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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몬의 불량일기

80년 5월 광주의 풍경-8

임상훈(시몬) 2013-05-19 13:36:19
시몬 (임상훈 기자) [쪽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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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 5월 광주의 풍경-8

당신은 5월 초부터 시위에 참여했던 대학생입니다.

5월 21일 오후까지 당신도 누구 못지않게 시위에 앞장섰습니다.

시민들에게 훌라송도 가르쳤고, 전두환 일당의 음모에 대해서도 알려줬습니다.


대검을 들고 달려드는 계엄군에 당신도 놀라고, 분노했습니다.

부모님의 만류에도 각목을 들고 계엄군에 맞섰습니다.


3일 동안 집에 들어가지도 않았습니다. 그래도 행복했습니다.

무관심했던 시민들이 동참해, 물방울 같던 시위대가 큰 바다가 됐으니까요.

신군부에 맞서 생면부지의 사람들과 하나가 됐다는 게 뿌듯했습니다.


21일 오후 1시 공수부대의 집단발포에 당신도 치를 떨었습니다.

21일 오후 누구보다 먼저 병원에 가서 헌혈했습니다.


하지만, 그 이후 상황은 당신을 몹시 고민스럽게 했습니다.

계엄군의 집단발포, 총을 든 시민... 상상도 못했습니다.


광주공원에 가서 총을 받을 기회가 있었습니다.

배급지 주변까지 갔습니다. 겁이 났습니다. 발길을 돌렸습니다.


총을 든다는 것은 목숨을 건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당신은 공수부대가 물러났다는 소식을 듣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엄마, 아빠도 보고 싶어졌고, 샤워도 하고 싶었습니다.

오랜만에 몸을 씻고 잠을 청했습니다.


다음날과 그 다음날, 당신은 계속 도청 앞으로 갔습니다.

광주를 지켜야 된다는 생각은 변함 없습니다.

수많은 시민들과 함께 여기저기 총을 든 사람들의 모습이 눈에 띄었습니다.


 

당신은 묘한 감정을 느꼈습니다.

 

총을 들기 전, 남녀노소 모든 시민들은 계엄군과 싸우는 전사였습니다.

이제는 총을 든 시민군과 그렇지 않은 일반 시민으로 나뉜 것 같았습니다.

총격전을 벌어지는데, 각목과 연탄집게를 드는 것은 부질 없는 짓입니다.


각목을 들었을 때, 누구나 격의 없는 당신의 동지였습니다.

이제는 누군지 모르는 사람이 총을 들고 있는 게 좀 불편해졌습니다.

거친 행동과 말씨 때문에 이질적인 느낌도 받았습니다.


궐기대회에 모인 시민 중에는 총기 회수에 공감하는 이가 많았습니다.

사고의 위험도 걱정됐고, 아무나 총을 들고 있는 상황도 걱정됐기 때문입니다.

당신도 믿을 수 있는 확인된 사람에게 총기를 주는 게 맞다고 생각했습니다.


계엄군에게 조건 없이 총기를 반납하자는 수습위의 생각에는 반감이 셌습니다.

과잉진압과 집단발포에 대한 사과가 선행되어야 한다는 게 일반적인 생각이었습니다.

 

당신은 상무관으로 가 장례를 치르는 일을 도와줬습니다.

60개의 관들이 나란히 안치돼 있었고, 여기저기 울음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도청 앞에 왔던 많은 사람들이 방문해 위령제에 참여했습니다.


 

당신은 아무도 지켜주는 사람이 없는 56~58번 관으로 갔습니다.

7살 아들과 엄마, 아빠 한 가족이 모두 사살돼 상주가 없었습니다.

흰 국화 한 다발을 올려 놓았습니다.

 

밖으로 나오니, 날이 어두워지기 시작했습니다. 시민들은 귀가를 서둘렀습니다.

당신도 집으로 향했습니다.

 

당신은 궐기대회에는 나가지만, 이제 싸움은 당신의 몫이 아니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당신 옆으로 머리에 흰띠를 묶고 총을 든 시민군의 차량이 지나갔습니다.

 

1980년 5월 23일 저녁, 한 대학생은 귀가 중 시민군을 보며 소외의 감정을 느꼈습니다.

 

sim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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