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감사에서 e스포츠 국제표준 마련에 대한 문화체육관광부의 미진한 태도가 지적됐다. 중국이 e스포츠 국제표준 제정을 주도하려 노력하고 있지만 문체부는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있지 않다는 비판이다.
10월 24일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종합감사 문체부 장관 질의에서 민주당 강유정 의원은 “중국이 ISO(국제표준화기구)에 제출한 e스포츠 용어 국제 표준안 제안서 초안이 통과됐는데, 의원실이 말하기 전까지 문체부는 이 사실을 몰랐다”고 발언했다.
중국은 지난 1월, ISO TC83(기술위원회 83) 에 ‘e스포츠 표준화 제안서’ 를 제출했다. 이어 지난 5월 6일, TC83 소속 35 개국은 투표를 거쳐 ISO에서 이 제안서를 채택했다. 동시에 제안서에 살을 붙여 최종 표준안을 작성하는 실무그룹 WG12(Working Group12)를 만들고, 중국이 WG12 의 컨비너(의장)를 맡는 것까지 인준했다.
유인촌 문체부 장관에게 질의하는 강유정 의원
중국이 이스포츠 국제표준 제정을 주도하기 위해 전략적으로 ISO 기술위원회에 표준화 제안서를 제출하고 , 이스포츠와 관련 없는 위원회를 선택하여 새로운 실무그룹을 만들고 의장 자리까지 확보한 것이다. 이를 통해 중국은 표준안 작성 과정에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게 됐다 .
국가기술표준원에 등록된 국내 전문가 A 씨의 신분에 관련된 의혹도 제기됐다. A 씨는 지난 4월 국가기술표준원에 스스로를 추천해 국내 전문가로 등록된 인물이다. 다만 해당 인물은 중국 e스포츠 기업의 한국 지사장으로 밝혀졌다.
A씨의 발언
강 의원은 “중국 회사에 국적만 한국인인 인물이 우리 쪽 전문가로 등록되어 있다”며 “기술표준원 주도 대응회의에서 중국 편을 드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는 말을 했다”고 전했다.
더 나아가 강 의원실은 보도자료를 통해 이번 사안에서의 주무부처인 무체부의 책임을 네 가지 꼽았다.
강 의원실에 따르면 첫째, 중국의 e스포츠 국제 표준화 시도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2021년 4월 한차례 시도가 이미 있었다. 당시 도전은 실패하였으나 올 5월 재수 끝에 성공한 것이다. 그런데 문체부는 중국이 두 차례에 걸쳐 글로벌 e스포츠 장악을 시도하는 동안 이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지난 6월 초, 강유정 의원실에서 지적하자 그제서야 이를 인지하였다 .
둘째, 문체부는 이 문제를 대응하기 위한 연구 용역마저 거부하고 있다. 국가기술표준원 측에서 “중국의 도발적 행동을 막아야 하니, 우리나라에서 별도의 제안서를 올려야 한다. 문체부와 논의하여 연구 용역을 진행할 수 있도록 하겠다.” 고 밝혔으나, 정작 문체부에서는 예산을 핑계로 연구가 어렵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관련 협·단체와 공동으로 진행 시 예산 마련이 가능하기 때문에 문체부의 주장은 설득력을 잃는다. 또한 문체부는 한 언론과의 통화에서 “올해 이후 중국에서 2차 행동강령 제안서 제출 시 연구 용역을 하겠다.” 고 밝히고도, 정작 현재 진행 중인 1차 제안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었다.
중국이 제출한 표준안 통과 투표 결과
셋째, 문체부는 전문가 추가 등록조차 하지 않고 있다. 등록 전문가들은 워킹 그룹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등록 제한 수가 없기 때문에 많이 등록할수록 좋다. 이런 까닭으로 표준원에서도 “전문가들이 많이 등록할 수 있도록 적극적인 추천을 해달라.”고 문체부에 요청한 바 있다. 그러나 표준원의 요청 이후로도 단 한 명의 전문가 등록이 없는 실정이다.
넷째, 반성은커녕 타 기관에 책임을 전가하고 있다. 문체부는 이 문제가 ‘표준화’ 이슈이기 때문에 국가기술표준원 소관이고, 따라서 본인들은 모를 수밖에 없었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지난 2020년 10월 문체부 국감에서 ‘e스포츠 국제 표준을 하루속히 정립하고 중국에 대응하라.’라는 질의가 있었다.
마지막으로 강 의원은 “ISO는 일종의 기축통화 같은 것이다. 국제대회가 열리면 이걸 표준 삼아 행사가 진행된다. 우리도 독자적으로 ISO 국제표준원을 만들어 병합심사라도 받아야 한다. 그런데 문체부는 이 문제를 파악조차 못 하고 있다. 아시안게임, EWC 등 국제대회에서 이 표준안을 따르게 될 텐데, 눈 뜨고 코 베이는 셈”이라고 지적하며 질의를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