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뉴스에 비해 코로나19 일일 확진자 수를 이전만큼 많이 신경 쓰지 않게 된 요즘이다. 코로나19 같은 감염병이 풍토화해 일반 감기나 계절 독감처럼 주기적으로 나타나고 감염되더라도 치명률이 낮아진 현상을 일컫는 '엔데믹'이라는 말도 이젠 익숙하다.
팬데믹은 누군가에겐 끝없는 터널이었겠지만, 게임업계는 날개를 단 시기였다. 이제 호시절은 다 지나간 것일까? 마스크를 벗으며 희망을 찾은 이들과 달리, 게임업계엔 오히려 매서운 찬바람이 불어오고 있다.
코로나19 유행이 시작됐던 2020년, <모여봐요 동물의 숲>이 끌었던 선풍적 인기를 기억할 것이다. 당시 닌텐도 스위치 또한 품귀 현상을 보이며, 정품 가격의 3~4배를 주고도 구하기 어려웠다. 한정판이 아님에도 닌텐도 스위치 <모여봐요 동물의 숲> 에디션은 정가 36만 원보다 두 배 이상 비싼 76만 원에 거래되기도 했다.
2022년에는 '포켓몬 빵'이 또 하나의 사회 현상으로 부상했다. 구매력이 있는 세대가 과거의 추억을 산다고만 해석하기엔 포켓몬 빵을 구하기 위해 새벽부터 순회를 도는 사람들의 행렬은 쉽게 볼 수 없는 특이한 모습이었다.
게임업계는 일명 '코로나 특수'를 누리며 아케이드 게임을 제외한 모든 분야에서 큰 성장세를 보였다. 특히 코로나19가 창궐하기 이전인 2019년과 직후인 2020년 사이에 가장 큰 차이를 보였다. 아래는 한국콘텐츠진흥원의 '대한민국 게임백서' 내용을 참고해 코로나19 전후 게임 영역별 전세계 시장 규모를 정리한 그래프다.
2019년에서 2020년 사이 모바일게임은 22.4%, 콘솔 게임은 14.6%, PC 게임은 5.4%나 성장했다.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모바일게임은 2020년 글로벌 시장에서 893억 달러(약 116조 원) 규모를 달성했다.
그러나 엔데믹이라는 단어가 고개를 들기 시작한 2022년부터 이런 성장세는 꺾이기 시작했다. 앱 설치 건수, 유저 수, 매출이 줄어드는 현상을 피하기 어려웠다. 대형 신작의 부재와 여가 생활의 재개, 금융 위기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고 분석된다.
미국에서는 2022년 1분기 모바일 게임 매출이 10%나 감소했고, 대한민국에서는 코로나 특수로 급등했던 게임사 주가가 2022년 들어 반토막 난 경우도 적지 않았다. 2021년 2월 100만 원을 돌파했던 엔씨소프트 주가가 2022년 6월 37만 원대로 떨어진 사례가 대표적이다.
2023년 3월 13일 발표된 센서타워의 집계를 보면 한국 모바일게임 시장에서 2021년은 팬데믹 이전인 2019년보다 45%나 증가한 58억 달러의 연간 소비자 지출을 기록한 해였다. 하지만 엔데믹으로 들어서면서 2022년부터는 한국 모바일게임 전체 수익이 하락세를 보였고 10% 하락한 53억 달러(약 7조 원)의 수익을 내는 데 그쳤다.
다운로드 수에서도 역성장이 눈에 띈다. 2022년 한국 모바일게임 시장 다운로드 수는 전년 동기 대비 5.2% 하락해 5.2억 회에 그쳤다. 장르별로는 액션 장르와 위치기반 AR 장르를 제외하면 모두 다운로드 수가 감소했으며, 특히 레이싱과 스포츠, 슈터, 하이퍼캐주얼 장르가 모두 20% 이상 줄어 감소세가 두드러졌다.
이 중에서도 인앱 광고 수익 의존도가 높은 하이퍼캐주얼 장르는 플랫폼이 사용자 데이터 추적을 제한하면서 광고 수익이 감소해 다운로드 수 감소와 함께 이중으로 타격을 입었다.
언택트 시대가 오면서 게임업계 외에도 앱 개발, 서버 개발 등 다양한 분야에서 개발자를 구하다 보니, 개발자들의 몸값은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인력을 놓치지 않으려면 연봉을 인상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이어지면서, 여러 기업들은 연봉 인상 레이스에 들어섰다. 다시 말해 같은 금액으로 이전과 같은 아웃풋을 얻기가 어려워진 것이다.
반면, 연봉 인상 레이스에 합류하기 어려운 실정의 회사들은 반대로 개발자들을 놓치며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회사가 제시한 연봉과 개발자들이 원하는 조건이 맞지 않았던 것이다.
금융감독원 공시자료 중 분기 보고서를 보면 팬데믹 기간 동안 1인 평균 급여액이 얼마나 늘었는지 확인할 수 있다. 펜데믹 이전인 2019년 9월에 비해 2022년 9월까지 넷마블을 제외한 엔씨소프트, 카카오게임즈, 크래프톤 등 국내 주요 게임사들의 급여는 모두 늘었고, 전체 평균을 비교해보면 3년 사이 36% 증가했다. 같은 기간 전체 직원 수와 평균 근속 연수 모두 대체로 늘었다. 급여를 주는 회사 입장에서는 부담이 늘어난 것이다.
여기에 우크라이나 러시아 전쟁의 장기화, 국제 경기 침체, 고금리·고물가·고환율 3고 현상까지 지속되면서 상황은 악화됐다. 특히 중소 개발사 및 인디 팀은 높아진 금리 때문에 대출까지 부담스러워지면서 인재 채용뿐만 아니라 개발 자금 확보까지 어려움을 겪게 됐다.
지난 1월 취재 당시 자라나는 씨앗 김효택 대표는 "이자 부담도 큰 상황에서 대출도 쉽지 않으니, 이런 시기에는 내실을 강화하고 회사 규모를 함부로 키우지 말아야 한다"며, 어려운 상황에 "인원 감축이 인디 씬에서도 점차 현실이 되어 가고 있다"고 전했다.
글로벌 기업들도 마찬가지다. 신규 채용을 동결하거나 기존에 있던 인원을 줄여 비용을 통제하면서 몸집 줄이기에 들어섰다. 2022년 트위터는 3,700명(전체 직원의 50%), 메타는 11,000명(전체 직원의 13%)을 감원했다. 2023년 1월 들어 아마존은 18,000명, 마이크로소프트(MS)는 10,000명, 유니티는 284명을 해고하겠다고 밝혔다. 2월에는 메타가 작년에 이어 또다시 수천 명 규모의 구조조정을 진행한다고 알렸다. 꽃이 지니 세찬 바람이 불고 있다.
작년 말 카카오는 재택근무를 폐지하고 3월부터 사무실 출근을 우선하는 '오피스 퍼스트'를 적용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반발하며 카카오 직원 절반 이상이 노동조합에 가입했다. 카카오 노조는 2018년 당시 100명에 불과했고 2022년에도 가입률 10%에 불과했지만, '오피스 퍼스트'를 발단으로 노조 가입률이 급등한 것이다.
단순히 재택근무에서 사무실 출근으로 근무 형태가 바뀐 것뿐만 아니라 "2022년부터 1년 사이 근무제도를 네 차례나 일방적으로 바꾼 것이 문제"였다고 당시 서승욱 카카오지회장은 밝혔다. 이와 유사하게 여가 플랫폼 야놀자도 2월 28일 "엔데믹 시기를 맞아 좀 더 효율적인 소통을 위해 사무실 근무와 원격근무를 상황별로 병행할 것"임을 알렸다.
IT·게임 특성상 이직이 잦고 성과주의가 강해 판교는 '노조 불모지'로 불리곤 했다. 하지만 2018년부터 네이버, 넥슨, 스마일게이트, 카카오 등 IT 대기업들이 노조를 출범하며 조금씩 목소리를 높여왔다. 지난 2월 21일 넥슨은 노사 합의 내용을 공개했고, 기본급과 수당을 올리고 복지를 확대했다고 전했다. 하지만 코로나19 유행 이후 진행된 재택근무는 사측의 반대로 완전히 종료됐다.
2월 17일, 액티비전 블리자드의 QA테스터 직원 두 명은 주 3일 이상 출근을 의무화하며 사무실 복귀를 하라는 액티비전의 정책에 반발했다가 해고됐다. 당시 일부 직원들은 코로나19 노출 증가, 통근 시간 연장, 비용 증가 등을 이유로 들어 재택근무에 반대했었다. 미 통신근로자노동조합(CWA)는 이 사건을 보고 당국에 고발했다. "직원들은 부당한 대우에 직면했을 때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액티비전 블리자드는 2명의 직원이 반발하는 과정에서 '비방'이 있었다며 "회사에서 목소리를 낼 수 있다고 해서 동료들을 괴롭히거나 비방할 권리를 갖는 것은 아니다. CWA에 이를 옹호하는 데 실망했다"고 했다.
노동조합이 꾸려진 게임사에서는 노조 측에서 기존 재택근무를 유지하거나, 응용하는 방편을 제시하고 있는 곳이 많으나, 사측은 이를 쉽게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거리두기가 사라지고 방역 수칙이 완화되면서 게임쇼 및 각종 행사가 오프라인으로 다시 돌아온다. 2023년 GDC(Game Developers Conference), E3, 도쿄 게임쇼, 차이나조이, 블리즈컨, 게임스컴, 지스타 등 다수의 게임쇼와 행사들이 오프라인으로 진행될 것임을 알렸다.
독특한 점은 팬데믹 시기 온라인 행사를 경험해본 이후 유저들의 반응이 이전과는 달라졌다는 것이다. 절대다수의 유저가 오프라인 행사에 대한 그리움과 애정을 보일 것이라 예상했지만, 해외 커뮤니티 반응을 보면 적지 않은 유저들이 "온라인 행사로 진행하던 것도 나쁘지 않았다"고 말한다.
미국처럼 국토가 넓은 나라에서는 "오프라인 행사를 하더라도 한 번 가는 것 자체가 부담스럽다"는 것도 하나의 요인으로 꼽혔지만, "오프라인 행사 자체가 큰 의미가 없다"는 의견도 있었다. 당장 E3 2023만 해도 MS, 소니, 닌텐도 대형 3사는 불참하는 상황이고, 게임쇼를 찾아가서 열기를 느낄만한 대형 신작이 적다는 것도 원인으로 지적됐다.
MS는 Xbox 게임 쇼케이스를, 소니는 PS 쇼케이스와 스테이트 오브 플레이를, 닌텐도는 닌텐도 다이렉트를 독자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이런 트렌드가 팬데믹 시기와 완벽하게 맞물리진 않지만, 물리적인 구심점이 사라지면서 오프라인 행사가 지니고 있던 구속력이 더 약해졌다고 볼 수 있다. 일각에선 게임사들의 개별 행사가 성장할수록 여러 게임사가 공동으로 참여해 진행하는 기존 행사들은 앞으로 점점 힘을 잃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엔데믹 이후 게임업계에서 나오고 있는 여러 현상과 분석은 모두 일관되게 어두운 미래를 점치고 있다. 새로운 변수를 만들어내지 못한다면 앞으로 다가올 위기 국면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과연 남은 2023년은 게임업계에 있어 어떤 시간으로 기록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