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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단순한 시간 낭비도 함께 하면 재밌는 거거든요"

이것도 게임일까?... 나씽류 게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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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준(음주도치) 2024-02-16 09:21:40
음주도치 (김승준 기자) [쪽지]
[흥미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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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한 시간 낭비도 함께 하면 재밌는 거거든요"

이것도 게임일까?... 나씽류 게임들

"소중한 걸 낭비할 때 가장 즐거운 법이거든"


기자보다 한 살 어린 동생이 남긴 격언 중 하나다. 말만 놓고 보면 어딘가 심보가 삐뚤어진 것 같은 냉소적인 문장이다. 하지만 곱씹어볼수록 통감한다. 돈과 시간을 포함해 많은 소유물에 적용되는 말이다. 낭비할 수 있다는 건, 그만큼 많은 양을 가지고 있다는 방증이다. 다시 말해 낭비는 곧 능력이고 일종의 과감함이다.


그러나 현대사회는 낭비를 허용하지 않는다. 특히 시간에 있어선 더더욱 그렇다. 시간은 언제나 부족하니까. 


반면, 도끼 자루 썩는 줄 모르고 신선과 바둑을 두었다는 설화처럼, 예로부터 '게임'은 시간을 죽이는 용도로 사용되어 왔다. 여기서 인과관계를 다시 생각해보자. 게임이 재밌어서 시간 가는 줄 몰랐던 것일까, 시간을 죽이는 행위 자체가 재밌었던 것일까. 최근 한 달 사이 '나씽'류 게임들은 후자에 대한 도전을 해왔다. 게임의 요구 사항은 단 하나 뿐이다. 아무 것도 하지 말 것.



# <나씽> 그리고 <썸씽>

"침묵 또한 음악이 아닌가?" 


음악가 존 케이지가 '4분 33초'를 통해 남긴 질문이다. 아무런 연주도 없이 시간을 보내다가 퇴장하는 것이 전부지만, (학교에서 배운다는 점을 차치하더라도) 우리는 '4분 33초'라는 곡의 존재를 상식처럼 알고 있지 않은가. 어떤 아이디어는 그 자체로 하나의 창작물로서 기능하기도 한다.


여담이지만, 소리 없는 음악인 '4분 33초'도 유튜브나 애플 뮤직 등에서 재생되면 저작권료가 발생한다. 일본의 경우 영리 목적으로, 관중에게 돈을 받고, 연주자에게 보수를 지급하면서 진행하는 유료 콘서트에서 '4분 33초'를 연주하면 저작권료를 내야 한다.


같은 논리를 게임에 적용해보자.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 또한 특정한 조건과 행위에 해당한다. 코끼리를 상상하지 말라고 하면 모두 코끼리를 상상하게 되듯, 그 어떤 행동도 하지 말라는 제약은 미묘한 긴장감과 도전 의식을 불러일으킨다. 


2024년 1월 11일, <나씽>이라는 게임이 스팀에 올라왔다. 앞서 기술한 것처럼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이 목적인 게임이다. 키보드 입력, 마우스 클릭 뿐만 아니라 커서 이동만으로도 '패배'하게 된다. 한 마디로 컴퓨터를 내버려둬야 하는 것. 특징이라면 '아무 것도 하지 않은 시간'을 측정해주는 타이머가 달려있다는 정도가 있겠다. 그런데, 이런 단순한 게임이 3,678개의 스팀 리뷰 중 무려 94%가 긍정적인 '매우 긍정적' 평가를 받았다.


<나씽>의 게임 화면. 메뉴도 없다. 아무 키나 누르면 '아무 것도 하지 않기'가 시작된다.

키보드 버튼을 누르거나 마우스 클릭을 하지 않고 커서만 움직여도 '패배'하며 카운트가 멈춘다.

도대체 이런 게임이 어떻게 많은 사람들로부터 긍정 평가를 받은 것일까. 애초에 이게 게임이 맞긴 할까? '심리적 공포', '헨타이', '선정적인 내용', '소울라이크', '고어' 등 <나씽>의 스팀 태그는 더욱 어이가 없다. 다분히 의도적인 어그로다. 이 터무니 없는 게임의 설명란에선 "당신이 플레이한 게임 중 가장 어려운 게임이 아닐까?"라고 언급하고 있다.


아이디어만으로 게임이 될 수 있을까? 개발력이 부족한 사람들의 핑계가 아닐까? 그건 아닌 것으로 보인다. <나씽>의 개발사는 픽셀라토로 100개가 넘는 엔딩을 가진 어드벤처 게임 <리벤처>로 유명한 인디 개발사다. 참고로 <리벤처>는 7,230개의 스팀 리뷰 중 95%가 긍정적인 '압도적으로 긍정적' 평가를 받은 게임이다. 다시 말해, <나씽>은 초심자의 운으로 얻어 걸린 게임이 아닌 의도된 기획이었다는 것이다.


픽셀라토는 스팀 페이지를 통해 플레이 영상 하나를 공유했다. 한 프로게이머가 <나씽> 24시간 플레이를 스트리밍한 콘텐츠였다.(영상은 2배속이라서 12시간 분량이다.) 이리저리 자세를 바꿔가며 '아무 것도 하지 않는 모습'은 좋게 포장하면 '명상'처럼, 나쁘게 말하면 일종의 '고문'처럼 보이기도 한다. 개발사는 "이런 양질의 콘텐츠(유저들의 도전)가 더 많아지길 바란다"고 언급했다. 



▲ 가수 크러쉬가 한국의 멍때리기 대회에서 우승했던 때가 떠오르는 것은 기자 뿐일까?



▲ <리벤처> 트레일러. 픽셀라토는 꽤 인지도가 있는 인디 개발사다.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게 다소 밋밋하다면, 이 로직마저 뒤집어보면 어떨까? <나씽>을 출시하고 이틀이 지난 1월 13일, 픽셀라토는 <썸씽>이라는 게임을 출시했다. <썸씽>은 '무언가를 계속 하는 것'이 목적인 게임으로, 키보드, 마우스 조작 등을 계속해야 타이머가 유지되는 일종의 클리커 게임이다.


<나씽>은 무료 게임으로 출시됐던 반면, <썸씽>은 최초에 100달러(약 13만 원)의 가격에 판매됐다. 이후 가격이 바뀌어 현재는 1달러(약 1,300원)에 판매 중이다.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에는 시간 외엔 비용이 필요하지 않지만, 무언가를 하는 것에는 금전적 비용도 필요하다는 비판적 메시지일까?


창작자의 손을 떠난 모든 메시지는 이용자에게서 완성된다. 당신은 이 두 게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가? '4분 33초'와 같은 전위적인 도전일까? <썸씽>의 출시까지 마친 때만 해도, 픽셀라토가 의도한 <나씽>의 여정은 끝난 것처럼 보였다.


<나씽>의 로직을 뒤집은 <썸씽>. 개발사 픽셀라토는 두 게임을 통해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었던 것일까?

# PC 안 하고 휴대폰 하면 그만인데?

앞서 소개한 것처럼 <나씽>은 게임을 실행한 PC를 건드리지 않는 게임이다. PC가 봉인되니, 플레이어는 자연스럽게 스마트폰에 손을 뻗게 된다. 기자 또한 PC로는 <나씽>을 켜두고, 손으로는 휴대폰으로 유튜브를 봤다. 그렇다면 스마트폰을 건드리지 않게 만들면 어떨까?


사실 이런 아이디어는 픽셀라토의 <나씽> 이전에도 꽤 많이 있었다.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서도 각자 스마트폰을 보는 일이 잦아지자, 이를 방지하기 위해 사용 시간을 제한하는 앱이 나오기도 했었다. 과거 본지 기사를 통해 소개했던 '포레스트'라는 앱은 가상의 나무 키우기라는 목표를 중심에 두고 스마트폰 사용을 제한했다. 성공 누적으로 얻은 인앱 재화는 실제 현실 속 나무를 기부하는 용도로 쓸 수도 있었다. 


픽셀라토의 <나씽> 출시 이후 5일 뒤, 구글플레이 스토어에는 <나씽>이라는 동명의 게임이 올라왔다. 픽셀라토의 <나씽>에서 인게임 텍스트만 조금 바꾼 카피 게임이며, 해당 게임은 바이럴 트렌드 게임즈가 유통했다. 굳이 카피 게임을 언급하는 이유는 흥행 여부가 완전히 달랐기 때문이다. 바이럴 트렌드 게임즈의 <나씽>은 구글플레이 스토어에서 500회 이상 다운로드되는 데 그쳤다. 


픽셀라토의 <나씽>은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이 중심에 있었던 반면, 앞서 소개한 '포레스트'와 같은 스마트폰 사용 제한 앱들은 휴대폰을 만지지 않는 대신, '다른 행위에 집중할 시간을 버는 것'이 목적이었다. 기획의 방향 자체가 달랐던 것이다. 


다시 말해, 현대인의 손에서 스마트폰을 (강제로) 내려놓게 하려면, 그에 걸맞는 '명분'이 필요하다. PC에서 잠시 멀어지는 것과는 그 의미가 다르다. 그러니 픽셀라토의 스팀 게임을 그대로 카피한 모바일 게임은 성공하기 어려웠다고 분석할 수 있다.


픽셀라토의 <나씽>을 카피한 바이럴 트렌드 게임즈의 모바일 <나씽>.
인게임 텍스트만 조금 다르다.

# '함께' 하면 '재미'도 있다

픽셀라토의 <나씽>은 참신한 아이디어로 좋은 반응을 얻은 게임이었지만, '재미'를 잡은 게임이라고 보긴 어려웠다. 반면, 배큠데브가 개발한 <나씽 투게더>는 다른 플레이어의 존재를 인지하게 만들면서 소탈한 '재미'까지 잡아냈다.


2024년 2월 2일 배큠데브가 선보인 <나씽 투게더>는 360개의 스팀 리뷰 중 95%가 긍정적인 '매우 긍정적' 평가를 받은 게임이다. 플레이 방식 자체는 픽셀라토의 <나씽>과 동일하지만, 싱글 플레이 외에도 다른 플레이어의 진행 상황을 볼 수 있는 '투게더' 모드와 다른 플레이어와 동일한 순간부터 게임을 시작해 더 오래 버티는 쪽이 승리하는 '배틀로얄' 모드가 추가된 것이 특징이다. 


픽셀라토의 <나씽>이 "이게 게임이 맞나?"라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면, 배큠데브의 <나씽 투게더>는 조금 더 게임이라는 보편적 이미지에 가까운 편이다. AI 번역이 추가된 것 외에도, 리더 보드를 통해 다른 사람의 기록을 확인할 수도 있고, <나씽>에는 없던 스팀 도전 과제도 17개나 있어서 소소한 성취감도 느낄 수 있었다.


결정적인 재미는 아이디 옆에 함께 표시되는 '국기'에서 왔다. 일본 유저가 4시간 24분을, 네덜란드 유저가 2시간 22분을, 오스트리아 유저가 1시간 39분을 버틴 상황을 실시간으로 보는 순간, 이들은 왜 나와 함께 시간을 죽이고 있는가-라는 생각에 헛웃음이 터져 나왔다. 시차도 있고, 사는 환경도 다른데 말이다. 세상은 넓고 시간 부자는 정말 많다. 


한 유저는 도파민 중독의 시대에 <나씽 투게더>가 경종을 울리고 있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앞서 <나씽>의 경험과 마찬가지로, <나씽 투게더>를 플레이할 때도 스마트폰은 내려놓지 못했다는 점에서, 도파민 중독에 도움이 된다는 의견에 쉽사리 동의하긴 어려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컴퓨터 앞에서 아무 것도 안 하기가 일탈이 된 세상에서, 다른 누군가의 일탈을 지켜보는 것은 분명한 재미였다. 


여러 멀티 플레이 모드를 제공하는 <나씽 투게더>. '뭔가 하기'가 게임을 끄는 버튼인 것도 소소한 개그 요소다.
게임 자체는 무료고, 테마 변경만 추가 비용이 드는 구조다.

<나씽 투게더> 인게임 리더보드. 세상은 넓고 시간이 많은 사람은 많다.

'투게더' 모드. 일본 유저의 뚝심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2월 2일 출시 이후 <나씽 투게더>는 13일째 성화 봉송을 하듯, 시간 죽이기 행렬을 이어오고 있다.
모두의 시간은 동일하게 소중하기 때문에, 이 상황이 마치 블랙 코미디처럼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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