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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뷰/리뷰

프리 가이: 게임 NPC가 된 라이언 레이놀즈와 SF의 오랜 질문

[리뷰] <프리 가이> 괜찮은 오락 영화... 게이머라면 흥미로울 요소 많아

에 유통된 기사입니다.
김재석(우티) 2021-08-13 09:07:29

 

* 주의: 별도 표시된 지점 이후로 <프리 가이>의 스포일러를 일부 포함하고 있습니다.

실로 야속한 나날이다. <모가디슈>, <블랙 위도우>, <더 수어사이드 스쿼드> 등 극장에 재밌는 영화가 줄줄이 걸리고 있다. 평소 같으면 날도 더우니 극장으로 피서 가자고 능청을 부리겠지만, 시국은 여전히 하수상해서 어디 나가는 것 자체가 죄짓는 듯 찔린다.

<프리 가이>는 꼭 극장에서 봐야만 할 것 같았다. 가상의 샌드박스 MMORPG '프리 시티'에서 NPC가 계획에 없던 사랑에 빠지고, 저작권을 되찾기 위해 노력하는 게임 개발자들과 손잡는 영화다. 개인적으로, 또 직업적으로 꼭 보고 싶었다. 그것도 큰 화면으로. <스타크래프트 2>의 광전사처럼 버틸 수가 없었다. 

먼저 감상한 결과를 써놓으면, 독자의 선택에도 도움이 될 것 아닌가? 게다가 <프리 가이>는 한국에서 가장 먼저 정식 개봉했다. 

  




 

 

# 바쁜 독자를 위한 결론: 재밌음.

<프리 가이>는 괜찮은 오락 영화다. 게이머라면 아주 흥미롭게 볼 요소가 곳곳에 들어있으며, 액션도 시원해서 극장 스크린으로 봄직하다. <레디 플레이어 원>보다 가벼우면서 SF 전통의 고민을 잘 가져간다. 주인공 가이를 연기한 라이언 레이놀즈 풍의 코미디를 좋아한다면, 주저할 필요 없다. 그렇지만 아쉬운 지점도 없진 않다.

가상 세계 '프리 시티'의 가이의 직업은 은행원이다. 매일 아침 금붕어와 인사를 나눈 뒤 파란색 유니폼을 차려입고 커피 한잔 테이크아웃해서 회사로 향한다. 일터는 바람 잘 날 없다. 선글라스를 쓴 히어로, 즉 프리 시티의 플레이어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은행을 털러 오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 날, 가이는 '몰로토브걸'이라는 닉네임의 여성 캐릭터에게 사랑에 빠진다. 하지만 프리 시티 세계에서 가이가 그녀에게 말을 걸 방법은 없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히어로의 선글라스를 노획하기에 이른다. NPC(Non Playable Character)가 PC(Playable Character)로 새로 태어나는 순간이다. 

가이가 새로운 세상을 만끽하면서, GM 키스는 중차대한 버그를 발견한다. 프리 시티의 세계는 시한부로 더 큰 비밀이 도사리고 있다. 

  

영화를 풀어나가는 게임 속 몰로토브걸과 가이. (출처: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 자, 스포 입장! 

 

* 주의: 여기서부터 <프리 가이>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비유하자면 <프리 가이>는 ① 게임 세상 속 ② 라이언 레이놀즈가 ③ <트루먼 쇼>를 깨닫고 ④ <매트릭스>를 지켜 나가는 이야기다.

① 게임 세상 속: 게이머라면 <프리 가이>를 보면서 "오 이것은!" 할 만한 장면이 여럿 있다. 텍스트 팝인 현상 등 게임 속 온갖 버그를 모아놓은 버라이즌 광고가 게이머 사이에서 화제였던 것처럼, <프리 가이>에서는 게이머 공감 요소로 채워졌다.

레벨업, 퀘스트 등 RPG의 기본 설정부터 <GTA>의 불타는 도심과 뱃지로 나타나는 지명도, 항상 지루한 일만 반복하는 NPC, 게임에서 무자비한 킬러를 플레이하는 현실의 귀여운 꼬마들, <배틀그라운드>에서 본 것 같은 이모트와 <포트나이트>의 곡괭이 망치까지 알차게 들어있다. 

프리 시티를 서비스하는 '수나미 엔터테인먼트' 사장 앙투안은 <프리 가이>의 빌런이다. 키스와 밀리의 코드를 통으로 베낀 프리 시티를 잘 서비스할 마음은 어디에도 없고, 속편을 만들어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혈안이 된 인물이다. 핵심 악당이 지나치게 순수악으로 그려져 영화적으로는 자연스럽지 않지만, 몇몇 게이머들은 특정 게임 회사의 행보를 떠올릴지도 모르겠다.

 

게이머라면 흥미로울 요소가 많은 <프리 가이>. (출처: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② 라이언 레이놀즈: <데드풀>에서 본 바로 그 캐릭터가 NPC가 되어 나사가 덜 조여진, 착해 빠진 캐릭터를 연기하는 느낌이다. 특유의 화장실 유머와 촐싹거리는 톤은 그대로다. 그렇지만 신체를 절단하는 등의 파괴적인 액션을 보여주진 않는다. 말하자면 12세 이용가 <데드풀>을 보는 느낌이랄까?

스스럼없이 흑역사 <그린 랜턴>을 파내어 욕한 라이언 레이놀즈 아니던가? 작품의 벽을 능수능란하게 넘나드는 그의 모습은 이번 영화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프리 가이>에서는 MCU가 깜짝 등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라이언 레이놀즈가 언제나의 라이언 레이놀즈라서 지루하게 다가오기도 한다. 살짝 들뜬 듯한 내레이션은 아직 반갑지만, 새롭지는 않다.

 

<프리 가이>에서도 라이언 레이놀즈는 라이언 레이놀즈한다. (출처: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 SF의 오랜 질문을 거듭하는 <프리 가이>

③ <트루먼 쇼>: 자신의 세계가 오로지 타인의 재미를 위해 축조된 것이고, 주인공이 자유를 찾아 나선다는 점에서 <프리 가이>는 <트루먼 쇼>와 상당히 맞닿아있다. "좋은 하루, 아니 훌륭한 하루 되세요"라는 가이의 입력어는 트루먼의 마지막 대사(좋은 오후, 좋은 저녁, 좋은 밤)와 연결된 듯하다. 짐 캐리나 라이언 레이놀즈나 시종일관 미소를 보이고, 미소를 짓게 만든다.

트루먼은 물 공포증을 주입당했고, 가이는 (마이애미를 배경으로 하지만 물에만 들어가면 죽어버리는 <GTA 바이스 시티>처럼) 바다에 갈 수 없다. 하지만 두 인물 모두 주어진 제약을 이겨내고 바다를 건너 새로운 세계를 찾아낸다. <트루먼 쇼>의 빅 브라더는 시청률에 미친 미디어고, <프리 가이>의 빅 브라더는 게임 회사다. 다행히 <프리 가이>에는 사장 앙투안을 제외하고 게임을 지키려는 조력자들이 존재한다.

 

<트루먼 쇼>와 <프리 가이>를 함께 놓고 보면 재밌을 것. 사진은 마지막 인사를 남기는 트루먼. (출처: 롯데시네마)

트루먼에게 세트장은 벗어나고픈 덫이다. 그렇지만 NPC인 가이에게 0과 1로 만들어진 게임 세계, ④ <매트릭스>는 자신의 존재 근거다. <프리 가이>의 프리 시티는 앙투안의 마수로부터 지켜야만 할 공간으로 묘사된다. 가이는 짝사랑으로부터 NPC의 틀을 깨는데, 몰로토브걸의 본체인 밀리와 실제로 입술을 나눌 수 없다. 오랜 '물음' 끝에 가이는 순순히 몰로토브걸을 놔준다.

"난 누군가 또 여긴 어딘가"는 SF의 고전적 물음이다. <공각기동대>에서도 <A.I.>에서도 우리는 스스로 사고하는 피조물을 만났다. <프리 가이>의 가이도 프로그래밍 범주를 벗어나 색안경을 얻어내고 전혀 예상치 못한 눈을 뜬 뒤 같은 고민에 빠진다. 가이가 위험을 무릅쓰고 (어쩌면 원작자들이 프로그래밍한대로) 사랑하는 대상을 향해 직진하는 모습에서는 <그녀(HER)>가 오버랩된다.

<프리 가이>의 고민은 라이언 레이놀즈의 다른 영화처럼 가볍게 해결된다. <그녀>에서처럼 인간과 AI 사이에 이루어지지 못할 사랑을 맺기 위해 대리인을 고용하거나, 끝없는 자괴감과 우울에 빠지지 않는다. 가이는 무리하지 않고 자신이 NPC라는 점을 인정한 뒤 게임 세계에 정주한다. 가이에게 진심이었던 밀리도 가이 대신 키스와 키스하면서 '현생'을 챙긴다.

 

원래 '프리 시티' 세계를 만든 밀리(좌)와 키스 (출처: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 <프리 가이> 끝에 든 생각은...

결국 수나미 엔터테인먼트의 프리 시티는 망해버리고, 키스와 밀리는 자신의 어셋을 바탕으로 '설령 NPC라도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새 게임을 만든다. <프리 가이>가 게임 세계와 현실 세계에서 나란히 이야기를 전개시킨 것은 재밌었지만, 이 지점에서는 어울리지 않았다. 과연 그런 게임을 좋아할 게이머가 얼마나 많을까?

은행 강도 퀘스트에서 '나는 지금 당신의 총을 맞을 수 없다, 오히려 당신을 죽이고 돈을 벌겠다'며 대드는 NPC가 과연 좋은 AI일까? 그렇게 인간과 '진짜' 관계(영화에서는 순간에 충실하면 이루어진다고 말하는 바로 그것)를 맺으려 들면 사용자들은 만족할까? 

지금은 종차별주의(Speciesism)도 낯선데, 미래에 누군가는​ 종(Specie)으로 분류하기도 어려운 AI와 NPC의 권리를 주장할까? 감독 숀 레비와 제작자 라이언 레이놀즈는 깊이 빠져드는 대신 웃음과 감동으로 일관한다.

 

(출처: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