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그대로 ‘숨 죽인 채’ 플레이했습니다.
아웃 오브 인덱스 행사에서 본 <스타이플>(Stifled)은 ‘체감형’ 호러 게임이라는 말이 아깝지 않을 정도로 높은 몰입도를 보여준 게임입니다. 게임 조작 자체는 여타 1인칭 공포 게임과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키보드로 캐릭터를 움직이고, 마우스로 시야를 바꾸는 흔한 방식이었죠.
하지만 소리, 이 요소 하나가 모든 것을 바꿨습니다. 유저가 낸 한숨, 비명 하나 하나를 적에게 들려주는 '마이크'가요. /디스이즈게임 김승현 기자
# ‘소리’로 어둠을 이겨내라
<스타이플>은 ‘소리’를 활용한 공포 게임입니다. 게임은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진행됩니다. 눈을 부릅뜨고 봐도 코 앞의 물건을 알아채기도 힘듭니다. 처음 게임을 플레이한 사람은 당황할 수 밖에 없는 모양이죠. 무심코 "이게 뭐야"라는 소리가 세어 나왔습니다. 그러자 이 소리가 주변을 ‘보여’줬습니다.
‘반향정위’라는 기술이 있습니다. 박쥐가 사물을 인지하듯, 소리를 내 반사된 파동으로 사물을 느끼는 기술입니다. 박쥐나 돌고래는 물론, 일부 훈련 받은 사람들도 사용할 수 있는 기술이죠. <스타이플>의 주인공도 이렇게 사물을 인지합니다. 유저가 소리를 내면 그 파동이 주변 사물을 보여주거든요.
파동을 느끼는 것이기 때문에, 목소리 외에도 자연의 다양한 소리가 주변을 그려줍니다. 계곡의 물 소리, 철제 계단을 오르는 소리, 사물이 무언가에 부딪힌 소리 등등. 물론 파동이 모든 것을 그려줄 순 없습니다. 하지만 멀리서 나지막이 들리는 각종 환경음은 이것을 보충해주죠.
마침 <스타이플>은 이렇다 할 배경음악도 없는 게임입니다. 유저는 자연히 소리에 집중하게 됩니다. 소리만이 시커먼 어둠을 밝혀주는 유일한 '빛'이니까요. 이 시커먼 세상을 몇 분 걷지 않았는데도, 제 귀는 토끼처럼 쫑긋 서 있었고 제 입은 쉴 새 없이 무언가를 말하고 있었습니다. 어둠과 고요가 싫어서요.
# 쉿! 저게 네 ‘공포’를 들을거야
그렇게 끊임없이 흥얼거리며 걷다가 어떤 지하도에 도착했습니다. 콘크리트로 되어 있어, 밖에서 들리던 환경음이 거의 들리지 않는 곳이었죠. 발 소리조차 나지 않는 곳을 목소리만을 의지한 채 걸었습니다. 그러던 중, 비명 소리가 들렸습니다.
찢어지는 듯한 괴성과 함께 화면이 붉게 물들었습니다. <스타이플>에서 사물(정확히는 소리로 느껴진 사물)은 흰 색 윤곽선으로 표현됩니다. 하지만 이것이 왠 괴성과 함께 붉게 물들었죠. 진원지는 벽에 뚫린 작은 구멍이었습니다. 그 구멍 너머로 흉하게 일그러진 무언가가 시뻘겋게 보였죠.
무심코 욕이 튀어 나왔습니다. 그리고 더 최악은 제 입에서 욕이 튀어 나오자 마자, 그 괴물이 (비록 벽 너머지만) 저에게 달려오며 괴성을 질렀다는 것이죠. 순식간에 화면이 시뻘겋게 물들었습니다.
황급히 입을 막았습니다. 소리가 없어지자 화면은 순식간에 어두워졌고, 괴물의 발자국도 점점 멀어졌습니다. 제가 소리로 사물을 느낄 수 있듯이, 괴물도 소리로 저를 느꼈던 것이죠.
여기서부터 본격적인 게임이 시작됩니다. 저는 소리로만 사물을 볼 수 있는데, 괴물은 이 소리로 저를 추격합니다. 마치 실제로 쫓기는 것마냥, 현실의 저도 입을 막고 플레이 할 수 밖에 없었죠.
그렇게 몇 분을 어둠 속을 더듬다 보면 정말 미친 듯이 소리를 내고 싶어집니다.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상황이, 아무 것도 들리지 않는 상황이 답답해서요. 주변을 살피겠다고 나갔다가 결국 죽고 마는 공포영화 조연들의 심정이 이해될 정도였습니다.
# 소리와 침묵, 생존과 전진이라는 딜레마가 만드는 ‘쫄깃함’
이 딜레마가 극대화되는 것은 위기 상황에서입니다. 지척에서 괴물의 괴성이 들려 입을 막고 걸음을 멈췄습니다. 하필 괴물과 만난 곳은 콘크리트 바닥 위. 아무리 귀를 기울여도 괴물의 발자국 소리는 들리지 않고, 소리가 없으니 사물도 보여지지 않습니다. 물건을 던져 괴물을 유인했지만, 소리가 들리지 않으니 잘 홀렸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죽기 싫어서 몇 분을 입 다물고 가만히 있다 보면 정말 심장이 튀어 나올 것 같습니다. 살아 남으려면 길 따라 이동해야 하는데, 그러려면 소리를 내야 합니다. 그런데 만약 적이 아직도 가까이 있다면 길을 보려고 소리를 내는 것은 자살과 같습니다. 이 어찌 할 수 있는 선택지가 심장을 조이죠.
이런 경우도 있었습니다. 눈 앞에 철창이 있고 옆에는 이 철창을 들어올릴 수 있는 레버가 있습니다. 레버가 어찌나 오래됐던지, 잠깐 돌려보니 삐걱거리는 소리가 온 지하도를 울립니다. 그리고 그 때, 뒤에서 괴성과 함께 괴물이 달려오는 소리가 들립니다.
레버를 놓고 숨 죽인 채 어둠을 더듬을까? 아니면 캐릭터의 힘을 믿고 레버를 끝까지 돌리고 문 너머로 갈까? 다른 게임에도 흔히 있는 선택지지만, 어둠 속에서 배경음 없이 상대의 소리만 들리는 상황이, 레버(소음)과 침묵이라는 상반된 생존의 선택지가 사람을 정말 미치게 만들더군요. 말 그대로 공포영화의 주인공이 된 느낌이었습니다.
<스타이플>은 '소리'라는 요소를 절묘하게 활용한 공포 게임입니다. 내 목소리로 사물을 비출 수 있다는 아이디어가, 그리고 그것이 오히려 위기를 만들 수 있다는 아이러니가 유저의 감정은 물론, 신체 반응까지 들었다 놨다 했죠. PC 앞에서 하는 게임이었지만, 체감형 게임이라고 묘사하기에 아깝지 않은 게임이었습니다. 4분기, 스팀 정식 출시가 기다려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