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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 열차 호러 '추추 찰스'… '이것이 인디다' 희망편

선택과 집중, 그리고 패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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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승언(톤톤) 2022-12-16 10:42:44
톤톤 (방승언 기자) [쪽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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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 열차 호러 '추추 찰스'… '이것이 인디다' 희망편

선택과 집중, 그리고 패기

<추추 찰스>는 2021년 콘셉트 영상을 공개하며 SNS상에서 비상한 관심을 끌었던 인디 공포 프로젝트입니다. 20세의 젊은 1인 개발자 작품이란 점도 물론 화제였으나 게임이 시선을 모은 가장 큰 이유는 게임의 메인빌런 ‘찰스’의 압도적인 외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찰스의 모티브가 된 ‘인간 기차’ 콘셉트는 사실 오래전부터 다양하게 변주되어온 소재입니다. 당장 국내에서도 지난 10월 이러한 소재의 고등학생 만평이 논란의 중심에 서기도 했죠. <추추 찰스>의 개발자 개빈 아이젠바이즈의 경우 영국 TV쇼 <토마스와 친구들>, 스티븐 킹 소설 <찰리 더 추추> 등 작품의 기차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만큼 여러모로 인기 있는 소재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호러 게임 팬들이 <추추 찰스>에 기대를 키워온 데에는 이유가 몇 가지 더 있습니다. 소형 증기기관차로 섬을 순회하며 자원을 모아 괴물 기관차를 물리치는 게임 콘셉트는 독창적이었고, 티저 영상에 등장한 찰리와의 전투는 공포와 박진감을 동시에 느끼기에 충분했습니다. 이윽고 12월 9일 출시한 <추추 찰스>. 기대만큼의 게임일까요? 직접 플레이해봤습니다.

 

 

 

# 선생님 잠시만요

 

들어가기에 앞서, <추추 찰스>가 4시간가량의 상당히 짧은 게임이란 점을 미리 일러둘 필요가 있습니다. 1인 개발자인 아이젠바이즈는 구현하고픈 핵심 게임플레이 및 테마를 전달하기 위해 꼭 필요한 부분에만 역량을 집중하는 개발 전략을 쓴 듯하며, 이는 게임의 다양한 측면에서 엿보입니다.

 

도입부에서부터 그러한 태도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추추 찰스>의 배경은 아라네아룸(Aranearum·라틴어로 ‘거미들’)이라는 이름의 작은 섬입니다. 섬의 광산 책임자인 ‘유진’이 오랜 친구이자 박물관 문서 보관 담당자(archivist·인게임에서는 '기록사')인 주인공에게 전화를 걸어 섬에 사는 괴물의 처치를 부탁하면서, 사건이 시작됩니다.

 

주역 인물 간의 복잡한 과거사나 주인공의 능력, 혹은 마을의 현 상황에 등에 대한 설명은 이 몇 초 동안의 통화만으로 대폭 생략됩니다. 전투와는 일절 무관해 보이는 직업을 가진 주인공이 해결사로 지목된 이유가 대체 무언지, 왜 군경을 동원하지 않는지 등을 궁금해하는 채로, 유저들은 열차에 몸을 싣고 괴물 처치의 여정을 시작합니다.

 

더욱 당혹스러운 것은 그 직후의 전개입니다. 상황을 파악할 시간을 조금은 줄 법도 하건만, 기본 조작법을 익히자마자 게임의 진짜 주인공 ‘찰스’가 모습을 드러냅니다. (이하 스포일러) 심지어 이야기의 중심축으로 보였던 유진은 이 습격에 바로 목숨을 잃습니다. 주인공은 이제부터 혼자 힘으로 찰스를 물리칠 방법을 찾아 나가야 합니다.

  

이 ‘군더더기 없는’ 도입부 진행은 젊은 제작자가 바라본 게임 미디어의 고유한 장점을 잘 대변하는 듯합니다. <추추 찰스>의 핵심 경험은 결국 ‘괴물 기차와의 혈투’입니다. 만약 기성 매체가 이런 황당한 설정에 청중을 이입시키려 했다면 상당량의 서사를 소모해야 했을 겁니다.

 

황당할 정도로 빨리 등장하는 찰스

 

하지만 게임은 그러한 필요가 월등히 적습니다. 청중을 일단 직접 괴물 퇴치의 현장에 투입하면, 몰입은 상당 부분 자연스럽게 이뤄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경우 내러티브란 몰입을 방해하지만 않을 정도만 되어도 충분할지 모릅니다. 적어도 개발자는 얼마간 그런 생각으로 제작에 임한 듯합니다.

 

개발자의 이런 ‘패기’는 부분부분 엉성한 게임의 프로덕션 퀄리티 면에서도 드러납니다. 단적인 예로 모든 대사에는 완성도 있는 목소리 연기가 덧입혀져 있지만, 정작 NPC들은 입을 전혀 움직이지 않습니다. 올해로 개발 경력 9년 차인 개발자가 ‘능력 부족’으로 이를 생략했을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렇다고 게임이 전통적 의미의 완성도를 죄다 저버렸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필요 없는' 구간에서 힘을 뺀 만큼, 반대로 중요한 영역에서는 다른 상업게임에서 볼 수 있는 만큼의 만듦새를 자랑합니다.

 

도입부 전개는 다소 엉성했을지 모르지만, 게임을 진행하며 점차 찰스의 정체, '알'의 존재, 지역 유지이자 빌런 '워렌' 등 흥미로운 이야기 요소를 여럿 만나볼 수 있습니다. UI는 직관적이고 깔끔하며 캐릭터 모델링을 제외한 나머지 그래픽 품질은 공포감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합니다. 최적화와 사운드 디자인 역시 준수합니다.

 

특히 가장 중요한 찰스의 표현은 다른 대규모 프로젝트도 귀감을 삼을 만합니다. 본능에 이끌린 듯한 섬뜩한 난폭성의 표현, 현실의 곤충이 주는 본능적 거부감의 효과적 모사 등은 과연 게임 전체를 지탱하는 핵심 콘텐츠로 내세우기에 한점 모자람이 없습니다.

 

복화술을 구사하는 NPC들

 

# 저걸 어떻게 잡는다고?

 

플레이어는 1칸짜리 증기기관차에 올라 아라네아룸 곳곳을 돌며 섬마을 사람들을 돕고, 그 과정 중에 찰스를 물리칠 몇 가지 준비를 해나가야 합니다.

 

준비의 첫 번째는 기관차 업그레이드입니다. 기관차는 공격력, 방어력, 속도의 세 가지 스탯을 가지며, 이것을 업그레이드하려면 ‘고철’이라는 자원이 필요합니다. 고철은 다양한 방법으로 획득할 수 있습니다. 건물이나 지하 광산에서 바닥을 잘 살펴 주울 수도 있고, 마을 사람들이 주는 퀘스트를 완수해 보상으로 얻기도 합니다.

 

또 다른 준비사항은 바로 무기 획득입니다. 열차 후미에는 360도 전 방위를 겨냥할 수 있는 고정식 총기가 부착되어 있는데, ‘무기 퀘스트’를 진행해 총 3개의 무기를 추가로 획득할 수 있습니다.

 

기본 무기인 기관포 외에 화염방사기, 반자동 저격총, 유탄발사기를 얻을 수 있으며 각자 피해, 범위, 감속, 발사속도의 네 스탯이 다릅니다. 무기 유형에 상관없이 탄환은 무한이지만, 공통으로 너무 빨리 연사하면 과열돼 발사 불가 상태에 빠지기 때문에 조절이 필요합니다.

 

 

 

# 뻔히 보여도 무서운 찰스

 

찰스가 주는 공포는 ‘갑툭튀’와는 거리가 멉니다. 시야는 어둡지만 대체로 완만한 언덕 외에는 모습을 숨길 곳이 없는 지형이기 때문에 찰스가 느닷없이 나타나 놀라게 한다는 느낌은 받기 어렵습니다.

 

제작자는 이러한 개방적 환경조건을 역이용해 공포를 줍니다. 찰스는 그 외양뿐만 아니라 움직이는 모습과 속도 역시 정상은 아닙니다. 발이 여러 개 달린 곤충형 괴물이 증기기관차의 속도를 따라잡으려면 엄청난 속도로 발들을 움직일 수밖에 없겠죠. 실제로 저 먼 지평선에서부터 빠르게 열차를 추격해 오는 찰스의 모습은 그 거리에 비례하는 만큼의 기괴함과 익숙한 곤충류의 공포를 함께 선사합니다.

 

찰스의 등장을 예고하는 테마곡에서도 영리한 아이디어를 많이 찾아볼 수 있습니다. 우선 이 BGM에는 증기기관차의 증기 배출 소리와 선로에 미끄러지는 열차 바퀴의 금속성 마찰음이 소름 끼치는 톤으로 믹싱 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찰스의 정체성을 잘 드러냄과 동시에, 불안을 조장하는 빠른 템포와 거슬리는 화음으로 유저의 심리를 온통 흔들어 놓습니다.

 

다가오는 과정이 잘 보이기 때문에 오히려 무섭다.

 

찰스의 등장 조건은 분명히 알아내기 어렵지만, 주로 차량이 속도를 늦추거나, 주인공이 열차에서 내려 빨리 움직일 수 없을 때 나타나 긴장감을 배가합니다. 퀘스트 완수를 위해 막 정차했거나, 선로 방향을 바꾸기 위해 잠깐 내렸을 때 찰스의 ‘테마곡’이 흐르면, 유저는 패닉에 빠지기 일쑤입니다. 

 

완전히 접근한 찰스의 모습은 이 게임의 하이라이트입니다. 찰스의 외모 자체는 솔직한 말로 몇 가지 전형의 혼합이기 때문에 가만히 보면 아주 무섭지만은 않습니다. 하지만 곤충을 닮은 공격적 움직임에 더해, ‘추격’이라는 행위 고유의 서스펜스가 더해지면 공포를 느낄 이유는 충분해집니다.

 

찰스에게 일정량의 상처를 입혀 물러나게 하려면 무기를 잘 사용해야 합니다. 어떤 무기는 찰스의 속도를 늦추는 데 특화되어 있고, 어떤 무기는 맞추기 힘든 대신 큰 피해를 줄 수 있습니다.

 

열차 업그레이드 UI

 

그런데 게임에는 기본 조준선이 아예 없고 총기 가늠좌도 잘 이용할 수 없게 되어있습니다. 총기 변경 역시 반드시 발사를 잠시 멈춘 뒤 직접 벽면에 진열된 다른 무기와 상호작용해야만 합니다. 이런 ‘고의적 불편’은 모두 전체적인 긴장감을 효과적으로 배가하는 요소입니다.

 

더 나아가 추격전 와중에도 열차 체력을 관리해야만 열차가 멈춰버리는 절망스러운 상황을 피할 수 있습니다. 그러려면 역시 사격을 잠시 멈추고 '설계도'와 상호작용해 실시간으로 열차를 고쳐야 합니다. 수리에는 고철이 들지만, 다행히 찰스를 쏘아 맞히면 일정량의 고철이 입수됩니다.

 

어울리게도 화염방사기의 이름은 '벌레 스프레이'다. 그 이름처럼 찰스를 멀리 쫓아내는 데 효과적이다.

 

 

# 게임 길이까지 계산했다?

 

찰스와의 추격전은 이처럼 살벌하고 긴장되지만, 한 가지 아쉬운 것은 무기 밸런싱입니다. 화염방사기를 입수하면 추격전이 눈에 띄게 쉬워지는데, 이는 화염방사기를 맞은 찰스의 속도가 현저하게 줄어들기 때문입니다. 아슬아슬한 난이도를 잘 유지했더라면 게임 끝까지 더 긴장감 있는 플레이를 지속했을 수 있을 듯합니다.

 

이렇듯 총기의 종류와 위력이 늘어나고, 더 나아가 유저 자신도 추격전에 심리적으로 적응하고 나면, 찰스가 주는 공포는 점점 줄어듭니다. ‘메인 콘텐츠’인 추격전에서 김이 새버리는 것인데, 제작자는 이런 현상을 저지하기 위해 또 한 번 일종의 기지(혹은 패기)를 발휘합니다.

 

우선 개발자는 게임을 무리하게 잡아 늘리는 대신 유저가 게임에 완전히 적응해버리기 전 끝내 버리는 선택을 했습니다. 게임에 제공된 모든 콘텐츠를 완수하고 엔딩에 도달했을 때도 <추추 찰스>의 플레이타임은 4시간이 채 되지 않습니다. 많은 잠재력과 확장성을 가진 게임 콘셉트인 만큼 더 많은 콘텐츠적 시도를 해봄직도 하지만, 개발자는 '보여줄 건 다 보여줬다'는 듯, 게임을 깔끔하게 마무리 짓습니다.

 

이렇게 게임 볼륨을 짧게 잡는 한편, 그 안에서 설득력 있고 풍성한 게임 경험을 선사하기 위해 다양한 작법을 빌려 작품의 ‘신선도’를 유지했다는 점에 주목할 만합니다.

 

적지만 알차게 준비된 퀘스트들

 

열차에서 내려 수행할 수 있는 다양한 사이드퀘스트가 이런 역할을 합니다. 게임 길이가 짧은 만큼 절대적 숫자가 많지는 않으나 하나하나 제공하는 경험이 다르고, 메인 콘텐츠와는 별개의 공포 요소를 배치해뒀다는 사실이 흥미롭습니다. 스포일러를 최소화해 요약하자면, 플레이어는 얼음땡, 술래잡기, 파쿠르 등과 유사한 활동을 다양하게 경험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추추 찰스>는 -작가 기준으로- 불필요한 요소를 줄이고 다양한 재미에 집중한 호기로운 게임 디자인의 작품입니다. 1인 개발자로서 이룰 수 있는 현실적 목표를 상정하고 이를 촘촘하게 완결시킨 점에서 노련미를 느낄 수 있습니다.

 

특히 간소화된 설계 안에서도 흥미로운 게임 콘셉트가 주는 본연적 재미를 온전히 전달하기 위해 스토리, 부가 콘텐츠 등 구성요소를 짜임새 있게 엮어놓은 점을 높이 살 만합니다. 다만 캐릭터 조형이나 일부 퀘스트라인의 스토리 등에서 드러나는 얼기설기한 퀄리티는, 비록 그것이 의도된 것일지라도 완성도 높은 경험을 선호하는 유저에게는 단점으로 다가올 가능성이 있습니다.

 

일부 게임의 패러디도 만나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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