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대가 큰 만큼 실망 또한 컸다. 한 집 안에서 나온 두 게임의 반응이 이렇게 다를 수 없다. 오늘(22일) 출시를 맞이한 EA의 <앤섬(Anthem)>을 두고 하는 얘기다.
북미 시간으로 지난 1월 26일 실시한 VIP 데모 이후, 게임은 ‘호불호가 나뉜다’는 의견이 많았다. 뛰어난 그래픽 속에서 콤보 형태로 구사하는 활발한 전투, 그리고 유저의 분신이기도 한 자벨린 엑소슈트(이하 엑소슈트)로 벌이는 비행 액션이 대체로 좋은 반응을 얻었던 부분이다.
하지만, 당시 ‘안댐’이라는 별명을 얻기도 한 무한 로딩 및 강제 접속 종료 현상(잦은 로딩도), 그리고 흡입력 있는 콘텐츠 부족, 그리고 <드래곤 에이지> 등을 통해 인정받은 바이오웨어의 스토리텔링이 전혀 주목받지 않았다는 점 등은 단점으로 꼽혔다.
그리고, 약 4주가 지나 출시를 앞둔 <앤섬>을 다시 만날 기회가 주어졌다. 길지 않은 시간이지만, 큰 틀의 차원에서 개선은 불가능하더라도 ‘뭔가는 달라졌겠지’ 하는 일말의 희망을 가지고 몇 일간 게임을 플레이했다. 그러나 그 희망은 점점 의아함으로, 공허함으로 바뀌었다.
설마 놓친 것이 있었나 싶어 찾아보고, 또 찾았지만 생각은 달라지지 않았다. 이유가 무엇일까. 급했던 것일까? 직접적인 영향력은 <앤섬>에 비해 덜했다고 하지만, <에이펙스 레전드>가 흥행해 조금 달리 보였던 EA에 대한 선입견이 다시 생겨버린 느낌이다. 도대체, <앤섬>에 무슨 문제가 생긴 것일까?
<앤섬>의 튜토리얼은 제법, 그래도 ‘바이오웨어가 신경 좀 썼는걸’이라는 생각이 제법 들게끔 몰입도 높은 구성을 제공한다. 하트 오브 레이지를 침묵시키기 위한 시작 파트부터 대변동의 발생을 막는 곳까지 약 40분간의 플레이는 드라마틱하지는 않지만 꽤 긴박하게, 화려한 연출로 유저를 정신없이 세계관에 몰아넣는다.
일단, 여기까지는 좋았다. 안정적인 상황에서 NPC가 연출로 하나하나 알려주는 것보다 세계관과 스토리 흐름이 어떤 상황이고, 또 무엇을 해야 한다는 메시지 전달이 확실했으니까. 자, 이제 뭔가를 해야 하는 상황이라는 것은 잘 인식됐다. 게다가 엑소슈트로 벌이는 화려한 비행 액션을 벌이기도 전이었으니 기대감도 한껏 부풀어 있었다.
하지만, 이후 뭔가를 제대로 해볼 만하겠다는 기대를 내려놓는 데까지 걸리는 시간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단순히 정확한 판단을 하지 않아(정확히는 프리랜서가 아니라 할루크가) 모두에게 신뢰를 잃고 진짜 ‘프리랜서’가 되어 버린 설정 때문이 아니다.
VIP 데모에서는 모든 것을 보여주지 않았기에 단점이 명확히 드러나지 않았다. 플레이를 저해하는 각종 버그와 기나긴 로딩, 최적화는 ‘데모니까’라는 대답으로 어느 정도 넘어갈 수 있는 부분이었다. 정식 출시까지 수정한다면 충분히 해결될 수 있는 문제였다.
게다가 4개의 특징을 가진 액소슈트로 벌이는 액션은 꾸준히 <앤섬>을 기대 갖게 하는 데 성공했다(결국 헛된 기대였지만). 레인저, 콜로서스, 스톰, 인터셉터 액소슈트의 특징, 구성품과 스킬 구성으로 벌이는 다양한 공격패턴과 콤보 조합까지. 강조하고 또 강조했던 비행 액션은 게임의 긍정적 반응에 기여했다.
튜토리얼 후 커다란 대서사시를 전개할 것만 같았던 프리랜서의 본격적인 여정은 꽤 여러 가지 장애물로 인해 게임을 미완성으로 전락시키고 말았다. 시도 때도 없이 흐름이 끊기는 탓에 게임에 전혀 몰입할 수 없었다는 점은 치명적으로 작용했다.
여기에는 미션 진행 방식부터 로딩까지 여러 요소가 복합적으로 얽혀 있다. 미션의 경우, 요새 진입 이후 NPC와 대화를 거친 뒤 다시 슈트 입고 모험을 진입하는 패턴이 의외 없이 계속 반복된다. 다양한 이벤트 전개로 유저를 몰입하게 하면 좋았겠지만, 현재 유일한 통로는 NPC뿐이다. 모험 후 다음 미션 수행을 위해서는 무조건 요새에 들어가야만 한다.
게다가, 요새 안에서는 뛸 수도 없어서 매우 천천히, 이곳저곳을 누벼야 한다. 시프트를 누르면 미약하게 경보 수준으로 이동하기는 하지만, 여전히 느려 답답하다. 메인 미션을 위한 NPC와 대화 외 나머지 NPC와 대화는 거의 필요가 없다고 봐도 될 만큼 존재감도 낮고 불필요한 컷씬으로 가득하다.
넓고 사방에서 북적거려 할 것이 많아 보이지만 정작 유저가 하게끔 만들어 놓은 의미 있는 요소는 드물다. 단순한 구조로 요새의 가치를 낮추는 결과만 발생시켰다. 선택에 따라 어떠한 결과도 반영되지 않는, 의미 없는 선택지는 또 왜 그렇게 많은지.
UI도 불친절해 NPC를 찾으러 다니기가 너무 힘들다. 1인칭 시점이다 보니 인물이나 특정 상호작용에 집중할 수 있지만 3인칭 시점인 탐험 모드와 다르게 진행되는 탓에 약간의 거리감도 느껴졌다. NPC와 대화 시 강제 시점으로 진행되기에 요새 간 이동과 대화가 끊어지는 느낌도 있었고. FOV 조절도 불가능한 탓에 1인칭 시점에 멀미를 느끼는 유저라면 제대로 게임을 플레이하기 힘들어 보였다. 데이원 패치가 꼭 필요한 부분이다.
요새에서 느슨함을 극복하고 엑소슈트를 입고 미션을 수행할 준비를 마쳤다 하더라도, 불편함은 끝나지 않는다. <앤섬>이 기본적으로 멀티 플레이로만 미션을 수행하도록 설계된 탓이다. 슈트를 입고 미션을 선택하고, 한껏 멋진 연출과 함께 시작되는 매치 메이킹. 하지만 유저가 스토리를 즐기고 싶어도 매치 메이킹이 되지 않으면 미션을 진행할 수 없다. 멋지게 요새를 출발하던 장면을 계속 반복해야만 한다. 요새는 유저를 결코 쉽게 놓아주지(?) 않는다.
잦은 로딩도 빼놓을 수 없다. 타르시스 요새 안에서 엑소슈트를 강화하기 위해 제련소를 이용하는 과정조차 로딩이 걸리는 것은 좀처럼 이해가지 않는 부분이다. 잠시 후 언급할 전투 파트에서도 퀘스트 지역 이동을 할 때마다 로딩을 겪어야 한다. 파티원과 멀리 떨어져 강제로 이동될 때도 로딩 화면이 등장한다. 과거 바이오웨어가 <앤섬>을 ‘로딩 없는 심리스 오픈월드 게임’이라고 얘기한 것과는 매우 상반된 경우다. 이 게임은 잦은 로딩을 숙명처럼 받아들여야 한다.
탐험을 통해 경험하는 전투 파트는 비교적 템포가 빠른 탓에 나쁘지는 않은 편이다. 비행 액션을 벌이며 전장을 사방으로 누비는 점은 워낙 매력 요소로 꼽혔기도 하고. 보조 장비에서 다양한 스킬을 조합해 사용하는 콤보 액션은 전투를 다이내믹하게 만드는 포인트 중 하나다.
하지만 전투를 벌이는 위 일부 요소 외에는 장점이 덮일 정도로 해결해야 할 점이 많다. 클래스 중 알파 때 클레임을 받은 스톰은 성능이 너프가 됐음에도 저격총만 장착하면 근/원거리 모두가 커버가 가능한 올라운드 캐릭터가 된다. 반면, 콜로서스는 충분하게 파밍이 되지 않으면 파티 플레이시 탱커 역할이 매우 어렵다는 단점이 존재한다. 성장을 위해 끊임없이 파밍을 요구함에도 파밍할 거리가 매우 적어 클래스의 밸런스 격차가 커진다는 좁힐 수 없는 간격이 존재한다.
협동 플레이를 저해하는 요소로는 잘못된 밸런스 외에 불편한 커뮤니케이션도 꼽힌다. 미션에서 퍼즐을 하거나, 스트롱홀드 같은 고난도 플레이를 할 때는 빠른 의사결정이 중요한데, 기본적인 소통이 어렵다. 오로지 음성 채팅만 사용하게끔 유도했다. 레딧의 한 유저가 자신이 언어 장애가 있다며 채팅을 추가해달라고 요청했음에도 바이오웨어 측에서 전혀 의지가 없음을 밝힌 제법 화제가 된 이슈도 있었다.
또, 전투가 화려하기는 하지만 그 과정이 그다지 수월하지 않다. 스킬 준비와 탄창이 충분하다면 콤보 액션을 퍼부을 수 있겠지만, 약점 부위와 아닌 부위의 대미지가 현저히 차이나 탄창 소모가 제법 심한 편이어서 스킬의 의존도가 제법 높아질 수밖에 없다. 스카 사냥꾼이나 와이번을 호버링해 고정 사격 하는 것 외에는 트레일러에서 보여줬던 화려한 공중 전투는 없다.
여기에, 생존을 위해서는 자체 회복 없이 적에게서 드롭 되는 체력 회복 아이템에만 의존해야 하므로 소극적인 플레이 위주로 벌일 수밖에 없다. TTK(Time-To-Kill, 적을 제거하는데 걸리는 시간)가 오르는 것은 당연하다. 보통 다음 난이도인 ‘어려움’부터 적의 공격력이 대폭 상승해 이러한 현상은 더욱 심해진다. 콜로서스가 지상에서 탱킹을 하고, 나머지 클래스들이 화려하게 대미지를 가하는 것은 현재로서는 꿈에 가깝다.
스토리 진행이라는 목적이 있는 ‘미션’ 외 월드 이벤트와 자원을 수집하는 ‘프리 플레이’, 강력한 적과 상대하는 엔드 콘텐츠 ‘스트롱홀드’는 파밍을 위한 반복 콘텐츠라는 성향이 짙다. 물론 콘텐츠를 반복하는 것이 나쁜 것은 아니다. 문제는 <앤섬>이 반복을 위한 의미 부여를 제대로 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특히, 스트롱홀드는 맵 구성이 복잡한 데다 적들의 패턴이 너무 단순하다. 또, 마치 엑소슈트의 비행액션을 강조하고 싶었는지 비행 구간도 지나치게 길게 설정되어 있다. 제공된 3개의 스트롱홀드 맵 중에서도 이러한 단점을 고려해 일부 맵만 선택되는 탓에 지루함까지 더해졌다. 무작위 옵션인 탓에 파밍을 위해 맵 일부만 소화하는 파티는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아이템 파밍을 하더라도, 유저가 강해지면 적도 강해지는 암담함은 덤(?)으로 제공된다.
단점을 꼽자면 한도 끝도 없고, 아쉬움만 남는다. 자잘한 버그도 여전해 출시일에 쫓긴 것은 아닐까 하는 의심일 들 정도다. 차라리 여전히 베타 단계였으면 좋겠지만, 출시된 게임이라는 것을 생각하니 아득하기만 하다.
내부적인 요인으로 이렇게 아쉬움이 가득한 상황이지만, 외부적인 상황도 만만치 않다. 같은 EA에서 출시한 <에이펙스 레전드>는 기대감이 없던 타이틀임에도 출시 1주일만에 누적 유저 2,500만 명을 기록하며 열풍을 몰고 있다. 정식 서비스 전인데 국내 PC방 순위 11위에 올라와 있다.
EA 입장에서는 대작 포지셔닝으로 흥행에 주력한 <앤섬>이 전 세계 혹평을 받고, 반대로 신경을 덜 쓰던 <에이펙스 레전드>가 흥행하는 것이 그리 좋지만은 않을 것으로 보인다. EA의 CFO 블레이크 요르겐센이 <앤섬>의 출시 6주만에 500만~600만 장 이상의 판매를 전망한 것도 현 상황에서는 힘들어 보인다.
게다가, 전작의 단점을 보완해 반드시 성공시키겠다고 이를 갈고 있는 유비소프트의 <톰 클랜시의 더 디비전2>도 3월 출시를 앞두고 있다. 유사한 장르의 경쟁작인 만큼, 어쩌면 유비소프트는 현재 <앤섬>의 상황을 보고 안도의 한숨을 쉬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앤섬>에 갖은 혹평이 쏟아질 때, TIG 내 한 기자가 그런 얘기를 하더라. 워낙 공감가는 표현이어서 기사의 제목으로 정했다. 흥행을 시켜야 하는 EA로서 각종 패치와 콘텐츠 추가로 역전을 시킬지는 조금 더 지켜봐야 하겠지만, 현재 기준으로는 <앤섬>에 대한 가장 적절한 평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