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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뷰/리뷰

도시의 평화는 너굴맨이 처치했으니 안심하라구! '도넛 카운티' 리뷰

도넛을 주문했는데 구멍만 배달왔네요, 이게 뭐으아아ㅏㅏ

에 유통된 기사입니다.
장이슬(토망) 2018-09-04 17:32:22

도넛을 주문했는데 도넛 구멍만 왔습니다. 구멍이 저 혼자 움직이면서 돌이니 풀이니 온갖 잡동사니를 후루룩 들이마시고 점점 커집니다. 사람도 집도 건물도 쑥쑥 집어삼킵니다. 구멍에 빠져 999피트 아래 '지구의 빈속'으로 떨어졌더니 피해자 동물들과 범인 너굴맨이 저세상 토크쇼를 펼치고 앉았습니다. 똑똑 안녕하세요, 상식 배달 왔습니다. 정직한 요약을 추구하는 <도넛 카운티> 리뷰입니다. / 디스이즈게임 장이슬 기자

 

 

 


# 초코 뿌리고 민트도 넣고, 즐거운 당혹감이 가득한 퍼즐

 

동물이 사람처럼 두 발로 서고 말하면서 문명을 차지한 어떤 세상. '도넛 카운티' 지역에 사는 미국너구리(라쿤) 'BK'는 드론을 갖고 싶어서 일하기로 합니다. 태블릿으로 구멍을 조종해 도시의 각종 쓰레기를 훔치기만 하면 된다고 하네요! BK는 드론을 살 수 있을까요? 과연 도시는 무사하긴 할까요?

 

<도넛 카운티>는 미국너구리의 '인성질'과 물리 엔진을 기반으로 하는 퍼즐 게임입니다. 게임은 각기 다른 환경과 장애물이 배치된 22개의 스테이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스테이지에 입장하면 작은 구멍을 주는데, 플레이어는 이 구멍을 움직여서 주어진 장애물을 모두 구멍 안으로 떨어뜨려야 합니다. 

 

구멍은 작아서 돌이나 풀 같은 물건만 삼킬 수 있습니다. 그렇게 티끌을 모으면 구멍이 점점 커지면서 더 큰 물건과 시설, 사람이나 빌딩까지 꿀꺽하게 됩니다. 스테이지에 배치된 모든 사물을 구멍 안으로 떨어뜨리면 끝. 우리 같은 인간은 티끌 모아봐야 티끌인데 과연 너굴맨은 다릅니다.

 


이렇게 초반 스테이지에서 기본 규칙을 학습하면 구멍과 사물의 속성을 활용하는 퍼즐 요소가 등장하기 시작합니다. 일반적으로 구멍의 속성은 '떨어뜨리기'입니다. 하지만 <도넛 카운티>는 삼킨 물건을 도로 튕겨내거나 떨어진 사물의 특성에 따라 예상치 못한 방향의 상호작용을 만들어냅니다. 구멍에 빠지면 온몸을 꼿꼿이 세우는 뱀이나 구멍을 메워버리는 물, 금세 수가 불어나는 토끼 두 마리를 활용하는 스테이지가 대표적이죠. 

 

<도넛 카운티>의 거의 모든 스테이지는 처음 봤을 때 당혹스러움을 안겨주는 한편, 그동안 학습한 규칙에 따라 풀이 방법을 추측하게 합니다. 대체로 시간 제한은 없지만 몇몇 스테이지에서는 긴장감을 주고, 예상치 못한 상호작용과 해법을 즐기게 하는 등 퍼즐 게임의 미덕이 함축적으로 전달되죠. 특히 후반부에서는 그동안 선보였던 모든 요소가 총집합하고, '젤다의 전설'처럼 퍼즐을 활용한 액션이 수반되면서 처음부터 끝까지 즐거운 당혹감을 안겨줍니다. 

 


 

# 도넛은 맛있는데 토핑이 부족해, 아주 살짝

 

<도넛 카운티>는 규칙을 학습하고 마지막 스테이지까지 막힘 없이 흘러가는 퍼즐 게임입니다. 크게 막히는 부분도 없고, 조금 생각이 필요한 퍼즐도 이것저것 시도하면 금방 풀리는 편. 타이밍을 재거나 빠른 조작을 요구하는 한두 부분을 뺀다면 특별히 어려울 것이 없도록 구성되어 있습니다. 

 

게임의 재미가 예상치 못한 상호작용과 조합으로 이루어지는 기발한 퍼즐 풀이에 있으니, 복합 퍼즐이 조금 더 일찍 등장하거나 스테이지가 더 많았으면 하는 아쉬움이 큽니다. 모든 요소가 총동원되는 마지막 스테이지를 플레이하니, 이런 스테이지가 하나라도 더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뒷맛이 남는 거죠. 중후반부 플레이가 재미있는 만큼 초반 플레이 겸 학습 구간은 심심할 정도라서 이 부분이 진입 장벽이 될 정도입니다.

 

분위기는 밝고 즐거운데 정작 퍼즐 스테이지는 정적인 것도 초반의 심심한 인상을 거듭니다. <괴혼>처럼 사람이나 건물을 떨어뜨릴 때 격정적인 반응을 보여준다면 스테이지의 클라이맥스와 어우러져서 역동적인 느낌을 주겠지만, <도넛 카운티>의 사람들은 구멍으로 떨어지는 것이 자연의 순리인 것처럼 겸손하게 떨어집니다. 게임 전반에 깔린 유머 감각이 좋았던 만큼 이 점도 살려줬다면 게임의 주제도 잘 드러날 수 있지 않을까요. 

 

스테이지마다 미묘하게 달라지는 시점, 답답한 조작도 사소한 단점입니다. 각 스테이지의 컨셉에 맞춰 시점이 조절되는데, 구멍이나 사물의 크기가 다르게 보여 잘못 조작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또 마우스나 게임패드로 플레이하면 커서를 움직이는 방향으로 구멍이 끌려오는데, 빠르게 움직일 때는 커서와 구멍의 움직임이 어긋나는 경우도 종종 보입니다. 다만 iOS는 드래그로 구멍을 직접 움직이는 만큼 이 단점이 크게 눈에 띄진 않습니다. 

 

 


# <도넛 카운티>, 우리가 여전히 퍼즐 게임을 찾는 이유

 

'젤다의 전설' 이후 퍼즐은 의외의 장르에도 자연스럽게 접합되어 널리 퍼졌습니다. 액션에는 긴장감과 성취감을 더해주고,  RPG에서는 던전의 핵심 요소로 작동하는가 하면 어떤 게임에서는 이야기에 한층 몰입감을 주는 장치로 쓰이기도 합니다. 이제 '퍼즐적 요소'는 게임이라면 보편적으로 기대할 수 있는 그 무언가가 되었죠. 

 

이처럼 많은 게임에서 퍼즐을 만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독자적인 퍼즐 장르의 게임은 오랫동안 사랑 받고 있습니다. 왜 우리는 퍼즐 게임을 기대하고 찾는 걸까요? 게임은 경험재이기에 저 개인이 어떤 답을 내릴 수 없는 질문입니다만, 대체로 호평을 받는 퍼즐 게임은 몇 가지 공통점이 보입니다. 

  


쉬운 입문, 납득 가능하고 직관적인 규칙, 논리적이면서도 기발한 해법과 이를 발견하는 과정의 즐거움. 다음 퍼즐을 기대하도록 만드는 구성까지. 게임 속에서 마주치는 모든 순간은 플레이어를 즐겁게 약 올리는 도전 거리가 되어야 합니다. 난이도는 어디까지나 부차 문제. 

 

이런 점에서 <도넛 카운티>는 몇 가지 아쉬운 부분을 제외하면 상당히 잘 만들어진 퍼즐 게임입니다. 퍼즐은 함축적이면서 기발하게 작동하고, 남녀노소 누구나 무리없이 플레이할 수 있는 난이도와 구성입니다. 재기발랄하면서 교훈적이며, 안전하기까지 한 이야기는 여름방학에 개봉하는 헐리우드 극장 애니메이션처럼 유머 있고 즐겁습니다.

 

초반 학습 구간은 다소 지루하지만, 후반으로 갈수록 전개는 더욱 기발해집니다. 무난한 퍼즐과 유머 감각을 좋아하는 플레이어라면 시작부터 엔딩까지 약 2시간을 즐겁게 보낼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도넛 카운티>는 토핑 없는 도넛처럼 어딘가 아쉬운 지점에서, 하지만 맛있게 배부른 게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