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 누구나 알지만 잘 알지는 못했던 대만의 게임씬
▶ '로스트아크' 우여곡절과 상장 후 해피툭, "인수합병 적극 고민 중"
타이베이 증시에 한국인이 창업한 회사가 상장한 건 해피툭이 두 번째다. 2004년 삼성전자 주재원 출신 이희준 회장이 세운 ‘코아시아’(CoAsia)가 상장했다. 삼성전자 반도체를 대만에서 유통하는 도매상 형태로 출발한 코아시아는 연간 1조 원 대 매출을 거둘 정도 잘 나가는 ‘한상’(韓商) 기업으로 성장했다.
엔씨소프트 주재원 출신 양민영 대표가 세운 해피툭은 올해 7월 25일 상장했다. ‘한상’으로서는 20년 만이다. 상장까지 어떤 과정을 거쳤을까? 상장을 통해 신뢰성과 자금을 확보한 해피툭은 어떤 성장을 그리고 있을까? /디스이즈게임 시몬 = 타이베이(대만)
둘 다 <로스트아크> 때문이었다. 해피툭은 2021년 5월 10일 대만 신주권 시장(新櫃, Emerging Stock Board)에 상장했다. 2022년 초 상장을 하려다 연기됐다. 2021년 7월 <로스트아크> 퍼블리싱 계약을 했기 때문이다. 증권거래소와 2023년 초 <로스트아크> 출시에 맞춰 상장하는 것으로 합의를 봤다. 하지만 2023년 초 게임 출시는 기약 없이 연기됐다. 상장도 따라서연기됐다. 이후 <로스트아크> 출시 일정과 별개로 상장 일정이 잡혔다. 해피툭은 2024년 7월 25일 타이베이 증시에 상장됐다.
[참고] ‘신주권 시장’(ESB)는 대만에 있는 독특한 시장이다. 상장을 준비하는 초기 단계 기업들이 자금을 조달하고, 상장 전 단계에서 투자자들에게 주식을 판매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며, 기업의 재무 상태와 경영 성과는 시장에서 검증받는다. 주로 기관 투자자, 고액 자산가 등이 참여하며 일반 투자자의 접근은 상대적으로 어렵다. 이런 예비 상장 제도가 있어 한국처럼 상장 뒤 ‘따따상’ 갔다가 엉망이 되는 주식이 별로 없다.
<로스트아크>는 2022년 7월부터 서비스 준비를 공식 시작했다. 스마일게이트알피지와 해피툭의 준비는 순조로웠다. 11월 CBT를 완벽하게 끝마쳤다. 대만 유저들의 기대치는 끝까지 올라왔다. 오픈 날짜 이듬해 1월 12일로 잡고, 이를 발표하는 쇼케이스를 12월 28일로 성공적으로 마쳤다.
하지만, 1월 12일 출시를 하루 앞두고 해피툭의 공지가 올라왔다.
‘좀 더 나은 서비스를 위해 출시를 연기한다.’
론칭은 기약 없이 연기됐다. 출시 전날 발표된 기약 없는 연기에 유저들은 예상과 달리 크게 동요하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 익숙한 듯했다.
유저들은 기다리면 됐지만, 투자자들은 달랐다. 신주권 시장에서 해피툭의 주가는 그 소란을 겪으며 40% 빠졌다.
우여곡절을 겪은 <로스트아크>는 약 1년 반 뒤인 2024년 5월 30일 OBT를 시작했다. 여전히 반응은 뜨거웠다. 주가도 다시 치솟았다.
많은 대만인들은 중국에 비해 늘 소외되고 손해보고 있다는 감정이 있다. 앞서 언급한 <로스트아크> 사례도 이런 사례였을까? 덕분에 해외 개발자가 찾아와 만나 주는 것에 대해 본인들이 존중 받고 있다는 정서를 느끼고 고마워 한다. 올해 1월 타이베이게임쇼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스도 이와 관련 있다. <타워오브세이비어> 부스는 타이베이게임쇼에서 가장 큰 부스 중 하나인데 무대만 덜렁 있었다. 그런데 마치 콘서트장처럼 그 앞으로 대만 게이머들이 가득 찼다. 대만 게임업계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2024년 타이베이게임쇼 '타워오브세이비어' 부스 앞.
“홍콩 개발사(Mad Head Limited)인데 매년 개발자들이 이 행사에 와요. 대만 유저들은 게임 개발자를 직접 만날 기회가 없기 때문에 이렇게 열광하는 거예요.”
양민영 대표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개발자가 유저들을 배려하고 신경쓴다는 것을 보여주면, 유저들은 그래도 이 게임은 우리를 이 정도로 생각하는구나 하고 느낍니다. 옛날에 우리나라에 <스타크래프트> 개발자 빌 로퍼가 오면 유저들이 엄청 호응했었잖아요. 대만 유저들은 아직 그런 정서가 많아요.”
이런 게이머들의 정서와 함께 양민영 대표가 대만 게임 시장을 낙관적으로 보고, 대만에서 사업을 하겠다고 생각한 이유 중 하나는 한국보다 훨씬 호의적으로 게임을 바라보는 사회적 시각이다.
콘솔 게임과 피규어 가게 등이 즐비한 타이베이역 지하상가
“게임을 하지 않더라도 게임하는 사람을 하나의 놀이를 즐기는 정도로 이해해줄 수 있는 사회적인 분위기가 너무 좋아요. 콘솔이 예전부터 들어와 있어서 그럴 수도 있겠죠. 어쨌든 대만에서 게임 사업 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좋은 터전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대만의 날씨가 지금 보면 아시겠지만 극과 극을 달려요. 여름이 덮고 습하지만, 겨울도 습해서 대만 사람들 입장에서 실외 활동 하는 걸 그렇게 꺼려요. 게임이 잘 될 수 밖에 없죠.”
하지만 대만 자체의 풀이 작은 것도 사실이다. 한국의 40~50% 사이 수준이고, 한국처럼 이미 성숙 시장에 가깝다. 상장한 게임회사로서 계속 성장하려면 이제 확장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맞습니다. 대만에 있는 다른 회사들처럼 지역을 넓히는 방향으로 가야죠. <클로저스> 때 일본에 지사를 내서 아직 한 번도 적자를 낸 적 없이 꾸준하게 서비스를 운영하며 노하우를 쌓아가고 있어요. 태국 지사를 설립한 적이 있는데, 생각보다 효율성이 떨어졌어요. 파트너십 형태로 여러 회사들가 협업을 해보려고 하고 있죠. 대행이라는 방식도 좋고요.”
해피툭은 주로 PC 온라인게임 퍼블리싱을 통해 성장해 왔다. 모바일게임의 퍼블리싱과 개발도 일부 했지만, 상장의 가장 큰 역할을 한 것은 단연 PC 온라인게임이다. 하지만, PC 온라인게임에는 몇 가지 한계가 있다.
현재 PC 온라인게임의 공급이 많이 부족해졌다. 이는 양민영 대표도 인정한다. 해피툭이 퍼블리싱한 대부분의 PC 온라인게임이 신작이 아닌 것도 그 이유다. 그럼에도 초창기 한국 온라인게임이 큰 인기를 끌었던 지역인 만큼 유효한 성과를 거둘 수 있는 IP는 여전히 남아있다.
어쩌면 IP 공급 자체의보다 콘텐츠 업데이트가 더 큰 문제일지도 모른다. 2000년대 전성기를 누리던 PC 온라인게임 개발사들이 지금은 대부분 위축된 상황이고, 먼지 쌓인 IP를 다시 꺼내 업데이트하는 게 쉽지 않을 테니까. 그래도 방법이 있지 않을까.
“기획과 개발에 대만과 베트남 게임사를 활용하는 방안도 가능할 것 같아요. 기획은 시장이 있고 유저의 니즈를 잘 아는 대만 쪽에서 하고, 개발은 비용이 저렴한 베트남에서 한다면 효율적이고 지속적인 서비스가 가능할 수 있지 않을까요?”
하지만 현재 PC 온라인게임을 즐기는 층은 상대적으로 고연령 유저가 많다. 모바일과 콘솔 등으로 젊은 유저들이 빠져나가고 있는 상황은 우려되지 않을까?
“<로스트아크>를 보면 젊은 유저들도 모여 들잖아요. 좋은 게임이 나오면 플랫폼은 상관 없는 것 같아요. 그런 게임이 잘 안 나오는 게 문제지만요.”
신작이 잘 나오지 않은 상황에서 괜찮은 IP를 확보하는 건 더 중요해질 수밖에 없다. 상장을 통해 자금력을 확보한 해피툭도 그런 의중을 감추지 않았다.
“인수합병도 당연히 해야죠. 저희가 상장을 한 이유 중 하나는 결국 자본시장에 있는 좋은 툴을 활용해서 회사 또는 좋은 IP를 아주 열심히 찾고, 그것을 개발할 수 있는 방법을 더 고민해야 할 것 같아요. 저희가 퍼블리싱 사이드에 있기 때문에 유저들의 니즈를 반영해내는 데에는 큰 강점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테크니컬한 것들은 당연히 개발 안에서 이뤄져야 하고요. 아까 언급했던 한국-대만-베트남의 삼각 협력도 좋은 방법 중 하나 같아요.”
그런데 왜 PC 온라인게임은 대만에서만 좋은 성과를 거두는 것일까? 대만 유저들은 무언가 다른 게 있는 걸까? 양민영 대표는 고개를 저었다.
“대만의 다른 퍼블리셔들은 대부분 실패했어요. 해피툭만 계속 성공을 이어가고 있는 상황이잖아요. 유저들과 지속적으로 소통하고, 신뢰를 얻고, 니즈를 반영하는 것만 하면 되는데, 그게 쉽지 않은 것 같아요. 유입된 유저들이 얼마나 오래가게 하느냐에 저희는 가장 중요한 포커스를 맞추고 있어요.”
대만은 한국과 함께 리니지라이크 게임이 성공하는 유이한 나라다. 2000년 <리니지>가 ‘티엔탕’이라는 이름으로 서비스되면서부터 그랬다. <리니지M>도 ‘티엔탕M’으로 출시돼 대박이 났다. 그래서 지난해 정말 많은 리니지라이크 게임들이 출시했지만 좋은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한국과 동시에 서비스를 시작한 <롬>과 달리 다른 게임들은 너무 촘촘하게 일정이 박혀있어서 성적을 잘 낼 수가 없었어요.”
<롬>은 해피툭이 운영과 마케팅 대행을 맡은 게임이다. 그런데 일반적인 경우와 다르다. 대부분 S급 게임들은 성공 확률을 높게 본다. 퍼블리셔 대신 직접 글로벌 서비스를 하고, 필요한 경우 운영 대행을 맡긴다. 반면 퍼블리셔는 S급 게임을 퍼블리싱하고 싶지만 그런 기회를 얻기 힘들다. <롬>도 그런 경우였다. 양사는 절충을 봤다. 해피툭도 비용을 쓰고, 수익을 어느 정도 쉐어받는 방식이다.
해피툭은 그와 함께 원스토어 대만 서비스를 맡았다. 한국 원스토어에 올리면 대만에서도 서비스가 된다. 대만 원스토어에 올려도 마찬가지만 그런 경우는 상대적으로 적을 것이다. 해피툭은 특히 리니지라이크 게임들이 원스토어를 통해 대만에 서비스되길 기대한다.
“고과금 유저들은 쓰는 돈이 워낙 많아서 결제액 페이백을 위해 원스토어를 이용하는 경우가 많잖아요. 대만에도 리니지라이크 유저가 많기 때문에 원스토어에 오를 경우 유저는 페이백을 받고, 개발사는 수수료를 적게 내는 혜택을 얻을 수 있을 거예요.”
해피툭은 원스토어 자체 뿐만 아니라, 원스토어에 오르는 게임들의 대만 운영과 마케팅 대행으로 사업 영역을 확장할 계획이다.
해피툭이 대만 최대의 퍼블리셔로 성장할 수 있었던 주요 요인 중 하나는 ‘포커스’와 ‘스피드’였다. 양민영 대표와 임원진의 빠른 의사결정은 해피툭의 최대 장점이었다. 하지만, 상장 후 해피툭은 지속적으로 권역과 사업을 확장하고 있다. 집중력이 떨어지고 의사결정이 느려질 가능성이 높다. 많은 회사들이 그런 과정을 통해 망가졌다.
“의사결정 과정을 먼저 말씀드리면 저희는 IPO를 준비하기 바로 전 단계까지는 제가 100% 경영권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의사결정이 상당히 빠른 게 큰 강점으로 작용했습니다. 상장을 통해 의사결정 과정들을 조금 단계를 만들었지만, 결국은 그게 회사가 투명해지고 또 실수를 줄일 거예요. 그 전보다는 속도가 늦긴 하겠지만, 어쨌든 지금도 그 기조를 계속 유지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50% 이상 제가 지분을 가지고 있어 다른 여러 회사에 비해서는 훨씬 더 스피디하게 의사결정할 수 있을 거예요.
지금 퍼블리셔의 모습에서 개발사의 모습도 가져가고, 모바일 운영대행도 강화하고 있지만, 순수하게 온전하게 저희는 게임 퍼블리싱, 특히 대만에서의 게임 퍼블리싱에 모든 의사결정의 제일 첫 번째 포인트를 가지고 있을 거예요. 여기서 흔들리는 모습을 보이지 않게 하는 게 저희 경영의 포인트고요. 혹 여기서 흔들린다면 다른 곳들은 상대적으로 늦춰도 된다는 입장이죠. ‘조금 느리게 커지더라도 튼튼하게 가겠다’가 저희의 미래 방식이라고 봐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7584'는 타이베이 증권거래소에 상장한 해피툭의 종목코드다.
양민영 대표에게 한국 개발사에 하고 싶은 이야기를 물어봤다.
“대만 시장에 더 관심을 가져 줬으면 좋겠어요. 한동안 관심이 공백이 너무 컸던 것 같아요. 많이 바뀌었거든요. 그리고 저희도 현지에서 좋은 성과를 내기 위해 고민을 많이 하고 있으니, 퍼블리셔들 이야기에도 귀를 기울여 주셨으면 좋겠어요. 저희도 개발사와 눈높이를 맞추려는 노력을 더 열심히 할게요. 개발사가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우리가 최대한 요구하는 게 맞을 것 같아요. 과거에 저희가 개발사에게 ‘이걸 꼭 해야지 성공합니다’고 했을 때 결과가 좋지 않았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