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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

15년 간 깨지지 않았던 '디아블로' 3분 스피드런, 알고 보니 '사기'

집요한 분석에 의해 밝혀져

김승주(사랑해요4) 2025-02-18 18:03:33
약 15년간 1위를 지켰던 <디아블로>의 '3분 12초' 스피드런이 조작된 것으로 밝혀졌다.

사건의 발단은 200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groobo'라는 플레이어는 엄청난 운이 따른 <디아블로> 플레이 동영상을 공개해 가장 빠른 스피드런으로 인정받았다. <디아블로>는 무작위로 맵이 생성되는 16층의 던전을 내려가 가장 마지막에 위치한 '디아블로'를 처치하면 엔딩을 볼 수 있는 구조다.

이 플레이어는 입구가 항상 출구 옆에 위치해 있고, 지나가던 몬스터 한 명을 처치하자마자 텔레포트 기능이 있는 스피드런 필수 아이템 '나즈의 수수께끼'(Naj's Puzzler)를 얻었으며, 1.7 이전 버전에 존재하는 무적 버그를 사용해 디아블로를 처치하는 등 '일반적인 운'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한 모습을 보이며 3분 12초라는 기록을 세웠다. 이 기록은 기네스북에도 등재됐다.





# 2024년에야 확인된 조작

이에 고전 게임을 전문으로 다루던 유튜버 '드왕고AC'가 의문을 제기했고, 2024년 자신이 운영하는 커뮤니티 '타스봇'의 멤버들과 함께 스피드런의 조작 가능성을 논의하기 시작했다. 2009년 당시에는 별다른 문제가 없는 것으로 판명됐으나 많은 사실이 드러났다.

조사원들이 가장 집중한 부분은 <디아블로>의 게임 파일을 리버스 엔지니어링하여 별도의 맵 생성 도구를 만든 것이다. 이를 통해 게임에서 생성될 수 있는 수십억 개의 '시드'(난수)로 게임의 맵 배치, 아이템 분포, 퀘스트 배치를 테스트할 수 있게 했다.

이들이 프로그램으로 조사한 결과, 동영상처럼 '나즈의 수수께끼'를 특정 위치에서 곧바로 획득하는 시드는 게임 내에서 생성되지 않았다. 저장 파일 수정 도구를 사용해 2038년 이후의 시드를 강제로 지정해야만 겨우 생성할 수 있었다. 또한 스피드런에서 등장한 던전의 구조는 여러 시드가 조합되어야만 연속적으로 등장할 수 있었다.

이들은 해외 매체 'Ars Technica'와의 인터뷰에서 "적어도 13개의 서로 다른 게임 플레이가 합성된 것으로 보였다"고 말했다.


당시 조작을 적발한 방법에 대해 설명하는 드왕고AC (출처: 유튜브 dwangoAC)

더불어 스피드런 동영상을 분석하자 여러 가지 오류가 드러났다. 스피드런 영상에서는 메인 화면의 저작권 날짜가 1996년~2001년으로 표시되어 있는데, 이는 플레이된 <디아블로>가 2001년 업데이트된 1.09 버전임을 의미한다. 하지만 그 다음에 등장한 메인 화면에서는 <디아블로>가 1.0 버전이라고 표시되어 있으며, 동영상에서 사용한 소서리스의 무적 버그는 1.09 버전에서는 사용이 불가능하다.

그 외에도 동영상에서는 수많은 오류가 발견됐다. 이들은 논문에 준하는 분량의 별도 사이트를 만들어 스피드런 동영상의 오류를 지적했다. 음향을 분석해 음악이 부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점, 상점의 재고가 갑자기 바뀌는 현상, 획득했던 아이템이 갑자기 인벤토리에서 사라지는 문제, 시스템상 동시에 등장할 수 없는 퀘스트가 함께 존재하며 클리어까지 되어 있는 점 등 약 14개의 오류를 근거와 함께 제시했다.


정말로 다양한 분석을 통해 스피드런의 조작 여부가 분석됐다. (출처: diablo.tas.bot)


이를 통해 조사원들은 "해당 스피드런이 불법적인 수단을 활용했다는 것이 입증됐다"고 결론을 내렸다. 게임 동영상은 여러 번의 플레이를 이어 붙인 것으로 추정되며, 부록을 통해 당시 플레이어가 조작을 위해 사용할 수 있었던 여러 도구의 존재까지 밝혀졌다고 덧붙였다.

이에 스피드런을 공인했던 SDA는 요청을 받아들여 groobo의 스피드런 기록을 삭제했다. groobo 측은 "내 스피드런은 당시 '스피드런 데모 아카이브'라는 사이트에 '편집된 스피드런'(segmented/spliced run)임을 명시하고 게재했던 것이다. 다른 경쟁이나 순위표에 이 기록을 활용해 참여한 적이 없다"는 입장을 전했다.

여기서 편집된 스피드런이란 가장 '잘된 기록'만 별도로 편집해 합친 스피드런 동영상을 의미한다. 참고로 해당 스피드런의 조작 의혹이 밝혀진 것은 2024년 중순이지만, 최근 해외 매체의 인터뷰로 인해 2025년 2월 다시 화제가 된 것으로 보인다.



# 스피드런 조작? 안 하는 게 좋습니다.

게임을 가장 빠른 속도로 클리어하는 '스피드런'은 해외 게임 커뮤니티에서 보편화된 문화 중 하나다. 이를 집계하는 사이트도 있으며, 게이머가 스피드런을 하는 것을 모여 대회처럼 방송하고 수익금을 기부하는 '게이머스 던 퀵'(Games Done Quick)이라는 자선 행사도 유명하다.

다만, 스피드런을 조작해 유명세를 얻으려는 행위도 암암리에 있으며, 이를 기상천외한 분석을 통해 적발하는 사례도 많다. 가령 2천만 명의 구독자를 보유한 유명 유튜버 'Dream'의 한 마인크래프트 스피드런의 조작 적발에는 전문가가 모여 작성한 29페이지 분량의 확률 분석 자료가 사용됐다.

고전 게임임에도 여전히 스피드런 문화가 형성되어 있는 <슈퍼 마리오 64>의 경우에는 한 유튜버가 캐릭터가 눈을 깜빡이는 시간을 분석한 자료를 기반으로 스피드런 조작 여부를 판별하기도 했다. 스피드런 동영상을 음향 분석한 후 화면 전환 사이사이에 '있어야 할 사운드'가 비어 있는 구간이 있다는 점을 적발해 조작이 증명된 사례도 있다.

캐릭터의 눈 깜빡임을 분석한 유튜브 (출처: 유튜브 UncommentatedPann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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