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파 모바일>이란 무엇인가? 게임지에서 이 무슨 자다가 남의 다리 긁는 소리란 말인가? 서울대 김영민 교수는 희대의 칼럼 '추석이란 무엇인가'에서 사람들은 보통 근본적인 정체성을 따져 묻는 질문을 하지 않는다고 썼다. 그런 질문은 자신의 존재를 위협할 만한 특이 사태에서 튀어나온다고 한다. 그러니까 추석에 "다이어트는 언제 할 거니?"라고 묻는 친척에게 "다이어트란 무엇인가?" 되물으란 것이다.
<피파 모바일>은 모바일로 옮긴 <피파>다. <피파 온라인>과 마찬가지로 EA가 만들고 넥슨이 서비스 중이다. 하지만 완전 신작은 아닌데, 과거 존재했던 EA의 <피파 모바일> 글로벌 빌드를 넥슨이 업어와서 한국 시장에 맞게 여러 지점을 다듬은 게임이다. 한국 시장에서는 중고 신인이라고 이름을 붙일 수 있겠다.
이런 개념적 내용들을 아는데도 선문답 같은 질문을 던지는 까닭은 무엇인가? 그것은 그간 기자가 모바일로 축구 게임을 해본 적 없기 때문이다. <피파 온라인>은 기자의 게임 플레이 '정체성을 뒤흔드는 특이 사태'에 해당한다.
오락실에선 <테크모 월드컵>, 플스방에선 <위닝>, PC방에선 <피온>을 하면서 자란 기자는 스무 살이 넘어서는 식음을 전폐하고 <FM>에 빠졌을 정도로 축구 게임을 좋아한다. 그런데도 모바일 축구 게임은 해본 적 없다. 위정척사파처럼 '축구는 큰 화면으로' 했던 것이다.
직접 플레이 계열이던 매니지먼트 계열이던 작은 화면에서는 도저히 축구의 맛을 느낄 수 없을 것이라 여겼다. 예전에는 철저히 모바일 축구 게임을 외면해왔지만, 지금은 자기 입맛에만 맞게 게임을 할 수 없는 입장이다. 식당에 가서 맛을 봐야지 사람들한테 "이 집 맛집입니다"라고 설명하지 않겠나?
상황이 이러하니 기자가 '<PES> 모바일 버전은 이런데 <피파 모바일>은 이렇네요'라고 비교 분석 흉내를 부리는 것은 실례다. 대신에 게임이 얼마나 괜찮은 축구 게임인지에 대해 주관적인 소감을 말할 수 있을 텐데, 재밌다. 모바일 축구 게임을 인정하지 않던 기자는 <피파 모바일>로 한 방 먹었다.
'당신이 실행한 게임은 모바일이니까 일단 터치 감각을 익힙시다'라는 느낌으로 기획된 튜토리얼을 완료하면 오버롤 88짜리 손흥민을 그냥 준다. 플레이어 모두에게, 조건 없이. 이거 완전 요즘 핫한 기본소득 아닌가? 나의 플레이어 주권을 이렇게 보상받는 건가? 손흥민 대신 이동국을 뽑던 나날이 생각나며 흐뭇한 미소가 번진다. 이렇게 내 스쿼드에 쏘니를 넣어보다니. (전북의 라이온킹 이동국 선수 존경합니다)
<피파> 시리즈를 조금이라도 했다면 게임은 전혀 어렵지 않다. 조작 감각을 조금만 익히면 당장에라도 경기를 하는 데 큰 지장이 없을 정도다. 다만 급한 상황에서는 가상 패드가 밀려 올라가다가 패드 인식이 안 되면 알아서 자동 모드로 전환되는 문제가 있었지만, 치명적이진 않았다. 모바일이라는 조건의 제약을 생각하면 조작 자체는 영리하게 잘 옮겨왔다. 어쩔 수 없는 세부적인 조작의 공백을 자동으로 채웠다.
기본 손흥민을 이야기했지만, 캠페인을 밀다 보면 기본 마샬에 기본 덕배도 준다. 디플레이션이 우려될 정도로 선수를 퍼주는데, 기우였다. 기본적인 보상으로 채울 수 있는 오버롤은 90 정도인데, 그때가 되면 난도가 확 올라간다. 팀 오버롤 110을 넘긴 괴물을 만나면 속절없이 무너질 뿐이다. 우리 솔직해지자. 역시 윗물에서 놀려면 좀 써야 한다. <피온>도 그렇지 않은가?
아무튼 캠페인 모드를 통과해서 전체 오버롤 90에 선수 상성도 잘 맞춰서 조직력도 괜찮게 팀을 채웠지만, 막상 플레이에 나서면 섬세한 조작이 없고 선수의 아이덴티티가 잘 느껴지지 않는다. 자동으로 걸어놓고 나의 팀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보는데 AI의 수준이 현재로서는 만족스럽지 않았다. 다양한 전술을 해금하고 시도할 수 있도록 설계됐으나 정밀한 느낌은 아니었다. 비교군이 <피파>, <피온>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생기는 딜레마다.
4-4-2를 살리려면 빠르고 투지 있는 윙어를 넣고, 전봇대(장신의 스트라이커)를 세우든지 해서 돌파와 연계플레이를 잘 짜야 하는데, 이렇게 전술을 짜서 집어넣는 맛이 부족했다. 게임은 오버롤과 조직력을 기준으로 설계됐다. 오른발 스트라이커 레반도프스키를 왼쪽 윙어로 넣었는데 (자동 스쿼드를 맞추니까 계속 그렇게 떴다) 크게 어색하지 않았다. 포메이션과 선수 개인의 롤에 대한 설계가 아쉽다.
그럼에도 모바일로 축구를 하고, 또 보고 있으면 나름 재밌다. 특히 상대방과의 오버롤을 비교한 뒤 '축구의 엑기스' 공격 전개만 할 수 있는 공격 모드는 빠르고 가볍게 즐기기 좋다. 점심 시간에 몇 판 하면 시간 금방 간다. <피온>에 볼타 모드가 있다면, <피파 모바일>에는 공격모드가 있다.
공격 모드의 요는 짧은 시간 동안 얼마나 많은 골을 넣느냐인데, 이 역시 오버롤을 기준으로 기회가 창출된다. 오버롤이 높으면 상대 수비진이 별로 없고, 오버롤이 낮으면 상대 수비진이 촘촘하게 붙어 수비한다. 두 사람은 솔로 모드를 하면서도 득점 개수로 경쟁을 하는데 이게 또 나름 치열하다. 상대 골문에 바쁘게 공을 집어넣다 보니 농구의 공격 전개를 하는 것 같기도 하다. 상대방 이겨 먹겠다고 땀이 나도록 플레이했다.
선수 육성, 관리 시스템은 <피온>과는 비슷하지만 다르다. 우선 앞서 쓴 바와 같이 좋은 선수를 훨씬 쉽게 얻을 수 있으며, 방어 시스템이 마련되어있어 강화할 때 선수의 등급이 깨지지 않는다. 주식시장처럼 정해진 시간에 이적 시장이 열리고 여기서 선수를 사고팔 수 있다.
단, 이적 시장을 비롯한 <피파 모바일>의 각종 기능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특정 레벨이 필요하다는 단점이 있어 초보자에게는 장벽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 또 아직은 오픈 초기기 때문에 핵심 선수 시세의 감을 잡기 어렵다. 이적 시장이 언제 필요한지, 어떻게 쓰는 게 좋을지 알고 싶다면 게임에 적응을 많이 해야 한다.
캠페인, 일반 모드, 공격 모드에서 꽤 괜찮은 모바일 게임 플레이 감각을 느꼈다. 이적 시장이나 선수 성장 시스템 등에서 확실히 요즘 <피온>이다. 이것저것 많이 갖춘 가운데 모바일 기기의 제약을 잘 풀어낸 모양새다. 스마트폰으로 개인기를 하고 슛을 때려넣어 성공할 때 느낌은 정말 좋다. 그런 쾌감을 공간의 제약 없이 즐길 수 있게 하겠다는 것이 <피파 모바일>의 모토다.
라이선스 이야기를 안 할 수 없다. 축구 게임이 전 세계적으로 인기 있는 장르다보니 별의별 게임들이 다 있다. <피파 모바일>은 그들과 달리 약 17,000명이나 되는 축구 선수의 정식 라이선스를 보유했다. 주요 리그의 구단들도 구현되어있다. 모바일 축구 게임을 하면서 Nessi가 아닌 Messi를 플레이할 수 있는 것이다. 기자에게 이건 꽤 중요한 문제다. 나이키 축구화를 신고 싶지 나이스를 신고 싶지는 않단 말이다. 그런 점에서 <피파 모바일>의 생태계는 매력적이다.
그럼에도 <피파 모바일>의 디테일은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아쉬운 모습이 많은데 먼저 해설이 없다. 경기를 뛰면 어색한 관중 함성과 효과음만 있을 뿐이다. <FM>도 마찬가지로 효과음뿐이지만, 자막으로라도 해설을 볼 수 있는데 <피파 모바일>은 밋밋하고 허전하다.
하프 타임이 끝나고 위치가 바뀌지 않는다. 이건 축구의 기본인데 반영되지 않아서 꽤 아쉽다. 해설도, 그라운드 교대도 없는 가운데, 볼 점유율이나 주요 공격 방향, 선수 별 별점 같은 구체적인 스탯도 제공하지 않기 때문에 내 경기를 제대로 복기할 수도 없다. 기자는 경기 후 스탯에 연연하지 않는 편이지만, 일부 축구 게임 유저에겐 치명적인 부분이다. 리플레이 저장 기능도 없고, 세리머니는 단조롭다.
이런 부분을 극복하면서, 유저들에게 <피파>에서 느꼈던 스토리텔링 (내 팀을 이렇게 이렇게 해서 키웠다, 이 선수를 이렇게 얻었다, 친구들과 같이 어떤 게임을 했다 등)을 충실하게 경험하게 한다면 <피파 모바일>은 분명 오래도록 사랑받는 모바일 스포츠 게임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이다. 적어도 기자는 이런 디테일만 극복한다면, 오래도록 스마트폰에 게임을 남기고 플레이할 의향이 있다.
<피파 모바일>이 오래도록 사랑받는 모바일 축구 게임이 되기 위해선 EA와 넥슨에게 이렇게 되물어야 할 것이다. <피파 모바일>이란 무엇이 되어야 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