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회원가입 | ID/PW 찾기

시몬의 불량일기

80년 5월 광주의 풍경-6

임상훈(시몬) 2013-05-17 22:27:02
시몬 (임상훈 기자) [쪽지]
/webzine/community/nboard/36/?n=43621 주소복사

80년 5월 광주의 풍경-6

당신은 방금 혼수상태에서 깨어났습니다.

총격전 도중 당신 앞에 있던 장갑차는 무반동포에 박살 났습니다.


당신은 지금 병원에 있음을 무척 다행스럽게 생각합니다.

지난 며칠 간의 지옥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도청에서 당신도 시민을 향해 총구를 겨눴습니다.

하사관은 뒤에서 발포를 강요했고, 당신은 사람을 피해 방아쇠를 당겼습니다.

 

당신 부대는 그날 오후 4시쯤 도청에서 조선대로 퇴각했습니다.

급히 짐을 챙겼고, 저녁 7시 무렵 조선대를 떠났습니다.

 

 

어둠 속에서 당신은 무조건 앞 사람만 따라 이동했습니다.

아침이 돼서야 무등산 골짜기에 들어와 있음을 알았습니다.

 

거기서 당신은 580발의 실탄과 수류탄, 가스탄 등을 받았습니다.


지친 몸을 쉬며 산 중에서 작전 명령을 기다리는 중이었습니다.

옆 부대 후배가 다가와, 잡아왔던 대학생을 총살했다는 이야기를 들려줬습니다.

그는 '내가 왜 이런 부대에 있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토로했습니다.


(89 년 1월 공수부대가 머물던 곳에서 두개골에 총상 입은 유골이 발견됨.)


당신 부대는 그 곳에서 송정리 비행장으로 이동하기로 했습니다.

광주로 통하는 주요 도로를 모두 봉쇄하기 위한 작전의 일환이었습니다.


1,000여 명의 병사들이 수십 대의 군용차량을 타고 이동했습니다.

시위대의 기습에 대비해 실탄을 장전하고 경계하여 움직였습니다.


저 멀리서 시민군 5~6명과 마을 주민 10여 명이 보였습니다.

당신 부대는 기관총을 난사했습니다. 그들은 모두 숨었습니다.

뒷부대는 도로 좌우 측으로 무차별 사격을 퍼부으며 전진했습니다.


움직이는 물체만 보면 무조건 총을 쏴 댔던 것 같습니다.

모내기 하던 농부, 저수지에서 물놀이 하던 아이들, 운동장에서 놀던 아이들.

총소리에 놀라 혼비백산 흩어지고 자빠지던 모습을 봤습니다.


(인근 저수지와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놀던 두 어린이가 목숨을 잃음.)

송암동이라는 곳을 지날 무렵, 당신 부대는 엄청난 공격을 받았습니다.

야산 좌우에서 무반동포가 날아와 선두 장갑차와 차량 4대를 폭파시켰습니다.

크레모어와  수류탄, 일제사격이 쏟아졌습니다.


당신 부대도 반격했습니다. 30분 넘게 격전을 벌였습니다.

적의 매복 진지를 점령하고 나서야, 전투는 끝났습니다.

그런데, 당신 부대를 공격한 것은 아군 부대였습니다.

양쪽 다 상대를 시민군으로 생각하고 전투를 벌였던 것이었습니다.


당신은 그 전투 중에 총상을 입고 쓰러졌습니다.

정신을 차려 주위를 둘러보니, 동료들의 시신이 즐비했습니다.

21일 아침 ‘어젯밤 스무 명을 찔렀다고’ 자랑하던 하사관도 거기 있었습니다.


당신은 머리에 많은 피를 흘려 다시 정신을 잃었습니다.

병원 옆 침대의 동료로부터 그 후 상황을 들었습니다.

그 전투 때문에 9명이 즉사했고, 2명이 병원에서 사망했고, 40명 정도가 다쳤습니다.


(5.18 기간 군 사망자 22명 가운데, 12명 이상이 군 부대간 오인사고로 발생. 신군부는 오인전투 사망자를 '폭도의 흉탄에 사망'한 것으로 날조한 공적조서를 만들어 이들에게 훈장을 수여함.)


아군끼리 전투로 동료를 잃은 당신 부대원들은 화가 잔뜩 났습니다.

민간 마을로 총을 쏘며 들어가 화풀이 삼아 가축들을 마구 쏴 죽였다고 합니다.,

가택수색을 하며 마을 젊은이는 모두 끌어내 사살했다고 합니다.


병원에서 만난 다른 부대 병사들의 이야기도 비슷했습니다.

광주를 봉쇄하는 작전 중 많은 사상자가 생겼다는 것이었습니다.


지나가는 미니버스에 집중사격해 그 안에 있던 모든 사람들을 죽인 이야기.

큰 버스를 집중사격하고, 부상자 2명을 확인 사살해 암매장한 이야기.

지나가는 행인이나 그 주둔 지역 주민에게도 무차별 난사한 이야기.


당신은 그 지옥에서 벗어나 있음에 위안을 느꼈습니다.

그러나, 마음은 돌처럼 무겁게 가라앉았습니다.


계엄군은 광주를 봉쇄했지만, 군인의 양심까지 봉쇄하지는 못했습니다.


군 부대끼리의 충돌로 죽어간 군인들.

그것을 화풀이하기 위해 민간인을 공격해 사살한 군인들.

그것을 방관만 하고 있던 군인들.


1980년 5월 24일 밤, 한 공수부대원은 병원 침대에서 잠을 잘 수 없었습니다.

 

simon


최신목록 1 | 2 | 3 | 4 | 5 | 6 | 7 |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