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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뷰/리뷰

[리뷰] 원숭이 섬으로의 귀환: 끝나버린 노래를 다시 부르다

30년의 시간, 웃음도 풍자도 있지만 '추억 보정'을 걷어내면....

에 유통된 기사입니다.
김재석(우티) 2022-09-21 18:38:01

카리브해의 해적 '가이브러시 쓰립우드'가 '원숭이 섬'의 비밀을 찾아 모험을 떠난다는 어드벤처 게임 <원숭이 섬의 비밀>은 가히 기념비적인 작품이다. 시종일관 유머와 풍자로 가득하면서도 문제 해결(퍼즐)의 재미를 놓치지 않은 <원숭이 섬의 비밀>은 한국에서도 발매되어 큰 인기를 끌었다.

 

<원숭이 섬의 비밀> (1990)

 

개발사 루카스필름 게임즈(루카스 아츠)는 <매니악 맨션>을 스크립트 툴 '스컴 엔진'으로 만들면서 마우스를 통한 포인트&클릭 어드벤처 게임의 요소를 정립했다.​ 이후 이들의 시도는 훗날 게임판 <인디아나 존스와 최후의 성전>(1989), <원숭이 섬> 시리즈,​ <샘 앤 맥스>(1993)로 이어지기도 했다. 

 

동시대 다른 타이틀을 모두 통틀어도, 자체 제작 스토리에 독창적인 설정과 기믹들로 가득했던 <원숭이 섬> 시리즈를 '전설'로 꼽는다. <원숭이 섬> 시리즈는 80~90년대 어드벤처 게임의 대표 격으로 당시로서는 상상도 하기 어려운 기상천외한 퍼즐은 물론 유머러스 하면서도 풍자적인 스크립트와 매력적인 등장인물들로 상당히 많은 플레이어들을 매료시켰다. 

 

<원숭이 섬> 시리즈는 1990년 첫 출시되어, 1991년에 2편이 나왔고, 3편 <원숭이 섬의 저주>(1997), 4편 <원숭이 섬에서의 탈출>(2000)까지 끊기지 않고 세상의 빛을 봤다. 이후 타이틀부터는 텔테일게임즈에서 제작했기에 이 글에서는 따로 언급하지 않는다.

 

시리즈의 상징적인 인물은 바로 1편과 2편의 디렉터를 맡은 론 길버트(Ron Gilbert)​다. 인터랙티브형 스토리텔링의 방향성을 제시한 개발자로 전술한 <매니악 맨션>과 <원숭이 섬> 시리즈 1, 2편을 제작한 뒤, 루카스필름을 떠나 독자 행보를 이어 나갔다. 그러면서 <원숭이 섬> 후기 작품들에도 론 길버트만의 유머러스한 키워드가 다소 약해졌다는 평가가 나왔다. 물론 시대가 발전함에 따라 즐길 게임이 많아진 영향도 무시할 수 없으리라.

 

 

# "30년 간 응어리진 비밀을 보여주마!" <원숭이 섬으로의 귀환>

 

론 길버트는 약 30년 만에 루카스필름과 손을 잡고 <원숭이 섬> 신작을 만들어 출시했다. 이름하여 <원숭이 섬으로의 귀환>. 

 

론 길버트는 지난 4월 1일 만우절 신작에 관한 소식을 전했고, 결국 사실이 됐다. 시리즈 본편 2편과 3편 사이의 이야기로 이야기의 각본을 맡았던 데이브 그로스만(Dave Grossman)도 제작에 참여했다.​ 신작의 개발은 론 길버트의 독립 스튜디오 '테러블 토이박스'(Terrible Toybox)에서 루카스필름으로부터 IP 라이선스를 얻는 형태로 진행됐다. 유통은 유력 인디게임 퍼블리셔 '디볼버디지털'이 맡았다.

 

신작 제작 소식이 전해지자 해외 PC게임 유저들은 뜨거운 반응을 보냈다. 그러나 열광적인 기대의 한편에는 스컴 엔진을 기반한 픽셀 아트가 아닌 고해상도 2D 그래픽을 채택한 지점에 대한 일부 우려가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반응을 표현하는 방식은 1990년대와는 확연히 달라졌다. 유저들의 매서운 댓글에 디렉터 론 길버트는 자신의 블로그에 "게임에 대한 소통을 중단하겠다"라며 강하게 대응하기도 했다.

 

블로그의 댓글 창을 막겠다고 선언한 론 길버트.

 

2022년 9월 20일, 엄청난 관심과 곡절 끝에 <원숭이 섬으로의 귀환>이 스팀에 올라왔다. 기자는 시리즈의 팬으로서 누구보다 빠르게 게임의 구석 구석을 뜯어보았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원숭이 섬으로의 귀환>은 시리즈를 아끼는 사람이라면, 투자할 만한 가치가 충분하다. 그러나 유머의 날은 과거에 비해 무뎌 졌으며, 문제 해결 과정은 이따금씩 늘어져 피곤하게 다가온다. 

 

끝나버린 줄 알았던 이야기가 다시 시작되어 반갑지만, '그래서 이것이 과연 30년 동안 숨겨둘 만한 이야기인가요?'라는 의문이 남는다.

 

게임의 주인공 가이브러시 쓰립우드.

  

게임은 2편의 끝에서부터 시작한다.

추억의 주점도 다시 만날 수 있다.

 

# 가벼운 웃음도, 날카로운 풍자도

 

기자가 기억하는 <원숭이 섬>의 유머 코드란 이런 것이다.

 

주인공 가이브러시가 누구에게나 농담을 하거나 타이밍을 맞춰 물건을 훔치거나 대화를 통해 상황을 파악한다. 그때마다 미국의 상표권 남용을 풍자하는 '원숭이 섬의 비밀™' 같은 우스개가 나타난다. 아름다운 일레인을 만나 말을 잃어버리고, 그것이 게임에서는 이상한 단어를 독백하는 모습으로 등장하며 큰 웃음을 준다. 강아지들을 기절 시킬 때는 '게임은 동물보호법을 준수했다'라는 메시지도 나왔다. 당대의 영상물의 경고 메시지를 비꼰 것이다.

 

그런 코믹한 요소를 당연히 이번 <원숭이 섬으로의 귀환>​에서도 만날 수 있다. 가령 숨을 잘 참는다는 기믹의 가이브러시는 옛 게임에서 10분 잠수할 수 있었는데, 이제는 나이를 먹어서 8분만 숨을 참을 수 있다. 여행 중간에 조우하는 난파선에서는 '과학은 믿지 않는다'라며 가이브러시가 건네는 괴혈병 치료용 라임을 받기 거부하는 해적들이 나온다. 분명 코로나19 백신 반대론자들을 풍자한 것으로 이해된다. 

 

난파선의 두 해적은 괴혈병 치료를 위한 라임 처방을 '과학'이라며 거부한다. 이에 주인공은 라임을 '면도날 폭탄'이라는 이상한 존재로 속인다.

  

예전에는 10분 잠수했지만, 이제는 늙어서 8분 잠수할 수 있는 가이브러시.

 

과거 론 길버트는 루카스필름의 <룸>(Loom)을 홍보하는 캐릭터를 게임 속에 집어넣었는데, 이번에도 같은 인물이 가슴팍에 'Loom' 뱃지를 단 인물을 등장시켰다. 그러나 2022년에는 더이상 <룸>을 팔기 위해서 노력하지 않아도 되는 입장이므로, 그 캐릭터는 가이브러시에게 열정적으로 게임을 홍보하지 않는다. 

 

<원숭이 섬으로의 귀환>의 줄거리에 대해 말해보자면, '이번에도' 원숭이 섬의 비밀을 찾기 위해서 배와 선원을 구하러 모험하고, 다양한 위기에 마주한다. 가능하면 스포일러를 피하기 위해 최소한의 요소만 서술하자면, 가이브러시는 이번에도 원숭이 섬까지 가는 배와 선원을 구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결국 희대의 라이벌인 좀비 해적 선장 '리척'의 배에 몰래 승선하기로 한다. 

 

그래서 가이브러시는 리척의 배에 막내 선원으로 탑승하기 위해 ⓐ 가이브러시의 모습이 아닌 다른 꼴로 변장하고 ​ 배에서 쓸 대걸레를 직접 만들어야 한다. 여기서부터 시리즈 특유의 연계 퍼즐이 등장한다.

 

이후 게임은 원숭이 섬에 도달하고, 자신의 배를 얻고, 여러 섬을 탐험하며 다섯 가지 종류의 황금열쇠를 얻으며 비밀의 진상에 한 걸음씩 가까워지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익숙한 밀리 섬의 모습은 리메이크되었으며, 2편에서 보여준 캐주얼 모드와 하드 모드가 구분되어있어 취향에 따라서 간소한 퍼즐 또는 어려운 퍼즐을 고를 수 있다. 

 

마찬가지로 시리즈 전통의 힌트 시스템도 조금은 달라진 모습으로 만날 수 있다. 인벤토리에서 힌트상자를 눌러서 조금씩 해결 방법을 알아내는 방식이다. 참고로 <원숭이 섬으로의 귀환> 메인 메뉴에는 시리즈 1편부터 가이브러시의 일대기를 기록한 '스크랩북'이 있기 때문에 전작을 전혀 플레이하지 않은 이들도 기본적인 설정을 이해할 수 있다. 

 

게임은 2편에서처럼 성우의 목소리가 거의 모든 대사에 녹음되어 있다.

 

본인의 선호에 따라서 캐주얼, 하드 둘 중 하나의 모드를 선택할 수 있다.

이번에도 가이브러시는 여러 차례 덫에 걸린다.

해골로 도레미파솔라시를 연주할 수 있다. 저 중 하나는...

 

이런 장면도 등장하는데, 왜 나오는지는 직접 확인해보시길!

 

주의: 아래부터 <원숭이 섬으로의 귀환>에 관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 '추억 보정'을 걷어내고 게임을 본다면

 

<원숭이 섬으로의 귀환>은 6시간 안쪽이면 엔딩을 볼 수 있는 어드벤처 게임이며 게임 곳곳에 시리즈 전작에 대한 오마주가 묻어나 있어 장르에 대한 선호도가 높은 게이머라면 강력히 추천할 만하다. 게임을 하면서 적잖은 이들이 시리즈 1편과 2편의 추억을 새록새록 떠올릴 것으로 보인다.

 

게임의 엔딩을 보고 난 뒤 '스크랩북'에서는 두 핵심 개발자의 편지를 읽을 수 있다. 20대부터 <원숭이 섬>을 만들었던 이들은 50대가 되었다. 두 사람은 "이 게임은 여전히 우스꽝스러운 해적 모험담이지만, 과거의 영광과 젊음의 활력을 다시 잡으려는 시도에 대한 이야기"라며 자신들의 모습이 게임 안에 녹아 들어있음을 시사했다. 이런 점에서 게임의 기획 의도에는 모종의 회한이 묻어나는 듯하다.

 

게임의 이스터에그인 개발자의 편지는 직접 찾아 읽어보시길. 사진은 어디론가 가는 지도.

 

그러나 게임이 선택한 '원숭이 섬의 비밀 같은 건 여러분의 선택에 달려있다'라며 긴 내러티브의 방점을 찍는 것은 왠지 모르게 유치하게 다가왔다. 그보다는 시리즈의 1편에서도 일레인에게 남기는 가이브러시의 마지막 멘트를 플레이어가 직접 고를 수 있었는데, 이번에도 같은 방식을 차용했다. 때문에 (시리즈 전체가 어느 정도는 그렇지만) 자기복제 같다는 느낌이 강하게 든다. 

 

그도 그럴 것이 30년이면 한 세대(decade)라고 부를 만한 시간인데, 그래픽이 달라졌을 뿐, 일레인에 한 눈에 반한 가이브러시가 '떘쬛끏'하는 것 같은 재미는 크게 엿보이지 않는다. 문제 해결의 독창성 측면에서도 괄목할 만한 발전은 없는 듯하다. 예전 <원숭이 섬>에는 게임이 막혔을 때 고객센터에 전화해서 공략을 묻는 기믹이 퍼즐마다 들어갔는데 말이다. 두 개발자는 과거의 영광에 경도되어 자신들의 날을 열심히 벼르지 않은 것은 아닌가?

 

단적으로 주인공 가이브러시가 원숭이 섬의 비밀을 찾겠다며 카리브해 전체를 헤집고 다니고, 이 과정에서 몇몇 치명적인 피해가 발생하는데 일레인은 자신의 남편이 상징적인 나무를 베고, 사람을 버리고 도망가는 모습 등을 추적한다. 그리고 일레인은 게임의 클라이막스에서 이 문제에 대해 가볍게 질문하고 추궁을 끝낸다. 6시간짜리 이야기의 갈등 최고조라고 부르기엔 안타깝다.

 

게임의 클라이막스인데 일레인은 가이브러시를 강하게 몰아붙이지 않는다.

 

그래서 <원숭이 섬으로의 귀환>은 기대보다 덜 코믹했다. 개인적으로 '끝에 뭐라는지 보자' 생각이 들어서 거리낌없이 힌트에 손이 갔다. 그 결과물은 여운을 주지만, '추억 보정'을 걷어내고 보면 '끝나버린 노래'를 다시 부르는 쪽에 가까웠다. 개발자들도 이를 아는지 편지에 "원하는 걸 얻겠지만, 기대와는 다를 것"이라고 적었다.

 

2022년 9월에는 플레이할 게임이 너무나도 많고, <원숭이 섬>의 유머는 딱 그만큼 보편적이 된 느낌이다. 몇몇 유력 외신들이 이 게임에 9점을 주었는데, 게임의 원산지에서 느끼는 '추억 보정'이라고 느껴질 정도다. 냉정을 유지하고, 보정을 걷어내면, 시리즈의 명맥을 잇는 정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