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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메카닉 RPG와 두 게임사 대표의 사라진 '우애' ①

엔틱게임월드와 이엔피게임즈 사례로 보는 게임 업계의 단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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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석(우티) 2024-02-07 13:39:10
우티 (김재석 기자) [쪽지]
[스토리텔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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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카닉 RPG와 두 게임사 대표의 사라진 '우애' ①

엔틱게임월드와 이엔피게임즈 사례로 보는 게임 업계의 단면

우리는 재미를 찾으려 게임을 한다. 하지만 그것이 업인 사람들에게 게임은 생계유지 수단과 같다. 


그리고 우리는 알고 있다. 밥벌이는 마냥 재밌지 않다. 손쉽게 깔고 지우는 게임에 누군가의 밥줄이 걸려있다고 생각하면 어떤가? 어느 업계나 그러겠지만, 이곳에서도 ​그 밥줄 때문에 치열한 다툼이 벌어지고는 한다.


오늘 기사는 그러한 부류의 이야기다. 표면적으로 비교적 작은 중소기업 간의 IP 분쟁이지만, 두 회사에게는 나름 사활이 걸려있는 승부와 같다. 끝없는 소송전의 결과, "형님 동생 사이" 같다던 두 회사 대표는 불구대천의 원수가 된 것처럼 보였다. 이는 곧 정글 같은 생태계의 한 단면이기도 하다.


<우주의 기사>(2015)




얽히고설킨 매듭을 하나씩 풀어보자.


2015년 출시된 <우주의 기사>. 메카닉 RPG로 한때 '한국판 슈퍼로봇대전'에 도전장을 던졌던 모바일게임이다. <영혼기병 라젠카>, <특수구조대 레스톨> 등 추억의 메카닉이 게임에 추가되며 한때 게이머 커뮤니티에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 게임을 만든 곳은 엔틱게임월드와 그 자회사 네오그램. 부푼 꿈을 가지고 출시됐던 <우주의 기사>는 '한국형 슈로대'의 꿈을 완전히 이루지는 못했고, 게임은 2016년 2월 서비스를 중단했다.


그러나 엔틱게임월드와 <우주의 기사>의 가능성에 주목했던 회사가 있었으니, 그 이름은 이엔피게임즈다. 프로야구 중간 광고에 나오던 "밴쥐"를 기억하는가? 중국산 RPG <반지: 에이지 오브 링>은 <반지의 제왕>과 무관하지만, 그 작품이 연상되는 광고 전략으로 주목받았다. 이 게임을 국내 유통했던 회사가 이 바로 이곳이다. 이엔피게임즈는 '푸푸게임'이라는 포털을 통해 웹게임을 서비스해 오다가 2016년부터 본격적으로 <히든포스>, <더혼>, <유비전> 등의 모바일게임을 소개했다.



당시 이엔피게임즈의 모회사는 중국 상하이에 본사를 둔 37게임즈였다중국에서 열 손가락 안에 꼽히던 게임사로 게임포털 '37.com'을 운영하며 그 입지를 다졌다. <서유두신>, <경천동지>, <전기패업> 등의 웹게임으로 연 매출 1조 원 이상을 달성한 적 있다. '뮤' 등 한국 IP로 재미를 본 곳으로 위메이드와의 '미르의 전설' IP 분쟁으로도 유명하다.


2015년 중반, 37게임즈는 웹게임으로 벌어들인 현금을 해외 시장 개척에 쓴 것으로 보인다. 이들은 2015년 6,350만 달러(약 740억)​를 들여 <킹오파>, <메탈슬러그>의 SNK플레이모어 지분 81.25%를 ​획득한 적 있다. 한때는 온페이스게임즈와 함께 FPS 게임을 만들겠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중국의 37게임즈가 이엔피게임즈에 투자한 것도 이러한 움직임의 연장선이었던 것으로 평가된다.



37게임즈의 자회사였던 이엔피게임즈도 한국 시장에서 활발한 투자전에 나섰다. <카발>을 보유한 이스트소프트의 3대 주주에 올랐고, 일본 모바일게임사 아자게임즈를 인수하기도 했다. 



# 한국형 슈로대의 부활을 꿈꾸었던 두 회사


2015년 경, 이엔피게임즈와 엔틱게임월드 두 회사는 의기투합을 약속한다. (이하 이엔피, 엔틱으로 통일)


2016년 5월, 이엔피는 여러 언론사를 초청해 발표회를 열고 "모바일게임 퍼블리싱 역량을 집중해 2018년도 한국 탑10 게임사에 이름을 올리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또 이들은 "2017년 코스닥에 상장하겠다"고 공언했다. 이엔피의 엔틱 M&A는 이 무렵 논의된 것으로 보인다. 이엔피는 포트폴리오를 확보하기 위해 자체 개발력으로 <우주의 기사>를 만든 엔틱을 인수 대상으로 판단했다는 풀이를 해볼 수 있다.


당시 두 회사는 <우주의 기사>를 원형으로 하는 <로봇 히어로즈>(프로젝트 R)를 전 세계에 출시하기로 약속했다. 동시에 양사는 게임 5종에 대한 퍼블리싱 계약을 체결했다. 엔틱은 소셜카지노 게임을 ​만들어 이엔피에 공급하기로 했다.​ 또 <구원 온라인>, <판테온> 등​ 이엔피가 가진 웹게임을 엔틱측 포털에 싣는 내용이 포함됐다. 관행상 당시의 표준과 같었던 8:2, 또는 7:3과는 거리가 먼 97:3, 또는 99:1 비율의 계약이었다. 


표면적으로 보았을 때에는 다분히 엔틱에게 불리한 계약이었다. 이는 이엔피의 엔틱 인수가 전제되었기 때문에 진행된 행보로 분석된다. 이 무렵, 두 회사의 실무진은 이메일과 카카오톡을 주고받으며 M&A에 관한 논의를 상당 부분 진전시켰다. M&A 절차가 추진되고 엔틱은 투자 유치를 위해 움직였다. 2015년 9월, 엔틱은 한 VC로부터 120억 원 규모의 투자를 유치하겠다는 투자의향서를 받았고, 이엔피는 이에 동의한다.


앞서 언급했던 2016년 5월의 발표회에서 두 회사의 메카닉 RPG는 '프로젝트 R'이라는 이름으로 공개됐다. <우주의 기사>​를 그 원형으로 두었던 게임은 "근거리, 원거리 등 특정 전투에 특화된 약 200여 종의 기체를 조합해 실감 나는 전투를 즐길 수 있으며, 수동조작 시스템 지원으로 더욱 세밀하고 정교한 컨트롤이 가능한 것이 특징"이라고 소개됐다.


그러나 발표회 전부터 양사의 갈등은 싹트고 있었다. 2016년 상반기 들어 두 회사는 계속해서 게임 개발 외주, 웹게임 운영 등의 문제를 놓고 의논한다. '프로젝트 R'의 개발이 계속되고 있었지만, M&A는 지지부진했고시간은 흐르고 있었다. 이때 엔틱이 캐시플로우에서의 압박을​ 받으면서 판권료 증액 등이 논의됐던 것이 확인된다. 그러다 결국 2016년 3월, M&A 논의는 중단됐다. 37게임즈의 반대가 그 이유였다.


그로부터 1년이 흐른 2017년 3월, 엔틱측은 이엔피가 중국 모회사의 반대로 M&A를 접었는지 확인하기 위해 37게임즈의 CFO와 접촉한다. 그는 엔틱에게 '인수합병을 진행해 왔던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고, 특히 인수합병에 관한 보고를 받은 바도 없다'는 내용의 답변을 남긴다. 2018년도 감사보고서 부로 37게임즈는 이엔피의 대주주에서 내려왔다.


한때 이엔피게임즈의 대주주였던 37게임즈(Sanqi)는 현재 2대 주주로 내려왔다. (출처: 이엔피게임즈 감사보고서)


# 수년째 이어지는 두 회사의 소송전


두 회사의 퍼블리싱 계약 또한 중단됐다. VC로부터의 투자도 취소됐다. 2015년 5월부터 2016년 3월까지 두 회사는 M&A와 외부 투자 유치 등을 의논했다. 하지만 이루어진 것이 없는 상태에서 시간만 흘렀고, 두 회사의 파트너십은 완전히 무너졌다. 이제 두 회사는 서로에게 '받을 돈'이 있다며 지금껏 지난한 송사를 치르고 있다.


이엔피는 정산금 세금계산서를 근거로, 자사가 엔틱에게 받을 돈이 있다며 반환 소송을 전개했다. 앞서 알아본 게임 퍼블리시 계약에 관한 건으로 이때 맺은 계약에 미지급 정산금이 있었다는 것이다. 2017년 10월, 수원지방법원 성남지원에서는 엔틱이 이엔피에게 총 6억 6,000만 원에 달하는 정산금을 지불하라 판결한다. 엔틱은 <구원 온라인>, <판테온> 에 대한 계약이 M&A과 외부 투자 유치가 전제되던 상황에서 이루어진 것이라고 항변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원고(이엔피)와 피고(엔틱)는 <판테온>, <구원 온라인> 등의 게임에 대해서 독립 서비스 사이트 제작, 유지 보수 등을 조건으로 97:3의 계약을 체결했다.


2019년 10월에도 성남지원에서 두 회사의 계약금 반환 소송 판결이 나왔다. 이번에는 엔틱이 2억 7,000만 원에 달하는 채무를 이행하라고 판결했다. M&A가 깨진 뒤에도 두 회사는 협업 관계였는데 두 회사는 소셜카지노 게임과 '프로젝트 R'의 개발 및 유통에 대해 의논했다. 이 중 소셜카지노 게임에 대해 이엔피는 엔틱에 판권금과 MG(Minimum Guarantee, 최소 수익 배분) 명목으로 2억 5,000만 원을 지급했다. 그러나 만들기로 했던 소셜카지노 게임을 엔틱 측이 독자 출시하자 계약을 해제하며 소송을 걸었던 것이다.


두 회사 사이에 남아있는 또 하나의 관건은 <프로젝트 R>이다. 이 게임은 당초 엔틱의 자회사 네오그램에서 만드는 형태로 개발되었다. 제작 당시 프로젝트가 성공하면, 핵심 개발자들에게 주식으로 보상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내걸고 했던 조치로 보인다. 법원에서 엔틱측 채무가 인정되었고, 이 무렵 네오그램 소속 직원들은 이엔피의 밑으로 자리를 옮긴 것으로 보인다. 이엔피는 압류를 통해 <우주의 기사> 개발사 네오그램 지분 100%를 소유하게 됐다.


두 회사는 소셜카지노 게임에 대한 계약 또한 체결했는데, 엔틱측이 만들어 이엔피에서 제공할 게임을 엔틱이 단독으로 서비스하면서 계약이 결렬됐고, 그에 따라서 계약금반환 소송이 진행됐다.

이보다 앞선 2016년 4월부터 이엔피는 메카닉 RPG의 개발을 이어가기 위해 개발팀과 IP를 넘겨달라 요구해온 적 있다. 퍼블리싱 계약을 해지하고 새로운 메카닉 RPG를 개발하겠다는 제안이었다. 그러나 엔틱은 투자사의 동의 없이 IP를 넘길 수는 없다며 거절한다. 개발팀만 이엔피로 넘어간 형태로 새로운 게임이 개발되기 시작했다.



# 문제의 '메카닉 RPG' <메카스톰>

그렇게 2018년 5월 출시된 이엔피의 게임의 이름은 <메카스톰: 로봇 배틀 게임>(이하 부제 생략)이다.


이엔피가 단독으로 발표한 <메카스톰>(2018)


우리가 흔히 보는 게임 차트 상위권에 오래도록 이름을 올리는 흥행작은 아니었지만, 이엔피에게는 나름의 의의가 있었던 타이틀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구글플레이에서 현재는 퍼즈아트(PuzArt)가 서비스하는 것으로 되어있는 게임은 현재 500만 다운로드 이상을 기록했다. 


아울러 이엔피는 <메카스톰>을 닌텐도 스위치 버전으로 이식해 이숍(eShop)에 등록했다.​ 이엔피는 2019년 경기콘텐츠진흥원 오디션에 해당 게임을 출품해 10등 안에 오르기도 했다. 또 이엔피가 지분 약 31%를 가진 관계사 펜타게임은 방치형 게임 <아이들 메카스톰>을 만들어 2021년 충남글로벌게임센터로부터 5천만 원의 신작 개발 지원금을 받았다.


충남글로벌게임센터로부터 지원을 받은 <아이들 메카스톰>

엔틱은 가만히 있지 않았다. <메카스톰>이 자사가 개발하던 메카닉 RPG, 즉 <우주의 기사>와 같은 게임으로 보고, 저작권 침해 금지 소송(민사)을 제기했다. 지난해 6월, 서울중앙지방법원은 두 게임간의 실질적 유사성을 인정하며 이엔피에게 1,500만 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아울러 <메카스톰>의 플레이, 선전과 배포를 금지하며 하드디스크에서 게임 내용을 삭제하라 주문했다.


법원은 "원고 게임과 피고 게임은 게임 이용자가 로봇과 무기를 선택해 팀을 구성하고 전투하며 행성을 점령한다는 구성이 동일하다"라며 "두 게임 캐릭터는 머리가 사각형이고 가운데 큰 눈과 각 모서리에 작은 눈 4개가 있으며, 어깨 부위에 노란색 문양 7개가 있는 등 주요 부분이 유사하다"고 판단해 피고가 원고의 저작인격권(성명표시권, 동일성유지권), 저작재산권(복제권, 배포권)을 침해했다고 판결했다.


하지만 게임은 여전히 글로벌 스토어에 남아있다. 이엔피에서는 이 소송결과에 불복하고 있다. 
이엔피는 네오그램이​ <우주의 기사>를 만들었고, 지금 그 게임의 저작권은 자사가 가지고 있으니 문제가 없으며 이 맥락을 2심에서 다룰 수 있도록 살펴봐야 한다는 입장이다. 엔틱은 <영혼기병 라젠카>의 원작자와 함께 이 게임을 구성해으며, IP는 넘기지 않았다고 맞서고 있다. 또 자사가 수렁에 빠지게 된 원인을 '거짓 M&A 제안'이라며, 이엔피에 자사 게임을 탈취당했다는 주장을 고수하고 있다.


지난 1월에는 <메카스톰> IP에 대한 형사소송 첫 공판이 있었다. 이 자리에서도 두 회사의 대표는 <메카스톰>에 대한 상반된 논리를 제시했다. 


지난 1월, 서울남부지법에서도 <메카스톰> 저작권 침해에 관한 공판이 열렸다.


# "형님 동생 사이"는 어쩌다...


두 회사의 대표는 과거 업계에서의 인연을 언급하며 "형님 동생 사이"를 강조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한 몸이 되기로 약속하며 우애를 나누던 두 회사는 벼랑 끝에서 소장을 주고받는 사이가 됐다. 


양사는 서로에게 '받을 돈이 있다'며 각종의 피해를 주장하면서 서로를 겨누고 있다. 


그리고 이 분쟁에는 아직 몇 가지 의문이 남아있다.


1. 중국의 37게임즈는 정말 M&A 과정에 개입하지 않았나?

2. M&A 무산 이후에도 97:3의 계약은 왜 남아있었나?

3. 두 회사의 공판 과정 중 절차상 문제는 없었나?


(계속)

[Update 24-02-22 1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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