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게임스컴에 한국 개발사들이 참가해 해외 게이머들에게 자사의 게임을 선보이고 있다.
눈여겨볼 점은 과거와 달리 자체 개발하던 천편일률적인 PC 플랫폼에서의 또는 모바일 MMORPG가 아닌, 글로벌 시장을 노리고 콘솔, 또는 멀티 플랫폼 타이틀을 대거 공개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게임을 선보이고 개발하는 방법도 다르다.
기존에 쌓아 온 개발 역량을 통해 게임을 만드는 회사가 있는 한편, 해외 개발사들에 대한 적극적인 투자와 자율적인 개발권 보장으로 글로벌 게임을 만드는 기업도 있다. 올해 게임스컴에서는 네오위즈, 크래프톤과 넥슨, 라인게임즈가 글로벌을 타깃으로한 게임을 선보였다.
게임스컴 2022에 한국 게임사가 출품한 타이틀을 통해 변화를 살펴보자. /디스이즈게임 김승주 기자
# 재량적인 개발 환경 부여해 해외 시장 노리는 게임 기업들
한국 게임사들이 글로벌 진출을 위해 선택한 첫 번째 방법은 해외 게임사를 인수하고, 자율적인 개발 환경을 부여하는 것이다. 먼저, 크래프톤은 2022 게임스컴에 두 타이틀을 출품했다. 산하 개발사인 '언노운 월즈'에서 개발 중인 <문브레이커>와 '스트라이킹 디스턴스 스튜디오'에서 개발 중인 <칼리스토 프로토콜>이다.
언노운 월즈는 2001년 설립된 미국의 게임 개발사다. <하프 라이프>의 모드로 시작한 협동 FPS <내추럴 셀렉션> 시리즈를 통해 이름을 알렸으며, 2018년에는 해양 생존 게임 <서브노티카>를 통해 큰 성공을 거뒀다.
언노운 월즈는 21년 10월 크래프톤에 인수됐다. 당시 크래프톤은 언노운 월즈의 지분 100%을 인수하며 "글로벌 게이머들을 위한 독창적인 경험을 만들어내자는 공동의 목표를 향해 함께 전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내추럴 셀렉션>과 <서브노티카>
실제로 언노운 월즈가 이번 게임스컴에서 발표한 <문브레이커>는 언노운 월즈가 지금껏 개발해 온 게임과는 상당히 달랐다. <내추럴 셀렉션>은 <스타크래프트> 느낌이 강하게 나는 SF FPS 협동 게임이었고, <서브노티카>는 외계 행성의 망망대해에서 생존하는 것이 목표인 게임이었다. 반면, <문브레이커>는 탁상형 미니어처 게임에서 영감을 받은 턴제 전략 게임이다. 분위기 또한 앞선 두 작품과는 다르게 코믹한 느낌이 강하기도 하다.
언노운 월즈 공동 CEO 찰리 클래브랜드는 "<내추럴 셀렉션> 이후 <서브노티카>를 개발했을 때도 급격한 변화에 사람들이 놀랐다. 이번에도 새로운 것을 시도하고 싶었다"라고 밝혔다. 보다 과감한 시도임에도, 인수한 개발사의 의지를 존중해 만들어질 수 있었던 셈이다.
크래프톤 역시 2022년 2분기 실적 발표에서 언노운 월즈에 대한 언급을 한 바 있다.
당시 크래프톤 장병규 의장은 "언노운월드의 경영진도 마찬가지고 크래프톤 경영진도 마찬가지로 매우 대중적인 성공을 거둘 수 있는 게임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얼리 액세스로 올해 출시할 예정이기 때문에 아주 큰 숫자를 예상하기엔 쉽지 않다. <배그>의 사례를 보면 얼리억세스로 론칭할 때 크게 기대를 하지 않았지만, 최근 대중의 미디어 소비 행태가 빨라서 초기에 큰 성공으로 돌아올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칼리스토 프로토콜> 역시 이러한 기조와 맞닿아 있다. <칼리스토 프로토콜>은 바이러스가 퍼진 우주 행성의 감옥에서 생존을 목표로 한 게임인데, 잔인한 표현이 여과 없이 나오는 등 상당히 잔혹한 게임플레이를 선보였다. 보통 이렇게 잔인한 게임은 '대중성'과는 거리가 멀다고 여겨진다.
그러나, 오히려 이러한 점이 글로벌 게이머 마음을 잡았다. <칼리스토 프로토콜>의 디렉터 '글렌 스코필드'는 <데드 스페이스>를 개발한 경험이 있다. 2008년 출시된 <데드 스페이스>는 잔혹한 분위기의 호러 게임임에도 불구하고 독특한 게임성과 분위기를 통해 흥행했다.
<데드 스페이스> 시리즈는 1편이 장점이었던 호러틱한 분위기가 희석되고, 액션에 집중하는 등의 문제로 3편 이후 명맥이 끊겼다. 1편을 통해 잔혹한 호러 액션 게이머를 원하는 팬들도 많다는 것을 입증했지만, <데드 스페이스> 이후로 이와 비슷한 장르의 게임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그런 와중 <데드 스페이스>의 개발자가 대거 참여하고, '정신적 후속작'이라 할 수 있는 만큼의 퀄리티를 보여준 <칼리스토 프로토콜>이 등장했기에 많은 주목을 받을 수 있었다. 잔혹한 표현이 여과 없이 등장하기에 '대중성'이 부족해 보여도, 오히려 이런 점을 통해 관심을 받을 수 있었던 셈이다.
넥슨도 마찬가지다. 역시 스웨덴 개발사 '엠바크 스튜디오'의 지분을 인수해 자회사로 편입하고, 자율적인 개발 환경을 부여함으로써 글로벌 시장을 노리고 있다. 엠바크 스튜디오는 자신들의 장기를 살린 팀 대전 FPS 게임 <더 파이널스>를 이번 게임스컴에서 공개했다.
엠바크 스튜디오는 2018년 <배틀필드> 시리즈를 개발한 다이스(DICE) CEO 패트릭 쇠더룬드(Patrick Söderlund)와 개발자 요한 안데르센(Johan Andersson)이 함께 설립한 스튜디오다. 그만큼 슈팅 게임에 조예가 깊다.
# 자체 개발 통해 글로벌 시장 노리는 신작들
글로벌 진출을 위해 해외 개발사의 개발 역량에만 의존하는 것은 아니다. 자사가 개발한 새로운 시도의 게임을 통해 글로벌 시장을 노리는 게임사도 있다.
이번 2022 게임스컴에 출품된 게임을 들자면, 넥슨게임즈에서 개발 중인 <퍼스트 디센던트>가 있다. 2022 게임스컴에서 트레일러를 공개한 <퍼스트 디센던트>는 슈팅에 RPG를 결합한 '루트 슈터' 장르를 표방한 게임이다.
상대방을 총으로 쏘는 '액션'이 강조되면서도, RPG처럼 강한 등급의 무기를 모아야 하는 루트 슈터 장르는 개발 및 라이브 서비스에 어려움이 많아 잘 시도되지 않는 장르다. 가령 프랑스의 유비소프트가 <더 디비전> 시리즈를 통해 루트 슈터 장르를 시도했지만, 좋은 초반 흥행에도 불구하고 파밍 난이도와 콘텐츠 소비 속도 조절에 실패하면서 유저가 대거 이탈한 사례가 있다.
하지만, 루트 슈터 장르는 확실한 수요층을 가진 장르다. 대표적인 루트 슈터 게임인 <데스티니>와 <워프레임>은 늘상 스팀 동접자 수에서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다. 개발이 어려워 다른 게임사가 꺼리는 장르일지라도, 제대로만 만들면 흥행할 수 있는 가능성이 확실하다.
라인게임즈가 온라인 출품한 <퀸텀 나이츠> 역시 루트 슈터 장르의 게임이다. 마법과 총기가 조화된 중세 판타지 오픈월드를 배경으로 하고 있으며, 슈터의 전투 메커니즘과 경쾌한 이동 시스템 등이 결합된 스타일리시한 전투로 차별화를 줄 계획이다.
'가장 기대되는 PS 게임상'을 통해, 국내 개발사 최초로 게임스컴 2022에서 수상한 네오위즈의 <P의 거짓>도 이와 비슷하다.
<P의 거짓>은 소울라이크 액션 게임이다. 소울라이크라는 장르는 일본의 프롬 소프트웨어가 개발한 <다크 소울> 시리즈에서 비롯했다. 소울라이크라는 장르의 특징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핵심 중 하나는 탐험에 대한 재미와 어렵지만 '불합리'하지 않은 난이도다. 그렇기에 개발이 쉽지 않고, 소울라이크를 표방했으나 큰 흥행까지는 이어지지 못한 게임이 많다.
그럼에도 네오위즈 산하 개발사 '라운드 8' 스튜디오는 뚝심 있게 개발에 매진했고, 소울라이크를 표방하되 자사가 쌓아 온 액션 게임 역량을 적절히 녹여내면서 2022 게임스컴에서 가장 주목받는 게임이 되는 데 성공했다. 기존 소울라이크 장르의 느낌을 유지하면서도, 액션과 타격감, 무기 개조 시스템에서 인상을 줬다는 평가다.
# 국내 기업의 이번 게임스컴 참가, 어떤 의미가 있을까?
즉, 앞서 언급한 게임은 기존의 국내 개발사였다면 시도되기 어려웠을 게임이다. 하지만 한국 게임사들도 글로벌 시장을 위한 '변화'의 필요성을 느끼고 있고, 분명한 리스크가 있음에도 아낌없는 투자를 통해 좋은 결과물을 보여주고자 노력하고 있다.
물론, 성공 여부는 게임이 출시되어야 알 수 있겠지만, 2022 게임스컴에서 국내 개발사의 신작이 해외 게이머에게 관심 받고 있다는 사실은 출시 전 단계에서는 이러한 시도가 어느 정도 성공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고 평할 수 있다.
또한, 단순히 해외 시장을 노린 시도라고 만 볼 수도 없다. 어릴 때부터 다수의 해외 게임을 접해온 세대가 주류 소비자층으로 발돋움하면서 다수의 국내 소비자의 취향 역시 바뀌어가고 있다. 해외 게임에 더욱 익숙한 이들은 기존 국내 개발사들이 안주해 온 천편일률적인 MMORPG에 반감을 가지고 있으나, 확실히 글로벌 니즈를 충족할 수 있는 국산 게임이 나온다면 누구보다 든든한 지원군이 될 수 있는 소비자층이다.
시도 자체로도 주목할 만하다. 단순히 변화의 바람이 불었다고 해서, 글로벌 시장을 노린 국산 콘솔 게임이 반드시 흥행하리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적극적인 개발 시도와 해외 게임사 투자를 통한 자율적인 개발권 보장, 해외 개발사와 국내 개발자의 적극적인 교류를 통해 콘솔 게임 개발 역량을 차차 갖춰 나갈 수 있다면, 언젠가는 한국 역시 글로벌 게이머가 주목하는 진정한 게임 강국으로 발돋움할 가능성이 있다.
2022 게임스컴은 이러한 국내 개발사의 게임 개발에 대한 변화의 흐름을 확인할 수 있는 장소였다. 이러한 변화의 바람이 '좋은 결과물'로 이어질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