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담 전기>는 건담 3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타이틀입니다. 일본 콘텐츠이지만 국내에서도 마징가 Z와 더불어 가장 인지도 높은 로봇물이죠.
건담의 역사에서 가장 비중 있는 시대는 바로 1년 전쟁을 다루는 스토리입니다. 그래서 최초의 차세대 게임기(PS3) 건담 게임으로 등장한 것이 <건담 타겟 인 사이트>였죠. 하지만 속된 말로 망했습니다. 그것도 처참하게 말이죠.
그 뒤를 이어서 <건담 전기>가 30주년 기념작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발매됩니다. 아무래도 전작의 악몽을 기억하는 유저들은 플레이를 망설이게 되지요. 과연 <건담 전기>는 [30주년 기념]이라는 타이틀의 무게를 버틸수 있을까요? /(리뷰 썼다고 건담 오타쿠로 오해 받는) 디스이즈게임 정우철 기자
<건담 전기>의 게임 시스템은 기존의 건담류 액션 게임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주어진 모빌슈츠를 조작해 상대를 때려 눕히고 다음 맵으로 진출 하는 방식 그대로입니다. 이 방식은 지금까지 만들어진 건담류의 게임이 이어져 온 시스템이고요.
하지만 <건담 전기>에 와서는 큰 변화가 있었습니다. 기본적인 시스템은 같지만 커스터마이징이라는 시스템을 적용했기 때문이죠. 또 지구연방군과 지온공국, 2개의 시선으로 1년 전쟁 이후의 외전 스토리가 펼쳐집니다.
지온공국과 연방군의 시점으로 하나의 스토리를 이끌어 갑니다.
게다가 ‘희대의 망작’이라 불리는 <건담 타겟인 사이트>의 악몽을 말끔하게 씻어 내는 재미도 갖추고 있습니다. 여러모로 봤을 때 30주년 기념 타이틀이라는 이름이 너무 잘 어울립니다.
■ 정통 건담의 느낌과 게임성의 밸런스
건담을 좋아하는 사람은 많지만, 각자 좋아하는 콘텐츠는 다릅니다.
퍼스트 건담이라 불리는 1년 전쟁 시대의 오리지널 스토리를 좋아하는 사람, 화려하지는 않지만 심오한 스토리를 가진 제타 건담 스토리를 좋아하는 사람, 스토리는 막장 주말 드라마이지만 화려한 액션으로 눈이 즐거운 꽃돌이 건담 시대를 좋아하는 사람으로 나뉘죠.
그러나 건담이라는 콘텐츠를 정말 좋아하는 사람은 대부분 퍼스트 건담 시대를 즐기는 유저들 입니다. 건담은 마징가 Z처럼 반 의인화 캐릭터가 아닌, 말 그대로 하나의 병기로 등장하는 것이 가장 매력적인 부분이지요.
퍼스트 건담은 지금은 가장 약한 건담이지만 이 게임에서는 최강급으로 분류됩니다.
그래서 육중한 움직임과 병기로서의 조작이 적절히 구분되어야 하죠. 사실 전작인 <건담 타겟 인 사이트>가 실패한 이유는 별거 없습니다. 너무나 리얼한 건담의 느낌을 재현하려다 보니 조작 자체가 힘든 건담 시뮬레이터가 되었기 때문이죠. 느낌은 살렸지만 게임성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건담 전기>는 다릅니다. 육중한 인간형 병기의 느낌과 더불어 적절한 게임성을 위한 움직임을 보여줍니다. 너무 리얼하지도 않고, 너무 게임성만 추구하지도 않은, 정도를 걷는 타이틀입니다.
특히 게임을 하다 보면 만화에서 보던 느낌을 그대로 유저에게 전달해 줍니다.
■ 오리지널 건담의 매력을 게임으로 재현
예를 들어 지온공국의 자쿠를 몰던 병사가 지구연방군의 건담을 만나서 대책 없이 당하는 느낌을 <건담 전기>에서 느끼게 됩니다. 그 반대의 입장도 마찬가지입니다.
사실 건담이라는 소재를 사용함에 있어서 확실한 것은 모빌슈츠의 성능 차이가 눈에 보일 정도로 확연하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조작을 잘해도 자쿠(혹은 짐)가 건담을 상대하는 것은 상당히 버겁게 느껴지죠. 애니메이션에서 지온공국의 병사가 왜 건담을 연방의 ‘하얀 악마’라고 부르게 되었는지 공감이 갈 정도니까요.
반면 상위 기체로 바꿔 타면 반대로 상대를 쓸어 버리는 쾌감을 맛볼 수 있습니다. 물론 이런 움직임은 지금까지 건담 게임을 즐기던 유저에게는 다소 생소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돈좀 모으겠다고 투자를 안 하면 이렇게 좌절을 맛볼 수도 있습니다.
기존의 <VS 시리즈>나 코에이에서 개발했던 <건담 무쌍> 시리즈가 사람과 다름없는 동작을 보여줬기 때문에 느릿하고 육중한 건담을 처음 보면 “뭐야 이건!”이라는 말이 나올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건담 전기>의 매력은 바로 이런 건담의 움직임에서 나옵니다. 어떻게 보면 밸런스의 붕괴로 볼 수 있지만 건담의 세계관에서 써먹는 변수가 있죠. 바로 파일럿 보정입니다.
같은 기체도 파일럿이 엘리트면 그에 걸맞는 대미지와 방어력 보정이 들어갑니다. 그래서 같은 기체라도 상대하는 느낌이 달라지죠. 덕분에 미션 난이도가 들쑥날쑥하다는 비판을 받기도 하는데요, 이 점은 뒤에 자세하게 다루겠습니다.
하지만 건담을 몰고 나온다면 암울함은 더 이상 자신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 국내 유저에게 불친절한 스토리 모드
<건담 전기>는 스토리 모드, 프리미션 모드로 나뉩니다. 여기서 이야기할 것은 지구연방군과 지온공국의 엘리트 파일럿들의 두 가지 시점으로 진행되는 스토리 모드입니다.
게임의 난이도는 쉬움, 보통, 어려움으로 나뉩니다. 그러나 난이도에 상관 없이 미션별 난이도가 너무 불분명하다는 게 문제입니다. 예를 들어 연방군으로 쉬움(EASY) 난이도로 진행해도 세 번째 미션에서 헤매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해당 미션에서 갑작스럽게 지온공국의 최고 등급 기체와 엘리트 파일럿이 등장하기 때문입니다. 총알은 다 떨어져가는데 갑자기 등장한 적은 대미지가 거의 들어가지 않습니다. 그것도 게임의 후반부에 이벤트 장면이기 때문에 피해갈 방법도 없습니다.
컬러가 다르면 성능도 다릅니다(다행히 스토리 모드에서 사야전용 자쿠는 안 나옵니다).
방법은 무한 리젠되는 동료 기체의 도움을 받으면 되지만, 이를 깨닫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게다가 쉬움 모드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습니다. 이런 식으로 갑자기 난이도가 급상승하는 스테이지가 전체적으로 3~4개 정도 존재합니다.
그나마 스토리 모드에서는 나은 편입니다. 상황에 맞춰서 그에 맞는 기체를 제공해 주기 때문이죠. 또 RPG처럼 파일럿의 경험치를 투자해 능력을 올리고 미션을 클리어한 보상으로 성능 좋은 무기를 구입하면 쉽게 풀어갈 수도 있습니다.
반복 플레이를 하게 만드는 시스템이 당연하게 들어가 있습니다. 하지만 스토리 모드에서 ‘노가다’라 불리는 반복 플레이를 하게 된다면 좌절하게 됩니다. <건담 전기> 진짜배기는 바로 ‘프리미션’이기 때문입니다.
빅잠을 파괴하는 미션도 프리미션에서만 즐길 수 있는 콘텐츠입니다.
어쨌든 스토리 모드에서는 스토리만 즐기면 됩니다. 짧지만 강렬한 내용 속에 건담이라는 세계관이 풍부하게 담겨 있습니다. 지구연방군과 지온공국이라는 대립된 진영에서 자신들만이 옳다고 믿는 이념을 관철하기 위한 행동이 흥미롭게 펼쳐집니다.
물론 일본어를 모른다면 절대 의미 없는 이야기라는 것은 어쩔 수 없는 현실입니다. 게다가 국내에서는 단 한번도 정식 방영되지 않은 건담이라는 것도 스토리를 이해하는 데 걸림돌이 됩니다.
■ 온라인게임 같은 프리미션의 재미
프리미션은 스토리 모드의 미션을 유저 혼자, 또는 온라인에서 최대 4명이 함께 풀어 가는 모드입니다. 문제는 스토리 모드와 프리미션 모드의 데이터가 공유되지 않는 데 있습니다. 따라서 스토리 모드는 말 그대로 스토리를 즐기고, 프리미션에서 용병 모드를 해제하는 용도로만 사용되고 말죠.
결국 스토리 모드에서 쓴 시간은 프리미션에서 초기화되는 셈입니다. 게다가 프리미션은 모든 기체와 무기를 미션 보상으로 얻거나 구입해야 하죠. 말 그대로 온라인게임에서 1레벨부터 시작해 장비를 맞추는 개념입니다.
돈을 모으고 레벨업을 해서 최강의 장비를 맞추는 것이 프리미션의 콘셉트!
실제로 돈을 모으고 장비를 맞추기 위해 온라인에서 4명이 같은 맵을 계속 플레이하는 모습도 볼 수 있습니다. 이런 노력의 대가는 달콤하게 다가옵니다. 스토리 모드와 달리 자신만의 커스텀 기체를 만들 수 있어 플레이의 방대함이 상당히 늘어나기 때문이죠.
온라인에서는 장비를 다 맞춘 유저가 초보 유저를 데리고 레벨업을 도와주기도 하고, 초보 4인 파티로 클리어하기 어려운 맵을 돌아다니기도 합니다.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은 <건담 전기>의 재미는 전투만이 아니라 전투를 준비하는 데서도 찾을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물론 저렙들은 힘을 합쳐 미션을 하나씩 클리어해야 합니다.
지상전용 기체에 파츠를 달아 우주와 바다에서 사용할 수 있고, 심지어 격투전용, 사격전용 등으로 자신의 입맛에 맞게 개조할 수도 있습니다. 특히 건담의 세계관에서 빠질 수 없는 ‘전용기’도 만들어 냅니다. 이런 요소 하나하나가 수집의 재미를 안겨 줍니다.
■ 좋은 게임이지만 눈에 띄는 단점들
<건담 전기>는 건담을 소재로 한 게임 중에서도 손꼽히는 수작에 속합니다. 실제와 게임성을 적절히 배합한 밸런스, 다양한 즐길 거리와 플레이스테이션 네트워크(PSN)를 이용한 온라인 모드 등 콘솔 게임이면서도 최신 경향인 온라인 플레이도 지원하고 있죠.
하지만 너무나 콘솔 게임 답지 않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스토리 모드는 12시간 정도면 엔딩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나머지는 단순히 기체 수집으로, 플레이 패턴이 단순해지고 맙니다. PS3의 블루레이 타이틀 치고는 너무나 빈약한 콘텐츠의 양입니다.
게다가 반다이남코게임즈의 주특기(?)인 다운로드 콘텐츠로 추가 미션과 기체가 제공될 예정입니다. 어떻게 보면 <건담 전기>는 콘솔 게임을 가장한 온라인 게임으로 느껴질 정도입니다.
헤비풀아머 건담 7호기 등은 다운로드 콘텐츠로 판매될 예정입니다. 이런 돈벌레 같은!!!
그렇다고 온라인 모드가 완벽한 것도 아닙니다. 조건 검색으로 방을 찾으면 90% 입장이 불가능 합니다. 게다가 네트웍크 탐색 시간은 상당히 오래 걸립니다. 대략 10분 동안 고생해서 온라인 플레이를 해도 5분 안에 한 게임이 끝날 정도로 플레이 타임도 짧죠.
퀵서치로 방을 찾아도 초보와 고수를 구별할 수 없어서 제대로 게임을 즐기기 힘들죠. 결국 친구초대 등의 방법을 이용해야 하는데 이것도 한글 채팅은 거의 불가능 합니다. 글로벌 서버이기 때문에 플레이도 쾌적하지 않고요.
저렙끼리의 네트워크 대전에서 갑자기 이런 기체가 들어오면 100% 방이 깨집니다.
심지어 운 좋게 1~2시간 동안 온라인 플레이를 해도 대화가 없습니다. 블루투스 헤드셋을 이용한 음성채팅을 가능하지만 헤드셋을 가진 유저를 찾기 힘들고, 찾았다고 해도 80% 이상은 일본 유저입니다. 한국 유저들에게는 참 불친절한 게임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번 플레이해 볼 가치는 충분합니다. 시스템이 복잡하지 않고 건담이라는 특징을 제대로 살려낸 타이틀입니다. 건담의 팬을 자처한다면 분명히 빠져들게 만드는 콘텐츠로 가득 채워져 있기도 합니다.
일본어를 조금이라도 알고 건담의 팬이라면 자기 만족용으로는 이보다 더 멋진 건담 게임은 없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입니다. 다만 남들이 한다고 플레이 하면… 글쎄요? 이런 경우는 재미를 보장하기 힘들다는 것도 어쩔 수 없는 현실이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