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그 오브 레전드>(이하 <롤>)의 밴픽은 선수와 코치가 만들어내는 합작품입니다. <롤> e스포츠의 역사가 길어지면서 밴픽 역시 팬들에게 매우 중요한 요소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밴픽은 어떻게 진행되는 걸까요? 레드와 블루, 어느 진영이 유리할까요? 소위 말하는 '발 밴픽'은 왜 발생하는 걸까요? 밴픽에 대한 간단한 기사를 통해 LCK를 보는 재미가 한층 깊어지기를 바랍니다. /서준호 필자(index), 편집= 디스이즈게임 김승주 기자
본 콘텐츠는 오피지지와 디스이즈게임의 협업으로 제작됐습니다
# 밴픽의 의미와 특성
밴픽은 자신이 플레이할 챔피언을 정하고 상대방의 챔피언을 제한하는 일련의 과정입니다.
밴픽은 게임 승패에 큰 영향을 미칩니다. 챔피언 능력치 조합을 바탕으로 승패를 예측한 국내 연구가 존재할 정도죠 (김철기, 이수원. 2020). 특히 밴픽은 양 팀 간의 수준 차이가 크지 않을 때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강팀 간의 경기에서 더욱 중요합니다.
밴픽의 핵심은 챔피언의 가치를 정하는 것이며, 챔피언의 가치를 결정하는 두 축은 승리 플랜과 난이도입니다. 여기서 승리 플랜은 팀이 승리하기 위한 방향성입니다. 난이도는 그 플레이 방향성이 얼마나 현실성이 있는지를 의미하죠.
승리 플랜이 확실해야 조합의 강점이 있다고 볼 수 있으며, 난이도가 높으면 무너질 위험이 있습니다. 선수 숙련도에 따라 챔피언의 가치가 변하기도 하죠. 그렇기에 밴픽의 궁극적인 목표는 주어진 상황에서 상대보다 더 가치 있는 챔피언을 최대한 가져오는 것입니다.
(출처 : LCK)
리브 샌드박스 CL 팀에서 활동하고 있는 '레온' 송준희 선수의 말에 따르면 당연히, 성능과 메타에 맞는 챔피언이 1순위입니다. 그리고 이런 메타 챔피언이 많이 풀린 상황이라면 보통 가장 자신 있는 픽을 선점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뽀비와 오공의 성능이 좋고, 두 챔피언 모두 밴을 당하지 않은 상황이라면 선수 선호도에 따라 픽이 정해질 확률이 높습니다.
카운터 픽의 유무도 중요하죠. 현재 LJL에서 활동하고 있는 익명의 코치도 비슷한 의견을 내놓았는데요. 예를 들어 2022 MSI에서 아리는 주요 메타 픽 중 하나였습니다. 하지만, 리산드라라는 확실한 카운터가 있었기에 특별한 카운터가 없다고 여겨진 그웬이 1픽으로 더욱 선호받았습니다.
팀의 수준도 밴픽에 영향을 미칩니다. LCK나 LPL은 비교적 대다수 선수의 챔피언 숙련도가 높아, 숙련도가 높으면 카운터치기 어려운 메타 챔피언을 주로 밴합니다. 현재 메타에서는 유미, 루시안, 그웬, 제리, 시비르가 대표적이죠. 반면, 선수의 실력 차가 크지 않은 마이너리그의 경우에는 르블랑, 탈리야 등 변수가 많은 픽을 밴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 블루가 유리할까 레드가 유리할까?
솔로 랭크와 달리 프로 경기에서의 밴픽은 두 페이즈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첫 페이즈의 경우는 블루 진영이 유리하다고 평가받으며, 두 번째 페이즈의 경우는 레드 진영이 유리하다고 여겨지고 있습니다.
첫 밴픽 페이즈에서 일반적으로 블루팀이 유리한 이유는 제일 먼저 픽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원하는 챔피언을 하나 확정으로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은 매우 큰 전략적 이점을 가지고 있죠. 과거에는 블루 1픽으로 4라인 스왑이 가능했던 '세트'나 미드, 탑 스왑이 가능했던 레넥톤과 같은 챔피언이 선호됐으나, 지금은 가장 성능이 좋은 챔피언을 가져오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필자의 생각으로는 이를 바탕으로 밴픽 주도권을 잡을 수 있다는 점이 큽니다. 밴픽 주도권을 잡을 수 있는 이유는 블루 1픽에 따라 상대 레드 1, 2픽을 예측하고 대응하기 쉽기 때문입니다. 레드 진영 입장에서는 블루 진영에게 더 이상 높은 티어의 픽을 내줄 수 없습니다. 앞서 언급했듯이 가치 있는 챔피언을 얼마나 많이 가져와 조합을 꾸리냐가 중요하니까요. 따라서 레드 진영은 블루 2, 3픽을 의식한 밴픽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젠지가 루시안을 선픽하자 나미를 뺏어오고 메타픽인 오공을 가져가는 KT (8.13 경기)
이렇게 티어가 확실히 정립된 메타에서는 블루 팀이 유리합니다. 하지만, 좋은 챔피언이 많은 메타나 상대 레드 1, 2픽을 예측하기 어려운 환경에서는 블루 진영에서 밴픽 주도권을 잡기 어려워 선픽의 장점을 활용하기 어렵습니다. 또한 레온 선수에 따르면 레드 진영은 1, 2픽으로 루시안+나미, 리 신+르블랑과 같이 강력한 조합을 확정적으로 가져올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고 합니다.
두 번째 밴픽 페이즈는 레드 진영에게 유리하게 설정되어 있습니다. 두 번째 밴 페이즈가 끝난 직후 제일 먼저 챔피언을 선택하고, 마지막 픽을 결정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론상 남은 챔피언 중에서 가장 좋은 선택지를 가져오고 상대 조합을 카운터 칠 수 있는 챔피언까지 가져올 수 있죠.
모든 픽은 사실 상대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충분한 밴픽을 통해 조합의 가치를 확보한 후 등장하는 레드 5픽은 블루 1픽보다도 더 가치 있는 픽이 될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레드 5픽은 밴픽 과정에서 가장 전략적인 위치를 가지고 있다고 여겨집니다.
다만, 두 번째 밴픽 페이즈는 10명의 챔피언이 밴이 된 상황이기에 첫 밴픽 페이즈보다 티어가 낮은 챔피언들이 남아 있다는 한계가 있습니다. 또한, 현직 아카데미 선수에 따르면 레드 5픽은 탑 카운터를 뽑을 때 가치가 높은데 현 메타는 탑 카운터를 치기 어려워 장점이 많이 퇴색됐다고 합니다.
# 밴픽의 대표적인 실패 사례
많은 이야기가 오갔던 2022 MSI 결승전 밴픽 (출처 : 라이엇 게임즈)
가장 일반적인 밴픽 실패 사례는 챔피언 티어를 정확히 파악하지 못한 경우입니다.
선수들과 코치 스태프들은 솔로 랭크를 통해서 챔피언들의 전반적인 성능에 대한 데이터를 얻습니다. 그리고 스크림 과정에서 챔피언들의 성능을 테스트해보기 때문에 대회에 비해서 좋은 성능을 가진 챔피언들이 더 자주 풀리는 걸로 알려져 있습니다.
즉, 챔피언의 티어는 솔로 랭크 -> 스크림(1차 팀 게임 성능 테스트) -> 실제 대회 과정을 거쳐 정립됩니다. 그리고 패치 초반에는 표본이 적고, 대회 경기와 스크림 경기의 밴픽에는 차이가 존재하기 때문에 이러한 실패 사례가 발생하는 것으로 추측됩니다. 유사한 실패 사례를 겪지 않기 위해서는 다른 팀에 비해서 데이터의 허수를 빨리 파악하는 게 중요해 보입니다.
다른 밴픽 실패 사례는 소위 '벽 밴픽'입니다. 벽 밴픽은 상대 픽을 고려하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픽만 가져오는 걸 말합니다. 이러한 특성상 벽 밴픽은 조합의 시너지, 선수들의 챔피언 숙련도 자체는 높은 경우가 많습니다. 스크림에서 자주 연습했을 조합일 가능성도 높기에 자신들이 밴픽을 잘했다고 느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벽 밴픽은 상대에게 티어 높은 챔피언들을 다수 내주거나 조합적인 카운터를 맞을 가능성이 높아 좋은 전략이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특히 이러한 문제점에서 생겨나는 높은 난이도 때문에 벽 밴픽의 장점인 조합의 시너지가 드러나지 않고 게임이 끝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벽 밴픽이 발생하는 이유는 2가지로 추측됩니다. 먼저 벽 밴픽의 높은 난이도에도 스크림에서 좋은 성적을 거뒀을 경우 발생할 수 있습니다. 이는 높은 난이도를 가진 밴픽으로도 자주 이길 수 있는 강팀에서 주로 발생합니다. 이런 경우에는 '오만한 밴픽'이라는 이야기도 많이 듣죠.
두 번째는 선수들이 메타에 뒤쳐졌을 경우입니다. 선수들이 티어가 높은 챔피언 숙련도가 낮을 경우, 어쩔 수 없이 이런 챔피언들 대신 숙련도가 높은 챔피언들을 픽하는 경우가 나타나게 됩니다.
마지막 밴픽 실패 사례는 카운터 또는 전략적 픽 실패로, 보통 특정 메타 챔피언을 카운터치려 할 때 발생합니다. 이러한 카운터 픽은 일반적으로 레드 5픽과 같이 나중에 등장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챔피언 성능이 좋으면서도 메타 챔피언의 대표 카운터로 여겨지는 챔피언은 보통 밴하기 때문에, 메타에서 조금 벗어난 챔피언이 '카운터' 역할로 등장했다가 성능 한계로 패배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최근 있었던 대표적인 사례로는 DRX의 베인 픽과 kt의 탑 리신 픽이 있습니다. 이들은 카운터 픽의 가치를 제대로 보여줬지만, 결국 성능의 한계로 게임에서는 승리하지 못했습니다.
(출처 : LCK)
벽 밴픽과 카운터 픽의 실패 사례는 전략적인 시도의 실패라고 볼 수 있습니다. 스크림과 같은 연습 과정에서 좋은 성과를 거두었기 때문에 그러한 시도를 했을 것이며, 만약 성공했을 경우엔 다음 밴픽 과정에서 큰 이점을 가져올 수 있어 반드시 부정적으로 바라볼 필요는 없습니다. 메타 챔피언을 모두 밴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상대방은 필연적으로 전 세트의 조합까지 고려해야 하기에 변수가 많아지니까요.
그러나 우틀않(우리는 틀리지 않았어)이라고 불리는 전략적 실패를 반복하는 것은 위험합니다. 그 이유는 지금까지의 사례를 봤을 때 전략적 실패를 반복했을 경우에는 좋지 않은 결과가 나온 경우가 매우 많기 때문입니다.
결론적으로 실패하지 않는 밴픽의 핵심은 선수들의 메타 챔피언 숙련도와 챔피언 폭 같은 기본적인 요소가 뒷받침을 해주면서 스크림 및 대회에서 축적된 데이터에서 의미 있는 표본을 빠르게 파악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또한 선수들이 선호하는 챔피언들을 종합하고 우선순위를 정하는 것도 매우 중요한 것으로 여겨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