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환자의 7번째 심장 박동에 맞춰 제대로 눌러야 합니다. 그런데 이 심장 박동이 좀 수상합니다. 엇박자가 나올 때도 있고 버퍼링이 걸릴 때도 있습니다. 환자들 모두 부정맥이라도 있나 봅니다. 심박 그래프를 보고 맞춰보고자 합니다. 어라? 심박 측정기가 틈만 나면 고장나고 뻗어 버립니다. 심박 수만 듣고 맞추라는 소리나 다름 없습니다.
이건 환자를 살리라는 건지 죽이려는 건지 도통 감이 안 옵니다. 어째 설명하다 보니 의학 게임으로 보이지만 리듬게임입니다. 뭐 그래도 리듬게임이니까 7번째 심장 박동만 제대로 맞추면 되는게 아닙니다. 3박일 때도 있고 2박일 때도 있습니다.
<리듬닥터>라는 게임명은 과연 스토리처럼 환자를 리듬으로 살리는 것일까요 아니면 박치인 유저의 리듬감을 고쳐주는 게임일까요?
# 너무 단순한 게임 아닌가?
소개할 게임은 2월 26일 스팀에 얼리억세스로 출시된 <리듬 닥터>입니다. <리듬 닥터>는 2014년 플래시 게임으로 인터넷에 처음 올라왔죠. 7년이란 시간이 걸려 드디어 얼리억세스 형태로 스팀에 출시됐습니다. 스팀 버전 역시 데모 버전과 플레이 방법은 같습니다. 스토리와 더 다양한 스테이지가 추가된 게 전부입니다.
<리듬 닥터>에서 플레이어는 리듬으로 각 환자가 지닌 병을 치료합니다. 환자 고유의 심장 박동에 맞춰 정확한 박자에 스페이스바를 누르면 됩니다. 환자를 치료한다는 특징답게 노트는 심장 박동모양으로 구현되어 있죠.
스페이스바 그리고 굳이 개더 언급하자면, 메뉴를 조작하기 위해 키보드 화살표 혹은 ESC 정도가 추가로 쓰입니다. 개발사의 전작 <불과 얼음의 춤>보다 더 단순합니다. 4x4 타일을 친다거나, ‘수도꼭지’를 돌린다거나, 모션 캡쳐까지 활용하는 요즘 리듬게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간단합니다.
# 조작법은 쉽지만...
엄청나게 단순한 이 게임, 그런데 스팀 평이 ‘압도적으로 긍정적’(98%)입니다. 그 비결은 “배우긴 쉽지만 정복하기 어려운” 게임 구성 덕입니다.
조작법은 단순합니다. 박자에 맞춰 스페이스바를 누르는 게 전부입니다. 일곱 번째 박자를 맞춰야 될 때도 있고, 이어지는 비트소리를 따라야 할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박자 맞추기가 쉽지 않습니다. 노래가 엇박자로 변하거나 BPM이 갑자기 바뀌곤 합니다. 갑작스런 박자 변경에 게임오버만 몇 번을 봤는지 모르겠습니다.
어려운 이유는 몇 가지 있습니다. 첫 번째 이유는 다양한 게임 수록곡 장르입니다. 동양풍 음악, Lo-Fi, 재즈, 신시사이저, EDM 등 '멜론 차트 100'이나 '애니메이션 OP'처럼 우리에게 친숙한 음악과는 거리가 멀죠. '유튜브 자동 재생' 좀 들어봤다 하는 분이 아니면 난해할 곡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난해한 장르들임에도 불구하고 전혀 어색하지 않았습니다. 곡 하나하나의 퀄리티가 매우 준수합니다. 기자 주변의 작곡가들도 수록곡들이 괜찮다고 인정합니다. 유명 콜라보곡 하나 없는 <리듬 닥터>가 인기를 끌 수 있던 비결이 아닐까 싶습니다.
# 정복하기는 어렵다
이처럼 '노래 좀 들어봤다' 하는 분에게는 수록곡이 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익숙한 노래가 나온다 해도 여전히 어렵습니다. 게임이 어려운 두 번째 이유는 수많은 기믹 때문입니다. <리듬 닥터>는 다양한 환자들을 만나 치료하는데, 환자들이 지닌 증상에 따라 스테이지 기믹도 변합니다. BPM이 갑자기 바뀐다거나, 노래 일부분이 들리지 않는다거나 하는 건 애교에 불과하죠.
압권은 보스 스테이지입니다. 플레이어가 처음 마주할 보스는 난해하기 짝이 없습니다. 보스 스테이지는 현대적으로 재해석된 일본 전통음악으로 시작됩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되감기'와 '백마스킹'이 점차 사용되더니, 나중에는 노트조차 제대로 보이지 않습니다.
2페이즈 부터는 화면이 고장 난 것처럼 다양한 시각적 효과도 사용됩니다. 여태껏 노트와 청각에 의존해 플레이했다면 당황스러운 순간입니다. 박자를 마음속으로 계산해 정확한 타이밍에 누르는 수밖에 없죠.
보너스 스테이지도 어렵긴 마찬가지입니다. 스테이지를 높은 점수로 클리어하면 더 어려운 난이도에 도전 가능합니다. 기존 곡과 기믹이 리믹스되서 등장합니다. 동양풍 노래가 EDM으로 바뀌는가 하면, 전혀 다른 두 장르의 음악이 동시에 재생되기도 하죠.
눈을 감고 플레이하는 게 더 좋을지도 모릅니다. 다른 리듬게임과 차이점입니다. 대다수 리듬게임은 음악 못지않게 시각적 정보도 중요합니다. <리듬 닥터>처럼 버튼이 하나만 있는 게 아니고, <리듬 세상>처럼 조작법이 단순하다 해도 청각만으로는 타이밍을 잡기 어렵기 때문이죠. 때로는 음악과 노트 박자가 별개로 재생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리듬 닥터>는 음악 박자와 노트 타이밍이 100% 일치합니다. 오히려 시각 정보가 게임을 방해하는 요소입니다. 리듬게임에 익숙한 유저들이 당혹감을 느끼는 이유입니다. 노트 상으로는 BPM이 바뀔 것처럼 보였는데 실제로는 바뀌지 않는 경우도 허다하기 때문이죠. 그런 이유로 앞서 말한것 처럼 '마음의 눈'으로 노트를 처리하는 게 더 권장되는 이유입니다.
하지만 그렇기에 리듬게임 경험이 많을수록 이 게임을 권장하고 싶습니다. 타 리듬게임처럼 노트를 암기할 필요가 없습니다. 몸을 박자에 맡긴 채 스페이스바만 누르면 되기 때문이죠. 모든 신경을 청각에 집중할 때의 그 느낌, 이때 느끼는 몰입감은 다른 리듬게임과 비교조차 어렵습니다.
# 고인물이라면 적극 권장!
아직은 얼리억세스입니다. 실력만 좋다면 2~3시간 안에 모든 스테이지를 끝낼 수 있습니다. 리듬게임이라곤 해도 분량이 긴 편은 아닙니다. 가격도 16,500원이니 볼륨이 넉넉하다고 하기는 미묘합니다.
그러나 관점을 바꾸면 비싼 게임은 아닙니다. 오락실에서 리듬게임을 플레이할 때나, 콘솔로 발매된 리듬게임 가격을 생각하면 이 정도 가격은 크게 부담되지 않습니다. 특히 요즘 코로나19로 오락실을 가기 힘든 상황이니, 이번 기회에 <리듬 닥터>로 새로운 경험을 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생각합니다.
글을 끝마치기 전에 꼭 말씀드리고 싶은 바가 있습니다. 박치에겐 권장하지 않습니다. 기자가 박치라서 고생했기에 이런 말을 하는 건(?) 아닙니다. <리듬 닥터>에는 다른 리듬게임에서 맛보지 못할 짜릿함이 있지만, 어디까지나 리듬게임 '고인물'에게나 해당하는 말입니다. 이 게임에는 초심자에 대한 배려가 없습니다.
난이도 조작도 없고 스테이지 스킵도 없습니다. 그렇지만 본인이 건반좀 두드려봤다 싶은 분이라면 지금 당장 구입해보길 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