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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90년대 슈팅 게임들은 왜 우울했을까

[연재] 김승주의 방구석 게임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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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주(사랑해요4) 2020-09-01 10:57:59

슈팅 게임이란 무엇인가? 적의 공격을 피하고, 내 무기로 공격해 적들을 쓰러뜨리는 게임. 간단하다. 그렇기에 과거 슈팅 게임은 비디오 게임의 근간이었다. 단순한 구조 덕분에 만들기 쉬웠기 때문이다.

 

198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슈팅 게임은 시장 전반부에서 당당하게 활약하며 전성기를 구가했다. <스페이스 인베이더>로 무역 회사에서 게임 회사로 변모한 타이토는 <R 타입> 시리즈(1987~)와 <다라이어스> 시리즈(1986~)를 통해 일약 슈팅 게임의 명가가 되었다. 

 

외에도 <도돈파치 시리즈>를 통해 탄막 슈팅 게임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케이브', <레이디언트 실버건>과 <이카루가>를 통해 슈팅 게임의 황혼기를 화려하게 마무리했던 개발사 '트레저'도 있다. 당시 활동했던 게임 개발사라면 누구나 슈팅 게임을 만들어 본 경험이 있다.

 

대표적인 슈팅 게임 <갤러그>(1981)
1980년대는 슈팅 게임의 전성기였다.

신기하게도 위에서 언급한 회사들의 슈팅 게임에는 하나의 강력한 공통점이 있다. 바로 엄청나게 우울한 스토리를 가지고 있다는 것. 이들이 제작했던 게임 속에는 '검은 닌텐도'의 전설을 가뿐히 제끼는 충격적인 설정이 가득하다. 

 

<레이 포스>(1993)나 <메탈 블랙>(1991)에서 나온 지구가 멸망한다는 충격적인 엔딩, 인류 과오의 순환이라는 심오한 메시지를 내포한 <레이디언트 실버건>(1998), 희망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도돈파치>(1997)나 <R 타입> 시리즈의 스토리까지. 언뜻 보면 악의적일 정도로 슈팅 게임들 속에는 우울한 설정들이 자주 등장한다.


문득 궁금해졌다. 왜 그랬을까? 왜 이런 스토리가 나오게 된 걸까? /편집= 디스이즈게임 김재석 기자

 주의: 이 글에는 일부 게임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 슈팅 게임의 특수성

첫째로, 슈팅 게임의 특수성에서 비롯한다. 당시 그래픽과 게임 시스템의 한계로 인해 대부분의 슈팅 게임은 주인공 홀로 다수의 적군에게 맞서는 형태였다. 

2명이 같이 게임을 하는 것이 아니라면 아군이라는 개념은 거의 없었다. 그렇기에 슈팅 게임의 서사는 주인공 혼자서 지구를 침공한 외계인들에게 맞서 싸운다는 단순한 내용이 대다수였다.

게임 개발 능력이 발전하자 단순했던 게임 안에도 새로운 요소가 들어가기 시작했다. 이에 맞추어 스토리도 다각화되기 시작했는데, 몰입도를 높이기 위해 조금 극단적인 설정이 덧붙여졌다. 당연히 주인공이 일대 다수로 적군과 싸워야 한다면 압도적인 적군에 홀로 맞서는 이야기가 쓰일 수밖에 없었으니까. 

그렇기에 여러 비장한 설정을 통해 슈팅 게임의 주인공은 '인류 최후의 희망'이 되어 무자비한 침략자를 상대로 싸우기 시작했다.

변화의 시작은 <제비우스>(1983)였다. <제비우스>는 지구를 공격한 외계인과 남아메리카에서 전투를 벌인다는 내용인데, 최초로 슈팅 게임에 상세한 설정을 덧붙인 게임이다. 적군 하나하나에 이름과 자세한 설정이 깃들어 있으며, 이를 바탕으로 제비우스의 소설이 공식 연재되었을 정도였다. 

그리고 <제비우스>는 움직이는 화면 속에서 싸우는 '종스크롤'의 기본을 구축했기에 스토리와 게임성 두 측면에서 후대 슈팅 게임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변화의 시작점이었던 <제비우스>

스토리가 상세하게 발전해나가는 과정은 <R 타입> 시리즈를 보면 알기 쉽다. 시리즈의 첫 작품인 <R-타입>(1987)에서만 하더라도 주적인 '바이도'는 그저 단순한 외계 생명체였다. 엔딩 또한 "당신은 바이도 제국의 침략으로부터 우주를 지켰다!"라는 간단한 내용이었다. 

하지만 <R 타입 델타>(1998)등 가정용 게임기로 후속작이 발매되고 바이도라는 설정에 살이 붙기 시작하면서, <R 타입> 시리즈는 꿈도 희망도 없는 스토리로 발전하기 시작했다. 후속작을 만들기 위해서는 적들과 계속해서 싸울 수밖에 없는 설정을 제시해야 했기 때문이다.

 

<R 타입> 시리즈의 주적인 바이도

후속작에서 추가된 내용에 대해 스포일러를 하자면, 바이도는 사실 26세기의 인류가 만들어낸 전쟁 병기다. 아이러니하게도 너무나 잘 만든(?) 덕택에 미래의 인류는 바이도를 감당할 수가 없었고, 결국 차원 소거 병기를 통해서 모든 바이도를 다른 차원으로 보내 버렸다.

하지만 바이도는 이(異)차원 안에서 끝끝내 살아남아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기 시작했다. 끝없는 방황 속에서 자신들의 힘을 발현한 바이도는 전쟁 병기라는 자신들의 목적을 완수하기 위해 움직였고, 그들 앞에는 22세기의 지구가 있었다. 그렇게 인류와 바이도의 끝없는 전쟁이 시작된다.

바이도는 정신적 생명체기에, 바이도를 없앨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은 그들의 에너지를 활용한 '포스'를 사용하는 것뿐이다. 게다가 바이도는 각종 기계와 생물, 심지어는 인간의 정신까지 침식해 자신들과 똑같은 존재로 만들어 버린다.

이런 바이도의 무자비한 침공에서 살아남기 위해 인류 또한 피도 눈물도 없는 모습으로 바뀌어 가기 시작했다. 전투력을 위해 조종사를 '생체 컴퓨터'로 만들어 전투기에 집어넣는다는 설정이 있을 정도였으니 말 다 했다.

게임의 엔딩 또한 암울하기 그지없었다. 인간의 정신마저 좀먹는다는 설정답게, 주인공 기체가 바이도의 중추를 파괴하더라도 결국 주인공조차 침식되어 아군에게 사살당한다는 엔딩이 자주 등장하고는 했으니까. 

시리즈가 진행되면서 이런 악순환은 더욱 심해졌다. PSP로 발매된 <R 타입 택틱스>(2007)에서는 임무를 완수한 주인공 함대가 결국 바이도가 되어 버렸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 채, 자신들을 공격하는 인류와 전쟁을 벌인다는 엔딩이 등장하기도 했다. PS2로 발매된 <R 타입 파이널>(2003)에서도 유사한 내용이 나온다.


“익숙한 얼굴, 익숙한 장소. 하지만...왜?”
자신이 바이도에게 침식당했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한 채 지구군과 싸우는 <R 타입 파이널>의 한 엔딩

 


# 몰락하는 거품 경제 속 자화상

필자는 여기서 1980년대 슈팅 게임의 주요 생산지인 일본의 시대적 상황이 작용했다는 가설을 제기하고자 한다.

당시 일본 경제는 정점에 달했다. 내수 시장에서 발생하는 엄청난 이익과 각종 첨단 전자제품을 앞세운 해외 무역에서의 흑자로 일본 경제는 끝 모를 성장곡선을 그리고 있었다. 엄청난 무역 흑자 속에서 기업들은 엄청난 현금을 쌓았다. 정부도 기업에 막대한 세금을 거둬들였다. 

 

말 그대로 돈이 넘쳐났던 시대. ‘월 스트리트 저널’이 1988년에 발표한 ‘세계 100대 기업 순위’ 중 53개가 일본 기업일 정도였다. 기업들은 쌓아놓은 현금을 바탕으로 자신들이 투자할 수 있는 시장을 찾아 나섰다.

 

당시 일본의 시대상을 잘 나타낸 코카콜라 광고

일본의 문화계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리고 기업의 공격적인 투자와, 1세대 오타쿠 계층의 출현, 작가주의의 대두로 상업성보다는 제작자의 철학이 녹아 있는 작품들이 등장하게 된다. 게임 업계도 동일했다. 엄청난 자본력 속에서 개발자들은 자신들의 상상력을 게임 안에 마음껏 펼칠 수 있었다.

 

하지만 1985년부터 시작된 거품 경제의 붕괴로 인해 비관적인 사조가 일본 전역을 휩쓸기 시작했다. 특히 경제 불황이 정점에 달했던 1992년부터 2002년까지는 '잃어버린 10년'이라고 불릴 정도다. 추락하는 경제 지표와 함께 사회 분위기는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흉흉해졌다. 

이지메나 불량 청소년(갸루)과 같은 문제도 '잃어버린 10년'부터 본격적으로 문제시됐으며, 도쿄 지하철 사린가스 테러 사건(1995)과 같은 끔찍한 강력범죄도 발생하기 시작했다.
90년대 말에 폭락했던 닛케이지수. 일본은 아직도 당시의 모습을 회복하지 못했다.

이러한 사회적 기조는 문화계까지 흘러 들어갔다. 이 시기의 대표적인 애니메이션을 꼽으라면 <신세기 에반게리온>을 들 수 있다.<신세기 에반게리온>은 특유의 심도 있는 스토리와 작화로 많은 호평을 받았지만, 시작부터 인류의 절반이 사망했다는 내용이 나올 정도로 암울한 작품이다. 감독인 안노 히데아키는 이런 설정은 당시 암울했던 애니메이션 업계에 대한 메타포라고 한 인터뷰에서 밝히기도 했다.

 

신세기 에반게리온

 

그리고 이와 비슷한 사례를 가진 게임을 든다면 <메탈 블랙>이 있다. 재미있게도 <메탈 블랙>은 1990년에 발매된 <건 프런티어>의 후속작이지만 이어지는 설정이나 스토리는 전혀 없다. 게다가 홍보에 사용된 스토리와 실제 게임 속에 등장하는 이야기도 전혀 달랐다. 대중적이고 상업성이 있는 게임을 원하던 상층부의 감시를 피하고자 제작진들은 표면적으로는 외계인을 무찌른다는 평범한 스토리를 준비했기 때문이다.

 

메탈 블랙의 포스터


간단히 <메탈 블랙>의 진짜 스토리를 설명하자면 다음과 같다. 가까운 미래, 지구는 소행성의 충돌로 인해 절반 이상이 사망하고 정체 모를 외계인 '네메시스'의 침략으로 멸망 직전까지 몰린다. 정치적 타협으로 인해 네메시스와의 정전협정이 가까스로 맺어지긴 했다. 

 

하지만 이에 굴복하지 않은 주인공 '존 포드'는 네메시스에 대항하기 위해 만들어진 '메탈 블랙'이라는 전투기를 강탈하여 홀로 적들의 본거지로 향한다.

 

<메탈 블랙>의 플레이 화면

언뜻 보면 평범한 SF 슈팅 게임 같지만 우중충한 분위기와 OST, 그리고 플레이어의 뒤통수가 얼얼해지게 만드는 강렬한 엔딩은 컬트적인 인기를 끌었다. 

특히 최종 보스전의 배경으로 나오는 인류의 악행(끝없는 전쟁과 환경파괴)을 암시하는 추상적인 연출도 그렇고, 최종 보스를 쓰러뜨리더라도 플레이어 앞에는 '지구가 두 쪽이 난다는' 엔딩이 떡하니 등장하니 사람들의 기억에 남지 않을 수가 없었다. 명확한 설명이 없기에 잘 알 수는 없지만, 네메시스는 인류를 단죄하기 위해 나타난 지구적 존재라는 추측이 많다.

마지막 스테이지에서 게임 오버를 당할 경우에는 주인공의 의지를 이어받은 지구군이 총공격을 가한다는 그나마 희망적인 엔딩이 나온다. 하지만 그들이 최종 보스를 무찌르더라도 위에서 나온 엔딩을 생각해 본다면 지구가 어떤 결과를 맞이할지는 뻔하다. <메탈 블랙>은 타이토의 슈팅 게임들이 공통으로 보이는 우울하고, 염세주의적인 스토리의 정점이었다.

인류의 악행을 암시하는 듯한 배경

최종 보스를 쓰러트렸지만, 돌아갈 곳도 없어졌다. 그렇게 주인공은 우주의 미아가 된다.

 

 

# 발전하는 업계와는 반대로, 쇠락해가는 슈팅 게임

 

꺼져가는 거품 경제처럼 슈팅 게임이라는 장르도 쇠퇴기에 접어들고 있었다. 애초에 80년대부터 가정용 게임기에서는 이미 슈팅 게임이 설 자리를 잃고 있었다.

 

게이머들은 비슷비슷한 슈팅 게임보다는 <스트리트 파이터>와 같은 격투 게임이나 <젤다의 전설>같은 RPG를 즐겼다. 남은 것은 오락실 시장이었지만, 오락실에서도 슈팅 게임은 갈수록 힘을 잃어가는 모양새였다. 슈팅 게임은 날로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져만 갔다.

사람들이 슈팅 게임을 외면했던 이유는 슈팅 특유의 단순함에 있다. 플레이어에게 날아오는 적탄을 피하고, 위에서 내려오는 적기를 쏘아 맞한다. 비디오 게임이 익숙하지 않았던 초창기에는 슈팅이라는 요소 하나만으로도 흥미를 살 수 있었지만, 이내 슈팅 게임에 익숙해진 사람들은 새로운 느낌을 주는 게임을 원했다.

게다가 슈팅 게임은 단순하면서도 파고들기에는 매우 어려운 장르다. 초창기 슈팅 게임만 하더라도 내려오는 적들을 쏘아 맞히는 지극히 단순한 구조였지만, 계속해서 슈팅 게임이 출시되고 새로운 요소들이 등장하면서 난이도가 지나치게 올라갔기 때문이다. 

80~90년대의 슈팅 게임을 보면 게임을 조금만 진행하더라도 적들은 플레이어가 피하기 힘든 총알을 쏘아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스테이지를 돌파하기 위해서는 철저한 암기와 패턴 숙지가 필수적이었다. 스코어링 요소도 너무나 복잡했다.

이 분야에서 정점을 찍었던 <그라디우스 3>. 정말 미칠 듯한 난이도로 유명했다. 
이런 게임을 클리어하기 위해서는 적들이 나오는 위치와 패턴을 전부 익혀야 하며, 
미스가 나왔을 때 유연하게 극복할 수 있는 경험까지 필요하다.

물론 꾸준한 연습을 통해 이런 난관들을 극복하며 즐거움을 느낄 수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슈팅 게임에 시간을 쏟느니 차라리 친구와 대전 액션 게임을 하거나 <DDR> 같은 리듬 게임을 가볍게 즐겼다.

탄막 슈팅 게임의 갈라파고스화는 가속화했다. 슈팅 게임에 익숙한 마니아층은 더욱 어려운 난이도를 가진 게임을 원했고, 이들의 성원 속에서 새롭게 등장한 장르가 탄막 슈팅이라는 장르였으니까. 마치 커튼처럼 화면을 뒤덮는 탄막을 보며 마니아층은 오히려 압도적인 탄막을 보며 열광했지만, 일반 게이머들은 혀를 내두르고 도전 자체를 포기했다.

탄막 슈팅 게임의 시작점으로 여겨지고 있는 <배틀 가레가>

 

사실, 탄막 슈팅 게임에서의 적탄들은 대부분 플레이어를 직접 노린 조준탄이 아니라 허공을 향해 무의미하게 날아가는 탄이 대다수다. 플레이어를 향한 조준탄은 극히 일부다. 오히려 일반적인 슈팅 게임이 탄막 슈팅 게임보다 어려운 경우도 많다. 등장하는 탄환은 적지만 대부분은 빠르게 날아오는 조준탄인 경우가 부지기수니까. 

 

하지만 그 사실을 아는 게이머들은 많이 없었다. 애초에 슈팅이라는 장르 자체가 지나치게 매니악화된지 오래였다. 그렇게 슈팅 게임은 ‘하는 사람들만 하는’ 게임으로 전락해 버렸다. 가끔 몇몇 사람들이 동전을 넣고 2~3분조차 버티지 못하는 것을 제외하면, 오락실 구석에 쓸쓸히 박힌 채 때때로 마니아가 찾아와 20분이 넘는 시간 동안 진득하게 붙잡는 게임이 되어 버린 것이다. 


시간당 회전율 자체가 적어지다 보니 슈팅 게임은 자연스럽게 오락실에서 퇴출당했다. 일본에서는 그나마 마니아층이 있어 명맥을 유지할 수 있었지만, 국내 오락실에서는 곧 슈팅 게임을 찾아보기가 어려워졌다.

한때 슈팅게임은 오락실의 절대 강자였지만, 이제는 리듬게임, 격투게임 등 타 장르에게 그 공간을 내줬다. 사진은 옛 정인게임장

물론 슈팅 게임이 몰락한 원인을 당시의 업계가 마니아층만 신경 쓰며 일반 유저들을 등한시한 것으로만 책임을 돌리긴 힘들다. 어찌 보면 슈팅의 구조적 단순함 덕분에 한계도 명확할 수밖에 없었으니까. 슈팅 게임의 몰락은 게임의 기술적 발전과 더불어 발생한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슈팅 게임 제작자들은 그 와중에도 포기하지 않았다. 쇠락해가는 업계 속에서 슈팅이라는 본질에 대해 다시 생각하는 한편, 자신들이 생각하는 이상을 게임 속에 녹여내기 위해 부단히 애썼다. 

98년에 발매된 트레저의 <레이디언트 실버건>은 이를 반영한 대표적인 작품으로 꼽을 수 있다. <레이디언트 실버건>은 장인 정신이 느껴지는 완성도를 통해 슈팅 게임의 황혼기를 화려하게 장식한 게임이었으니까. 감탄이 나올 정도의 레벨 디자인, 세가 새턴의 한계를 초월한 듯한 아름다운 OST는 많은 슈팅 게이머들의 가슴을 울렸다.

세가 세턴의 성능을 한계까지 끌어내 극찬을 받았던 <레이디언트 실버건>

<레이디언트 실버건>의 플레이 동영상

그리고 <레이디언트 실버건>의 우울하면서도 희망을 주는 스토리와 최종 보스전에서 갑작스레 등장하는 음성 속에 녹여낸 의미들은 슈팅 게임계에 보내는 제작자들의 절절한 이야기처럼 느껴진다. 개발사도 비공식 공략집에서 이루어진 인터뷰를 통해 최종 스테이지에 숨겨둔 자신들의 진의를 은근슬쩍 밝히기도 했다.

게임의 엔딩 직전에 갑작스레 나오는 "나를, 사랑하나요?"라는 대사는, 
마치 "아직 슈팅 게임을 사랑하나요?"라는 개발사의 절절한 물음처럼 들린다.

 

 

# 슈팅은 부활할 수 있을까?

 

슈팅 게임의 우울한 스토리는 슈팅 게임의 특수성, 거품 경제의 몰락, 쇠퇴기에 접어든 슈팅 시장 등 많은 구조적 조건이 맞물려 나온 것으로 보인다.

 

물론 유쾌한 스토리로 유명한 <텐가이>(1996)나 <1945 스트라이커즈>(1995) 시리즈를 만들었던 개발사 '사이쿄'의 예를 들어 반박할 수도 있지만, 사실 사이쿄 게임들에도 우울한 설정은 은근슬쩍 들어가 있었다.

 

최종 보스와 함께 동귀어진하는 주인공. 
유쾌한 스토리로 유명한 텐가이에서도 루트에 따라선 우울한 엔딩이 나오기도 한다.

다행히도 우울한 스토리와 맞물려 계속해서 마니아들만을 위한 게임이 출시되던 슈팅 게임도 최근 부활의 조짐을 보이는 중이다. 스팀 그린라이트와 같은 창구를 통해 초심자를 배려한 슈팅 게임들이 등장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트레저가 제작했던 <이카루가>의 영향을 받아, 당시 유행하던 로그라이크에 탄막을 접목한 <엔터 더 건전>(2016)이 흥행을 기록했다. 또한, <R 타입> 시리즈의 최신작인 <R 타입 파이널 2>가 킥스타터 펀딩에 성공하며 오는 12월에 발매를 예고한 상태기도 하다.

비디오 게임의 근간이었던 슈팅 게임이 그 특유의 우울함을 떨쳐내고 다시 대중 곁으로 다가올 날이 올 수 있을까? 언젠가 그 순간이 찾아오기를 조용히 희망한다.

 

<R 타입 파이널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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