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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몬의 불량일기

'짜장면'과 고모

임상훈(시몬) 2011-03-15 15:33:03
시몬 (임상훈 기자) [쪽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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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장면'과 고모

외식이 귀하던 시절.
외식은 무조건 자장면이던 시절.

 

송정리에서 옷가게를 하시던 고모.
아기 때부터 절 정말 아껴주셨던 고모.

 

하루는 고모 가게에 놀러갔습니다.
친척 집에 혼자 갔던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점심시간, 고모가 가게 옆 중국집에 가자고 하셨습니다.
함지막하게 벌어진 입. 정말 좋았습니다. 자장면이라니!

 

고모는 가게 문을 잠가야 해서 저만 먼저 갔습니다.
자장면은 금방 나왔습니다. 고모는 아직 안 오셨고요.

 

오이채와 메추리알, 완두콩이 탐스럽게 얹혀진 자장면.
고모를 기다렸습니다. 꿀꺽꿀꺽, 침소리만 고동쳤습니다.

 

콧끝으로 스며드는 춘장의 유혹은 불가항력이었습니다.
고모가 오시기 전에 젓가락을 돌리기 시작했습니다.

 

아뿔싸, 식어 굳어져버린 면발에 가해진, 성급하고 서툰 젓가락질.
자장면이 통째로 그릇에서 벗어나 바닥에 떨어져버렸죠.

 

바닥 위에 퍼질러져버린 천국.
홍시처럼 익어버린 얼굴.

 

망쳐진 자장면에 대한 안타까움과 곧 다가올 꾸지람에 대한 걱정.
스스로에 대한 책망까지 얹혀져 마음은 완두콩처럼 쪼그라들었습니다.

 

그때 고모가 중국집 문을 여셨습니다.
슥 보시더니, 한눈에 사태를 파악하셨죠.

 

넉넉한 웃음을 지으시면서 하신 말씀, '여기 자장면 다시 주세요'.
그리고, 손수 젓가락으로 자장면을 비벼주셨습니다.

 

그 때였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자장면을 먹은 건.

 

일요일, 아빠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어제 잠깐 고향을 다녀왔습니다.

 

우리 고모의 마지막 가시는 길을 배웅했습니다.

 

'짜장면' 생각이 간절해졌습니다.
오이채와 메추리알, 완두콩이 얹혀 있던 그 시절의 짜장면이.

 

simo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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