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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그라이트 루시의 일기: 탄막 슈팅에 감성을 담다니 제법인걸?

"그런데 일기는 어떻게 보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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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석(우티) 2021-03-11 15:33:41

유니티 등 범용 엔진의 활용도가 높아진지 오래. 알만툴로 줄여 부르는 'RPG 만들기' 신작은 전보다 더 '니치(Niche)'한 영역의 게임이 됐다. 곧 출시를 앞둔 <사망여각>도 초창기에는 알만툴로 개발하다 호환성 등의 문제가 발생해 유니티로 개발 툴을 바꿨다.

 

파란게 스튜디오의 <루시의 일기>는 알만툴 개발을 고집 중인 탄막 슈팅 게임이다. <아이작의 번제>를 비롯한 탑뷰 로그라이크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가운데, '알만툴' 풍 JRPG의 모습을 강조하고 있다. 작년 지스타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시스템과 기획을 모두 책임지는 대표와 일러스트레이터 두 사람이 게임을 개발 중이다.

 

현재 게임은 스팀에 얼리 억세스로 공개됐다. 현재 버전은 일부 스테이지만 공개되어있는데, 게임을 해본 소감을 짧게 정리해봤다.

 


 


 

# 탄막 슈팅에 감성을 담다니 제법인 걸?


<루시의 일기> 초반부는 꽤 길다. 탄막 슈팅에 던져지기 전까지, 플레이어는 기억을 잃은 주인공 루시가 일기장을 살펴보며 자신의 존재를 찾아 나선다는 플롯을 보게 된다. 중간중간 기본 기능에 대한 설명이 담긴 튜토리얼이 함께 있어 플레이어가 후에 겪을 고난을 예비하게 한다. 레벨 디자인 측면에서도 그렇고, 이야기 측면에서도 그렇고,​ 대뜸 어려운 게임으로 내모는 것보다 현명한 설계로 보인다. 

 

게임은 알만툴 RPG의 감성을 제대로 구현했다. 아기자기한 픽셀아트와 잔잔하게 깔려드는 피아노 배경음악, 큼직큼직한 글상자는 전형적이라 반갑다. 유니티로도 훌륭한 2D RPG를 만들 수 있으며, 알만툴 풍으로 게임을 만드는 것까지 가능하지만, <루시의 일기>의 오리지널리티는 확실하며 이 감성에 굉장히 많은 공을 들였다.

 

 

특히 스튜디오가 밝힌 바에 따르면, 배경음악은 어셋이 아니라 직접 작곡한 것이다. 유니티였다면 어셋을 찾아봤겠지만, '알만툴'을 고집하기로 한 이들은 자신에 게임에 맞는 음악을 스스로 만들었다. 주인공 루시의 도트 모션도 상당히 정교한데, 이 게임을 알만툴로 만들었다고 믿어지지 않을 만큼 끊김 없이 부드럽다. 얼리 억세스 버전인데 벌써 개발자의 장인 정신을 느꼈다면 이른 평가인가?

 

슈팅 액션에 깊은 스토리를 부가한 건 새로운 시도라고까지 평가하기는 어렵다. 오락실이나 문방구 앞에서 많이 했던 <텐가이>에도 스토리가 있지 않았나? 그럼에도 <루시의 일기>는 루시의 성장, 조력자 마리의 존재 등에서 제법 RPG스러운 캐릭터성을 부여하고, 플레이의 애착을 점진적으로 늘려나간다.

 


 

 

# 그런데... "정신 나갈 것 같아"서 일기를 볼 수가 없다


하지만 <루시의 일기>는 좀처럼 페이지를 넘기기 어렵다. 난이도가 상당하기 때문.

 

쏟아지는 탄막을 피하면서 검, 지팡이, 활로 근거리·원거리 공격을 날리는 것은 여간 쉬운 일이 아니었다. 기본적으로 시전 시간 동안 무적에 가까운 회피기를 지원하기 때문에 정통 탄막 슈팅 매니아들의 성에 차지 않을 정도로 쉬웠겠지만, 기자의 실력은 한낱 미물의 수준이었다. 

 

 

 

패턴을 익히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 인벤토리를 관리하고, 랜덤으로 스킬을 확득하고, 무기에 인챈트를 붙여야 한다. 충분히 레벨 업한 스킬의 효용은 충분했지만, MP가 많이 닳기 때문에 신중하게 사용하는 편이 좋다. 또 적의 탄막을 받아치거나 탄막을 피함에 따라 HP나 MP가 오르는 등의 설계까지 되어 있어 복잡하다. ​이런 이유 때문에 <루시의 일기>는 RPG의 인스턴스 던전에서 놀고 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든다.

 

 

무기는 내구도가 있어서 계속 쓰려면 수리를 해줘야 하는데 경우에 따라서는 깨지기도 한다. 성장과 랜덤 요소가 적절히 가미된 로그라이트의 재미는 충분하지만, 관리해야 할 것도 많아서 땀이 날 정도로 어렵다. 비유하자면 <하데스>처럼 죽어도 뭔가 진행이 된다는 감각은 확실한 편이지만, 이런 류의 인디게임이 대체로 그렇듯 플레이어를 짜내는 듯한 구성은 확실히 호불호 요인으로 작용할 듯하다. 

 

개발자가 스토리에 대한 자신도 충분하다면, 정식 버전에서는 일기장을 쉽게 넘겨볼 수 있는 어시스턴트 버전을 추가하면 어떨까 싶기도 하다. <루시의 일기>의 엔딩에는 <투 더 문>에서 느꼈던 것과 비슷한 감동이 있을 줄 누가 알겠는가? 물론 현재 단계에서 둘을 비교하는 것은 섣부른 일이다. 정말 이들이 미래에 '알만툴'로 그런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 있다면, <루시의 일기>도 비슷한 성과를 냈다고 평가할 수 있겠다.

 

  

 

# 앞으로 얼마나 더 매워질 것인가?

 

얼리 억세스 버전의 <루시의 일기>는 스토리도 흡입력이 있고, 설계도 짜임새가 있다. 

 

사실상 한 사람이 만들었다고는 믿어지지 않을 만큼 준수한 레벨 디자인과 픽셀아트, BGM을 자랑한다. 현재 스팀에서 10,500원이니 '얼엑' 버전이라고 해도 하루 종일 어려움에 눈물 콧물 다 빼도 괜찮은 가격이다. 앞으로 이 게임성을 유지하면서 정식 출시까지 밀고 나간다면 해외에서도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을 것 같다.

 

<루시의 일기>는 상당한 기대가 되는 게임이다. ​제대로 된 '알만툴' 게임으로 계보를 잇는 한편, 국산 인디게임으로 호평 받을 수 있을지 앞으로의 행보를 관심있게 지켜보려 한다. 단, 소규모 팀의 작품이니만큼 시간을 충분히 두고 보는 게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