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 게임의 베타 테스트명(名)에 대한 원칙이 흔들리고 있다. ‘테스트명은 FGT지만 실제로는 CBT’, ‘CBT라곤 하지만 사실상 OBT’를 진행하는 온라인게임들이 늘고 있다. 테스트명만 들어선 대체 어떤 형식의 테스트인지 알기 힘든 경우가 많아지고 있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온라인게임의 ‘베타 테스트’(외부 인원이 참여하는 테스트)는 다음의 순서를 따른다.
[1] 특정 그룹의 소규모 인원을 모아 놓고 진행하는 ‘포커스 그룹 테스트’(FGT)
[2] 공개 모집을 통해 소규모 테스터를 선발하고 진행하는 ‘클로즈 베타 테스트’(CBT)
[3] 누구나 자유롭게 참여할 수 있는 공개 테스트. ‘오픈 베타 테스트’(OBT)
물론 업체의 필요에 의해 중간 중간, 서버의 상태를 점검하는 ‘스트레스 테스트’나 OBT 전 마지막 점검으로 ‘프리(Pre) OBT’를 진행하는 경우는 종종 있었다. 하지만 그래도 큰 틀에서 보면 위의 순서와 원칙에서 크게 벗어나는 일은 많지 않았다.
그런데 최근 테스트를 진행하거나, 일정을 발표한 신작들은 유독 원칙에서 벗어나는 테스트명을 많이 내세우고 있다. 이에 따라 단순하게 테스트명만 보자면 이것이 과연 비공개 테스트인지, 공개형 테스트인지. 아니면 어떤 형태의 테스트인지 알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진다.
올해 여름에는 굉장히 많은 게임들이 FGT와 CBT, OBT를 진행했다.
■ 테스트명만 들으면 어떤 방식인지 모른다?
한빛소프트의 <미소스>는 지난 7월 30일, 5천 명의 테스터를 선발해서 기존 게임들의 CBT와 크게 다르지 않은 비공개 테스트를 시작했다. 하지만 테스트명은 CBT를 연상하기 힘든 ‘월드 프리뷰 테스트’(World Preview Test)였다.
KOG와 SBSi가 공동 퍼블리싱하는 <파이터스 클럽>은 지난 7월과 8월, 두 차례에 걸쳐서 ‘커튼콜 테스트’(Curtain Call Test)를 진행했다. 테스트명만 보면 지금까지의 사례와 완전히 다르다. 실제로 업체에서는 보도자료 등을 통해 이러한 테스트가 ‘사상 최초’라는 사실을 집중적으로 홍보했다.
그런데 이 커튼콜 테스트란 결국 정해진 시간 동안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공개형 테스트와 사실상 다르지 않았다.
이야인터렉티브에서 서비스하는 <아이리스 온라인> 역시 지난 9월 7일 ‘사상 최초의 체험 서버 오픈’을 시작한다고 밝혔다. 이 테스트도 형식을 보면 일정 기간 무제한으로 진행되는 공개 테스트였다.
[사상 최초의 커튼콜 테스트]를 집중적으로 홍보한 <파이터스 클럽>.
■ 3천명 공개 모집에 FGT? 누구나 참여하는 FGT?
한편 FGT와 CBT의 구별을 제대로 하지 않거나, 테스트명은 비공개 테스트지만 사실상의 공개 테스트를 진행하는 경우도 늘어나고 있다.
윈디소프트가 서비스하는 <러스티 하츠>는 지난 8월 21일, 공개적으로 테스터 3천명을 선발해서 웬만한 CBT 못지않은 대규모 비공개 테스트를 3일 동안 진행했다. 하지만 공식 테스트명은 ‘FGT’였다.
같은 날 FGT를 시작한 이야인터렉티브의 <에다전설>은 겉으로는 ‘FGT’였지만, 실제로는 ‘가입만 하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공개 테스트였다.
지난 7월 16일에 2차 CBT를 시작한 CJ인터넷의 <노바2>, 7월 28일에 2차 CBT를 진행한 엔플레버의 <아이엘(iL): 소울브링거> 등도 모두 겉으로는 비공개 테스트인 ‘CBT’였지만 실제로는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공개형 테스트였다.
경우는 조금 다르지만 NHN의 기대작 <테라>는 지난 8월 22일, 일반적인 비공개 테스트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200명의 테스터를 선발해서 ‘FGT급의 1차 CBT’를 진행해 눈길을 끌었다.
■ 테스트 명칭 파괴, 모든 것은 차별화 때문?
기존의 원칙을 무시한 테스트명이 남발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가장 큰 이유는 ‘마케팅’의 문제라는 것이 업계의 일반적인 시각이다. 다른 게임과의 차별화를 위해 노력하다 보니 조금이라도 튀어 보이는 명칭을 선택하게 된다는 것이다.
게임업계의 한 관계자는 “유명 퍼블리셔에서 서비스하는 대작 게임들은 베타테스트를 하는 것 자체가 손쉽게 이슈가 되기 때문에 테스트명 결정에 큰 어려움을 겪지 않는다. 하지만 규모가 크지 않은 업체들은 단순하게 베타테스트를 하는 것만으로는 유저들의 관심을 끌기 힘들다. 때문에 어떻게든 튀는 테스트명을 선택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이어서 이 관계자는 “특히 여름방학 시즌에는 한 주에도 3~4개 이상의 게임이 잇따라 CBT나 OBT를 진행하기 때문에 ‘독특한 테스트명 선정’에 더욱 공을 들이려고 한다”고 덧붙였다.
단순한 CBT지만 [월드 프리뷰 테스트]라고 밝힌 한빛소프트의 <미소스>.
한편, ‘겉으로만 FGT’, ‘겉으로만 CBT’ 같은 경우에는 개발사나 퍼블리셔의 자신감 부족이 원인이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게임업계의 또 다른 관계자는 “콘텐츠에 자신이 없거나, 많은 유저들이 몰렸을 때 서버 안정성에 자신이 없다면 일종의 면피용으로 테스트 단계를 낮춰서 발표하는 경우가 실제로 있다. 가령 CBT는 문제가 생겨도 ‘고쳐서 다시 테스트’하면 그만이지만, OBT는 그렇게 하면 큰 타격을 입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그리고 일부 FGT나 CBT 게임은 ‘가입만 하면 누구나 참여가능’이지만, 사실은 겉으로 보이지 않는 커트라인이 존재하는 경우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지난 8월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비공개 테스트’를 진행한 한 게임의 경우, 정해진 수 이상의 유저가 테스터 신청을 하면 신청을 막는 방법을 쓰려고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 유저 반응, 상관 없다 vs 혼란스럽다
이렇게 기존의 원칙을 깨는 테스트명이 난무하는 것에 대해 유저들은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반응과 “혼란스럽다”는 엇갈린 반응을 보이고 있다.
이에 대해 한 유저는 “테스트 참여를 막는다는 식으로 유저들에게 직접적으로 피해를 주는 것은 아직까지 못 봤기 때문에, 사실 그렇게 큰 불편을 느낀 적은 없다. 아무래도 상관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다른 시각을 가진 한 유저는 “예전에는 테스트명을 들으면 이 게임이 얼마나 개발되었는지, 현재 어떤 단계인지. 테스트에 참여하려면 어떻게 하면 되는지 쉽게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요즘은 너도나도 이상한 명칭들을 써서 헷갈린다”고 말했다.
이어서 이 유저는 “색다른 테스트명이 눈길을 끄는 것에는 효과적일지 모른다. 하지만 유저 입장에서 그렇게 썩 좋아 보이지는 않는다. 결국 게임의 성공 여부는 테스트명이 아니라 완성도와 콘텐츠가 결정하는 만큼 차라리 이에 더 신경을 썼으면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