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팀과 원수간이었던 EA, 이제 떼어낼 수 없는 연인이 됐다.
EA는 구독형 게임 서비스 EA 액세스(EA Access) 안내 페이지를 스팀에 선보였다. 서비스와 혜택은 플레이스테이션4 및 Xbox One과 같다.
EA 액세스 이용료는 월 5,000원, 연간 3만 3,900원이다. 가입하면 ▲신규 EA 게임 출시 전 10시간 체험 ▲정식 게임, 시즌 패스, DLC 등 10% 할인 ▲과거 인기작 무제한 플레이 등을 누릴 수 있다. 스팀 서비스는 곧 선보일 예정이다.
EA와 밸브의 협업은 화기애애하다. 그러나 둘의 역사를 생각하면 아이러니하다. EA는 스팀을 ‘손절’한 첫 대형 퍼블리셔기 때문이다.
원수 관계는 딱 9년만에 해소됐다. 2019년 10월 <스타워즈 제다이: 오더의 몰락>을 스팀에 발매했다. 곧이어 <심즈 4>를 스팀에 판매하면서 오리진 독점 정책을 조금씩 허물어냈다. 마침내 2020년 6월 <배틀필드>, <타이탄폴>, <매스 이펙트> 등을 스팀에 출시하며 게임계 두 거인은 협력을 택했다.
EA가 다시 스팀으로 돌아간 이유는 두 가지를 꼽을 수 있다. 어쩔 수 없는 체급 차이와 새로운 수익 모델 때문이다.
스팀과 오리진의 체급 차이는 비교조차 부끄럽다. 오리진은 점유율과 수익 수치 등을 공개한 적이 드물다. 1등의 여유일까? 스팀은 자랑할 지표가 가득하다. 2013년 PC 게임 플랫폼 75%는 스팀이 점유했다. 2013년 EA가 회원가입자수 5,000만 명을 기념할 때, 2015년 스팀은 액티브 유저 1억 2,500만 명을 달성했다.
EA는 IP 인기로 게임 플랫폼 서비스 중에서는 선방했다. 그러나 스팀과 격차는 줄이기 불가능한 수준이다. 플랫폼 싸움으로 EA가 얻을 이익보다 인기 IP를 스팀에 판매하는 이득이 훨씬 크다고 볼 수 있다.
수익 모델 변화도 EA를 유혹했다. 10년 전만 해도 플랫폼 결제 수수료를 탐내던 EA였다. 다양한 오리진 혜택을 안겨주며 인기 IP를 홍보해도 사람들은 스팀에서 구매했다. 스팀이 가져가는 수수료 30%에 분통이 터졌을 EA다.
이제는 시장이 달라졌다. 30% 아껴가며 게임을 팔기보다, 다수에게 접근하는 게 훨씬 이득인 시대다. 이미 EA도 주 사업원은 부분무료화와 구독서비스 같은 라이브 서비스로 변하는 중이다. EA는 2019년 결산보고서에서 ‘총 순이익 45%가 라이브 서비스에서 발생했다’고 보고했다. 더 많은 유저를 라이브 서비스로 유인하려면 PC 시장을 쥐고 있는 스팀에게 잘 보여야 한다. EA가 스팀에 <배틀필드>와 <심즈> 같은 최고 인기작을 판매하기 시작한 이유다.
외면적으로 자존심을 굽히고 밸브에 패배를 인정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속으로는 싱글벙글할 것이다. EA의 캐시카우 <매든 21>과 <피파 21> 그리고 <에이펙스 레전드>가 스팀 출시를 앞두고 있기 때문이다. EA는 2020년 수익 전망을 55억 5,000만 달러에서 59억 5,000만 달러 규모(약 7조 805억 원)로 상향 조정한 상태다.
특히 EA가 <매든 21>에 거는 기대가 큰 듯하다. EA 액세스 소개 페이지를 뒤늦게 공개한 이유는 8월 28일 발매되는 <매든 21> 때문으로 추정된다. 통상적으로 EA 액세스 및 오리진 액세스는 발매 5일 전부터 게임 맛보기가 가능하다. EA 액세스와 <매든 21>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는 전략이다.
EA는 누구보다도 스팀을 원하고 있다. 9년 전 스팀을 손절했을 때는 상상도 못했을 일이다. 시장은 EA의 예상 혹은 기대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고집은 때로는 독이 된다. 세상의 변화를 받아들여야 생존할 수 있다. EA의 선택은 아직까지는 적절한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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