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에서의 생활’이라고 하면 먼 옛날부터 인류가 꿈꿨던 하나의 신기원이자 이상향이다. 그 꿈을 실현한 게임이 바로 <스타오션> 시리즈다. <발키리 프로파일> <인피닛 인디스커버리> 등 유명 RPG를 만든 ‘트라이에이스’의 간판 타이틀 <스타오션>은 오랜 역사를 갖고 있다.
플랫폼도 SNES(1편), PS(2편), PS2(3편)을 거쳐 이번에는 Xbox360으로 등장했다. 높은 관심 속에 출시된 <스타오션4: 더 라스트 호프>는 수준 높은 영상과 박력 있는 전투로 호평을 받고 있다. /디스이즈게임 필진 RGMA
액션 전투만 10년 이상 만든 장인집단의 결정체
우주의 다양한 행성을 모험하는 것은 생각보다 두근거리는 체험이다.
<스타오션4>에서 개발사가 가장 많이 힘을 쏟은 부분은 바로 전투 파트다. <스타오션4>의 전투를 살펴보면 비교적 심플한 조작으로 전략적인 전투를 전개할 수 있다. 일례로 기본공격은 물론이고 필살기도 버튼 하나로 정말 간편하게 사용할 수 있다.
하지만 상대방과의 거리나 방향 등에 따라서 공격의 효과가 전혀 다른 양상을 보이게 된다. 복잡한 조작은 필요하지 않지만 대신 전황을 살피고, 현재 상황에 맞춰 대응을 해야 하는 ‘전략성’이 필요한 것이다.
이런 전투 방식 덕분에 <스타오션4>는 액션 게임에 익숙치 않은 게이머라도 좌절하지 않고 즐길 수 있다. 이런 게임에 능숙하다면 더욱 전략적으로 전투를 풀어 나갈 수 있다는 점에서 전투에 대한 만족도는 매우 높다고 할 수 있다.
고성능 하드웨어가 뿜어내는 파워풀한 연출도 볼거리.
액션 전투 특성이 가장 잘 살아 있는 시스템이 바로 ‘링크콤보’ 시스템이다. 왼쪽 트리거(LT)나 오른쪽 트리거(RT)를 누르기만 하면 지정된 필살기가 순서대로 발동되는 링크콤보 시스템을 통해 복잡한 조작에 시달리지 않고도 화려한 콤보를 시원하게 연결할 수 있다.
물론 조작이 간단하다고 해서 모든 공격이 깨끗하게 연결되는 것은 아니다. 콤보로 연결할 수 있는 횟수에 제한이 있고, 필살기의 선택, 발동 순서, 발동 타이밍 등을 고려하지 않으면 마음먹은 대로 원활하게 콤보가 이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조금만 머리를 굴리면’ 자신만의 콤보를 자유롭게 구성할 수 있기 때문에 초보자라고 해도 누구나 <스타오션4>가 제공하는 전투의 매력에 빠질 수 있다.
필살기끼리 연결될수록 대미지가 올라된다. 격투 게임의 대미지 보정과는 반대 개념.
<스타오션> 시리즈는 초기부터 액션 게임처럼 회피, 공격 타이밍 같은 ‘캐릭터의 직접적인 조작’을 게이머가 직접 하도록 권해 왔다. 하지만 이를 소화해 낼 수 있는 일부 고수들을 제외하면 결국 단순히 버튼연타 게임이 되곤 했기 때문에, <스타오션4>에서는 아예 ‘회피’를 ‘하나의 정해진 시스템’으로 만들었다.
새롭게 도입된 ‘사이트 아웃’ 시스템은 ‘동시 회피와 공격’을 가능하게 하는 시스템이다. 그런데 이게 꽤나 재미있다. 사용법은 ‘B버튼을 누르면서 방향키 입력’이라는 지극히 단순한 조작이지만, 발동하면 나오는 연출이 흡사 초필살기처럼 화려하며, 발동 후에도 다양한 보너스 효과가 주어진다.
공격적인 행동 → 스스로가 미끼가 된다 → 사이트 아웃으로 반격.
이것이 사이트 아웃을 활용한 <스타오션4>의 기본적인 전술이다. <스타오션>은 <WoW> 같은 온라인 게임처럼 어그로 개념이 있기 때문에, 후방에 배치된 캐릭터들을 보호하면서 동시에 반격의 찬스를 잡고 싶을 때 사이트 아웃 시스템이 정말 유용하게 사용된다. (게다가 사이트 아웃 시스템에 성공하면 크리티컬 공격으로 인정된다)
쓰기 쉽고 멋있고 성능까지 좋다는 삼박자를 두루 갖춘 사이트 아웃 시스템은 ‘공방 밸런스’라는 액션배틀 최대의 숙제에 대한 나름의 해답을 제시한다. 단순히 공격하는 것만으로는 쓰러뜨리기 어려운 적도 사이트 아웃을 잘 이용하면 그리 어렵지 않게 제압할 수 있다.
<스타오션4>의 전투는 전체적으로 봤을 때 버튼연타 방식의 지루함에서 한 단계 진화해 박진감 넘치면서도 전략적인 전투를 즐길 수 있어 매우 만족스럽다.
캐릭터를 중시한 게임성
<스타오션4>의 매력적인 캐릭터.
소위 말하는 서양식 RPG와 다르게 일본식 RPG는 유저의 캐릭터 커스터마이징이 자유롭지 못한 것이 보편적이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개발사의 입장에서는 캐릭터 하나를 만드는 과정에서 세심한 주의와 정성을 기울이게 되고, 결과적으로 비단 외형뿐만이 아닌 전체적으로 완성도 높은 캐릭터가 태어나기도 한다.
<스타오션> 시리즈는 대대로 이렇게 탄생한 매력적인 캐릭터들과 교류할 수 있는 ‘프라이빗 액션’(이하 PA)이라는 시스템을 통해서 본편의 스토리 흐름과는 별개로 등장 캐릭터 하나하나에 초점을 맞춘 미니 이벤트를 제공해 왔다.
PA 시스템. 격렬한 전투 속에선 볼 수 없는 캐릭터들의 무방비한 일면을 볼 수 있다.
그리고 PA는 <스타오션4>에서도 건재하다. 게다가 Xbox360이라는 파워풀한 머신의 힘을 빌어 흡사 한 편의 애니메이션을 보는 것과 같은 이벤트를 제공한다. PA를 통해서 본편에서는 볼 수 없는 동료 캐릭터 각각의 다채로운 표정과 이야기를 접할 수 있고, 이들과 어울리며 이벤트를 진행하다 보면 본편 엔딩 후에 각 캐릭터의 개인 엔딩도 감상할 수 있게 된다. 이 부분은 감각적으로는 이른바 ‘미연시’와도 통하는 부분이 있을지도 모른다.
아이템 작성에도 이런저런 액션이 많이 들어 있다. 의외로 액션의 종류가 많아 감상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불필요하다고 판단하면 과감하게 버린다
<스타오션4>의 재미는 전투와 스토리, 그리고 캐릭터에서 나온다. 무엇보다 재미 요소를 살리기 위해서 지금까지 일본식 RPG에서 관행처럼 지켜져 왔던 하나의 룰을 과감하게 깨버렸다. 바로 ‘탐색’ 파트의 과감한 축소다.
<스타오션4>에서 유저들은 넓은 맵을 발로 뛰면서 아이템이나 NPC 등 진행에 필요한 부분을 탐색할 필요가 없다. 기존 일본식 RPG에서 가장 지루한 부분이었다고도 할 수 있는데, 이 부분을 과감하게 삭제했기 때문에 유저들은 마음 놓고 액션과 시나리오에 몰입할 수 있다. 게임의 템포 또한 다른 일본식 RPG와 비교하면 굉장히 빠르다고 할 수 있다.
눈에 띄진 않지만 가장 신경 쓴 부분이라고 생각되는 미니맵.
다만 한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이렇게 템포가 좋은 작품이면서 '이벤트 신'이 과도할 정도로 길고 불편하다는 점이다. <스타오션4>에서 볼 수 있는 이벤트신 대부분은 버튼을 눌러 대사를 넘기는 방식이 아닌 하나의 동영상(또는 프리 렌더링)으로 처리되어 있다.
물론 건너뛰기(스킵)도 가능하지만 30분 정도의 영상이 통째로 스킵 되어 버리는 바람에 중간에 모처럼 마음에 드는 장면이 있더라도 골라서 볼 수 없다. 어느 정도로 긴가 하면 동영상을 감상하던 도중에 Xbox360이 절전모드로 들어갈 정도로 길다.
믿을 수 있는 개발사의 믿을 수 있는 게임
트라이에이스는 전투 시스템에 대해서 만큼은 하나의 장인정신을 가지고 있다고 봐도 될 정도로 철저히 연구하는 개발사로 유명하다. <스타오션4> 역시 그러한 트라이에이스의 장인정신이 충실히 깃들어 있는 역작이라 할 수 있다.
전투에 대해서는 누구라도 만족스러워 할 정도의 완성도를 보여 주고 있으며, 게임성을 부각시키기 위해 버릴 것을 버리고 필요한 부분만을 모아 조화시킨 기획력 또한 칭찬할 부분이다.
하지만 앞서 말한 것처럼 이벤트신의 처리, 그리고 무엇보다 국내 유저들에게는 가장 민감한 ‘한글화’는 너무나도 아쉽다. 하다 못해 대사집이라도 동봉 되어 있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타오션4>는 명작 콘솔 RPG에 목말라 있는 국내 게이머들에게 좋은 선물이 될 것이다. 참고로 영문판도 국내에 발매되어 있으니 영어가 편한 게이머라면 일본어 대신 선택해도 좋을 것이다.
복잡해지기만 하는 최근 RPG에선 느끼기 어려운, 심플한 재미를 잘 잡아낸 수작. 한글화가 되어 있지 않은 것은 너무나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