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가 26일 열린 2020 LCK 서머 T1과의 와일드카드 전을 승리하며 '도장 깨기'의 서막을 열었습니다. 경기 후 아프리카 선수들은 "모든 관계자가 T1의 승리를 점치는 것을 보며 이를 악물고 경기에 임했다"라고 밝히며 '언더독의 반란'이 시작됐음을 팬들에게 선포하기도 했습니다.
독기 오른 아프리카의 두 번째 상대는 올 시즌 3위를 기록한 젠지입니다. '반지원정대'로 불리는 젠지는, 올 시즌 1위를 차지한 담원과도 호각을 다퉜을 만큼 강력한 팀으로 꼽히죠. 양 팀의 맞대결은 어떤 방향으로 전개될까요? 핵심 라인으로 꼽히는 탑과 바텀을 비교하는 한편, 양 팀의 지표를 통해 경기의 포인트를 짚어봤습니다. / 디스이즈게임 이형철 기자
본 콘텐츠는 디스이즈게임과 오피지지의 협약으로 제작됐습니다.
젠지와 아프리카는 팀적 지표에서부터 상당한 차이를 보입니다.
젠지는 대부분 항목이 담원에 이은 리그 2, 3위에 해당하는데요. 평균 킬(15.2), 분당골드(1876), 15분까지 상대 팀과의 골드 차이(1254) 등은 젠지가 올 시즌을 얼마나 잘 치렀는지를 반증하는 수치입니다. 심지어 젠지는 평균 경기 시간(31분 25초)도 꽤 짧은 편으로, 이는 탑 5팀 중 2위에 해당하죠. 공격적인 플레이로 빠르게 스노우볼을 굴리는 '속도의 젠지'를 제대로 보여준 시즌인 셈입니다.
젠지의 강함은 오브젝트 지표에서도 드러납니다. 젠지는 올 시즌 드래곤, 전령 획득률은 물론 퍼스트 포탑 획득율 역시 70% 이상의 높은 수치를 기록했는데요. 특히 드래곤 획득률은 리그에서 유일한 '70%'대에 해당합니다. 강한 라인전을 바탕으로 오브젝트 싸움도 유리하게 끌고 간다는 뜻이죠.
반면 아프리카는 5위라는 중위권 순위에 걸맞는 평범한 지표를 보여주고 있는데요. 그 중 나쁜 의미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오브젝트'에 관한 부분입니다.
아프리카의 드래곤 획득률은 45.2%로, 압도적인 최하위권 팀에 해당하는 한화생명, 설해원 등을 제외하면 리그 전체에서 가장 낮은 편입니다. 전령 획득률(43.8%)도 마찬가지죠. 첫 포탑을 가져가는 비율 역시 43.9%에 불과합니다. 특히 이는 젠지가 해당 항목에서 모두 70%를 상회했음을 감안하면 꽤 큰 차이입니다. 결국 올 시즌 아프리카가 라인전에서부터 전혀 주도권을 잡지 못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처럼 젠지와 아프리카는 순수 팀적 지표만 놓고 봐도, 정반대 상황에 놓여있습니다. 결국 이 경기는 강한 라인전을 바탕으로 초반부터 상대를 압박하는 젠지의 '속도'를 아프리카가 얼마나, 또 어떻게 받아치느냐에 달려있지 않나 싶습니다. T1과의 와일드카드전처럼 '깜짝 카드'가 필요해 보이는 구도네요.
먼저 지표부터 살펴봅시다.
올 시즌 '라스칼' 김광희와 '기인' 김기인이 기록한 지표는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특히 양 선수의 골드 할당율과 킬 관여율 차이가 고작 1~2%에 불과할 정도로 눈에 보이는 숫자 자체는 꽤 비슷한 편이죠. 그나마 눈에 띄는 건 대미지 기여율 부분인데요. 라스칼은 리그 최하위, 기인은 12명의 탑 라이너 중 7위에 해당하는 대미지 기여율을 기록하는 등 두 선수 모두 해당 항목에서는 좋은 성과를 올리지 못했습니다.
세부 데이터를 뜯어봐도 상황은 비슷합니다. 라스칼이 15분까지 상대보다 평균 '2개'의 CS를 더 챙긴 반면, 기인은 5개를 더 수확했죠. 같은 시간대, 상대와의 경험치 차이는 라스칼이 135, 기인이 134로 그 차이는 고작 '1'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양 선수의 분위기는 사뭇 다릅니다. 올 시즌 라스칼이 '도란' 최현준, '너구리' 장하권 등 상위권 탑 라이너를 포함, 25회의 솔로킬을 내며 절정의 경기력을 과시한 반면, 기인은 한국 최고의 탑 라이너라는 명성과 달리 부진한 시즌을 보내며 비판에 직면해야 했죠.
양 선수의 챔피언 픽에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올 시즌 라스칼이 가장 많이 플레이한 챔피언은 레넥톤(11회), 오른(7회), 카르마(5회)입니다. 그 중 레넥톤은 시즌 내내 꾸준히 활용된 한편, 와일드카드전에서도 등장한 만큼 플레이오프에도 라스칼의 주력 카드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반면, 올 시즌 초 라이너로 적극 기용된 카르마는 최근 그 선호도가 급격히 떨어진 만큼, 솔로 라인에 설 가능성도 희박하죠.
기인의 최다픽은 모데카이저(9회), 케넨(4회), 제이스와 아칼리(3회)인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플레이오프에서 기인이 모데카이저 같은 평범한 픽을 꺼낼 가능성은 낮아 보입니다. 앞서 말씀드렸듯, 젠지가 경기 초반부터 강한 라인전을 토대로 몰아부칠 것이 뻔하기 때문이죠.
따라서 탑 칼리스타를 활용했던 와일드카드전과 같은 '깜짝 카드'가 등장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특히 앞선 와일드카드전을 통해 '조커 픽'의 위력이 잘 드러난 만큼, 아프리카와 기인이 어떤 픽을 준비하느냐에 승부가 달려있다고 봐도 무방해 보입니다.
사실상 이번 경기의 '하이라이트'로 꼽히는 바텀 라인입니다. '룰러' 박재혁과 '미스틱' 진성준 모두 팀의 핵심 역할을 담당하는 만큼, 경기가 중반 이후로 접어들 경우 딜러들의 손에서 경기가 마무리될 가능성도 높죠.
두 선수의 지표는 꽤나 비슷한 편입니다.
룰러가 대미지 기여율(32.20%) 부분 리그 1위에 오른 사이, 미스틱 역시 해당 항목에서 31.50%이라는 좋은 수치를 보여주며 제 역할을 해냈습니다. 또한, 두 선수 모두 600 이상의 분당 대미지(룰러: 641, 미스틱: 600)를 기록했죠. 올 시즌 LCK를 통틀어 분당 600 이상의 대미지를 넣은 원거리 딜러가 단 세 명 뿐임을 감안하면 인상적인 지표입니다.
반면, 꽤 큰 온도 차를 보이는 구간도 있습니다. 바로 '초반 라인전 수치'입니다. 룰러의 15분까지 CS 차이가 '12.3', 경험치 차이가 '435'로 리그 1위에 해당하는 반면, 미스틱은 같은 항목에서 '2.8', '-144'라는 저조한 수치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젠지의 바텀 듀오가 얼마나 라인전을 강하게 풀어갔는지를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올 시즌 룰러의 최다픽은 이즈리얼(13회), 애쉬(13회), 칼리스타(6회)인데요. 물론 아펠리오스(3패)로 큰 재미를 보지 못했지만, 그 외에는 대세 챔피언을 완벽히 다루며 멋진 시즌을 보냈습니다. 시즌 중 케이틀린이 버프 됐음에도 크게 선호하지 않았던 것을 감안하면, 이번 플레이오프에서도 이즈리얼이나 애쉬가 픽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혹은, 아프리카의 조커 픽을 뺏는 차원에서 칼리스타가 등장할 수도 있고요.
미스틱이 가장 많이 플레이한 챔피언은 아펠리오스(11회), 애쉬(9회), 이즈리얼(9회)로, 룰러 못지않게 클래식 원거리 딜러 챔피언을 잘 소화했습니다. 다만, 주력 카드 아펠리오스는 성장에 지나치게 긴 시간이 필요하다는 점, 그리고 계속해서 너프됐다는 점으로 인해 플레이오프에는 나오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양 팀이 처한 상황은 사뭇 다릅니다.
젠지는 반지 원정대라는 별명처럼 스타급 선수들이 즐비한 팀입니다. 지난 해 T1의 리그 우승, 롤드컵 4강을 이끈 '클리드' 김태민부터 리그에서 최고로 손꼽히는 미드라이너 '비디디' 곽보성, 국가대표 원거리 딜러 '룰러' 등 일일이 나열하기도 어려울 정도의 선수들이 뭉쳐있죠.
게다가 젠지는 롤드컵 진출에 있어서도 꽤 느긋한 편입니다. LCK 서머 결승에 진출할 경우 무조건 롤드컵에 직행하는데다가, 설령 중도 탈락하더라도 DRX가 리그 우승을 차지할 경우 선발전 없이 롤드컵에 출전할 수 있는 추가 옵션도 준비되어있죠.
반면 아프리카의 상황은 절박합니다. 한국 최고의 탑 라이너로 명성을 떨쳤던 기인은 올 시즌 기복있는 모습을 보였고, '스피릿' 이다윤과 '플라이' 송용준 정글-미드 듀오는 절대 강팀을 이길 수 없는 조합이라는 평가를 들어야했습니다. '미스틱'과 '벤' 남동현 역시 지나치게 공격적이라는 비판에 시달렸습니다.
게다가 아프리카에게 주어진 롤드컵 직행 경우의 수는 'LCK 서머 우승' 딱 하나 뿐입니다. 선발전에 너무나도 많은 변수가 있는 것을 감안하면, 아프리카는 말그대로 벼랑 끝에서 플레이오프를 치루고 있는 셈입니다.
언더독의 승리는 항상 많은 팬의 가슴을 뭉클하게 합니다. T1이 무조건 이길 것으로 예상됐던 와일드카드 전이 그러했듯 말이죠. 과연 아프리카가 이 기적같은 행보를 조금 더 이어갈 수 있을지, 아니면 젠지가 자신의 강함을 증명하고 롤드컵을 향해 한 발짝 더 나아갈 수 있을지 궁금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