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처음 갔다 홀딱 반한 나라, 크로아티아. 그 때 그 도시, 스플리트(Split).
그 곳에 다시 갔다. 그리움이 도졌고, 아쉬움이 아물지 않아서.
로마 황제의 작은 궁전이 있는 아담한 해변도시는 여름이면 온통 축제다. 숱한 발길 탓에 반질반질해진 해변 도로와 미로처럼 얽킨 좁은 골목골목. 밤이면 여기저기, 구석구석 각종 작은 공연들이 열린다. 2002년과 피막골이 그리운 촌놈에게는 매력 투성이, 그 자체.
여기서 쾌속선으로 1~2시간이면 가는, 어떤 여행 책자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섬'이라고 꼽았다는 흐바르(Hvar). 지난해 배 티켓이 매진돼 못 간 곳. 그 아쉬움을 풀러 올해 다시 갔다.
독일에서 비행기를 타고 가야 한다. 지난해 도르트문트 공항도 그랬는데, 쾰른-본 역시 한국인, 아니 아시아인을 찾아보기 어렵다. 공항은 저먼윙스(German Wings)가 꽉 잡고 있는 모습. 아예 전용 터미널을 가지고 있다. 독일 1등 저가항공의 위용.
비행기 이륙이 꽤 지연됐다. 출국장 내 가게들도 문을 닫았다. 다들 지쳐갔다. "May I?" 한 마디 하고, 한번 들어오면 되돌아 나갈 수 없는 출국 심사대를 거슬러 면세점에 갔다. 맥주를 샀다. 되돌아와, 봉인을 뜯고 마셨다. 다들 부러워했다.
결국 밤 12시 넘어서 스플리트에 도착했다. 비행기가 착륙하면 작년에도 그랬듯, 이 사람들은 함께 박수 치며 기뻐한다. 따라 했다.
마지막 버스를 타고 구시가(Old Town)으로 들어갔다. 여전히 불은 밝고, 여기저기 음악소리가 들린다. 여행가방을 달그닥달그닥 굴리며 차이코스키 호스텔을 찾아 30분을 보냈다. 막판 10분은 좀 해맸다.
원래 밤 10시 이후면 체크인이 안 되는데, Filip이 기다려줬다. 각 침대마다 커텐이 있었다. 경쟁이 치열한 곳에 새로 문 여는 호스텔의 장점.
배가 고팠다. 새벽 1시, 짐만 침대 옆에 던져놓고, 먹을 것을 찾아 나섰다. 스파게티를 먹고 싶었으나 못 찾고, 골목길을 걷다 1년 전에도 갔던 피자집 None에 도착했다. 1년 전에도 봤던 그 아줌마가 마지막 피자를 굽는 중이었다. 마치 어제 왔던 듯한 동선.
한 조각 물고 호스텔로 돌아갔다. 쫄쫄 굶었던 배와 갓 구워진 피자. 입 천장이 데었다.
뒤늦게 유럽 일기 쓰고 있는 불량한 simon :)
◆ 보너스 : 크로아티아와 스플리트에 대한 짧은 이야기
크로아티아는 발칸 반도 왼쪽에 있는 나라다. '유럽의 화약고'라고 불리는 발칸 반도는 고대부터 근대까지 끊임없이 주변 열강의 침략과 지배를 받아온 아픈 역사를 가졌다. 그리스와 로마 사이, 기독교와 이슬람 사이에 있으니 피할 수 없는 운명이었나 보다.
2차 대전 이후 티토의 지도 아래 유고슬라비아로 뭉쳤지만, 그것도 잠시. 티토 사후, 그리고 구소련의 쇠퇴로 또다시 뿔뿔이 분리됐다. 분리 과정에서 민족, 종교 간의 갈등 및 그에 따른 잔혹한 인종학살이 일어나, 놀러가기 좀 무서운 곳이 됐다.
하지만 이탈리아 동쪽 바다 건너편, 즉 아드리아해 동쪽에 기다랗게 있는 크로아티아는 살짝 예외다. 구 유고 시절부터 이 나라의 유명한 해안으로 꽤 많은 유럽 관광객들이 왔으니까.
그 중 가장 유명한 곳은 두브로브니크와 스플리트. 두브로브니크는 버나드 쇼가 '지구상의 낙원'이라 불렀을 정도로 아름다운 곳인데, 최근 고현정이 나온 커피 CF도 여기서 찍었다. 사실 게이머들에게는 이미 알려졌던 곳이다. <대항해시대> 시리즈에 나오는 '라구사'가 여기.
스플리트는 로마 황제 디오클레티아누스가 은퇴 후 고향에서 여생을 보내기 위해 궁전을 지은 곳이다. 하지만 하루도 이 곳에서 살지는 못했다.
두브로브니크에는 안 가봤는데, 사람마다 두 도시에 대한 호불호는 갈린다고 한다.
스플리트 구시가는 로마 황제의 궁전이라고는 하지만, 매우 작은 편이다. 2~3시간 정도 돌면 다 둘러볼 수 있다. 여름에 간다면, 낮에는 그냥 자는 게 좋다. 더우니까. 오후 늦게 나오는 편이 낫다.
바다도 반질반질해 보이고, 길도 반질반질해 보인다. 성의 서문 바깥쪽에 있는 이 길은 그늘 지고 바람이 솔솔 통해서 시원하다. 길가로는 가게들이 줄줄이 이어지는데, 피자와 아이스크림 가게가 많다. 또 연인들이 함께 와서 그런지, 여성 의류와 보석, 액세서리 등을 파는 가게들도 꽤 많다.
기온이 좀 내려가서, 돌아다니기 좋은 밤.
해변가 거리에 있는 호텔 앞에서는 밤마다 이런 류의 공연이 펼쳐진다. 그 옆으로는 작은 먹거리 가게들이 열린다. 옥수수도 쪄서 팔고, 생선도 구워 팔고, 아이스크림, 음료수도 있다.
늦은 밤 궁전 안에서도 로마병사 기병식이 열린다. 병사들도 그렇지만, 관광객들도 당시 로마 시민 코스프레를 한다. 이것은 작년 사진이다. 로마 병사들과 하이파이브를 했던 기억.
올해는 오페라가 펼쳐졌다. 밤 11시가 넘은 시간인데, 아이들이 이렇게 집중해서 보고 있다. 크로아티아어로 진행돼서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몰랐지만, 재밌었다.
내가 머문 차이코프스키 호스텔. 침대 옆에 큰 로커가 있고, 침대마다 커텐이 달려있는 최신식 호스텔이었다.
TIG 포즈를 취하는 호스텔 스태프, 필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