게이머들의 스토리 ‘스킵’ 성향도 영향이 있어 보인다.
(7) 증권가에서는 MMORPG 제작사의 영업이익 전망을 대체로 하향 조정하고 있다.
그럼에도 대부분의 게임사들이 MMORPG에 주력하고 있음은 아주 이질적으로 느껴집니다. 그러면 국내 MMORPG에 희망은 없을까요? <리니지M>을 능가하는 대작이 나오면 됩니다. 실제로 앞서 언급하였듯 국내 MMORPG 시장의 성장은 리니지의 파괴력에 힘입은 결과물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국내 유저들의 리니지 라이크에 대한 피로를 생각해보면, 비MMORPG 제작사에 더 기대가 되는 점이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어쩌면 국내 게임사들에게 필요한 것은 초대형 대작보다 장르의 다양화 및 다작일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