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그러니까 2021년은 넥슨에 빙하기였다. 빙하기가 온 이유는 서릿발 같은 넥슨의 게임 이용자들에게 받은 매서운 질타였다. 이용자들은 온라인 커뮤니티에 '드러눕는' 것보다 훨씬 강력한 방법을 채택했다.
손수 돈을 모아 넥슨을 규탄하는 트럭을 보낸 것이다. 2021년 <마비노기>를 시작으로 <바람의나라: 연>, <클로저스>, <마비노기 영웅전>에까지 트럭 시위가 번졌다. 게임마다 유저들의 목소리는 조금씩 달랐지만, 넥슨의 각성을 촉구하는 뜻만은 모두 같았다.
특히 확률형 아이템에 대한 문제가 발견됐던 넥슨의 MMORPG <메이플스토리>에 관한 논란이 가중되면서 성명문과 집단 불매 운동이 전개되기도 했다. 2021년 1월 기준 5.08%였던 <메이플스토리>의 PC방 점유율은 1.84%(9위, 2021/4/7)까지 떨어졌다.
개학·개강과 코로나19의 영향을 무시할 수 없겠지만 <메이플스토리>를 향한 유저들의 '민심'이 부정적이었던 것만은 분명하다.
트럭시위 사태가 여러 간판 게임에 번지자, 넥슨은 특단의 조치에 나섰다. 2021년 3월, 넥슨은 자사 모든 라이브게임의 확률 정보를 공개하기로 결정했다. 이 확률에는 일반적인 뽑기(랜덤박스) 형태뿐 아니라 문제가 된 강화, 합성 등의 확률도 오픈하기로 했다. 유저들이 관련 정보를 모니터링할 수 있게 하겠다고 약속했다.
이뿐 아니라 넥슨은 전무후무한 14시간 마라톤 간담회(마비노기)를 비롯 소통에서의 개선 의지를 선포했다. 넥슨은 다른 게임에도 연이어 간담회를 개최하면서 서로의 '공생 관계'를 확인하려 했다. 트럭시위 사태 이후, 넥슨이 “떳떳한 게임을 만들겠다”라고 선언한지 대략 1년 반이 흘렀다.
검증을 할 만큼 시간은 흘렀다. 정말 넥슨은 달라졌을까? 달라졌다면 어떻게 달라졌을까?
이 변화는 성난 유저를 잠재우기 위한 일시적인 웅크림일까, 장기적인 안목에서 진행되는 마스터 플랜일까? 디스이즈게임은 넥슨의 변화에 대해 알아보고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확인하기 위해 넥슨과 현장, 그리고 유저의 목소리를 들었었다. 그리고 이를 4차례에 걸쳐 기사로 전달해 드리고자 한다.
[TIG 특별 기획] "넥슨이 달라졌습니다" 그걸 어떻게 믿죠?
ⓛ 모든 확률 공개, 케이크 '뚝딱' 먹는 강원기 디렉터... 진심은 통할까?
② PC방 인기 되찾은 넥슨, 댓글은 비난에서 응원으로... (바로가기)
③ 다시 뛰는 넥슨, 그 심장은 라이브본부 - 최원준 본부장 (바로가기)
④ 트럭 보냈던 코어 유저의 목소리, "게임 민심 긍정으로 바뀌었다" (바로가기)
원래 넥슨에서 라이브게임은 '라이브 개발 본부'에서 총괄하고 있었다. 2021년 9월, 넥슨은 서비스 전담 조직으로 라이브 서비스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기존 조직에서 '개발'이라는 명칭을 떼어내고 '라이브본부'로 개편했다. 기존 조직이 개발 중심이었다면 개발을 떼어내고 유저와의 소통을 강화하기 위한 일종의 커맨드센터로 운영하겠다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기본적으로 라이브본부는 넥슨의 주요 라이브게임 서비스를 담당한다. 사업, 마케팅, 퍼블리싱, 웹기술, 글로벌사업 조직이 모두 하나의 본부 아래 뭉쳤다. 넥슨은 라이브본부 출범 배경에 대해서 "과거 라이브 서비스의 퀄리티가 ‘좋은 업데이트를 개발하는 것’에 집중되었다면, 시대가 변화하며 높아진 이용자들의 눈높이에 맞추기 위해 ‘통합적 사고와 유기적인 행동력’을 실천하고자 변화를 꾀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넥슨의 설명을 요약하자면, 신규 업데이트 개발과 더불어 기존 콘텐츠를 다듬고, 브랜드 이미지를 긍정적으로 만드는 곳이 라이브본부다. 관계자는 "감동적이고 시의적절한 CS 응대에도 집중하고자 ‘개발’이라는 단어를 과감히 떼고 ‘라이브 서비스 퀄리티를 향상시키는 모든 것’을 이뤄내는 통합 조직 ‘라이브본부’를 구성했다"라고 부연했다.
넥슨에게는 게임마다 수십 년이 넘는 라이브 서비스 경험이 있다.
넥슨은 이 경험에 새로운 시대 변화에 맞춘 경쟁력을 도입해 생존력을 끌어올리겠다는 복안이다. 넥슨은 새로운 조직 라이브본부의 구성을 통해서 "10년, 20년 미래를 향해 더 나아가기 위한 비전을 세우고, 미래를 이끌 새로운 근간을 마련하려 한다"라고 공언했다.
그럼 이 라이브본부가 실제로 하는 일은 무엇일까? 그리고 이를 통해 넥슨은 어떻게 변화를 꾀했고 그 변화는 어떤 결과를 가져왔나 하나씩 살펴봤다.
2021년 3월 5일, 이정헌 대표가 직접 라이브 게임들의 확률형 아이템 정보를 공개하겠다고 선언했다.
다양한 경로로 분출된, 확률 정보 공개에 대한 유저의 요구를 수용하겠다는 뜻이었다. 이정헌 대표는 유저들에게 소통의 부재로 소중한 신뢰가 흔들렸음을 인정하며 투명한 운영을 약속했다. 이에 넥슨은 자사가 서비스하는 전(全) 라이브 게임에 ‘누구나 보다 쉽고, 편리하게 접근할 수 있다’라는 대원칙을 수립했다.
넥슨은 선언 즉시 기존에 공개해온 유료 캡슐형 아이템 확률 정보를 공개했다. 여기에 더해 한국 게임업계 최초로 유료 강화/합성류 콘텐츠, 유료 및 유·무료 혼합형 확률 콘텐츠까지 그 정보를 열었다. 이는 당시 게임산업협회에서 시행 중인 자율규제의 확률 공개 수준을 넘어선 것이다.
넥슨 관계자는 "전체 라이브 게임에 각종 확률 정보를 상세하게 공개하면서 투명한 운영 약속을 지켜 나가고 있다"라고 자신했다. 2021년 3월 5일 <메이플스토리>를 시작으로 넥슨 게임의 확률 정보는 열리기 시작했다.
2022년 현재 넥슨의 거의 모든 게임에서 확률 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그 확률을 어떻게 믿을 수 있나?'라는 꼬리표는 지워지지 않았다. 한번 흔들린 신뢰는 쉽게 회복하지 못했다. 그 신뢰를 회복하기 위한, 확률을 모니터링할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했다. 2021년 12월 23일, 넥슨은 국내 최초로 확률 검증 시스템 '넥슨 나우'를 도입했다.
'넥슨 나우'란, 게임 내 각종 확률형 콘텐츠의 실제 적용 결과를 1시간 단위로 집계해 누구나 쉽게 조회할 수 있는 시스템이다. 유료 및 유·무료 요소가 결합된 캡슐형, 강화형, 합성형 콘텐츠 등의 포괄적 확률 요소들이 제대로 작동하는지 설정 확률과 실제 결과 데이터를 비교할 수 있다.
'넥슨 나우'는 개별 게임 홈페이지 메인 메뉴를 통해 접근 가능하며, 모든 게임마다 동일한 위치에 배치해 어떤 게임을 이용하더라도 손쉽게 찾을 수 있다.
넥슨 인텔리전스랩스는 "넥슨은 하반기 중 이용자가 직접 확률 데이터를 확인하고 스스로 확률 정보를 검증할 수 있는 오픈 API 도입을 준비하고 있다"라고 이야기했다. 인텔리전스랩스는 인공지능(AI) 원천 기술을 갖춘 분석 조직이다.
새로운 라이브 서비스 전담 조직을 세우고, 거의 모든 게임의 확률 정보를 공개하고, 이를 모니터링하는 시스템을 내놓았다. 넥슨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넥슨은 자사 게임의 디렉터를 사무실 밖으로 끌어냈다. '책임운영'의 기조를 세우며 승부수를 뒀다.
<메이플스토리>의 강원기 디렉터, <피파 온라인 4>의 박정무 그룹장, <던전앤파이터>의 윤명진 총괄 디렉터가 정기적으로 진행하는 쇼케이스에서 더 나아가 격식을 차리지 않고 친근하게 이용자와 상호작용할 수 있는 라이브 방송까지 다양한 채널을 활용한 밀착 소통을 이어 나가고 있다.
게임의 책임자들이 유저 전면에 나서 소통을 진행하자, 날선 비판의 대상이었던 디렉터들은 사람 대 사람으로 보였다. 이용자 앞에 나서는 것을 다소 기피했던 개발진은 책임을 지는 모습을 보이기 위해 카메라 앞에 섰다. 이에 몇몇 디렉터들에게는 긍정적인 반응은 물론, 팬덤까지 형성됐다.
쇼케이스 방식에도 많은 변화가 생겼다. 약 1시간 동안 업데이트 계획을 핵심적으로 발표하고 무대 이벤트에 그쳤던 일방적 정보 제공 방식에서 벗어나, 긴 시간이 걸리더라도 업데이트의 기획 의도를 구체적으로 밝히고, 이용자들이 궁금해하는 질문에 상세히 답변하며 상호작용하는 방식으로 만족도를 끌어올리고 있다.
기존에는 이용자들이 의견을 표출할 수 있는 공간이 폐쇄적이고 제한적이었다. 이런 이유로, 게임에 대한 의견을 제시해도 어떻게 게임에 반영되는지, 게임사에서 확인은 했는지 알 수 없어 소통에 답답함을 느꼈던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넥슨은 이러한 점을 대대적으로 개선하고자 게임 홈페이지 내 알림판을 개설하고 이용자들이 제시한 의견과 진행 상황을 공개하고 있다.
<메이플스토리>는 지난 1월 ‘메이플 알림판’을 개설해 스킬, 치장, 아이템, 보스/사냥, 시스템, 운영, 서비스 등 총 10가지 분야에서 이용자 피드백을 받고, ‘완료’, ‘검토’, ‘상시’, ‘예정’ 등 4가지로 구분하여 적용 상태를 안내하고 있다. 유입된 건의사항만 504건에 달하며, 7개월 동안 310개(2022/8/4 기준)의 건의사항을 게임 내 반영하며 개선에 힘쓰고 있다.
넥슨 관계자는 트럭시위와 연이은 간담회를 통해서 "넥슨은 이용자들의 의식 변화, 미처 파악하지 못한 변화의 흐름, 이용자들의 궁극적인 니즈를 정확하게 깨닫는 계기가 됐다"라고 회고했다. 이어 "이용자들은 직접 시간과 애정을 들인 게임이 보다 나은 방향으로 발전하고, 부족한 부분들을 개선해서 오랜 기간 서비스되길 진심으로 바라고 있었던 것"을 배웠다고 고백했다.
이상의 내용을 통해서 '넥슨이 전에 없던 뭔가 하고 있다'는 부분에 대해서 알아봤다. 이러한 변화는 실제로 유저들의 반응을 얻을 전환점이 되었을까? 넥슨을 향해 날을 벼르던 유저들은 넥슨의 진심에 반응했을까? 라이브게임의 품질 개선은 이루어졌을까? 정말로 소통은 빛을 보고 있는 걸까?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