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회원가입 | ID/PW 찾기

시몬의 불량일기

80년 5월 광주의 풍경-5

임상훈(시몬) 2013-05-16 23:05:23
시몬 (임상훈 기자) [쪽지]
/webzine/community/nboard/36/?n=43608 주소복사

80년 5월 광주의 풍경-5

까만 창 밖으로 가끔 탕탕 거리는 총소리가 들립니다.

당신도 옆에 놨던 M1 소총을 만지작거립니다.

휴우~, 참 파란만장한 하루였습니다.


당신은 아침을 도청 앞 금남로에서 맞이했습니다.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나자 주변 시민들이 막 웃었습니다.

그들과 함께 지프차를 타고 양동시장으로 갔습니다.


시장 아줌마들이 김밥과 주먹밥을 차 위로 올려주었습니다.

급한 마음에 허겁지겁 삼키듯 입에 집어 넣었습니다.

“몸 성히 잘 싸우라”는 이야기에 눈물도 나고, 으쓱으쓱해지기도 했습니다.


도청으로 돌아가는 길, 각목으로 차체를 두드리며 훌라송을 불렀습니다.

“전두환이 물러가라 물러가라, 전두환이 물러가라 물러가라, 전두환이 물러가라 물러가라.”

“김대중을 석방하라 석방하라. 김대중을 석방하라 석방하라. 김대중을 석방하라 석방하라.”


도청 근처로 광주 사람들이 다 나온 것 같았습니다.

인산인해의 물결을 헤쳐 앞 쪽으로 나아갔습니다.

정오까지 계엄군이 물러날 것이라는 이야기가 들렸습니다.

도지사도 헬기에서 “계엄군을 철수시킬 테니, 질서를 유지하라”고 말했습니다.


이 싸움도 이제 곧 끝나겠구나, 하는 희망을 가졌습니다.


얼마쯤 흘렀을까, 갑자기 도청 쪽에서 애국가가 흘러나왔습니다.

그리고 쉴 새 없이 수천 발의 총소리가 쏟아졌습니다.


앞쪽에 있던 사람들이 픽픽 쓰러지고, “도망쳐”라는 외침이 들렸습니다.

혼비백산한 사람들과 함께 당신도 옆 골목으로 전속력으로 내달렸습니다.


모두 땀범벅에, 할 말을 잃었습니다.

총에 맞은 시민을 데려오러 갔던 용감한 시민이 공중에서 날아온 총알에 맞았습니다.

핏자국 흥건한 금남로엔 총에 맞은 시민들이 널브러져 있습니다.


차 한 대가 도청 쪽으로 달려갔습니다.

탕, 그 위에서 태극기를 들고 있던 청년이 고꾸라졌습니다.


모두 넋을 잃고, 말을 잃고, 눈물을 흘렸습니다.

우리 국군이 어떻게 이럴 수 있느냐고 울부짖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그때 한 시민이 우리도 총으로 무장을 해야 한다고 외쳤습니다.

많은 사람이 울면서 옳소, 옳소를 외쳤습니다.


당신은 시민들과 함께 버스를 타고 나주로 갔습니다.

오후 2시 반쯤 도착한 나주경찰서 삼포지소는 거의 무방비 상태였습니다.

경찰 대부분이 광주로 파견 나간 탓이었습니다.


당신은 그 곳에서 M1 소총과 실탄을 징발했습니다.

그 지역 사람들에게도 도청에서의 일을 전했습니다.

분개한 청년들이 당신과 함께 버스를 타고 광주로 함께 왔습니다.


광주 외곽에서  병원에 피가 부족하다는 앰프소리를 들었습니다.

기독병원에 갔습니다. 병원 복도에는 핏자국이 흥건했습니다.

일손도, 의약품도 부족했지만, 가장 필요한 것은 혈액이었습니다.


병원 바깥까지 헌혈하려는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있었습니다.

국민학생, 할아버지는 물론 황금동 윤락가 아가씨들도 있었습니다.

당신은 먼저 피를 뽑고, 금남로로 달려갔습니다.


산발적인 총격전이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시민은 계속 늘어났습니다.

하지만 상대는 안 됐습니다. 이끄는 사람도 없었고, 조직도 없었습니다.

의분에 총을 집었지만, 겁 때문에 나서지도 못하는 사람도 많았습니다.

총 쏘는 법을 모르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예비군 중대장이라고 밝힌 시민이 이렇게 해서는 안 된다고 외쳤습니다.

광주공원으로 가서 조직을 정비하자고 말했고, 모두 동의했습니다.


예비군 중대장은 공원에서 중학생들에게서 총을 빼앗았습니다.

총 쏘는 법도 가르쳤고, 간단하게 편제를 짰습니다.

사람들이 우리를 시민군이라고 불렀습니다.

 

 

 

땅거미가 깔릴 무렵, 우리는 다시 도청 쪽에 도착했습니다.

그런데, 주변이 조용했습니다. 계엄군이 다 빠져나간 상태였습니다.

광주 외곽으로 물러났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만세, 이겼다, 같은 함성이 들렸습니다.

탕탕탕, 당신은  해방감에 하늘에 대고 총을 쐈습니다.

갑자기 피로가 밀려들었습니다. 36시간 동안 한숨도 못 잔 탓입니다.


당신은 도청에서 가까운 친구 집에서 눈을 부쳤습니다.

그러다 탕탕탕 총소리에 깼습니다.


당신은 불현듯 두려움을 느낍니다. 계엄군이 다시 오면 어떻게 할까?


1980년 5월 21일 밤, 한 광주 시민의 밤은 그렇게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simon
최신목록 1 | 2 | 3 | 4 | 5 | 6 | 7 |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