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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몬의 불량일기

80년 5월에 관한 노래와 책

임상훈(시몬) 2013-05-31 22:50:03
시몬 (임상훈 기자) [쪽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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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 5월에 관한 노래와 책

5월의 마지막 날, 이 글을 마지막으로 저도 5월을 매듭지을까 합니다.

 

* 지난 한 달간 도움을 줬던 세 권의 책

 

<기억하는 자의 광주>

이해찬, 유시민 등 1988년 광주 청문회에 참가했던 분들이 쓴 책입니다. 30주년을 맞아 그 이후 밝혀진 내용까지 모아놓았습니다. 정확한 데이터와 인터뷰, 문헌자료 등을 바탕으로 총체적으로 '80년 5월'과 그 전후의 역사를 정리했습니다. 충실한 자료 덕분에, 모든 진상을 한 눈에 볼 수 있도록 그린 그림 같은 느낌이 듭니다.

 

유시민이 정계 은퇴 후 쓴 <어떻게 살 것인가>에서 '그나마 덜 부끄러운' 지난 날의 책을 8권 꼽았는데, 그 중 하나입니다. 아쉽게 종이책으로는 이제 구하기 어렵고, e북으로 구할 수 있습니다.

 

<5.18 특파원 리포트>

80년 5월 광주를 경험한 국내외 기자들이 직접 경험했던 긴박했던 당시 상황들을 기록한 책입니다. 외신 기자들의 눈으로 본 당시의 모습도 이색적이었지만, 국내 기자들의 취재수첩에 남은 기록들도 신선했습니다. 국내외 여러 기자들의 시선을 통해 입체적으로 그 시절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외국 기자들은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잊을 수 없는 취재였다고 당시를 회고하고, 국내 기자들은 신군부 때문에 제대로 기사를 쓸 수 없었음을 반성합니다.

 

<오월의 사회과학>

운동권과 거리가 있었던 서울대 정치학과 교수가 쓴 책입니다. 2005년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에서 한국을 대표하는 책 중 한 권으로 뽑혀 세계에 소개됐습니다.

 

지금까지 제가 봤던 광주에 관한 책과 결이 전혀 달랐습니다. 급박했던 10일 동안의 사건 뿐만 아니라, 여러 사회 계층 사이의 관계 변화 등 더 넓은 시각을 갖게 해줬습니다. 5월 이후 '광주'에 대한 담론의 변화 역시 흥미로웠습니다.

 

 

* 80년 5월에 관한 노래들

 

 

<바윗돌> (정오차, 1981년)

70~80년대 대학가요제 대상은 바로 톱스타가 될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 한양대생 정오차는 MBC 창사 20주년 기념으로 성대하게 열린 81년 대학가요제에서 <바윗돌>이라는 노래로 대상을 탔습니다. 작사, 작곡 능력과 함께 시원한 가창력으로 관심을 모았죠. 

 

그후 한 달 동안 이 노래는 줄기차게 전파를 탔습니다. 그러나 그가 한 TV 쇼프로그램에 출연한 뒤 금지곡이 돼버렸습니다. 노래 제목의 의미를 묻는 아나운서의 질문에 "광주에서 죽은 친구의 영혼을 달래기 위해 만든 노래고, '바윗돌'은 친구의 묘비를 의미한다"고 대답했던 게 문제였죠. 

 

 

 

<생명>(조용필, 1982년)

영화감독 홍상수의 어머니 전옥숙 여사는 한국 최초의 여성 영화제작자이나 촬영소장으로, 영화계에서는 유명한 분이었습니다. 이 노래와 함께 87년 6월 항쟁을 다룬 조용필의 노래 <1987년 서울>도 전옥숙 여사가 작사를 했습니다. 

 

"그것은 명백히 광주의 학살에 대한 분노를 담은 노래이다. 나는 체질적으로 정치와 거리가 멀다. 그러나 수감 중에 교도소 개구멍에서 내 노래를 듣고 이놈이 어떤 놈인지 궁금했다는 김지하씨도 만난적이 있고, 그런 인연 중에 내가 어머니라고 불렀던 전옥숙 여사와 같이 노래를 만들었다. <생명>은 내 나름대로의 투쟁이었다. 그러나 4집에 실린 그 노래는 몇 번에 걸쳐 수정 지시를 받아 고쳐야 했기 때문에 원본과는 다소 거리가 멀다." (조용필, 강헌과의 1997년 인터뷰 중) 

 

 

 

<바위섬>(김원중, 1984년)

광주에서 한 더벅머리 청년이 서울로 올라왔습니다. 그는 광주에서 가져온 음반으로 이듬해 KBS 가요톱텐에 1위를 차지했습니다. 이 노래의 '바위섬'은 80년 5월 고립됐던 광주를 의미합니다.

 

5.18 당시 '놀기 좋아하고, 노래 부르는 걸 즐기던 날라리' 김원중(전남대 2학년)도 금남로에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핏빛으로 얼룩진 금남로에 오래 있지 못했습니다. 살고 싶었고, 그래서 달아났습니다. 그게 평생 지고 갈 부채로 남았습니다. 

 

“늘 괴로워하며 그 일을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무의식 중에 있다. 그래서 노래를 부를 때 눈물로 되살아난다.” 그는 그 정체를 ‘쪽팔림”이라고 말합니다. 이 노래로 스타덤에 올랐음에도 그는 고향으로 다시 내려갔습니다.  

 

 

 

<오월의 햇살>(이선희, 1989년)

윤복희의 오빠 윤항기가 만든 노래입니다. 87년 6월 항쟁, 88년 광주 청문회 등의 시대적 상황은 기성 가요계에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광주부르스>, <내사랑 무등산>, <비내리는 충장로> 같은 노래가 88~89년 나왔죠.

 

<오월의 햇살>은 그 중에서도 가장 큰 사랑을 받았던 노래입니다. 이선희는 당시 한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 동안 저의 노래를 포함해 대중가요의 가사들이 현실에서 너무 벗어나 있었던 것 같아요. 앞으로는 서민들의 삶, 의식있는 젊은이의 정서를 담은 노래를 부르고 싶습니다."

 

 

 

<5월의 노래>(노래를 찾는 사람들, 1989년)

'노찾사'의 2번째 음반에 속해 있는 노래입니다. 노찾사 2집은 진보적 노래운동의 성과가 상업적 대중가요 음반시장에 진입해 성공한, 우리나라 최초의 기념비적인 음반입니다. 87년 6월 항쟁의 성과였습니다.

 

1년 사이 50만장을 돌파했고, 90년 초중반까지 80만장이 판매됐습니다. 2집에는 안치환, 권진원 등이 참여했습니다.

 

 

 

<마지막 일기>(블랙홀, 1995년)

 

한국 헤비메탈계의 산증인 블랙홀은 95년 우리나라의 역사와 관련된 곡들을 수록한 'Made in Korea'를 내놓았습니다. 명반으로 꼽히는 이 음반의 마지막 곡입니다. 리더 주상균이 광주 학살로 죽은 고교생의 마지막 일기를 주제로 써내려갔다는 가사는 처절한 멜로디에 실려 가슴을 먹먹하게 합니다.

 

사실 두려워요

내게 다가올 시간이

아직 내겐 너무도 벅차요

 

먼저 떠난 친구들의

눈물이 생각이 나요

아직도 내 가슴에 흘러요

 

이 어둠이 가기전에

나의 짧은 시계소리 멈추고

나도 잊혀지겠지

 

달빛아래 펼쳐있는

나의 일기장에 그린 어머니

영원히 사랑해요

 

못다한 나의 숨결은

오월의 하늘위에 붉게 떠있는

 

눈부신 큰빛이 되어

그리운 모든 사랑을 바라볼거야

 

 

 

<임을 위한 행진곡>(1981년)

1981년 소설가 황석영과 당시 전남대생이었던 음악인 김종률 등 광주 지역 노래패 15명이 공동으로 노래극(뮤지컬) <넋풀이-빛의 결혼식>을 만들었습니다. <임을 위한 행진곡>은 도청에서 사망한 시민군 대변인 윤상원과 그 전해 사망한 노동운동가 박기순의 영혼결혼식에 헌정된 이 노래극의 마지막 합창곡으로 지어졌습니다.

 

곡은 김종률이 1981년 5월 광주 황석영의 집에서 썼고, 가사는 백기완이 수감 중이던 1980년 12월 서대문구치소 옥중에서 지은 장편시 <묏비나리 -젊은 남녘의 춤꾼에게 띄우는>의 일부를 차용하여 황석영이 붙였습니다.

 

감시를 피해 황석영 집에서 이동식 카세트 녹음기를 이용해 조악하게 녹음되었던 위 노래극은 1982년 2월 윤상원과 박기순의 유해를 광주 망월동 공동묘지에 합장하면서 영혼결혼식을 거행할 때 처음 공개됐습니다. 이후 카세트 테이프 복사본, 악보 필사본 및 구전을 통해 민주화 및 노동운동 세력 사이에 이른바 '민중가요'로서 빠르게 유포되었고, 5·18 민주화운동의 상징적 대표곡으로서 자리잡았습니다.

 

이상으로 2013년 5월을 마무리하겠습니다. sim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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