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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몬의 불량일기

80년 5월과 나의 이야기

임상훈(시몬) 2013-05-25 23:33:00
시몬 (임상훈 기자) [쪽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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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 5월과 나의 이야기

80년 5월 저희 집은 전남대 정문과 꽤 가까운 편이었습니다.

얼마 전 경향신문에 실린 만화 [5월의 신부]에 에 평화시장이 나오더군요.

어린 시절, 엄마 시장 보러 갈 때 튀김이 먹고 싶어 따라가곤 했던 곳입니다.

 

아주 어렸을 때여서, 당시 기억은 거의 없습니다. 딱 세 컷만 빼곤.

 

[내 기억 속 80년 5월의 세 장면] 

1. 총을 든 군인 아저씨

집 근처에 총을 든 군인이 있었습니다.

꼬마였던 저는 처음 보는 총 든 군인이 신기했나 봅니다.

그래서 그 아저씨 가까이 걸어가서 구경했습니다.


짐작건대, 5월 18일 무렵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2. 이불을 뒤집어  쓴 엄마와 세 남매

엄마와 방 안에서 이불을 뒤집어 썼습니다.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고, 불을 끄고 이불 속에서 웅크렸습니다.


아마도 5월 19일이나 21일쯤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공수부대가 집 안까지 쳐들어 오던 때 혹은 전대 앞에서 총을 쐈던 때일 것 같습니다.


3. 도로 옆에서 친 박수

엄마와 손을 잡고 집 바깥의 도로 가로 나갔습니다.

우리 주변에는 동네 사람들이 여럿 나와 있었습니다.


트럭이 하나 지나가는데, 그 위에 하얀 와이셔츠를 입고 총과 태극기를 든 청년들이 있었습니다.

대로에 나란히 선 주변 사람들이 다 박수를 쳐서, 저도 따라 쳤습니다.


5월 22일~24일 즈음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건 어디까지 ‘장면’으로서의 기억일 뿐입니다.

'사건’으로서의 ‘80년 5월’은 전혀 몰랐습니다.

집단적인 기억상실증에라도 걸린 듯, 아무도 그 날들을 입에 올리지 않았습니다.

 

 

[아웅산 사건 글쓰기와 교생선생님의 표정]

 

83년 버마 아웅산 폭발사건이 있었습니다.

 반공 글쓰기 숙제가 있었습니다.


저는 ‘하느님이 보우하사, 전두환 각하는 살리셨다’는 내용의 글을 썼습니다.

그 글에 대해 어떤 칭찬이나 질책을 듣지는 않았습니다.


다만, 제 글을 본 교생선생님들의 씁쓸한 표정이 잊혀지지 않습니다.

그런 표정은 그 전에도, 그 후에도 본 적이 없었던 것이었니까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광주 방문]

84년 5월 3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역대 교황으로는 처음으로 우리나라를 방문했습니다.

그는 청와대의 반대에도 그 다음날 바로 광주로 내려왔습니다.

 

저에게는 교황의 방문보다 미사 가면 결석 처리 안 하겠다는 선생님 이야기가 더 놀라웠습니다.


대학생이 된 후에, 교황이 광주에 온 이유를 알게 됐습니다.

그는 그날 금남로와 도청 등 80년 5월의 공간을 직접 찾아가 광주 시민을 위로했습니다.

‘진실과 화해’를 강조하는 메시지를 남겨주고 떠났죠.

 

미사에 가면 결석 처리 안 하겠다던 선생님을 이해할 수 있을 것도 같았습니다.



[성당의 사진들과 청문회]

80년대 중반 성당에서 80년 5월의 모습을 찍은 사진들을 보고 충격을 먹은 기억이 납니다.

너무 끔찍해서 몇 장만 보고, 나머지는 일부러 피했던 것 같습니다.

88년 광주 청문회가 있었습니다. 제가 아는 광주 사람은 모두 생방송을 봤습니다.

사람들은 책임을 회피하고 위증하는 당사자들의 모습들을 보고 분노했습니다.


 

[대학교 후문 근처에서 만난 공수부대원]

대학교 2학년 때 기숙사에 살았습니다. 비디오테이프를 빌리러 후문 밖으로 나왔습니다.

낙성대역 근처 편의점 앞에서 약간 취해있던 한 남자를 만났습니다.

파라솔 아래에서 소주를 마시던 그가, 근처를 지나던 저를 불렀습니다.

이야기를 하고 싶다고 했고, 저는 무슨 사연인가 하고 앉았습니다.


그는 광주를 갔었던 공수부대원이었습니다.

가끔 눈물을 흘리며, 횡설수설했습니다.

사람을 쐈다, 정신병원에 갔다, 잊혀지지 않는다, 잠을 못 잔다, 미안하다...

 

저는 ‘당신의 잘못이 아니다’, ‘당신의 잘못이 아니다’를 계속 말했습니다.

 


[연재를 했던 이유]

대학을 나온 이후 ‘80년 5월’에 대한 이야기를 1년에 한 번도 나눈 적이 없습니다.

청문회가 있었고, '민주화운동'으로 지정돼 이제 다 아는 이야기일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폭동'으로 여기는 사람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도 못 했죠.

 

그러던 중 일베 때문에 충격을 받았습니다.

10.26과 12.12, 5.17을 모르는 기자들을 보고 놀랐습니다.

그래서 5월 연재를 시작했습니다. 회사도 어렵고, 연애도 못 하는 주제에 말이죠.


제발 더 이상 헛소리들이 안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sim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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