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공 '닐 콘래드'는 CDI(중앙수사본부)의 수사관이다.
누아르에 등장하는 전형적인 형사의 특징이란 특징은 다 가지고 있다. 바바리코트 주머니에 손을 찔러넣고 도시를 돌아다닌다. 성격은 시니컬하고 흡연자다. 별거 중인 아내가 있다. 플레이어 선택에 따라 달라지지만, 끔찍이 아끼는 딸도 있다. 수사관으로서 닐 콘래드는 외무부 장관 살인 사건의 진범을 잡고 배후를 밝혀내야 한다.
플레이어 선택에 따라 달라진다는 문장에서 예측한 독자도 있을 듯 한데, <라쿠나>의 스토리는 당신의 선택에 따라서 다양한 갈래로 나뉜다. 한번 선택한 행동은 물릴 수 없다. 가끔 대가를 치러야 할 때도 있다. 그 선택이 옳은 것인지 그른 것인지는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 알 수 없다.
가령 닐은 용의자가 도주에 사용한 보트에서 증거를 찾기 위해 항구로 향했다. 하지만 관리인은 "수사해야 하는 보트의 일련번호를 알지 못하면 들여보내 줄 수 없다"고 출입을 거절했다. 주인공은 하는 수 없이 근처 술집으로 향했다. 한 노인이 있었고, 그는 다짜고짜 담배를 달라고 했다. 주인공이 순순히 담배를 건네자, 노인은 고맙다며 답례로 주인공이 찾는 보트의 번호를 알려 줬다.
항구로 들어가자, 다른 노인이 쭈그려 앉아 있었다. 주인공이 이유를 물으니 세금을 낼 돈이 없어 항구에서 쫓겨나기 직전이라고 한다. 노인은 자신이 내내 여기 앉아 있었으며, 자릿세를 대신 내어 주면 자신이 목격한 용의자의 생김새를 알려주겠다고 했다. 닐이 자릿세를 대신 내어 주자, 노인은 닐이 찾는 용의자의 정보를 줬다. 바로 헤어스타일이 "OOO"라는 것(스포일러 방지를 위해 가렸다).
하지만 이 모든 과정을 적당히만 처리하고 바로 다음 장소로 향할 수 있다. 이들을 돕지 않고 단순히 용의자가 탑승했던 배만 조사하고 나갈 수도 있다. 하지만 용의자의 배만 조사해선 헤어스타일을 알 수 없다. 그렇다 하더라도 게임은 "당신이 찾지 않은 정보가 있다"며 플레이어를 막거나, "이건 무조건 중요한 정보다"라며 강조하지 않는다.
기존의 정답이 있는 선택(퍼즐일 수도)만을 하고 옳은 길만 따라가는 어드벤처 스타일의 게임과는 조금 다르다. <라쿠나>가 강조하는 점 중 하나는 고전 어드벤처 게임의 특징을 과감히 버렸다는 것. 이는 조작법에서 확실히 드러난다.
먼저 포인트 앤 클릭 대신, 플랫포머식 조작 방식을 선택했다. 추리 어드벤처 게임임에도 WASD를 눌러 캐릭터를 조작한다. 쉬프트를 누르면 빠르게 달릴 수도 있다.
편의성에도 공을 들였다. 이런 추리 게임에서는 증거를 획득할 수 있는, 상호작용 가능한 물체를 찾기 위해 배경을 눈 빠져라 쳐다봐야 할 때가 많다. 라쿠나는 상호작용 가능한 대상에 윤곽선을 부여한다. 이미 조사한 대상이면 회색, 중요한 대상이면 노란색 윤곽선으로 표시해 준다. 때문에 증거를 찾아 헤멜 일이 적다.
추리를 위한 시스템에도 신경썼다. 모든 대화 내용은 다시보기를 통해 확인할 수 있으며, 핵심 단서가 되는 문구는 노란색 표시로 강조되어 등장한다.
그렇다고 핵심 문구만 보며 텍스트를 대충 넘겼다간 피를 볼 수 있다. 강조되지 않은 문장 속에도 핵심 정황이 담긴 경우가 있기 때문. 올바른 추리를 위해서는 텍스트를 꼼꼼히 살펴야 한다. <라쿠나>는 느긋하게 텍스트를 들여다보며 생각하기 좋아하는 플레이어를 위한 게임이다. 짧은 글과 요약에만 의존하는 사람이라면 괴로울 수 있다.
중요한 시스템은 아니지만, 게임 내에서 흡연을 할 수도 있다.
"나는 담배에 불을 붙였다"라는 유명한 문구가 있다. <라쿠나>와 비슷한 추리 어드벤처 게임 <진구지 사부로> 시리즈에 등장하는 대사. <진구지 사부로>에선 흡연이 힌트를 얻을 수 있는 중요한 시스템으로 등장한다. 반면 <라쿠나>에선 흡연이 큰 역할을 담당하진 않는다. 단지 캐릭터가 담배를 피우면 주변 경치를 감상할 수 있는 정도. 원한다면 담배를 끊고 비흡연자로 남을 수도 있다.
어드벤처 게임이건, SF 누아르건 꽤 역사가 깊다. 이런 부류의 게임이나 영화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라쿠나>는 다소 뻔한 이야기일 수도 있다. 시니컬한 형사, 가족을 빌미로 한 협박, 대기업 횡포에 고통받는 시민들, 사건 뒤에 있는 거대 배후 세력까지...
<라쿠나>는 비 오는 날 하기 딱 적절한 게임이다. 마침 기사를 출고하는 지금도 비가 내리고 있다. 이런 꿀꿀한 날씨엔, 옆에 커피 한 잔 놓고 <라쿠나> 속 세상에 빠져보는 건 어떨까. 플레이타임도 약 4시간에서 5시간 정도로 무리 없는 수준. 가격은 16,500원이다. 조금 비싼 돈 내고 장편 영화 한 편 본다고 생각하면 좋다.
- 게임명: 라쿠나 (Lacuna – A Sci-Fi Noir Adventure)
- 장르: 추리 어드벤처 게임
- 개발사: 디지테일즈 인터렉티브
- 퍼블리셔: 이셈블 엔터테인먼트, 메이플라워엔터테인먼트
- 플랫폼: PC
- 출시일: 2021년 5월 2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